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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12화 (212/497)

212화 살아가는 것은 싸우는 것.

“크흐. 제법 아프군.”

펜릴은 금색 뿔을 지닌 붉은 호랑이의 모습을 한 놀 제로의 공격을 받고 미소를 지었다. 싸움에는 고통이 따라야 즐겁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혼자서 나타났지만, 그래도 피해는 적지 않았다.

로키는 펜릴을 막는 것을 포기했다. 차라리 수인제국의 잔당들과 놀고 있는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펜릴은 전투를 위해 데려온 맹수지, 함께 일을 꾸밀 동료는 아니라고 봐야 했다.

‘아픔을 느껴?’

놀 제로는 그 사실을 재빨리 모두에게 알렸다. 아픔을 모르던 펜릴이 아픔을 느낀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원기는 재빨리 희연과 함께 전투에 나섰다. 펜릴을 제압할 수 있다면 상황은 대단히 유리해 질 수 있었다.

희연과 원기가 도착했을 때, 펜릴은 놀 제로를 만신창이로 만든 상태였다. 만렙 캐릭터를 사용하는 놀 제로는 페인 마스터리를 제외하면, 원기와 대등한 수준의 강자였다.

희연 만큼은 못하지만, 제법 노는 맛이 있는 상대라고 생각한 펜릴은 그녀를 죽이지 않고, 가지고 놀고 있었다. 놀 제로는 그것을 굴욕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녀를 가지고 노는 동안, 적어도 그녀가 이끄는 무리의 피해가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마음 가짐은 그녀에 대한 수인족들의 충성심을 끌어내고 있었다.

과거에도 리더쉽은 넘쳤다. 그저 밤에는 강제로 수인화가 풀리는 선천적 약점 때문에 수인족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오지 못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자기 부족을 이끌어온 그녀에겐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이 뼛속까지 배어 있었고, 그것은 그녀를 따르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강렬한 빛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뇌전과 불꽃을 구사하는 붉은 일각호.

그것이 바로 놀 제로였다. 붉은 호랑이가 된 것은 세배 빨라서가 아니고, 금색 뿔에 어울리는 컬러링이 붉은 색이라고 프레이가 멋대로 색깔 지정을 바꿨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합체해서 호랑이 무늬 비키니를 입은 여전사가 되지 않은 것은 프레이가 여성이 합체해도 제대로 괴물화되는 몬스터를 급조해 낸 덕분이었다.

놀 씨리즈들이라면, 수인이 되기 위해서 남자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성격들이었기 때문에, 원기를 위해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하이에나의 암컷 생식기는 모양이 수컷 생식기와 굉장히 닮았기 때문에 남자 캐릭터로 플레이하는데 거부감은 커녕 엄청나게 상성이 좋았다.

그리고 그것은 원기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악몽이 될 수도 있었다.

“왔군. 그래.”

펜릴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흘리면서 희연을 노려봤다. 압도적인 스피드와 힘을 가지고 있지만, 몸을 놀리는 능력이나 전투 기술은 완벽하다고 할 수 없었다.

전투 기술, 특히 검술에 있어서 예술 수준으로 완성된 희연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덤벼라!”

펜릴은 덤비라고 외치면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어찌보면 모순된 언동이지만, 그의 의도는 희연은 물론 주변의 모든 이들이 쉽게 알 수 있었다.

희연은 펜릴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펜릴의 엄지 손가락이 날아갔다.

“크하핫. 아프다! 아파! 더 해봐라. 계집.”

즐거운 듯이 말하는 펜릴이었지만, 마조키스트적인 고통을 쾌락으로서 즐기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살기는 더욱 더 강렬해졌다. 무시무시한 전의가 주위에 전해져서 수인족들은 감히 덤빌 생각을 못했다. 만약 펜릴이 자신을 야수들의 신이라고 선언하고 굴복할 것을 명했다면, 수인 제국의 잔존 세력들은 뻔히 잡아먹힐 줄 알면서도 굴복하고 말 것 같은 강렬한 살의였다.

