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03화 (203/497)

203화 전투의 함성

“걸렸다. 현자회 놈들.”

조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파놓은 촉각에 현자회의 움직임이 걸려든 것이었다.

조제성은 고대 북유럽에 있는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대해서 감시망을 펴둔 바 있었다. 미드가르드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로서 라틴어와 게르만어, 켈트어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켈트 신화는 북구 신화와는 다르지만 여러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이라면 켈트 신화의 경우 신들이 인간들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쫓겨나서 축출된다는 사실이었다.

분명한 것은 현세에 미드가르드어를 정확하게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템플기사단에 존재하는 오드의 후계자조차 미드가르드어를 알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미드가르드어도 미드가르드어 나름으로 변화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프레이야령에서 사용되는 미드가르드어는 지금도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구에서 쏟아져 들어온 외래어들 때문이었다. 영어와 한국어 위주로 된 외래어와 신조어들 때문에 오염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급격하게 바뀌고 있었다.

여타 지역에서 사용되는 미드가르드어도 이천년에 가까운 세월의 차이 때문에 꽤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었다.

조제성은 그 점을 노렸다.

템플 기사단도 지금의 미드가르드어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현자회라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을 고려한다면, 고대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이 필요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노리고 조제성은 고대어 연구하는 학자들을 전원 감시했다.

고대 유럽언어 연구로 유명한 대학의 컴퓨터를 해킹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서버를 구축해 줬다.

서버 운영자가 조제성의 회사였으니, 그 내부 정보에 접속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예 발키리칩까지 박아놓고, 언어 연구자들을 위한 편의 서비스까지 제공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고대 유럽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조제성의 서버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미드가르드에서만 사용되는 단어들을 등록시켜 두고, 그것을 검색하는 자들은 바로 최 중요 감시 대상으로 지정되도록 만들어 두었다.

그 외에도 언어학자들의 집과 연구실에 감시 장치를 몰래 설치해두고 시시 때때로 발키리를 방문시키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였다.

현자회의 보안은 철저했지만, 그들은 언어 학자들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미드가르드와 실제로 통신이 성공한 일은 역사에 남을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이어받은 주술과 생체실험을 통한 생명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언어 문제는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대 미드가르드어’를 완벽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미드가르드어는 죽은 언어, 죽은 언어는 진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드가르드에서 미드가르드어는 살아있는 언어이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진화하게 마련이었다.

현자회는 바토리의 욕조에 뜬 헬 여신의 메시지를 받고,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결국 그들은 고대 언어 학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물론 그들 역시 주의깊게, 조각조각 나눠서 언어학자들에게 의뢰했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노리고 기다리고 있던 조제성에게 포착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조제성은 그들이 해석하고자 하는 마법진의 일부까지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이런 이거 골치아프군. 거인족의 법술이야.]

아스 신족도 반 신족도 거인족도 같은 뿌리의 마법을 사용하지만, 종족마다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할지 특성이 있었다.

“무슨 용도지?”

[간단히 말하면 게이트를 인도하는 법술이야. 거인족 놈들 이쪽 세상과 통로를 열 셈이로군.]

“혼돈의 대륙인가.”

조제성은 로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혼돈의 대륙에 게이트를 연다면, 반신족과 아스신족의 방해없이 지상을 침략하는게 가능했다.

언어학자들의 의뢰 내용은 빼돌렸지만, 역추적은 쉽지 않았다. 현자회 역시 템플 기사단과의 오랜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발키리를 통한 감시에 대한 대비책이 있었다.

섵불리 건드렸다가는 경계심을 키울 가능성이 높았다.

“아프리카냐 아메리카냐로군.”

조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현자회 역시 신중한 놈들이었다. 그렇기에 조제성은 쉽게 결단을 내렸다.

“미국이로군. 틀림없어.”

현자회놈들이 바보라면, 게이트를 뻥 뚤린 공간에다 열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미드가르드와 현대의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전투의 규모에 따라서 승자가 갈린다.

비슷한 숫자의 공격헬기와 전차 등이 몬스터들과 붙게 되면 공격헬기나 전차들이 압승을 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수가 많은 데다가 의외로 재빠른 편이었다. 미사일이나 전차포가 아니면 치명상을 못입히는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면 전투에서 몬스터들이 압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 화력의 밀집이 가능하다면 압도적으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

원자폭탄 같은 것을 쓸 필요도 없다. 융단폭격만 당해도, 곡사포의 밀집사격만 당해도 몬스터들은 좌악 쓸려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현자회가 상황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할 리가 없었다.

