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로키의 역습
“최악의 상황은 게이트가 열리는게 아닙니다.”
조제성은 단언하듯 말했다. 지금까지 비축한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게이트를 저지하자는 다수의 의견에 대해서 조제성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현재 우리의 최대 적은 오딘입니다. 오딘이 움직인다면 아스가르드에서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거인족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이트가 열려서 거인족이 강해진다면, 거인족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오딘과 손을 잡을 수도 있게 되겠지요. 게이트를 막고, 우리의 전력이 거인족은 물론 오딘에게 드러난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사태가 될 겁니다.”
조제성이 제시한 카드는 ‘최악의 경우 오딘과의 협력’이었다. 거인족이 현자회와 손을 잡는다면, 확실히 오딘을 능가할 전력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시간은 걸릴 터였다.
반면, 조제성이 말한대로 오딘이 프레이야 세력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조금의 유예 시간도 없이, 프레이야의 세력은 소탕당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우 거인족도 적으로 돌아설 것이 분명했다.
“오딘은 지혜의 신입니다. 이를테면 슈퍼 컴퓨터겠지요. 제가 그를 우습게 보는 것은 그에게 선별된 데이터만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슈퍼 컴퓨터든 휴대용 계산기든 ‘1+1’은 ‘2’가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정보라면 어찌 처리해도 답 역시 제한될 수 밖에 없지요. 오딘을 지금까지 제어해 온 것은 정보를 제어해 왔기 때문입니다. 숨겨둔 무기나 기술에 대해선 몰라도, 오딘은 프레이야 제국의 모든 백성들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로키보다 그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제성의 의견에 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산은 높지 않지만, 지금까지 아스가르드에서 활용한 전력만으로 게이트 파괴에 도전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오딘의 천공함대가 지척까지 와 있었다.
비록 증기 기관을 이용한 비행선이나 다름없지만, 하늘을 꽉 채운 천공함대의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딘의 에인페리아 중 최강의 전력이 발큐리오스였다.
발큐리오스들은 발키리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발키리와는 별 관계가 없었다. 그들은 오딘이 특별히 만든 에인페리아였다.
천공성에서 사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날개달린 에인페리아들로 천공 기사단이라고 불리웠다. 연하처럼 어렵게 하늘을 활공하는 것이 아니고, 힘있는 날개로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도 날아다닐 뿐만 아니라, 묵직한 창을 하늘에서 꽂아대는 놈들이었다.
게다가 던진 창은 그들의 손으로 되돌아오는 능력을 가진 아티팩트였다.
일천에 가까운 수를 가진 천공기사단이라면 개틀링 건을 들려주면, 그것만으로도 악몽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있다면, 오직 엘프들 뿐이었다. 하늘에서 보기 힘든 숲속에 숨을 뿐만 아니라, 보지 않고도 떨어지는 창들을 피할 수 있고, 바람을 조종해서 직접 공격하거나 강력한 화살과 연계해서 공격할 수도 있었다.
중무장한 발큐리오스는 추락하는 것만으로도 중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엘프의 존재는 ‘귀찮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딘이 프레이를 동원해 프레이야를 제거하려고 든 원인이기도 했다.
“천공기사단과 아티팩트는 혼돈의 대륙에서 제 구실을 못할 겁니다. 그게 좀 아깝군요.”
장수한이 혀를 차며 말했다. 혼돈의 힘은 에인페리아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장수한의 분석으로는 천공기사단은 대륙 외곽을 확보하는 용도로 쓰여질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아니요. 혼돈의 대륙 내부에도 쓰일 겁니다.”
원기는 단언했다. 에인페리아 없이는 거인족의 음모를 제지할 수 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천공함대 내부에는 세계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형함 수척이 세계수들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게 없었다면 원양 항해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이 천공함대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세계수가 존재하는 대형함들을 불태워버리면, 대해 한복판에서 그들은 모조리 고사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혼돈의 대륙에서 격침시키면 적어도 그들은 혼돈의 대륙에서 무력한 상태로 발이 묶일 수 밖에 없었다.
“거인족에게 알려주고 싶은 정보로군요.”
원기의 말에 조제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게이트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만들고, 그 다음에 적당한 방법으로 거인족 귀에 들어가게 만들면 될 터였다.
