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23화 (223/497)

223화 사과의 섬

“성 조지에 대한 전설을 알고 계십니까?”

“성 조지라면, 드래곤 슬레이어로 유명한 영웅담의 주인공이로군요.”

“예. 템플 기사단의 역사는 성 조지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약 4세기 경, 오드님은 그리스도교에 귀의를 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오드님을 따르는 용기있는 자들과 함께 라그나로크가 벌어진 뒤의 잔당들을 처치해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템플 기사단의 기원이 됩니다. 조지 성인이 당시 협조자의 일원이셨지요. 그를 중심으로 해서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악신들의 유물을 회수해 온 것이 템플 기사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성 조지 기사단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로이드의 설명에 원기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내심 의아한 감이 들었다. 템플 기사단의 기원이 지금의 상황과 어떤 연결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템플 기사단의 역사와 성배가 어떤 관계가 있는 겁니까?”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에 대한 전설을 아실 겁니다. 성 조지 기사단이 훗날 원탁의 기사가 되었고, 그게 템플 나이트의 기원입니다. 성 조지는 실제로 영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영국 정확히 말하면 잉글랜드의 수호 성인입니다. 그리고 원탁의 기사 중 갤러햇은 성 조지의 십자가가 그려진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성 조지의 십자가가 그려진 방패는 템플 기사단의 상징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럼…”

“아더왕 전설에 나온 성배가 템플 기사단에서 보관하고 있던 성배가 맞습니다. 도망친 악신들의 유물 중 하나입니다.”

“그걸 어떻게 도둑맞은 거지요? 현자회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가 설명드리지요.”

조제성이 로이드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근묵자흑이라고 하지요. 현자회의 전신은 제가 보기엔 템플 기사단 그 자체였을 겁니다. 현자회와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템플 기사단이 실제로는 현자회를 낳고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좀비를 잡다가 좀비된다고 해야 할까요.”

조제성의 말에 로이드는 쓴 웃음을 지었다. 불로불사의 힘을 취급하는 성전 기사단이 불로불사의 힘을 쓸 수가 없다. 젊고 건강할 때는 유혹에 지지 않지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거나 그 자신이 괴롭고 죽어갈 때에는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곤 했다.

실제로 원탁의 기사 전설에서도 성배를 찾은 갤러햇의 요청도 자신이 원하는 때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켈트 신화에 반 족이 나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런가요? 북구 신화와는 다른 걸로 알았는데.”

“아일랜드에 반족이 흘러들어왔다고 일컬어집니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손녀인 케시르가 여인족을 이끌고 왔다고 합니다. 오드님의 말씀으로는 라그나로크때 떠나지 않고 남아있던 엘프들의 무리였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후에 포보르라 불리우는 거인족들이 쳐들어와서 반족들은 아일랜드에서 사라졌다고 신화에서 나오고 있습니다만, 오드님의 기록에 따르면 인간들과 교류해서 하프 엘프화되어 영국 전역에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포보르는 추한 거인들로서 반인반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거인족들의 잔재라고 할 수 있지요. 그 결과 영국에는 오드님의 힘을 이어받을 수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조지 기사단은 원탁의 기사로 이름을 바꾸고 괴물 사냥과 유물 수집을 해 온 것입니다.”

“호오, 재밌는 이야기군요. 그럼 켈트 사제들인 드루이드들이 말하는 떡갈나무는 세계수인 겁니까?”

“역시 수한씨가 이쪽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드루이드라는 말 자체가 떡갈나무를 아는 자입니다. 세계수의 가지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이끄는 사제들이 바로 드루이드지요. 아더왕 전설에 나오는 멀린 역시 드루이드이자, 오드님의 사제였습니다. 본래는 요르문간드의 사제의 혈통을 타고 났습니다만, 오드님께 귀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장수한은 신나서 켈트 신화에 대한 것을 로이드에게 물었다. 오드의 기록이라는 것도 그다지 객관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신화적 뒷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문제는 성배와 함께 있던 아발론입니다. 거기에는 역대 템플 기사단의 영웅들이 잠자고 있습니다. 성배는 그 영웅들이 필요할 때 그들의 육신을 부활시키기 위한 도구입니다.”

“언젠가 되돌아 올 왕, 아더로군요.”

원기도 아더왕의 전설을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켈트 신화와 북구 신화와 그리스도교 신화가 결합된 역사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신화로 단정짓기도 어려운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라그나로크와 그로 인한 혼란을 떠올리니,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막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오드가 자연을 아끼는 반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신화가 뒤죽박죽이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아더 왕이 되살아나지 못한 이유는 뭡니까?”

“생명의 주인은 오직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로이드가 경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프레이야에게 충성하지만, 신앙은 여전히 템플 기사단 시절과 마찬가지였다.

