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08화 (208/497)

208화 펜릴

“크하하, 죽어라!”

펜릴은 신이나서 팔을 휘둘렀다. 거대한 늑대인간의 팔이 은빛 호랑이를 덥쳤다. 원기는 피하지 못하고 팔로 막았다.

팔이 찢겨지며 피가 튀고 원기는 뒤로 튕겨 나갔다.

‘팔이 붙어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원기는 재빨리 구르듯 움직여서 두번째 공격을 피했다. 희연은 이미 한 팔을 물어 뜯겨서 제대로 반격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깨에서 팔이 찢겨 나간 상태에서 한손으로 검을 들어 저항은 하고 있지만, 피하는게 고작이었다.

‘시간을 벌어야 해.’

죽으면 부활할 때까지 십분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이라면, 펜릴은 이미 그들의 시체를 무시하고 늑대족들을 학살하고 있을 터였다. 사냥을 즐기는 괴물, 요르문간드보다 몸놀림도 움직임도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희연의 검과 원기의 공격에 몇번이나 부상을 당했지만, 금새 회복되는 미칠듯한 회복 능력까지 있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원기는 바닥을 굴렀지만, 펜릴은 양팔로 원기의 양 팔을 붙잡아 눌렀다. 2미터에 달하는 은호의 체구가 마치 어린애처럼 보였다.

일견 남자가 여자를 덥쳐 누르는 듯이 보였지만, 늑대의 거대한 주둥이와 날카로운 이빨과 징그러운 거대한 혓바닥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새끼 고양이를 물어 죽이려는 개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펜릴의 눈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크악! 뭐냐! 대체 뭐가!”

펜릴은 고통을 느끼진 않았지만, 한쪽 시야가 검게 변하면서 몸이 비틀거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치명적인 데미지가 펜릴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거였다.

왼쪽 눈 외에도 왼쪽 어깨와 옆구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좋았어. 세 발 모두 명중이야. 두발 빗나간 건가.”

연하는 미소를 지으려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망원 렌즈를 통해서 본 펜릴의 모습이 기가 찼기 때문이었다.

조금 비틀거리다가, 연하의 방향을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미쳤군. 이거 대물저격총인데.”

대인 저격총이 인간을 살상하기 위한 총이라면, 대물 저격총은 장갑차 등을 파괴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연하가 가진 것은 바렛XM-109 커스텀으로 대물 저격총으로 유명한 바렛중 최신형으로 꼽히는 XM-109를 드워프들이 재조립해서 만든 물건이었다.

소형 유탄(25mm)를 사용하기 때문에 총이라기보다는 대포에 가까운 물건이기도 했다. 그걸 눈에 얻어맞고도 금새 회복되는 펜릴은 그냥 괴물이었다.

뒤늦게 들려온 총소리와 화약 냄새를 맡고는 펜릴은 남은 외눈으로 연하를 발견했다. 그리고 연하를 향해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연하는 몸을 일으키고는 바렛의 탄창을 갈고 선 자세에서 한 방을 쐈다. 지지대 없이 쏘는 묘기는 게임 캐릭터의 강력한 힘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반동 때문에 조준이 흐트러져서 조금 전처럼 다섯발을 연속으로 쏘는 것은 불가능했다.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가슴에 얻어맞은 펜릴이 비틀거렸다. 펜릴은 이를 갈면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왼쪽 눈에 맞은 데미지는 작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부위인 뇌가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트롤 따위는 비교도 안될만한 무시무시한 회복 능력이지만, 뇌의 회복에 집중되고 있어서, 눈을 비롯한 기타 부상의 회복은 더뎠다.

연하는 도망가면서 틈나는대로 한 발 씩 쐈기 때문에 펜릴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달려야 했고, 그만큼 쫓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연하는 펜릴의 무시무시한 추적에 등골이 오싹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헉헉대는 분노와 흥분의 숨소리가 연하의 귀에도 들려오기 시작하자, 연하는 과감하게 저격총과 탄창이 든 가방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등에서 날개가 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에 장비한 압축가스 분사기가 쉬익하는 굉음을 내면서 압축 가스를 뿜어냈고, 그녀는 가볍게 고공으로 날아올랐다. 압축 가스 분사기의 출력은 고작 20초지만 그 추진력과 날개를 이용해서 그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펜릴은 순식간에 닭쫓던 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아, 아까 그 무기가.’

펜릴은 자신을 공격한 무기를 떠올렸다. 총이라는 무기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성기사나 신관들에게도 무력화되는 물건이었다.

지금 자신을 공격한 무기가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연하의 냄새를 쫓아서 총과 가방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가방에 들어있던 카메라를 통해서 펜릴이 다가온 것을 발견한 연하가 리모콘의 스위치를 눌렀고, 가방안에 넣어둔 폭탄이 폭발했다. 남은 유탄과 클레이모어가 함께 폭발하면서 펜릴의 몸은 화염과 파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상황에서 회복하는 놀라운 육체이긴 했지만, 적어도 한 두 시간 이내에는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히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뒤늦게 회복했을 때에는 늑대족도 원기와 희연도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크하하하하. 아하하하! 최고야. 정말 재밌어. 이게 바로 사냥이지. 이거야 말로 사는 맛이야.”

