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프레이의 결의
“몬스터들의 지능이 보통이 아닌걸.”
원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몬스터들을 회유하는데 리디아의 능력은 제 구실을 못했다. 리디아가 호의를 배풀면, 몬스터들은 제 나름대로 보답을 하려고 드는데 이 보답 방식 자체가 먹이를 구해온다던가 하는 것이어서 은혜에 보답하려고 죽음을 불사하고 탈출을 시도한다던가, 동료를 죽여서 그 시체를 리디아에게 먹으라고 주던가 하는 방식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리디아만은 안전하지만, 원기를 때려죽여서 리디아에게 먹여주려고 드는 은혜갚으려는 몬스터들은 오히려 통제가 힘들었다.
반면 몬스터를 회유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원기의 능력이었다. 살살 쓰다듬어주면 야성이고 뭐고 다 날아가버렸다.
그런 몬스터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면서 몬스터들을 회유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는 생각밖으로 놀라웠다.
인간의 지능이 몬스터들과 그리 차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원시인과 현대인의 유전적 차이나 선천적인 능력 차이는 크지 않다. 현대인이 뛰어난 것은 ‘훌륭한 언어’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길들이는 와중에 몬스터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이미우와 김민정이 길들인 동물들은 그저 훈련만 받은 동물들과 비교도 안되는 수준의 지능 향상을 보여주었다.
“동물들과 몬스터들을 위한 언어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언어는 그냥 한국말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보다는 모르스 부호처럼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만 가르치는게 어떨까 싶어요.”
김민정은 동물들의 생각을 듣는 만큼, 원기의 생각을 이해하고 보완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동물들의 생각을 듣는 것은 일종의 독심술과 같아서, 민정의 머리속에 자연스럽게 의역되어서 들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우와 김민정을 통해서 의사소통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사람 말을 듣기 시작한 동물들의 경우 들려오는 머리속의 생각이 달랐다.
“말을 이해하고 배우려고 든 애들은 뭐랄까, 더 선명하게 생각이 들려요. 마치 제게 말을 하려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발음을 못할 뿐이지. 어느정도 대화가 되요.”
실제로 개들한테는 Yes는 한번, No는 두번 짖으라고 가르친 다음, 의사 소통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그렇군요. 그럼 몬스터 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한국말을 가르쳐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모르스 부호보다는 좀 더 효율적으로 어떤 동물이든 의사 표현을 시킬 수 있는 신호를 만들지요.”
언어를 알게 되고, 눈치도 생긴 몬스터들에게 리디아의 배가교환 역시 제대로 작동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거짓을 모르는데다가 원기의 손길이 가진 짜릿한 맛을 잊지 못하는 만큼 도움은 되지 않았다.
리디아는 대신 놀 제로와 함께 일선에서 수인 제국의 생존자들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
원기와 희연은 생존자들의 보호와 혼돈의 대륙 탐색에 전념했고, 굴베이그는 이미우, 김민정, 김태훈 일행과 함께 몬스터 부대를 양상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했다.
생존자들의 존재는 거인족들에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안전할 수 있었다.
연하는 디레를 도와서 용족들을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는 그 거대한 몸체와 강인함으로 용신을 자처함으로써 용족들의 충성심을 끌어냈다.
거기에는 그 강함과 함께, 디레에 대한 반감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연하를 용신으로 모시고 자기 편의대로 용제국을 쥐고 흔든 디레에 대한 반감이 없었다면 그렇게 확 판세가 바뀌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요르문간드가 농락당했을 뿐 아니라, 연하 일행이 무사히 탈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실제로는 죽었다가 부활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디레 일족의 몰살은 디레에 대한 동정적 여론으로 바뀌었고, 용족들을 말살하는 행태가 용족들의 회의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용족들이 디레의 통솔하에 들어왔으며, 연하야말로 진정한 용신이라고 믿고 따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추종자들까지도 요르문간드를 마룡이라고 부르고, 연하를 천룡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원기 일행측의 정보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요르문간드 주변의 용족들 중에서도 디레 측에 정보를 흘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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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야. 거인족들의 계획이 마지막 단계로 향하고 있다.”
조제성은 오딘이 경청하러 온 것을 확인하고 장수한에게 말했다.
오딘이 알아보기 쉽도록 모형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고, 작은 모형들을 이용해서 군대가 배치된 상황까지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물론 원기 일행이 자리잡은 비밀 기지는 표시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짜 기지가 거점으로 되어 있었다.
“거점 상태는 어떻습니까?”
“프레이야님과 희연님의 활약으로 동조자들을 모았다고 하더군. 지금 물자를 조금 반입하긴 했지만, 언제든 버리고 도망칠 수 있도록 꾸리는 임시 거점에 지나지 않으니 고생이 심하겠지. 그냥 큰 동굴이라고 보면 될걸세.”
미리 조사해 둔 동굴에는 일부러 흔적도 남겨뒀다. 혹시 아스 신족의 부대가 들이닥치더라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터였다.
“현세와 연결 통로를 뚫는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대량 살상 병기는 지구쪽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거야.”
“원자폭탄만 손에 넣을 수 있어도 미드가르드쯤 한방인데 말이지요.”
