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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19화 (219/497)

219화 여게추

“물러나요. 제가 펜릴을 상대할 테니 그 틈에 몬스터들을 제압해요!”

희연은 펜릴의 검을 피해 바닥을 구르면서 외쳤다. 원기는 그 순간 재빨리 결단을 내렸다. 펜릴을 상대하는데 원기가 도움이 될 상황이 아니었다.

갑옷도 충실하고, 검을 사용해 공격 반경도 위력도 현격히 상승했다. 그리고 희연의 검놀림을 배운 듯, 공격도 상당히 날카로웠다.

뒤를 노리고 협공할 상황은 아니었다.

원기는 뒤를 돌아 보았다. 굴베이그가 제압한 몬스터가 다른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었다.

“기다려! 곧 돌아올 테니.”

원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생각대로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굴베이그가 참전하면서 놀들도 참전했다. 수인제국의 병사들도 죽으면 되살릴 수 없는 전력이었다.

물론 굴베이그가 참전한 덕분에, 놀들이 사망하면 그들의 영혼을 회수해서 부활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성력 소모를 생각하면 가능한 한 피하는게 좋았다.

‘퇴로를 여는 것만 생각하자.’

원기는 그렇게 마음먹고 포효스킬을 사용했다. 몬스터가 일순 경직을 일으키고, 원기는 그 목덜미와 가슴 사이의 약점에 대검을 꽂았다.

몬스터를 길들이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모든 몬스터들의 약점과 공격 패턴을 파악했기 때문에 한마리당 제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굴베이그는 그녀가 조종하는 몬스터가 죽으면, 다른 생생한 몬스터를 조종해서 전투를 벌였다. 그녀가 조종하는 몬스터는 크고 눈에 띄는 놈들이라, 다른 몬스터들의 공격을 이끌어냈다.

놀제로와 원기는 포효 스킬을 이용해서 약점을 노려 일격에 몬스터를 죽여 나갔다. 원기는 스킬의 쿨타임 사이에도 페인 마스터리를 사용해서 몬스터들을 무력화시키고 죽여 나갔다.

“모두 물러나! 퇴각한다!”

원기의 외침에 수인제국의 병사들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게이트 연결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몬스터들은 강력하긴 하지만 숫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원기가 십여 마리를 쓰러뜨렸을 즈음에는, 퇴로가 열렸다. 아직 삼십마리 이상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부상을 입은 놈들이 많았다.

굴베이그가 생생한 놈을 골라서 미친듯이 날뛰게 한 결과였다.

굴베이그는 원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수인제국병들을 이끌고 퇴각을 시작했다. 그녀가 조종하는 가장 생생하고 강력한 공룡형 몬스터가 선도하듯이 앞장서서 나아갔다.

원기는 놀제로와 함께 숨을 골랐다.

‘아직 안끝난건가? 엄청나군.’

희연은 피와 흙으로 온 몸을 칠하고 펜릴의 검에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원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몬스터들의 피를 뒤집어 써서 자신의 모습도 그다지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희연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아프게 느껴졌다.

“도와야겠어. 빨리 가자.”

“도와요? 대체 누굴요?”

놀제로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반문했다. 호랑이 형태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의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거야, 당연히 희연이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펜릴의 오른 무릎이 절단되면서, 펜릴이 땅 바닥에 주저 앉았다. 원기는 할 말을 잊었다. 무시무시한 회복 속도가 있다지만, 절단된 부위가 재생되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원기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냉정을 되찾으려고 해보니, 희연에게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피비린내가 호랑이의 코를 통해서 전해져 왔지만, 전에 맡은 적 있는 희연의 피냄새는 그다지 나지 않았다.

희연은 재빨리 움직여서 다른 쪽 발목도 잘라버렸다. 양 다리가 땅을 딛지 못하는 상태에서 양 손에 든 검은 무용지물이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펜릴 역시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 무장을 하고, 강력한 검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검을 든 상대하고 싸우는게 익숙하거든.”

희연은 살짝 오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희연으로서는 이번 펜릴은 말 그대로 요리하기 쉽게 자신을 도마위에 내던진 생선이나 마찬가지였다.

