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엑스칼리버
“무기가 필요하실 듯 한데, 어떠신지요. 이 무기들 중 하나에서 고르시는 것은…”
“흠, 모양새가 모조리 똑 같은 느낌이군. 두가지 종류 뿐인가?”
아더는 놓여진 검들을 살펴 보았다. 검들은 모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칼리번과 엑스칼리버으로 등장한 것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물론 그것도 스폰서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굉장한 검들이군. 녹안스는 철이 이렇게 흔하다고는 생각치 못했어. 내가 쓰던 칼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명검들이야.”
아더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티팩트를 쓰시지 않았나요? 엑스칼리버라는…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악신의 유물이라면 창을 썼지. 랜슬롯이 가지고 있을거야. 검은 제법 좋은 것이었지. 그걸로 희대의 사기극도 벌였고 말이지. 물론 이 칼들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사기극이요?”
“그래. 우더 펜드래곤의 아들 아더 펜드래곤이라는 사기극 말이지. 멀린 영감이 짜낸 아이디어였어.”
아더는 피식 웃으며 검을 골랐다. 길이와 무게가 제법 다양하게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대검을 골랐다. 그리고는 다른 검을 들어서, 그 검을 내리쳤다.
검들은 모두 비슷한 품질의 물건이었기에, 아더가 고른 검은 가운데가 부러져 나갔다.
“아니, 그렇게 치시면 부러지는게…”
“이게 딱 좋을 것 같아. 내 새 검으로 말이지.”
그는 부러진 검을 마음에 드는 듯, 한손으로 휘둘렀다. 두꺼운 도처럼 되어버린 칼은 원래 길었던 터라 적당한 길이가 되었다.
“사기극이라는 건 뭡니까?”
아더는 아테네의 질문에 그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더 펜드래곤은 나라를 말아먹은 어리석은 왕이었다. 그의 대는 끊겼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유명했다.
멀린은 그런 그의 이름을 빌려서, 아더의 신분을 날조했다. 로마 지역에서 웨일즈로 진출한 아더 일행에게는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멀린은 자신의 마법 실력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우더 펜드래곤의 궁정 마법사였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는 바위에 꽂은 검을 뽑는 자만이 그의 후계자라고 날조했다. 바위 밑에는 멀린이 조종하는 나무 뿌리가 단단히 검을 잡고 있어서, 인간의 힘으로는 뽑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더가 뽑으면서, 대대적으로 우더 펜드래곤 왕의 사생아가 존재한다고 알린 것이었다.
‘마치 삼국지에서 보는 유비와도 비슷하군.’
고전에 밝은 아테네는 삼국지를 떠올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슷한 면이 있었다. 별다른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왕실의 피를 이었다는 별 근거없는 소문에 의거해서 세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무적의 장수와 뛰어난 지모의 모사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랜슬롯님이 아티팩트를 가지고 계신다고 하셨군요. 아티팩트 이름이 혹시 아론다이트입니까?”
“아론다이트?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군.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창일세. 악신의 유물, 악신의 추종자들은 성창 게이볼그라고 불렀지.”
아테네는 게이볼그라는 이름에 놀랐다. 그리고 랜슬롯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성창의 소유자라니. 아티팩트를 어떻게 하면 빼앗을 수 있지? 고민해 봐야겠는걸.’
아더왕 전설에 나오는 성배와 성창은 최후의 만찬에 쓰인 성배와 십자가에 있는 예수를 찌른 롱기누스의 창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훗날 그리스도교적 색채가 강해지면서 변화된 것이었다.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유물, 생명의 그릇과 게이볼그가 성배와 성창이었을 거라는 설도 존재하고 있었다. 템플 기사단의 전신 성 조지 기사단의 임무를 떠올린다면, 악신의 유물 회수와 잔당 처치라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었다.
아더왕은 부러진 검이 마음에 든 듯, 몇차례 휘두른 다음 아테네에게 넘겼다.
“이것에 맞는 검집을 제작해 주게. 검집이 너무 길군.”
‘부러진 검을 휘두르는 아더왕이라. 어느정도는 스폰서가 만족해 줄려나.’
아테네는 일본의 스폰서를 떠올리고 쓴 웃음을 지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은 동맹국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용해서 현자회는 양국에서 대량의 인체실험을 벌였다.
템플 기사단에 들키지 않기 위해서 동북 아시아에서 인체 실험을 했고, 독일에서는 집단 학살을 통한 마력의 축척을 연구했다.
그 당시의 끈이 현자회에 남아 있었다. 인체실험의 결과와 연구자들은 미국으로 넘어갔고, 그 실질적 책임자들은 여전히 숨어서 그 결과에서 발생한 이익을 고스란히 챙기고 있었다.
