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요르문간드
“큰 일이 벌어진 듯 합니다.”
조제성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기는 조제성의 표정을 보면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 답이 안나왔다는 뜻이 될 터였다.
“무슨 일인데 그런 겁니까?”
“아스 연합의 함대가 요르문간드라고 생각되는 거대한 바다뱀에게 당해서 침몰되었습니다. 사망자가 수십만을 넘어서는 듯 합니다.”
“수십만이라고요? 바다뱀이 하늘을 나는 배들을 건드린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천공 함대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아스 연합의 수백척 함대가 먼저 출발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오딘의 책략인 듯 합니다.”
“오딘이요? 그게 무슨?”
원기는 당혹감을 보였다. 아스 연합은 표면적으로는 오딘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병력이 수십만이나 일거에 날아갔다는 것이 오딘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딘만이 아니라, 토르도 엮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성은 원기에게 보고하면서 내심 혀를 찼다. 아스 연합이 내분을 일으킬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있는 둘이 오딘과 토르였다. 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둘이었는데, 엉뚱하게 손을 잡은 것이었다.
이번 사태로 티르의 병력이 대량으로 수장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아스 제국내의 세력이 오딘과 토르로 양분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티르는 토르와 같은 호전적 매파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면에서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오딘과 토르가 손을 잡은 것은 그때문이었다.
어차피 티르를 비롯한 보수적인 강경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오딘을 따르지 않는다. 오딘이 흡수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딘은 토르와 손을 잡았다.
아스 신족 내의 세력을 확실하게 나누기 위해서였다. 다수의 세력이 나뉘어져 있는 것은 안정적이지만, 격변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딘은 토르를 키워주는 대신에, 프레이야를 훔쳐봄으로써 얻은 지식들로 증기의 시대를 펼쳐갈 생각이었다.
“어떻게 알게 되신 거지요?”
“신근호군 덕분입니다. 원기님이 용산에서 만났던 그 깡패 친구지요.”
신근호는 우연히 얻은 인물이었지만, 꽤 쓸만한 재능을 지녔다. 그것은 사람들, 특히 힘있는 사람들과 잘 지낸다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 주장을 쉽게 굽힐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잔머리를 잘 굴릴 줄 알아야 했다.
신근호의 재능, 위험한 상대를 알아보는 능력은 스파이로 활약하는 사이에 위험을 감지하는 재능으로 진화했다.
그는 마치 침몰 직전의 배를 쥐들이 도망치듯이, 좋지 않은 상황을 용케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능력과 타고난 아부 실력을 바탕으로 티르에서 활동하는 용병단에서 제법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 용병단 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 그는 그것을 마치 기회라고 여기고, 용병단을 적당한 조건을 부여해서 합치는 작업을 해나갔다.
그 결과 티르 신성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용병단을 결성시키고 부길드장에 취임했다.
신근호는 의외로 자신이 이런 일을 즐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자에게 붙어서 강자의 비위를 맞춰주고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는 적극적으로 출세의 길을 달렸다.
게임 캐릭터의 몸은 기본 성능이 워낙 좋았고 양아치 생활을 위해 격투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용병들과 노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었다.
용병단원들도 의뢰주를 잘 구워삶는 그의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나름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이번 출정이 위험하다는 것을 이능을 통해서 완벽하게 탐지할 수 있었고 그것을 용병단 수뇌부에 알렸다. 생존률 제로라는 신근호의 말에 용병단은 신규 멤버들과 미움받는 멤버들, 그리고 자원한 신근호를 중심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티르 제국 소속인 만큼, 이번 대규모 출정에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근호가 탄 티르 제국의 거대함은 요르문간드의 습격에 무참하게 박살나버렸고, 신근호는 몇차례나 익사하면서 배의 파편에 의지해 무인도에 정착하는데 성공했다.
워낙 많은 수가 수장되다보니, 무인도에 도착한 이들도 수십명이 넘었고 신근호는 그들과 함께 생존을 위해 무인도를 개척 중이었다.
잠수함을 보낼 생각은 있지만, 요르문간드와 조우하는 순간 잠수함은 침몰 당할 수 밖에 없어서 만전을 기하는 중이었다.
요르문간드에게 걸리면, 야마토라고 해도 일순에 침몰할 수 있었다.
“상황은 우리에게 꽤 유리해진 듯 싶습니다. 수십만의 인명 피해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듯 싶으니 말이지요.”
조제성은 오딘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혼돈의 대륙에 도착하기 전에 거인족이 움직일 것은 예상했다.
그래서 오딘은 천공함대가 발진하기 전에, 연합세력의 함대를 먼저 출발시키도록 요청했다. 천공함대가 도착할 즈음, 대량의 병력을 실은 부대가 혼돈의 대륙에 도달할 수 있게끔 조율한 것이었다.
거대한 뱀의 육체를 복원했으리라고는 오딘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결국 천공함대를 증설하고 물자도 추가로 확보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정도 피해라면, 더 이상 전쟁을 벌일 여력은 없겠군.”
엘프들을 수도에 집중시킨 방어 전략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결과로 숲의 넓은 부분이 폐허로 변해 버렸다. 신성력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나무들은 말라죽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숲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으로는 일만명의 엘프를 부양하기도 힘들었다. 지구에서 식량을 반입할 수 없다면, 엘프들은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주위의 위협이 사라졌으니, 신전을 건설하고 숲을 되살리고는 있다지만 완전히 죽어버린 나무나 풀들, 몬스터와 동물들이 금새 되살아 날리는 없었다.
따라서 영토를 완전히 수복하는 것만해도 최소 수십 년이 걸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스 연합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신성력을 소모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딘과 토르의 영향력이 일거에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영토의 유지와 인구의 복원은 그리 쉽지 않을 터였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기는 하군요. 문제는 거인족이겠군요.”
“예. 아스족이 약해진 만큼, 이 기회에 반족을 자신들의 세력하에 복속시키려고 들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혼돈의 대륙에서 거인족들의 힘을 소진시킬 필요성이 있습니다.”
아스 신족은 적이지만, 거인족을 억제하는 억지력이기도 했다. 아스 신족의 몰락이 꼭 유리한 쪽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혼돈의 대륙에서 어떻게 일이 벌어지느냐가 중요하겠군요.”
천공함대는 여전히 건재하고 위협적이었다. 만약 이들이 혼돈의 대륙이 아니라, 프레이야 제국을 치러오거나 거인족의 중추부를 파고 든다면 그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조제성에게만 모든 것을 맡겨둘 수는 없기에, 원기도 고민해 봤지만 그다지 뾰족한 답은 없었다.
“그 괴인은 어떻게 되었지요? 명백히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던데 말이지요.”
원기는 극장안에서 습격한 괴인을 떠올렸다. 그가 발휘한 힘은 결코 정상적인 힘이 아니었다.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에게는 ‘비밀’이 없더군요.”
조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붙들린 그 괴한은 엄중한 감시 하에서 수감되었지만, 쥐도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생각해서 적이 안심할지 몰랐지만, 조제성은 그것을 예상하고 그에게 발키리를 붙여 두었다.
“현자회의 소행이 맞습니다. 단순 피험체라서 그다지 쓸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북미에서 실험하던 실험체였습니다. 그래서 현재 북미 거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보만 확인하고, 영혼은 풀어주었다. 지옥으로 갔을지 저승으로 갔을지는 조제성이 알 바는 아니었다.
“적어도 일주일 내에, 차원 게이트를 열 것 같습니다.”
원기는 조제성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차원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저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사흘 뒤 총력을 기울여서 북미 거점을 칠 예정입니다만, 함정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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