아니, 로키라면 충분히 눈치챘을 만한 약점이었다. 굳이 가르쳐 줄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전선에 나가있는 희연의 시야가 화면에 비췄다. 거대한 구름이 소용돌이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적어도 게이트가 하루이틀 안에 열릴 거라는 것을 짐작케 해주는 것이었다.
놀 제로가 이끄는 수인제국과 디레가 이끄는 용족들도 전투를 위해 합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굴베이그와 이미우 김민정팀이 길들인 몬스터들은 모두 목에 붉은 목걸이를 시켜놓은 상태였다.
붉은 목걸이를 한 몬스터들은 적이 아니고 공격도 안해올 테니 무시하고 지나가라는 지시도 모두에게 숙지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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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하하하. 감히 이몸에게 도전하려고 들다니.”
반인반수의 몸을 한 요르문간드는 천공함대를 보면서 포효하듯 웃어댔다. 그의 목소리는 하늘을 울려퍼지면서, 천공함대에 탄 오딘의 군대에게도 확실하게 들려왔다.
게이트 전개의 영향으로 짙은 구름이 하늘을 두껍게 뒤덮었다. 결국 천공함대도 저공으로 비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천공함대에게, 요르문간드는 몬스터들을 던져넣었다. 민첩성을 겸비한 펜릴보다 전투력은 높지 않지만 파워만큼은 펜릴을 능가하고 있었지만, 팔로 거구의 몬스터를 천공함대에 던져 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길고 큼직한 꼬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몸통만큼 굵직하고 강한 힘을 가진 길고 강력한 팔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두 팔과 두 다리를 땅에 굳게 박아 넣고는 긴 꼬리를 이용해서 몬스터들을 천공함대로 던져 넣었다.
거대한 거미몸체를 한 헬의 자식(?)인 거미 몬스터들은 공처럼 몸을 말고 있다가 함대 안에 들어가서는 몸을 펴고 닥치는데로 살육을 벌였다.
“물량공세로군. 오딘 놈.”
박원기는 연하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세계수가 존재하는 대형함과 천공기사단은 일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이 참여했다면 전투의 양상은 완전히 달랐을 터였다.
하지만 오딘은 인해전술을 펼쳤다. 대량의 인명희생은 오딘에게 있어서 별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토르와 오딘의 전력들이 온존한다면 아스 신족들의 반감은 클 터였다.
그걸 고려해서 오딘은 전쟁을 연출하고 있었다. 적당히 피해를 입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딘은 막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조제성은 한방 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제성이 오딘에게 연출해 보인 것의 문제였을지도 몰랐다. 오딘은 미드가르드, 조제성의 세상이 증기 기관과 총기가 존재하는 스팀 에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인족이 지구에 들어가는 문을 열고 그곳의 힘을 얻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게이트가 열리면, 게이트를 빼앗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히 안되면 제성의 생각처럼, 프레이야와 연합하는 형태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오딘은 게이트를 막고자 한 것이 아니라, 막는 시늉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긴 것이 되는 것이었다.
제대로 만들어진 대형함들과 천공기사들은 온존시키고, 대량으로 급조한 함선들을 통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물론 급조되었다고 전 함선을 잃을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숫자가 피해를 입으면 뺄 생각이었다. 대규모의 영력을 이용한 대규모 차원 통로가 생겨난다면, 언젠가 오딘 자신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적의 병력을 분산시킨 것만으로 만족시켜야 될 것 같군요.”
연하는 디레와 함께 용족들을 이끌고 참전을 시도했다. 천공함대가 요르문간드와 헬에게 무력하게 당하기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틈에 놀제로가 이끄는 수인제국의 수인병들과 함께 원기와 희연 일행이 빨간 목걸이를 한 몬스터들과 함께 게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거대한 검을 든 펜릴의 모습이었다.
“검? 검을 든 적이 있었나?”
거대한 양손검을 든 펜릴의 자세는 희연의 자세와 비슷했다. 흉갑과 견갑을 두르고 양팔에도 방어구를 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원기는 순간적으로 위압감을 느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빨간 목걸이를 한 몬스터들이 수인병들을 습격한 것이었다.
“몰랐나? 몬스터들은 로키의 명령을 듣도록 만들어져 있지.”
펜릴은 명백한 비웃음이 무엇인지를 보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거대한 양손검을 들고 원기와 희연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원기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고, 희연은 간격을 유지하며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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