미국의 제약회사들이 벌어들이는 천문학적 액수의 금액들은 스폰서들을 통해서 일부가 현자회에 주어지고 있었다.
그런만큼 스폰서의 의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더왕만이 아니라 랜슬롯과 멀린까지도 스폰서들에게 넘기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어떻게 그들이 가진 밑천을 빼내는가가 아테네의 관심사였다.
“그건 그렇고, 스커트를 입고 싸운다는 것도 난처하지만, 견갑이 없다는 것도 난감하군. 꼭 이 묘한 디자인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 건가?”
아더왕은 자신의 차림새를 보면서 탐탁치 않다는 표정을 보였다.
“폐하께서 직접 싸우실 일은 없을 테니, 고귀한 모습을 아군들에게 보여주시면 됩니다. 이 복장은 그런 폐하의 고귀함을 드러내기 위한 특별한 디자인입니다.”
아테네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리고 랜슬롯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마창 게이볼그, 훗날 아더왕의 창 롱고미니아드가 랜슬롯의 영혼과 함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정보였다.
엑스칼리버가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실제로 아더왕이 전선에 나섰을 때는 창을 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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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저 자가 그 악신의 계약자, 에인페리아라는 건가?”
아더왕은 하데스와 전투를 벌이는 중무장한 원기의 모습을 보았다.
“실로 용맹한 전사로군요. 악신의 계약자답지 않다고 할지, 답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푸른 머리칼을 한 나약해 보이는 소녀가 되어버린 랜슬롯은 아더의 곁을 지키면서 전장을 살폈다. 그들은 제법 빠른 시간만에 현대 영어를 마스터해서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게 되었다.
물론 사투리라고 할지 고대영어의 억양은 남아있지만, 그것도 빠르게 극복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자회가 노리는 것이었다.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악신을 봉인하겠다는 놈들이 프레이야와 손을 잡는다는게 말이 되는거냐?”
템플러들은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프레이야와 손을 잡은 것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아더와 랜슬롯은 알 수 있었다.
“이봐, 프레이야의 에인페리아. 프레이야를 버리고 우리와 손잡을 생각은 있나? 아니. 불가능하겠지. 악신의 꼭두각시이니. 네 놈은 죽어도 되살아나겠지만, 저자들은 어찌되지? 아, 긍지도 신념도 팔아먹은 놈들이니 프레이야가 되살려 주려나?”
원기는 그의 말을 들으며 입을 다물었다. 두꺼운 장갑판은 하데스의 중력탄에 맞아서 여기저기 손상을 입었다. 산탄 바주카 역시 하데스의 중력구를 이용한 방어를 뚫지 못했다.
이대로 가면 전멸은 피할 수 없었다. 이미 다크 엘프들은 하데스의 손에 죽음을 당한 상태였다.
“웃기지 마라. 우리는 여전히 긍지와 신념을 따라 살아갈 것이다!”
템플러들의 리더가 강한 각오를 보이면서 외쳤다. 하지만 원기로서는 템플 기사단의 사람들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적이든 아군이든 가능한 사람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원기는 적을 잔혹하게 죽였다.
‘어쩔 수 없어. 퇴로를 열기 위해선 도박을 걸어야 해.’
원기는 몸을 드러내며, 산탄 바주카를 하데스를 향해 쐈다. 그리고 그 순간 원기의 몸에 총알이 쏟아졌지만 두꺼운 장갑판에 영향은 없었다. 하데스는 중력을 이용해서 빠르게 횡이동을 하면서 동시에 산탄 바주카의 탄환을 바깥쪽으로 몰아냈다.
그 순간, 원기는 마지막 수단을 사용했다. 그가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온 몸의 장갑판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동시에 등에 장착된 1회용 니트로 추진기가 폭발하듯, 아니 폭발을 통해 추진력을 제공했다.
연기와 장갑판의 파편 때문에 적들은 순간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랑이머리? 악신의 계약자다운 괴물이로군.”
아더는 누구보다도 빨리 원기의 모습을 찾아냈다. 원기는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하데스를 덥쳤다. 하데스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원기의 손톱이 팔에 박히는 순간 끔찍한 고통에 저항할 힘을 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원기는 하데스의 가슴에 박혀있는 장치를 뽑아냈고 하데스는 곧 절명했다.
“심장을 뽑아내다니, 끔찍하군.”
“마치 고통을 모르는 듯한 괴물이로군요.”
