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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14화 (214/497)

214화 수단과 목적

‘좋은 풍경이야. 눈이 번쩍 뜨이는걸.’

원기는 침대에 누운 채로 살짝 고개를 들어서 옷장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어떤 옷을 입을지 살짝 고민하면서 옷을 갈아입어보는 희연의 모습이 있었다.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건강미와 청결감이 넘치는 속옷차림의 모습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희연은 침대에 누우면 완전히 통나무처럼 곧은 자세로 조용히 잠들어서 깰 때까지 거의 미동도 안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면에서 원기의 모피(?)로 파고 들어오던 아스가르드의 노숙이 더 좋은 부분도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곱게 누워서 조용히 잠들고 정해진 시간에 깨어나는 희연의 사생활은 원기로서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옷을 갈아입는 시간은 원기에겐 놓치기 아까운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일어났어요?”

옷 매무새를 점검하며 거울을 바라보던 희연은 원기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쳐다보는 원기를 향해서 별다른 동요없이 말했다. 속옷차림을 보이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보이려 했지만 약간 서두르는 듯한 기색이 원기에게도 느껴졌다.

“그냥 편하게 갈아입었으면 좋겠는데. 되도록 천천히. 급할 것도 없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난 이 시간이 좋더라고.”

원기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최대한 담담한 척 말했다. 희연은 그의 말에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귀가 살짝 붉게 변했다. 의식하는 듯 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이 느긋해진 것은 분명했다. 아니, 조금 딱딱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희연은 청바지와 조금 헐렁하게 보이는 티셔츠를 입었다. 원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감탄했다. 옷걸이가 좋으니, 어떤 옷을 입어도 멋져 보였다.

희연은 옷차림을 점검하고, 마지막으로 소지품을 챙겼다. 그녀의 소지품 중 하나는 드워프가 만든 양산이었다. 평범한 양산이지만, 양산대가 분리되고, 펼쳐진 양산을 팔에 끼워서 방패처럼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양산은 특수 섬유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 자체로는 총알이나 검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워낙 얇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희연의 능력 무기 강화를 적용시키면 왠만한 중기관총탄까지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산 대는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검의 길이로 늘어나기 때문에 역시 그녀의 능력으로 검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차림에 양산은 안어울릴려나.’

그녀는 잠시 양산을 두고 갈 생각을 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강해지고자 했는지를 떠올린 것이었다.

그녀는 그저 강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주어진 역할을, 임무를 통해 기여하고 싶었다. 여신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녀는 양산을 꼭 움켜 쥐었다.

24시간 여신 곁에서 여신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임무였다. 비록 죽여도 죽지 않는다지만, 앞장서 몸을 내던지는 성격이라지만 그걸 방치하고 있던 것은 그녀의 태만이었다.

원기가 강해지는 것을 즐기고, 강한 적에 맞서 스스로 강해지는 것을 즐기는 것은 그녀 자신답지 않다고 느꼈다.

희연은 스스로도 책임과 의무에 얽매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할 때 자신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강해지고자 필사적이지만,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 대체 뭘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희연은 어이없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무엇 때문에 강해져야 할지를 잊은 것이었다.

“어떤 옷이 어울려요?”

희연은 원기의 의견을 물으며, 지금 입고 있는 옷과 그녀의 취향과는 좀 다른 팔랑거리는 화사한 옷을 보여주며 물었다. 밀착 경호를 위해서는 경호 대상에게 호감을 많이 얻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속옷이 패션의 완성이라던…..데….”

원기는 살짝 기대를 담아서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희연이 그어놓은 선은 여전히 확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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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펜릴이로군. 제법 맘에 드는데.”

프레이는 희연과 펜릴의 전투 장면을 여러모로 검토했다. 그리고 펜릴의 능력을 검토했다. 장수한이 분류한 레벨과 등급, 그리고 능력치와 기술들을 분류했다.

그것을 토대로 펜릴을 만들었다. 희연이나 프레이급 플레이어가 최소 다섯 명은 덤벼야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몬스터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잘 검토해서 붉은 장닭처럼 버그성 능력을 갖지 않도록 만들었다.

장닭처럼 혼자 도전하지 않으면 출현하지 않는 특성도 없었다.

펜릴의 강함은 무지막지한 능력치와 덩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게임 밖에서 구현화 되어봤자 에인페리아 수준의 능력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테이밍 불가의 보스 몬스터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투 경험을 쌓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이녀석으로 다크 엘프들을 훈련시켜야 겠어. 희연도 못당해내는 괴물이라지만, 10명 정도 잘 훈련시키면 제압하는 건 문제도 아니겠지. 이 기회에 프레이야님에게 잘 보여두는게 좋겠지. 내가 블러드 라인 안에 있는게 훨씬 더 가치있다고 인식시켜 둘 필요가 있어.’

그는 맘편히 블러드 라인에서 잉여롭게 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펜릴을 잡으면 나눠줄 포상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 펜릴 전투에 익숙한 인간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지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 몰랐다.

'인간들의 공략 아이디어를 응용하면 의외로 쉽게 펜릴을 때려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놈들의 상상력이나 꼼수는 상상을 초월하니까.'

프레이는 기발한 인간들의 발상을 기대하며 미소를 지었다. 게임의 헛점을 이용하는 꼼수라면 쓸모가 없겠지만, 실제 전투에서 적용될 꼼수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포상으로 뭐가 좋을까. 상품을 거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호철이랑 찬균이 녀석에게 물어봐야겠군. 멋진 공략법을 공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스포츠카를 거는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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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는 활과 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익힌 것은 표창 투척기술이었다.