“엘프들도 모두 죽어버리니, 그건 안될 일이지.”
오딘은 제성과 수한의 대화를 엿듣고는 위기감을 느꼈다. 제성과 수한이라든가 지상에 다녀온 엘프들의 대화를 통해서 오딘은 지구가 얼마나 크고 강력한지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제성과 수한이 교묘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위험성은 몰랐다. 오딘이 알고 있는 지구는 대충 2차세계대전 전후의 지구 수준이었다. 물론 60억에 달하는 인구를 포함하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제성과 수한은 그 백분의 일도 안되는 나라에서도 극히 미미한 세력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해서 전쟁이 촉발되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오딘 역시 거인족이 문을 여는 것을 막을 필요는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야. 수인제국이 분전해준 덕택에 용족의 피해가 적지 않았어.”
“하지만 현 전력으론 파고들어볼 틈이 없습니다.”
“일단 적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감사 해야겠지.”
‘1만척의 비행정까지는 필요 없겠군.’
오딘은 두 사람의 분석을 들으며, 제성이 지도상에 배치해놓은 전력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현재 완성된 비행정은 약 2천척 가량되었다. 토르와 티르를 비롯해 다른 신들의 병력을 동원하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들었다.
‘우선 2천척으로 선봉 부대를 보낸다. 그리고 곧 완성될3천척을 추가로 동원하도록 하지.’
오딘은 그렇게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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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족의 잔존병력 수를 지나치게 줄인 거 아닙니까? 십분의 일이라니.”
수한이 걱정스럽다는 투로 물었다.
“상관없어. 일단 싸움은 붙여야 하니까. 오산으로 시작되는 전쟁이 원래 스펙터클한 법이지.”
“인명 피해가 클 겁니다.”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니었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수인 제국은 이제 궤멸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배수진을 짠 최종 전투에서 진수와 신수를 비롯한 고위층이 요르문간드와 펜릴, 헬의 위용에 놀라서 몬스터들의 숲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수인제국은 너무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다. 숲으로 도망쳐도 살아남기 힘든 인간 병사들마저 숲으로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용족에 의해 죽은 이들보다, 숲속의 거대 몬스터들에게 죽은 숫자가 몇 배는 많을 거라는 것은 굳이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제성과 수한은 이 전투 결과를 살짝 바꿔 놓았다.
용족들의 피해가 적지 않은데다가, 디레에 의한 반군이 활동해서 내전이 벌어졌다고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경과 보고가 정확했기 때문에, 있을 법한 결과에 오딘 역시 속아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배수진을 치고 싸운 전투에서 병력들이 싸우지도 않고 물속에 뛰어들어서 자멸해 주는 그런 결과는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물속이라면 뛰어들지 않았겠지만, 숲이라는 점 때문에 생존 확률이 거의 없는 일반 병사들까지 뛰어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덕택에 용족의 30만 대군을 상대로, 10만명의 선봉 부대를 보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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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제국의 생존자들과 문화 유산을 수집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놀 제로의 통솔력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대부분의 길드들이 깨끗하게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장수한은 각 길드의 전투기술 교본과 노하우를 수집해 들였다.
몬스터와 합체한 게임 캐릭터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고급 전투기술들의 집합체였기 때문이었다.
장수한은 이 전투기술들을 ‘무공’이라고 명명했다.
실제로 이 ‘무공’이라는 전투 기술은 ‘진수’혹은 ‘신수’의 전투 능력을 고도로 끌어내 주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희연의 ‘초인용 검술’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원기는 호랑이 길드에서(장수한은 호왕문이라고 불렀다.) 호권을 손에 넣었다. 권법이라기보다는 이빨과 발톱을 동시에 사용하는 전투 기술이었다.
희연에게 배운 쌍검술보다는 못하지만, 검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권의 공격들은 쓸모가 있을 뿐만 아니라 쌍검술을 활용하는 상황에서도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뒷발톱을 사용한 공격이라든가, 박치기에 이은 물어뜯기, 이빨을 이용한 관절부 밑 혈관등을 긁어 찢기 등은 쌍검술을 사용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호랑이 형태의 육체를 최대한 살리는 기술로 몸의 운동성도 확보되었다.
희연 역시 꼬리를 사용하는 기술들을 각 문파의 비급(장수한만 이렇게 불렀다.)을 통해서 얻었다.
수인제국이 포기하고, 용족들이 그냥 지나쳐간 땅에서 놀제로는 수인 제국의 모든 지적 재산들을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용 스캐너 등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서 재빨리 디지털화 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장수한은 그것들을 토대로, 각 동물별 전투 스킬들을 분리해서 책으로 만들고, 프레이는 이것들을 블러디 라인에 살짝 적용하기 시작했다.
몬스터 합체를 이용한 게임 캐릭터 강화가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블러디 라인의 새로운 개성으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단순 코스플레가 아닌, 반인 반수족의 등장, 게다가 그에 어울리는 전투 기술까지 등장하자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의 전투에 매료되었다.
무기만이 아닌, 뿔과 이빨, 발톱을 이용한 야성적인 전투, 매니아들을 만들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는 프레이에게 새로운 결심을 불러일으켰다.
‘게임의 신에 어울리는 최강의 테이밍 몬스터를 만들어 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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