희연의 검술을 흉내내서 제법 날카로운 공격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희연은 상대의 자세만 봐도 어떤 공격이 가능하고 어떤 공격이 불가능한지를 알 수 있었다.

살짝 근육이 꿈틀대기만 해도, 어떤 검격이 날아올지 훤히 알아챌 수 있었다. 펜릴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그것에 맞춰서 검격을 흘리고 작고 위험한 상처들을 내 둔 것이었다.

중무장 덕분에 몸 놀림은 둔해졌고 그녀가 펜릴의 공격을 읽는다는 것은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확실히 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상대의 다리에 치명적인 상처들을 남겨 놓았다. 근육을 주로 관장하는 힘줄들을 파괴함으로써, 상처의 회복이 쉽지 않게 유도한 것이었다.

근육과 살, 피부는 쉽게 회복이 되지만,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서 몸을 유지해주는 힘줄들은 이어주지 않으면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희연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작지만 치명적인 상처들을 줄 수 있었다. 펜릴의 회복력 덕분에 출혈도, 아픔도 줄어들고 피부는 원상회복이 되었지만 내부 힘줄들까지 회복되지는 않았다.

희연이 낭패한 꼴을 보여준 것은 일종의 연기이기도 했다.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기 전에, 상대가 검과 갑옷을 벗어 던지면 고전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원기가 몬스터들을 제압하고 수인병들이 퇴각할 시간을 벌 수 있도록, 그리고 펜릴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야금야금 전투력을 빼앗기 위해서 고전하는 시늉을 해온 것 뿐이었다.

상대의 검격이 날아올 방향이나 힘을 읽을 수 있기에 그녀는 그 검을 흘리면서 요란하게 날아가고 뒹굴기를 거듭했다. 그녀가 흙투성이가 되면 될수록 펜릴은 자신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착각에 빠져서 허우적대게 되는 것이었다.

“어설프게 검을 들고 덤빈게 네 실수야.”

희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펜릴의 목을 날려버렸다. 팔로 땅을 짚고 있음에도 희연보다 큼직한 펜릴이었지만, 목이 바닥을 구르자 무너져 내려서 고깃덩이로 변해 버렸다.

희연은 그런 펜릴의 몸을 헤집어서 내단을 꺼냈다. 그 과정이 너무나 담담하고 냉정해서, 역으로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잘해주셨어요. 몬스터들을 꽤 빨리 제압하셨네요.”

희연은 그렇게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원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어설프게 검을 쓰려고 들다가 헛짓거리를 한 경험은 자신에게도 있었다.

냉정하게, 상대를 유도하며 땅바닥을 구르는 연기를 통해서 확실하게 펜릴을 잡아낸 희연의 모습을 보면서 원기는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닐지도 모르지.’

“그건 그렇고, 완전히 실패로군.”

펜릴과의 승부 여부를 떠나서, 몬스터들이 로키의 조종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들의 패배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군대처럼 활용되는 몬스터들이 게이트 곁에는 수백마리 이상 존재하고 있었다. 길들인 오십여 마리의 몬스터를 믿고 있었던 만큼, 답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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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건가?”

로키는 펜릴이 새 몸으로 갈아타고는 땅바닥을 구르면서 웃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아, 내가 병신이었지. 크하하. 완전 유린당했어.”

펜릴은 희연에게 완전히 참패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슬아슬하게 패했다면 분한 마음이라도 들겠지만, 자신이 멍청한 짓을 했다는 사실과 상대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유쾌하기까지 했다.

“정신 나간 놈.”

헬이 경멸하듯이 말했다. 헬에게 있어서도 펜릴은 이해할 수 없는 별종이었다. 승리와 권력을 탐하는 헬에게, 승부 자체를 즐기는 펜릴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게이트가 곧 열린다. 너희들은 준비나 해 둬. 헬, 펜릴을 잘 지원해 주기 바란다.”

로키의 말에 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지원이지, 감시하고 컨트롤해서 뜻대로 싸우게 만들라는 의미였다.

“좋아. 게이트가 연결 되었다. 성공이다.”