남들 뻔히 보는 곳에 게이트를 뚫고 맨땅에 헤딩하도록 만들 단순한 놈들이 아니었다.

놈들의 의뢰 내용이나 질의만 봐도 어느정도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게이트가 지하에 뚫려도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였다.

거대 지하 동굴이나, 지하 창고 혹은 지하 군기지 등을 활용할 것이 틀림없었다.

신뢰의 문제라기보다는 효율성의 문제였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가 오더라도 막무가내로 싸우기보다는 준비를 갖추고 작전을 세워서 싸우는게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자회와 거인족의 조우 만큼은 어떻게든 막고 싶은데 말이지.’

조제성은 턱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건 그렇고, 아이템 제작 계획은 잘 되어 가는 겁니까?”

[아, 그거 말인데. 좀 기다려야겠어. 목봉밖에 못만들더군.]

“목검이라도 희연양에게 주면 좋아하겠군요.”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목검이라면, 희연의 무기사랑과 합쳐서 사용하면 꽤 활용도가 높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걸론 내가 만족 못하지. 지금 게임 프로그래밍 공부중이야.]

조제성은 프레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지요?”

최근 프레이에 대해서 반말을 주로 사용하는 조제성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존대가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블러드 라인을 조금은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복잡한 부분까지는 힘들지만 세계수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함께 건드리면 패치가 가능해. 그럼 이 세상에서 드랍템을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지.]

프레이는 드랍템을 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예 드랍템이 안나오게 만들 셈이었다.

[모든 전설 셋을 드랍템이 아니라, 제조템으로 바꾸겠어!]

그는 야망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블러드 라인에서 최강 셋이 현세에서도 최강 셋이 되게 만들어 주겠다고.

제성은 자신이 프레이의 집념을 얕잡아 봤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프레이는 이미 구제 불능이었다.

블러드 라인은 가상현실 게임이어서, 게임 자체에서 컴퓨터 화면을 불러내고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찬균과 호철의 착실한 지도 아래, 덕력을 키워나간 그는 이미 20세기의 유명한 컴퓨터 게임이나 게임기 게임까지 블러드 라인 내부에서 에뮬로 돌려가며 경험해 나간 상태였다.

그걸 토대로 게임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블러드 라인과 프레이야의 신성이 결합된 부분을 조종해서 패치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나올 생각 없는거지요?”

조제성이 묻자, 프레이는 피식 웃었다.

[여기보다 좋은 세상이 어디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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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는 희연과 함께, 숲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의연하게 적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늘 멀리에서 위태위태하게 날아오는 연하의 모습이 보였다. 비행 몬스터가 없어서 그나마 도망칠 수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활공하면서 도망온 터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원기와 희연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전투를 위한 자세를 갖췄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제성과 수한 역시 게임 기능을 이용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안좋군.”

“뭐가 안좋다는 겁니까?”

“원기님이 희연양을 너무 좋아하시는 듯 하네.”

장수한은 조제성의 ‘너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왠지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제거하실 겁니까?”

수한의 질문에 제성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수한을 바라봤다.

“어이. 너. 내가 삼류 바보 악역으로 보이냐?”

“그건 아닙니다만…”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비밀은 없다. 이건 상식이라기보단 철칙이야. 그렇기에 철저히 감추기 위해 노력하되, 드러날 경우를 염두에 둬야 하는 법이야. 내가 쓸데없이 빠져나갈 구멍을 대량으로 만드는 줄 아냐?”

장수한은 조제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빼도박도 못할 외통수가 될 수도 있는 짓이었다.

“그렇지만 안좋다고 하신 건…”

“균형을 맞추면 되는 거지. 원기님이 나처럼 일편단심이 되면 위험해.”

“자각은 있으셨군요.”

“물론이지. 혹여 그녀가 죽거든, 날 죽여달라고 이미 여신님께 부탁해 둔 상태야.”

“대단하십니다. 혹시 그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요?”

장수한이 살짝 장난끼가 돌아서 물었다. 둘의 금술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제성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별로 상관없어.”

“예?”

“어리군. 나도 말야.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지. 만약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거들랑, 날 죽이고 가라고 말했지. 아니, 통보만 해주면 사고사를 가장해서 죽어줄 수도 있다고 했지.”