템플 기사단 초기에는 육체를 되살리고 전사의 영혼을 넣어 에인페리아로 싸우는 것을 금기시하지 않았다. 오드 자신이 반 신족의 신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를 엄격히 따르기 시작하면서,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것이 교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에인페리아로 부활시키지 않게 된 것이었다.

성배를 아발론과 함께 보관한 것은 혹시 언젠가, 아더왕을 비롯한 영웅들의 힘이 필요할 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벌인 일이라고 했다.

“그럼 아발론은 섬이 아닌 겁니까?”

“실제로는 구형의 아티팩트입니다. 멀린의 제자인 모르간이 만든 아티팩트지요. 발키리의 도움없이 영혼을 잠재워 동결시킨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과의 모습을 한 영웅들의 안식처라는 뜻입니다. 고대 영어에서 아발은 사과를 의미합니다. Abal이 후에 Apple이 된 것이지요. 켈트족 시인이 아발론을 ‘사과의 섬’이라고 부른 것도 그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사과 형태의 낙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글래스톤베리 지방에 세워진 최초의 그리스도교 교회 제단에 보관되어 있다가, 템플 기사단에 의해서 따로 보관되었습니다.”

“프레이야님, 아니 워, 원기야. 아더왕의 영혼을 위해서 새로운 육체를 만들자. 금발에 파란눈을 가진 미소녀로…거기에 아더왕의 영혼을 넣는거야.”

로이드와 조제성은 왜 미소녀의 육체를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원기는 모 유명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떠올렸다.

“수한이형, 형이 그런 입장이 된다고 생각해 봐요.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템플 기사단에서 가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순신 장군님을 미소녀로 만들어서 헉헉대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만 안있을 겁니다.”

원기의 말에 장수한은 입을 다물고 먼 산을 쳐다봤지만 미련이 남아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사실 아더왕이나 고대 영웅들의 영혼이 가진 지식은 템플 기사단에겐 그리 필요가 없습니다. 고대 신들의 기술을 쓸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 측에도 필요가 없습니다. 프레이야님과 프레이님의 지식과 비술이 훨씬 더 가치있기 때문이지요. 거인족인 펜릴까지 손에 들어왔으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현자회의 손에 들어간 것은 큰 문제입니다. 성배의 힘과 아발론의 영령들이 지닌 고대의 지식이라면 그들은 현 상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이드의 마지막 말을 통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발론은 영혼을 냉동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잠든 그 상태 그대로 깨어날 것이고,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알 수 없을 터였다. 현자회가 원하는데로 정보를 넘겨줄 가능성이 컸다. 고대에는 별 문제가 없었던 비술이나 지식이, 잊혀진 지금에 와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배는 인간을 되살리거나, 영원히 젊은 육체로 바꿔주는 것이 가능했다. 그걸 생각하면 현자회의 스폰서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터였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학살자들 가운데에는 현자회의 실험을 위한 스폰서들도 많았다. 걔중에는 자살로 위장해 시신을 태워버린 이도 있다는 불확실한 정보도 있었다.

현자회의 스폰서는 당시 독일은 물론, 미국, 소련 등 많은 국가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템플 기사단에서 그런 중요한 유물이 빠져나간거지요? 네이슨의 배신도 그렇고.”

“오드님이 인간에게 세계수와의 연결(신성)을 전승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그 모든 것을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로이드의 말에 원기는 자신의 경우를 생각했다. 프레이야 상태에서는 쓸 수 있는 뇌내의 거대한 데이터 베이스만해도 본래 육체로 돌아오거나 다른 게임 캐릭터를 쓸 데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직접 자신의 영혼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과도한 정보량이 육신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펜릴의 경우에도 신성은 아바타쪽에 넘기는 방식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교리를 비롯한 종교적 신념과 수명이 다해서 후계자에게 신성을 넘기는 과정에서 상실된 많은 정보들 때문에 오드는 템플 기사단에 대한 정신적 지배력이 약했다.

그런 템플 기사단을 묶어주는 것은 종교적 신념이었고, 그것은 조금씩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템플 기사단에서 현자회로 이탈하는 이들이 계속 있어왔기에 현자회가 지금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효과가 불확실한 연금술과 유물찾기를 수천년간 숨어서 계속한다는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템플 기사단이 있기에, 현자회는 확신을 갖고 영생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아발론과 성배는 함께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아발론의 회수를 우선하고 싶다는 것이 템플 기사단의 입장입니다. 아직 영국을 못빠져 나갔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 주실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테러 나이트를 템플 기사단에 떠넘기고, 용병으로서 협조하겠다고 협약을 맺은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테러 나이트는 실질적으로 제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진짜 파워드 슈트를 개발해서 채용한 템플 기사단제 테러 나이트는 방호력과 화력은 우위였지만, 현자회의 엘리트 전투원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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