하지만 희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희연은 빠르게 움직여서 펜릴의 무릎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펜릴은 그것을 눈치채고, 위에서 힘껏 희연을 향해 오른 손을 내리쳤다. 잘려나간 엄지 손가락이 회복되어 가고 있었지만, 피부는 회복되지 않았기에 내리치는 순간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펜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상처와 아픔, 그것이 전장의 분위기를 강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죽음이 없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박진감, 그것을 그는 상실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죽음과 고통, 상처를 무릎서고 상대를 죽이고 승리하는 쾌감,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궁극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의 등 위에 폴짝 올라탄 것이 있었다. 양손과 양발의 발톱을 세워서 펜릴의 등에 달라붙은 것은 원기였다.

“깨갱! 깨갱! 끼아아앙! 크헉! 크와아악!”

펜릴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아픔을 느꼈다. 희연의 칼에 베인 느낌도 섬칫했지만, 이 고통은 너무나 끔찍해서 비명조차 어떻게 질러야 할지 모를 정도의 아픔이었다.

펜릴의 정신을 일순이나마 날려버릴 정도의 고통은 공포까지 느끼게 만들어줬다. 고통은 죽음보다 더 강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펜릴은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미친 듯이 등을 사방에 부딛쳤고, 공중으로 떴다가 바닥에 등부터 떨어짐으로써 거머리처럼 붙어있으려던 원기를 떼어낼 수 있었다.

“이, 이거야!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그는 바닥에 박혀 쓰러진 원기를 보고 때려 죽이려고 손을 쳐들었다. 희연의 공격이 아무리 매서워도 일이격으로 펜릴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펜릴은 코앞의 무방비한 적을 내리칠 수가 없었다.

죽음은 그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지만, 죽음보다 무서울 정도의 고통은 맛볼 수 있었다. 그는 다시금 그 고통을 맛볼 수 있다는게 두려웠다.

그리고 그는 그 두려움을 음미했다.

그는 원기를 죽이려던 것을 멈추고, 큰 나무를 휘둘러서 희연을 물리쳤다. 덩치와 괴력을 이용한 크고 묵직한 무기는 희연을 상대하는데 최적이었다. 그쯤은 펜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릴은 희연에게 자신의 발톰과 이빨로만 덤벼왔다.

그게 그에게 있어서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죽지않는데, 상대만 죽는다는 것은 제대로 된 투쟁이 아니었다.

“너희들, 역시 재밌어. 무서워 죽겠군. 다리가 떨고 있어.”

펜릴은 그렇게 유쾌한 듯이 말했다. 실제로 그의 다리는 물론이고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지나친 고통에 의한 쇼크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일단 오늘은 내가 졌다. 다음에는 이렇게 잘 풀리진 않을 거다.”

죽음보다 두려운 고통, 다시 맛보고 싶지 않은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이 존재한다는 두려움 그는 이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미칠 듯한 고통을 맛보는 것은 그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죽어줄 마음은 없지만, 패배는 깨끗하게 인정했다.

“너희들, 나와 좀 놀아줘야 겠어. 오늘 게임은 내 패배다. 다음을 기약하지.”

펜릴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흘리면서 숲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어가듯이 모습을 감췄다.

“성가신 놈을 잘못 각성시킨 느낌이군.”

원기는 온 몸이 쑤시는 것을 느끼며, 희연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희연은 펜릴의 습격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펜릴의 움직임이 좋아졌다. 전투 기술도 상당히 세련되어 졌다.

희연은 자신도 펜릴과 같이 가슴이 떨리는 것을 내심 느끼고 있었다. 두렵고 걱정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설레이고 기대되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이었다.

홀로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어차피 대등한 상황에서 승부를 겨룰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원기의 한방과 연하의 원호가 있으면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희연에게도 승부사의 혼은 있었고, 펜릴의 각성과 함께 그녀 또한 각성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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