연하의 바람 읽기 능력 역시 한층 개화되었다. 바람 타기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이능이 되었다. 바람의 영향을 두배 이상으로 받게 되는 것이었다.

바람읽기 능력이 없다면 그저 성가실지 모르겠지만, 바람을 미리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효과는 상당히 높아질 수 있었다.

투척용 단검과 회전 표창, 소형 부메랑 등을 이용해서 공격할 수 있었다.

희연처럼 무기가 아닌 것을 무기로 만드는 능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흉기를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은 문제였다.

그녀는 흉기처럼 보이지 않는 흉기로 타롯 카드를 골랐다. 드워프들이 얇은 고강도 금속판으로 만든 타롯 카드는 카드별로 교묘하게 무게 중심이 배치되어 있어서, 날아가는 궤도가 각각 달랐다.

아직 적중률은 높지 않았지만, 숙달될 경우 근접 거리와 중거리에서의 전투에서도 높은 전투력을 보일 수 있게 될 터였다.

“언니, 준비 끝났어요?”

연하는 리디아에게 물었다. 혼돈의 대륙에서 장기간 리디아와 함께 지내서 꽤 사이가 좋아진 터였다. 배가교환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리디아와 연하는 자연스럽게 정이 쌓인 것도 있어서, 함께 방을 쓰고 있었다.

리디아의 전투 능력은 엘프의 평균치를 상회하는 것이긴 했지만, 희연이나 연하는 물론이고, 레이니에 비해서도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나이트 엔젤의 레귤러라고 할 수 있는 싱글넘버들과도 비교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리디아로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디아에게는 뛰어난 외교, 정치, 교섭 능력이 있지만 그 때문에 원기, 곧 여신과 별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내심 희연과 연하에게 부러운 마음을 갖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리디아는 코디네이터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최대한 아름답게 꾸몄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정말 영화만 보고 오게 생겼네요.”

연하도 나름대로 멋을 낸 차림을 했었기 때문에 리디아 탓을 할 수는 없었다. 시내에 잠깐 나가자,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어버렸다. 원기와 희연은 나름대로 수수한 차림에 선글라스와 모자로 변장을 했다고 하지만 연하와 리디아가 이목을 끄니 그런 사소한 변장으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의외로 사인해달라고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들 핸드폰을 들고 촬영해대기 바빴다.

‘사고 치게 생겼네.’

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혹감을 느꼈다. 지금은 다들 구경만하면서 사진만 찍고 있었다. 주위에 카메라가 없는지 찾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가 용감하게 사인해 달라고 나서면, 사람들이 쇄도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원기 역시 실전 경험이 많은 관계로, 사람들의 표정에서 살기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상대는 단연 희연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왠일인지 희연에게서 무시무시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죽일 의도는 없지만, 죽일 각오는 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보통의 그녀는 여유가 넘쳤는데,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맥도리아는 무리겠네.’

원기는 쓴 웃음을 지으며 전화기를 들어 조제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자 중학교를 나온 덕분에 여자친구는 환상속의 동물이었던 원기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패스트 푸드점에 가서 함께 햄버거 셋트 메뉴를 사먹는 것 정도가 꿈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여친과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꿈꿔본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곧 리무진과 함께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조제성이 사들인 경호업체의 직원들이었다.

‘음, 탱커들이 다수로군. 딜러는 다크엘프 하나인가.’

원기는 한눈에 경호원들의 성격과 역량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도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사로서의 성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어느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강해질 방법도 알고 있었다.

바로 발키리의 문제였다. 프레이와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원기의 발키리는 기존의 발키리와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인격적인 면이 현저히 부족한 대신에, 기계와의 궁합이 좋았다. 인간의 영혼을 닮은 것이 기존의 발키리라면, 원기의 발키리는 프로그램을 닮았다. 그리고 템플 기사단의 뒤에 있는 메타트론, 오드의 발키리는 그리스도교의 천사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들의 언어, 곧 이미지로 만들어진 순수한 피조물이자 영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기는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파워즈를 떠올렸다. 유사 발키리지만 영혼을 다루는게 아니라, 오직 힘만을 가진 존재였다.

발키리는 물리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프레이야 상태에서는 그 힘을 증폭시켜서 검을 날릴 수 있었다.

원기는 그 점을 이용해서, 능천사(powers)를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의 형태를 하고 있고, 무언가를 집어 드는 데에만 특화되었다. 원기 상태에서도 제법 큰 힘을 발휘해서 물건을 들어 옮길 수 있었다.

무기를 집어 들어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가진 힘은 평범한 인간 수준이 고작이어서, 검과 검이 부딪치거나 하면 놓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상대는 체중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염력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는 제법 컸다.

프레이야 상태에서는 다수를 굉장히 강한 힘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파워즈를 사용하게 된다면, 프레이야 상태가 짬타이거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볼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영화라도 볼 수 있는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건지.’

리무진에 탄 원기 일행은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최근 개봉하는 유명 영화의 시사회로 향했다. 군중에 휩싸이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희연의 모습을 보니 원기로서는 군중의 안전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영웅중 하나이자, 인간을 초월한 학살자가 바짝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다가 맹견조심이라고 써 붙여둬야 하는건 아닌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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