조제성은 실제로 유혜서에게 담담하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중에 그녀가 죽는 순간 깨달았어. 그녀가 날 좋아하건 싫어하건 살아만 있으면 행복할거라고 말이지. 그녀가 죽었을 때, 난 자살할 생각도 못했다니까. 웃기지 않나?”

“진심인 것 같아서 무섭군요.”

“그때 깨달았지. 난 그녀가 살아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걸 말이야. 그녀가 불행하든 행복하든. 그런데 불행하면 오래 못살아. 인간의 정신은 생각보다 망가지기 쉽거든. 따라서 그녀는 행복해야 해.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지. 그럼 나도 오래 행복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난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기뻐할 걸세. 그게 설령 내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야. 물론 가능하면야 날 사랑해주면 좋겠으니 그걸 위한 배려도 해 놓겠지만 말이지.”

‘이 양반도 제정신은 아니군. 이건 스토커의 경지를 넘어서 완전 수호령일세. 설령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도 떨어질 생각 따위는 눈꼽만치도 없어 보이는군. 배려라는게 뭘지는 모르는게 낫겠지.’

장수한은 조제성의 생각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듯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조제성이 원기에게 하렘 타령을 하는 것도 그때문이었다. 희연을 의심하거나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듯, 분산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혼돈의 대륙에서 리디아가 위험에 빠진 바 있듯이, 세상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법이기도 했다.

‘이 양반 사고 회로가 단순한 건지, 우선 순위가 확실한 건지.’

조제성이 살기 위해선 유혜서가 필요하고, 유혜서가 살기 위해선 프레이야 여신이 필요했다.

게다가 몇백년 이상 살 수 있다는 확신아래, 어떻게 영혼 혹은 인격이 망가지지 않고 오래오래 잘 살아 볼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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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죽어봐라!”

원기는 거대한 신체를 자랑하는 요르문간드의 등에 올라타서 손톱을 박아 넣고, 페인 마스터리를 사용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전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요르문간드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등을 거대한 나무 둥치에 밀어 붙였다.

나무가 부러지면서 충격을 받은 원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희연의 검격과 연하의 활 공격이 없었더면, 원기는 요르문간드의 거대한 도끼에 박살이 났을게 분명했다.

“젠장. 능력이 통하지 않아.”

신체는 그저 파괴용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감각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전투용이자 파괴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굳이 감각을 집어 넣을 필요는 없었다.

요르문간드와 헬은 놀이 삼아서, 신체의 테스트 삼아서 사냥을 즐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희연의 검격과 원기의 검격이 정확하게 들어갔지만, 상대는 고통을 느끼지도 않았고, 상처는 곧 아물어 버렸다.

연하의 화살이 눈을 꿰뚫었지만, 그 눈조차 금방 아물어버렸다.

‘싸울 방법이 없나? 이렇게 무력할 수가.’

원기는 전의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연하와 희연도 마찬가지였다. 숲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이미 거미들과 용족에 의해 포위당한 상태였다.

요르문간드가 신체를 테스트할 겸, 가지고 노는 것에 불과했다.

“보아라! 이것이 참 용신의 위대한 힘이다!”

요르문간드는 뻐기듯이 말했다. 그 순간 원기에게는 오기가 발동했다. 여기서 순순히 꺾이면, 놈들의 사기를 키워줄 뿐이었다.

요르문간드의 체면에 흙탕물을 끼얹어 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 역량 차이가 크게 나는군. 레벨도 덩치도…’

그 순간, 원기의 머리속을 스치는 전투가 떠올랐다. 엄청난 덩치 차이에도 완력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공포에 빠뜨리는 전의의 화신이 떠올랐다.

원기는 그 전의의 화신을 떠올리고 검을 버렸다.

그리고 요르문간드에게 힘있게 뛰어들어서 공격했다. 요르문간드가 그걸 보고는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에 명중한 듯 싶었지만 의외로 가벼운 듯 걸리는 느낌이 약했다. 가볍게 튕겨나간 원기는 다시 가볍게 뛰어들어서 그의 비늘을 손톱으로 긁어댔다.

피는 조금 튀었지만, 데미지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요르문간드는 불쾌함을 느꼈다. 은색 호랑이를 주먹으로 내리치려고 했지만, 이미 미련없이 빠져서 그의 다른 쪽 다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희연의 눈빛이 번뜩였다.

