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현자회의 눈
“스포트 라이트가 비추면 이 꽃을 전해 주시면 됩니다.”
원기는 영화를 보는 중, 스탭이 넘겨주는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꽃다발을 받은 것은 희연과 연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연예계 활동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는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키리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꽤 인맥을 넓혀 놓은 듯 싶었다.
원기와 희연, 연하가 연예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결코 적지 않았다. 광고주가 조제성인 경우가 많다고는 해도 수십억 대를 벌어들이고 있는 만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원기는 조용히 영화나 볼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쉽게 진행되어 주지는 않았다. 영화의 엔딩롤이 올라가고 감독을 비롯한 주요 스탭들과 연기자들이 앞에서 인사를 하고, 원기와 희연, 연하는 도우미의 안내를 따라서 꽃다발을 넘겼다.
사람들이 환호성과 박수를 쳤지만, 원기로서는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은 그도 잘 아는 유명한 이들이었다.
“이렇게 뵙게 되서 정말 영광입니다.”
원기는 동경하던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어서 악수를 청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사람들이 동요했다. 못볼걸 본 듯한 사람들의 반응에 원기는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원기가 잘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장수한이 발빠르게 연예계를 장악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연스럽게 미남미녀로 환골탈태 시켜주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선남 선녀 군단들을 연예계에 투입시켰다. 원기와 희연, 연하를 돌보는 에이전시 외에도 꽤 많은 연예계 업체들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기존의 연예인들에게도 특별 미용 서비스를 이용해서 영향력을 넓혀 놓은 상태였다.
아스가르드의 문화 산업만이 아니라, 이쪽 세계의 연예 산업에도 진출한 것이었다.
미모만 부족한 재능있는 인재들을 구해서, 미모를 보충해서 쓸만한 인재로 투입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엘프와 다크엘프들을 이용했다. 인간을 초월하는 운동신경과 위험을 도외시하는 충성심, 죽음의 위협도 문제가 안되는 용기까지 있어서, 이들을 이용해서 이미 미국에서 대규모 영화 촬영까지 하고 있었다.
야마토 프로젝트처럼, 영화를 이용하면 무기에 대한 훈련이나, 장소 확보가 쉽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제법 유명한 블록버스터도 몇편이나 만들었다.
돈 한푼 안들어가는 엘프들과 연기력 뛰어난 발키리들, 조제성의 자금 지원 등으로 인해서, 장수한은 이미 미국과 한국 연예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그리고 장수한의 여친 엘레니아가 주연 여우로 출연한 중세 전쟁 영화는 미국과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었다.
발키리들은 원기의 육신이 자신들의 여신의 본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엘레니아를 비롯한 고위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평범한 엘프들도 원기가 특별한 계약자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원기의 몸을 조종하는 발키리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원기 주변의 이들은 당연시 여겼다.
그리고 그것이 연예계 관계자들에겐 은연중에 화제가 되고 있었다. 황태자라느니, 그림자속의 지배자라는 소문도 퍼질 정도였다.
알멩이가 발키리로 바뀐 상태에서도 희연과 연하는 원기의 보디가드겸 심부름꾼 역할을 해왔다. 부드러운 미소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본판의 한계상 미남보다는 훈남 정도에서 평가가 머무는 원기와 특급 혹은 초가 붙는 미녀와 미소녀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활동 자체는 희연과 연하가 더 활발한 편이었고, 인기도 높았다.
인기가 모든 것의 척도인 상황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황제나 신처럼 행세하는 원기의 존재는 업계 관계자들에게는 의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유명 정치가의 숨겨놓은 자식이 아니겠는가, 숨겨진 재벌가의 자식일 것이라는 소문도 퍼졌다.
그런 원기가 꽃다발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과도하게 허리를 굽히자 사람들이 황당한 표정이 된 것이었다. 특히 꽃다발을 넘겨받은 주연 남우는 자신을 향해 집중된 시선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게임 채팅이 안되니 정말 답답하군. 물어볼 수도 없고.’
원기는 살짝 희연과 연하를 바라봤지만, 희연과 연하도 그다지 뾰족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희연은 꽃다발을 주연 여우에게 건내주면서 미소만 지었다. 어차피 처신을 어떻게 하든 어색함을 벗어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꽃다발을 놔주셔야…”
희연이 꽃다발을 놓치 않자, 주연 여우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시사회에 명백히 정상인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사내가 뛰어올라왔다.
명백히 광기에 물든 사내였다. 눈은 충혈되었고, 손에는 큼직한 손도끼가 들려있었다. 시사회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희연은 주연 여우에게 주려던 꽃다발을 도로 빼앗아서 원기의 앞을 막아 섰다. 양산은 없지만, 꽃다발을 강화하면 일시적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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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체를 드러내라.’