펜릴은 정말로 유쾌한 기분으로 웃어댔다. 그는 로키에게 부탁해서 이 육체가 고통을 느끼게끔 바꿔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요르문간드와 달리 그는 그걸 즐겼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펜릴이 최강의 야수로서 두려움을 받는 점일지도 몰랐다.

그는 고통과 패배, 죽음까지도 즐길 줄 아는 최강의 전사였다.

‘그건 그렇고, 아까 그 무기에 대해서 다른 놈들에게도 알려주는게 좋을까?’

펜릴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처럼 재밌는 적들을 만났다. 굳이 경계시키고 몰아 죽이는 것은 재미없었다.

이런 식으로 적들을 방치하면, 자신이 패하고 죽거나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죽음과 멸망을 그는 내심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전사이면서 동시에 승부사였다. 승리가 보장된 승부처럼 시시한 것은 없었다.

‘아주 재밌어. 또 보자구. 용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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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닭 테이밍은 무리에요.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희연이 블러드 라인에서 비밀 기지로 나오면서 말했다. 보스 캐릭이라서 연달아 지는 바람에 레벨 다운까지 당했다. 그녀가 장닭에게 도전하는 장면들의 동영상도 여러 개 돌고 있었다.

“그런 걸 버그 캐릭터라고 말하는거지. 몹 설정도 초보가 함부로 하면 안된다니까.”

원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레이는 게임 디자인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는 듯 했다. 신성력과 프로그래밍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데다가, 서버를 멈추고 테스트 서버를 돌릴 수도 없는 블러드 라인을 개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붉은 장닭 사태는 그 위험성을 보여준 한 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프레이가 신중해졌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자 액땜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프레이와 희연, 최강을 자랑하는 두 유저가 붉은 장닭에 처참하게 당한 덕분에 붉은 장닭에 도전하는 유저들은 없었지만, 도전 의욕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저렙에서 전투기술을 즐기던 유저들 가운데,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갖춰서 언젠가 불가능이라고 일컬어지는 붉은 장닭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갖게 된 이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산이 있으니, 산에 오른다.

불가능이 있으니, 도전한다.

이런 묘한 사람들의 도전욕을 자극한 덕분에 블러드 라인에 접속하는 유저들이 한층 더 늘어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정신치료에 대한 임상 실험 결과가 논문으로 작성되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블러드 라인 내부, 특히 잊혀진 신들의 신전에서 명상을 하면 스트레스가 감소되고 집중력이 상승되며, 정신적 장애가 완화된다는 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상 실험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대학생들이었고 그들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사람들이었다.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시점에서 논문이 발표될 때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먼저 자기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 몰래 쉬쉬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준 결과 금새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 점 중 하나가, 잊혀진 신들의 신전은 폐허였다. 당연히 마을이 아니라 필드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필드에서는 PK가 가능했다.

수험 학원 한 곳에서 길드원들을 ‘고용’해서 그 장소를 사냥터를 점유하듯이 점령했다. 그리고 학원에 등록한 학생들만 들여보내고, 학원 강사를 그곳에 배치해서 명상과 수업을 반복했고 그것이 꽤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수한이 그 사실을 빠르게 눈치채고 블러드 라인 신규 회원 등록을 차단했다. 동접자를 늘릴 필요는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수라장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특히 사회적 이슈가 되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제어 불능이 되어버린다면, 자칫 블러드 라인 자체가 위험해 질 수도 있었다.

“대책을 세워야지, 안되겠는걸. 그건 그렇고, 내 길드 창고에 있는 아이템들 내다 팔면 수익이 대체 얼마가 될려나?”

천공신 셋을 비롯해서 블러드 라인에 존재하는 극강 아이템셋을 길드 창고에 쌓아둔 장수한은 미소를 지었다. 돈이 아쉬운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현실세계에서 블러드 라인용 전투기술을 가르친다는 도장까지 생길 정도가 되자, 뉴스에 블러드 라인이 심심치않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해킹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패치가 불가능한 블러드 라인에 해킹이 성공할 수는 없었다.

“해킹이라, 인간들은 참 웃기는 놈들이 많아.”

프레이는 그들의 시도를 가소롭게 여기며 비웃듯이 말했다. 바이러스나 트로이의 목마 같은 프로그램들을 만드는데 정렬을 쏟는 인간들이 멍청해 보였다.

“남의 모니터를 훔쳐보는 프로그램이라. 이런 걸 만드는 쓰레기는 대체 뭐야. 오딘 같은 놈이군. 그래. 오딘 같은 놈이야.”

프레이는 그 순간, 바이러스와 트로이의 목마 프로그램에 대해서 엄청난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번뜩임은 알람음과 함께 사라졌다.

“이런 이런. 레이드 시간이네. 나중에 더 생각해 봐야지. 붉은 장닭을 최초로 정복하는건 내가 아니면 안되지.”

게임 폐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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