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지옥의 주인.
로키는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수백년에 걸친 그의 계획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들어간 펜릴과 헬의 소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펜릴은 이계에서 죽어버렸고, 헬은 살아남았지만 죽어도 죽어도 끝없이 몰려드는 인간들 때문에 앞날이 불투명했다.
헬을 구하기 위해서 전력을 게이트를 통해서 보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미드가르드의 인간들이 저렇게 무지몽매할 줄이야.’
게다가 오딘의 천공 함대가 밀고들어오고 있었다. 에인페리아들이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지만, 하늘에서 총기를 사용하는 적에게 몬스터들이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스 연합군은 요새를 건설하며, 차츰차츰 진군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로키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오딘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다면 이렇게 전력을 기울여 밀고 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로키는 게이트를 양보하는 대신에, 거인족 연합군의 이름으로 아스 연합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공격을 개시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물론, 전장은 혼돈의 대륙이 아니라 아스가르드였다. 헬과 로키, 펜릴 제국의 군대가 혼돈의 대륙으로 건너오기는 쉽지 않았다. 실어나를 배도 부족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차라리 전력이 빈 틈을 노려 아스 족의 본거지를 공격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었다.
게이트와 헬, 그리고 펜릴의 구출 가능성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로키로서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면전이라고 하지만, 병력의 이동이나 유지가 쉽지는 않았다. 거인족들은 동력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총기를 지닌 중세 군대와도 같은 거인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대규모 병력을 이용한 전면전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에인페리아를 비롯한 전투력 높은 부대들을 동원해서 토르와 티르의 영토를 거쳐서 오딘의 영역 깊은 곳까지 치고 들어가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스가르드의 운명을 결정지을 최종 전쟁의 시작이 될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전선이 되기 딱 좋은 곳이 프레이야 제국이었다. 거인족과 아스 신족의 사이에서 그들은 어느 쪽을 고르든 전장이 되는 것을 면할 수는 없었다.
‘펜릴 제국의 황제가 프레이야의 추종자들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했지. 펜릴이 없다는 건 아쉽지만, 놈들을 끌어들일 수는 있겠지. 만약 따르지 않겠다면, 지금이 놈들의 씨를 말릴 찬스가 되겠군.’
그리고 마지막 결단을 내리려던 로키에게 헬로부터 의외의 연락이 들어왔다.
[헬님의 전언입니다. 지구의 추종자들에게 ‘피의 이어짐’이라는 꿈속 세계에 들어와서 지옥의 사자와 친구가 되라고 전해달라고 합니다.]
“피의 이어짐? 꿈속 세상? 친구가 되자고?”
로키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헬님의 말씀으로는 우리가 간 세계가 미드가르드가 아니고, 미드가르드의 꿈속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잘만 된다면, 진짜 미드가르드로 갈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딘을 이쪽 꿈속 세상에 던져 넣는다면, 재미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곧 임무를 마치고 소멸할 것입니다.]
통신용으로 보낸 몬스터가 로키에게 받은 신성력을 모두 소진하고 소멸했다. 로키는 헬의 연락을 받고서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잘못된 게이트를 오딘에게 넘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버텨봐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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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블헤임,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지옥은 신들을 거스르고 평화롭게 살고자 한 이들을 처벌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은 지옥의 여신 헬이었다.
니블헤임은 기본적으로 아발론과 비슷한 존재이지만, 아티팩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헬 자신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혼의 속박과 고문이 그녀의 가학적인 성격과 맞았다.
오딘의 궁그닐이나 토르의 묘르닐처럼, 니블헤임은 그녀의 특화된 이능, 아니 신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니블헤임에는 고작 일천명의 죽은 영혼들이 들어있었다. 그 이상의 영혼들을 잡아두는 것은 그녀의 능력으로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활성화 되어있는 영혼의 수는 고작 백명, 나머지 구백명은 아발론에 보관된 영혼들과 같이 완벽한 동면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전체 일천명 가운데 오십명이 지옥의 간수 역할을 하는 헬의 발키리들이라 할 수 있었다.
헬의 지옥에서 그녀와 수하들의 괴롭힘을 견뎌낼 수 있는 영혼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얼마못가 굴복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런 영혼들을 그녀는 내다 버렸다. 그녀는 완전한 영혼의 소멸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럴 능력까지는 없었다. 다만 인격이 무너지고 지옥 같은 기억을 가졌으니 정상적으로 해방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지옥에 남은 영혼들은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헬에 대한 증오심, 혹은 신념으로 가득찬 이들이었다. 물론 굴복했지만 충분히 괴롭히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속박해 둔 영혼들도 제법 남아 있었다.