원기의 전투 방식이 어디서 왔는지 깨달았다.

상대에게 치명타를 안기기 보다는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히기 위한 전투 방식이었다.

원기는 흥에 겨워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꼬꼬대~액”

그의 외침에 연하도 무엇을 의도했는지 깨달았다. 닭들은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지 않는다. 일격에 죽이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냥 죽을 때까지 피하면서 쪼아댈 뿐이다. 그들은 그 순간, 블러드라인 최악의 맹수, 닭 세 마리가 되어서 요르문간드를 난도질했다. 요르문간드는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승산도 없고, 생존확률도 없는데 집요하게 공격했다. 죽이겠다는 살의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쪼아댈 뿐이었다.

어차피 아픔은 느껴지지 않지만, 당혹감과 불쾌감이 점점 치밀어 올랐다. 움직임은 상대가 더 빨랐다. 차라리 도망쳐 주면 좋겠는데 도망도 안치고 죽자고 댐벼들었다. 연하는 날개를 이용해서 삼차원 입체기동의 흉내까지 냈다.

물론 닭처럼 민첩한 기동은 안되기 때문에 공격보다는 시선을 끄는 쪽으로 약을 올리듯 움직이다가, 아예 닭 흉내를 내면서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약은 오르는데, 상대는 좀처럼 맞아주지는 않았고 계속 쪼아댔다.

“허허, 저거 진짜 빡치겠네요.”

“그래? 저게 의미 있는 건가?”

“안당해 보면 몰라요. 블러드 라인 하는 사람들은 저 장면 보면 혈압오를 겁니다. 닭들의 관광이라고. 닭들에게 관광당해본 사람들은 잘 알지요.”

결국 요르문간드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짜증이 극도로 치솟으면서 왠지 모를 공포까지 느껴졌다. 고통도 생명의 위협도 못느끼는데, 닥쳐오는 짜증과 공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블러드 라인의 게이머들은 그의 심정을 그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도 죽음의 위협도 안느끼는데 상대는 미친듯이 안맞아주고 피는 조금씩이지만 빠져 나가고, 차라리 빨리 죽여줬으면 싶은 그런 기분은 게이머가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요르문간드는 이런 기분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공격해! 뭐하는 거냐! 공격해!”

요르문간드가 명을 내리자, 거미 괴물들과 용족들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으로 희연과 원기, 연하에겐 기회가 되었다.

상대를 죽이려고 들지 않고, 혼란만 야기했다. 그리고 숲 속으로 끌어들여서 주변 나무에 불을 질렀다. 희연의 스킬을 이용하자 순식간에 사방에 불을 붙이는 것이 가능했다.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수라장 안에서 원기와 희연, 연하는 사망판정이 떴다. 그리고 불길이 진압되었다. 사방에 거미괴물들과 용족들의 타다만 시신이 널려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자신이 흘린 피와 연기에 의한 그을움으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놈들의 시신이 어딨나?

“보이지 않습니다.”

시신을 남기는 것도 남기지 않는 것도 가능한 것이 게임 캐릭터의 특징이었다. 아니, 시신을 오래 남기는게 더 어려운 것이 게임 캐릭터였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들은, 연하 일행이 무사히 도망쳤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새끼. 덩치는 큰게 허당이네.’

‘진짜 용신 맞아?’

‘혹시 우리 속아서 내단만 갖다 바치는 거 아냐?’

‘저새끼한테 전멸당한 동족들도 많다지?’

내단을 모으기 위해서 이런 저런 명분으로 용족들을 숙청한 요르문간드의 행실 때문에 용족들의 충성심이 급감하는 양상을 보였다. 요르문간드는 그런 용족들의 눈치를 보고 화가 끓어 올랐지만, 상황이 안좋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를 억누르고는 내단을 모아들이라고 명을 내렸다.

“꼬꼬댁!”

내심 불만을 품은 용족 중 하나가 닭 소리를 내자, 요르문간드가 움찔 했다. 그러자 다른 곳에서도 또 닭울음 소리가 났다.

“무슨 짓이지? 지금 소리는?”

“낮아진 사기를 북돋는 소리입니다. 원래 유명한 전투 기합성입니다.”

용전사중 하나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요르문간드는 무시하면서 먼저 자리를 떠났고, 뒤에 남은 용족들은 꼬꼬댁 거리며 비웃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용족들은 전투시에 “꼬꼬댁!”하며 외치는 전통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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