로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펜릴과 헬에게 사인을 보내자, 펜릴과 헬은 몬스터 군단을 이끌고 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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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대응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 합니다.”

현자회의 연구원이 뒤를 돌아보며 외치듯 말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오퍼레이터가 역시 외쳤다.

“아프리카에 있는 지부에서도 마법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보고입니다.”

“북유럽에서도 대응 마법진에서 에너지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네바다 사막 지부를 맡고 있는 아폴로는 그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나이든 현자가 감격에 찬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도 보였다.

현자회의 주축은 현자들이었다. 연금술을 연구하며 불로불사를 추구해 온 탐욕스러운 노인들이었다. 12신의 이름을 따르는 간부들도 언젠가는 현자의 일원이 될 터였다.

“오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약속의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이제 영원한 삶이 보장될 겁니다.”

“제발 헬 여신님의 강림이 이 네바다 지부에 이루어졌으면 좋겠군.”

지하 신전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거대한 지하실 안에서 대응 마법진은 찬란하게 빛을 뿜기 시작했다.

“오오, 이제 시작되는 건가.”

다음 순간, 빛이 사라져 버렸다. 눈이 부시던 빛이 사라지고 지하신전 내부에는 고요가 감돌았다.

“대응 마법진의 에너지 반응 사라졌습니다.”

“아프리카와 북유럽 지부에 연락을 해봐. 어찌 되었는지!”

노 현자가 당혹스러워하며 외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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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가 연결 되었습니다! 성공입니다!”

남미 아마존 지부에 있던 엘레니아가 외쳤다.

“조제성님, 대응 마법진이 성공적으로 작동해서, 게이트가 연결되었습니다.”

조제성은 엘레니아의 보고를 받고 주먹을 쥐어 승리포즈를 취했다. 프레이에게 게이트 대응 마법진을 해석시켜서 변형시킨 결과였다.

복수의 대응 마법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제성은 피가 아닌 신성력을 사용해서 가장 강력한 신호를 발하는 대응 마법진을 만들게 해놓았다.

신성력을 대량으로 낭비하는 도박이었지만, 완벽하게 성공했다. 게이트에서 나타난 몬스터들과 펜릴, 그리고 헬은 나타나자마자 블러드 라인과 연결된 통로로 사라져갔다.

혼돈의 대륙과 연결된 통로를 바로 블러드 라인으로 이어지는 문과 직결시켜 놓은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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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나왔다! 나왔어!”

“쏟아져 나온다! 쏟아져 나와!”

블러드 라인 유저들이 기뻐하며 외쳤다. 특별 기획으로 나온 시크릿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부산물을 가져오면 기본으로 십만원 문화 상품권이 주어지고, 추첨에 따라서 고급 스포츠카등 호화 상품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본래 블러드 라인 내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블러드 라인에 들어오면 적응이 안되게 되어 있지만, 프레이야와 결합된 공간이기 때문에 신성력을 강하게 간직한 자들은 신성력의 결정을 남기게 되어 있었다.

혼돈의 대륙 몬스터들은 물론이고 펜릴이나 헬도 신성력의 결정을 남기게 될 터였다.

“오! 진 펜릴 등장했다! 저거 잡을 수 있을까?”

“몰라. 하지만 참전만 해도 참가상품이 주어진다고 했으니까 까짓거 한 번 죽어보지 뭐.”

펜릴과 헬, 그리고 몬스터들은 미친듯이 달려드는 인해전술의 군단들을 보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들이 온 길이 일방통행이라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귀처럼 제 목숨 아까운줄 모르고 달려드는 인간들을 보면서, 펜릴은 이를 갈았다. 일시적으로 물러날 생각을 하고 보니 퇴로가 보이지 않았다.

“속였구나! 로키! 속았어!”

“설마? 아버님이? 절 버리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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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어째서 보고가 없는 거야. 왜 아무도 안돌아오는거지? 펜릴은 몰라도 헬은 날 배신할 리가 없는데?”

그들의 원한어린 절규가 들릴 리 없는 로키는 자신을 원망하는 이들을 나름 걱정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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