현자회 멤버이자, 순간 판단 가속 능력을 지닌 능력자인 헤르메스는 시사회장에서 원기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현자회는 조제성과 박원기의 존재에 대해서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로이드가 네이슨, 아폴로에게 정체를 감추긴 했지만 한국에서 조제성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네이슨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제성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미국 연예 에이전시에서 엘프로 의심되는 이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자회가 직접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현자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템플 기사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네이슨이 템플 기사단를 떠난 전후 시기, 조제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템플 기사단이었다. 템플 기사단을 노린 여러 책략의 효과가 커진 것은 현자회가 은연중에 협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조제성 역시 현자회의 입김이 닿은 곳들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현자회 역시 확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느정도는 템플 기사단을 적대하는 제 3의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트 엔젤과 테러 나이트가 현자회에 대해 압박을 개시하자, 그 협조자일 가능성이 높은 조제성을 건드려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조제성이 템플 기사단과 적대하고 있을 가능성은 크지만, 나이트 엔젤과 테러 나이트와 연결가능성은 미지수였다.
그리고 박원기는 그런 조제성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파악되었다. 방송국 등에 파견된 정보원들이 그런 정보를 물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실험체 한 마리가 이번 작전에 투입되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약물로 강화된 인간을 암살자로 동원해서 원기를 노리게 만든 것이었다.
원기는 명백한 VIP였고, 그를 경호하기 위한 이들 가운데 엘프, 혹은 유사한 능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테러 나이트와 나이트 엔젤은 드러난 뿌리가 없어서, 공격하기 쉽지 않았지만 조제성이 만약 그 뿌리라면 현자회는 공격할 대상이 분명해 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희연이, 명백하게 아름다운 여성이 꽃다발을 손에 들고 원기를 막고 나서자, 헤르메스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녀가 인간을 초월한 전투 능력을 보여준다면, 현자회는 공격 목표를 알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은 현자회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시기였다. 아스가르드와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어 헬 여신을 이 세상에 불러올 수 있는 중요한 시기였다.
전력으로 수비하거나, 공격을 통해서 적을 수세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조제성과 나이트 엔젤의 끈이었다.
공격 목표가 나이트 엔젤에게 있어서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면, 수세로 돌려야 할 상황에서 전력을 잘못 분산시키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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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서, 현자회에서 개발한 인간의 피를 농축시킨 특수 약물은 인간의 능력을 극단적으로 강화시켰다. 사내는 미리 입력된 대로 원기를 목표로 삼고 살기를 뿌렸다. 경비들이 매달렸지만, 사내는 너무나 가볍게 뿌리쳐버렸다. 뿌리치는데 도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아서 사망자는 나지 않았지만, 경비들이 허공을 날아 관객석에 떨어졌다.
희연은 거침없이 달려드는 사내를 향해 앞으로 나서서, 빛나는 꽃다발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저 노려 봤을 뿐이었다.
‘쪼렙학살’의 능력이 발동했다. 사내의 신체 능력은 2배에서 3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전투 기술 자체는 보잘 것 없었다. 고통을 모르며 무지막지한 힘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경직되는 모습을 보였다.
‘뭐지? 약물의 부작용인가?’
헤르메스는 당황했다. 갑자기 사내가 도끼를 든채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었다. 숨은 거칠게 쉬고 있었다. 염력이나 기타 능력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상인이라면 특수 능력으로 제압했다고 생각 할 수 있었지만, 약물로 능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덜컥 죽어버리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실패인가?’
경비들과 경호원들이 달려들어서 사내를 짓눌렀다. 그리고 사내의 고개를 바닥에 찍어눌렀다. 쪼렙 학살의 효력은 눈빛이 어긋나고 수초 가량이었다.
사내는 곧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들었다. 그리고 한쪽 팔을 붙잡고 있던 경비를 날려버렸다. 그때 원기가 달려들어서 그의 팔을 바닥에 눌렀다. 그러자 사내는 엄청난 비명소리를 지르다가 바닥에 축늘어졌다.
‘약이 잘 맞지 않았나보군.’
헤르메스는 잠시 망설였다. 순간 판단 가속능력은 뇌를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것이었다. 그는 게임에서 딴 이름인 ‘불릿 타임’이라는 명칭을 선호했다.
순간적으로 세계가 느리게 움직인다. 물론 자신의 육체도 느려진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3배 이상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만큼, 그렇게 부자연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잠깐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담이 오지만, 약 5초의 불릿 타임이라면 왠만한 적들을 일소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내가 나서 볼까.’
헤르메스는 잠시 망설였다. 그가 나서면 순식간에 경비들을 학살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원기와 희연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나이트 엔젤이나 테러 나이트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학살이 목적이 아니었다. 상대가 정체를 드러내게 만드는게 목적이었다. 그는 원기도 희연도 가볍게 죽여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저항도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공연히 적들을 경계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당혹스러웠던 것은 마지막 순간에 원기가 뛰어들고, 희연이 그것을 방치했다는 사실이었다. 최중요 인물이라면, 그 상황에서 미친 괴력의 흉악범에게 접근하게 두지 말았어야 했다.
‘잘못 짚은 듯 싶군. 아폴로 녀석.’
헤르메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좌석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는 자리를 뒤로 했다. 어차피 게이트가 열리는 것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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