원기는 전신 화상과 부상으로 고통스러웠지만, 강한 의지로 그것을 버텨냈다. 본래라면 장갑판이 튕겨나갈때의 열기는 안에 미치지 않게 되어 있었지만 손상 부위가 많다보니 내부로 열기가 쏟아져 들어온 것이었다.
원기는 템플러들의 퇴로를 열기 위해 당황한 현자회의 병사들에게 뛰어들어 학살극을 펼치기 시작했다. 장갑판이 사라진 탓에 총알에 부상을 입긴 했지만, 현자회의 병사들을 휘두르면서 방패 겸용으로 사용하자 병사들이 당황해서 제대로 반격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아더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템플 기사단이 악신 프레이야와 결탁한 것을 확인한 만큼, 현자회가 당하는 것을 그저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론을 쓰시겠습니까?”
랜슬롯이 마창 게이볼그를 꺼내며 물었다. 게이볼그는 롱고미니아드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지만, 론이라는 약칭으로 주로 불렀다.
“아니, 검을 쓰도록 하지.”
아더는 현자회가 캘리번이라는 이름을 붙인 부러진 검을 뽑아들었다. 힘은 호랑이 머리 괴인과 동급이라고 보았다. 현자회의 사이보그 기술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한 이상 그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훨씬 큰 체격의 원기와 대등한 힘을 지녔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아더는 빠른 몸놀림으로 원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더의 전신이 빛을 발했다. 부러진 대검 캘리번 역시 빛을 발했는데 부러져 나간 검의 모습이 아니라, 완전해진 형태의 검으로 변해 있었다.
그 검이 일순 횡으로 그어졌고, 원기는 순식간에 두토막이 나서 죽음을 맞이했다.
[사망하셨습니다.]
‘뭐지?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저 소녀는?’
원기는 자신의 죽음 판정을 받고는 주변을 살폈다. 템플러들은 부상당한 일부를 남기고 모두 철수했다. 그리고 부상자들은 동료들의 후퇴를 지원하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현자회들에 의해서 정리되었다.
“저게 바로 엑스칼리버로군!”
아더의 전투를 살펴보던 아테네는 탄성을 질렀다. 전투중에 애검이 부러진 아더는 결코 부러지지 않는 검을 원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이능으로 발휘된 것이 바로 엑스칼리버였다.
검(calibur)에서 나오는(ex) 검 형상의 에너지였다.
“불여우의 이능과 같은 능력인가? 아더의 것이 더 강력하지만 같은 계통의 능력이로군.”
그녀는 희연에 대해서 떠올렸다. 플라스틱 방패로 헬기의 개틀링포를 막아내고 부러지기 쉬운 카타나로 두꺼운 장갑판을 잘라내는 그녀의 이능은 현자회에서도 요주의로 보고 있던 것이었다.
아더가 죽고 난 후, 엑스칼리버가 나타나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더는 자신의 부러진 애검처럼 부러진 캘리번을 통해서 엑스칼리버를 구현한 것이었다.
“저 이능을 보면, 아깝긴 한데 스폰서를 거스를 수는 없으니 가격을 좀 더 올려받아야겠군.”
아테네는 인생의 쓴맛이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신급 사이보그를 능가하는 전투력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스폰서의 돈이 더 중요했다.
이능 각성은 유니크 타입이 있었다. 유니크 타입은 극히 드물게 존재하는 오직 한사람만이 각성하는 이능이었다.
그리고 희연과 아더가 동일 계통의 이능을 가졌다는 것은 이 쓸모있는 이능이 유니크 타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현자회의 연구 결과에 따라서는 강제로 이 이능을 각성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현자회는 강제로 각성시킬 수 있는 이능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12명의 신급 사이보그는 현자회가 강제 각성시킬 수 있는 이능 중 가장 쓸모있는 12가지 이능에 맞춰서 만들어졌다.
“무기에 대한 애착과 그 무기가 부러지는 상황이 각성의 중요한 요소인건가?”
희연이 사용하는 카타나는 극히 잘부러지는 무기 중 하나였다. 그걸 토대로 희연이 부러지는 검 때문에 고생했을 거라는 사실을 아테네는 짐작할 수 있었다.
목적은 모두 달성되었다. 랜슬롯이 가진 마창을 아더와 랜슬롯이 함께 사용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고, 엑스칼리버가 아티팩트가 아닌 이능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더와 랜슬롯은 템플 기사단이 프레이야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증인이 되어줄 것이었다.
게이볼그의 주인을 랜슬롯으로 만든 희대의 마법사이자, 거인족의 신관에서 오드의 신관이 된 멀린을 깨울 차례가 왔다는 사실을 아테네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데스가 좀 재수가 없는 건가. 자꾸 결원이 생기는군. 후보는 있는지 모르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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