헬은 정찰을 위해서, 니블헤임 내에 머물고 있던 발키리를 내보냈다. 그리고 내보낸 발키리가 즉시 인간, 아니 엘프화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발키리를 통해, 이 세계의 인간이 불멸의 존재이며 죽는다고 영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발키리를 다시 그녀의 지옥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펜릴이 어떻게 되었는지 비로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죽어도 풀려나지 않는 저주 같은 육체에 사로잡혀서 미친듯이 몬스터를 죽이겠다고 몰려드는 인간들 중 하나가 되어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펜릴이 잽싸게 패배를 인정하고 프레이야에게 붙었다는 사실은 짐작하지 못했다.
‘무언가 오류로 인해서, 이쪽 세계로 빠진 것 같군. 현자회라는 놈들이 일부러 우리를 이쪽으로 끌어들인건가? 그건 아닌 듯도 싶고.’
헬은 로키가 보낸 통신용 몬스터에게 현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굴복한 영혼들에게 교섭을 시작했다.
인간계가 아닌 마계에서 육체를 주고 부활시켜 주며, 자신을 위해 일해주면 해방시켜 주겠다는 거였다. 해방될 때, 원한다면 이 육체로 마계에서 계속 살 수도 있고 죽어서 죽은 이들이 가는 안식처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신의 이름을 걸고, 명령을 따라서 싸우는 자들은 해방시켜 줄 것을 약속했다. 거짓을 밥먹듯 떠드는 신들이라고 해도, 아니 그런 믿을 수 없는 신들이기에 맹약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어길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사실 육체를 얻어 나가면, 배신을 해도 헬은 아무 손을 쓸 수 없지만 그런 사실을 이들은 몰랐다. 헬이 원하면 언제든 니블헤임으로 돌아올 거라는 협박에 그들은 감히 거스를 수 없었다.
공포를 이용해서 세상을 지배해온 헬은 감히 지옥에 돌아올 위험을 각오하고 자신을 거스를 수 있는 자들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한번 공포에 굴복한 자는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주는 공포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헬은 백명에 달하는 유저를 손에 넣었다. 정말 독해서 무너지지 않을 만한 백 명은 동결시키고, 굴복한 이들에게 공포를 새겨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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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어떤 미친 새끼냐! 몬스터한테 힐쓴 새끼가!”
“몬스터한테 버프넣는 병신들이 있네!”
몬스터를 사냥하던 유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블러드 라인은 가상현실 초창기 게임 중 하나로, 지나친 자유도가 있는 게임 중 하나였다. PK도 자유롭게 가능했고, 몬스터에게 힐을 넣는 것도 가능했다.
자신들 힘닿는 한계까지 사냥하던 유저들은 갑자기 나타난 정신나간 놈들 때문에 떼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프레이와 조제성에게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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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는 혼돈의 대륙에 못데리고 오는 것 아니었나?”
신 그자체가 실체화된 프레이야나 굴베이그와는 달리, 실체가 없는 영혼체가 기본인 다른 신들은 성역을 만들 수 없었다.
마수의 내부에 들어가서 움직인다고 해도, 그건 마수의 육체를 조종하는 것일 뿐, 성역을 조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수를 내부에 품은 거대 마수라면 성역을 만들 수 있지만, 그런 마수는 현재 요르문간드가 가진 뱀이 유일했다.
“아마, 니블헤임안에 들어있었을 겁니다. 일종의 영혼 인벤토리 같은 거지요. 가상 공간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게임에 익숙해진 펜릴이 게임용어를 통해서 설명했다. 조제성은 꺼진 불씨나 다름없던 헬이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흉하고 교활한 헬은 로키나 오딘처럼 고단수의 전략가는 아니지만, 처세술에 능하고 약삭빠른 면에서는 그리 떨어지는 존재는 아니었다.
[현자회를 우선 처리해야 겠군. 두 사람(?)은 헬이 어떤 짓을 벌이는지 잘 살펴 줘야겠어. 사냥은 좀 적당히 해두고. 프레이야님께 져드린 이후로 지나치게 게임에 빠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조제성의 말에, 펜릴이 피식 웃었다. 능글맞은, 그리고 마음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이었다.
펜릴이 프레이와 원기중 누가 강한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프레이는 당연히 자신이 더 강하다고 믿었지만, 원기는 씁쓸한 듯 웃었다.
그리고 격돌했다.
그 결과는 원기의 압도적인 완승이었다.
장수한과 박원기는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동안 꽤 오랫동안 폐인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온갖 화려한 스킬과 아이템이 난무하던 시기에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게임을 해왔다.
프레이가 폐인 생활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게임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그렇게까지 깊지는 않았다.
물론 장수한은 프레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장수한의 경우 몸을 쓰는 전투와 흡사하게 변한 블러드 라인의 전투를 그다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기는 닭장 속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아난 바 있었다. 희연이라는 좋은 스승을 두고 실전 경험까지 완벽하게 쌓아왔다.
희연의 경우, 그녀의 움직임을 게임이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실력은 블러드 라인이 보여주는 한계 움직임보다 단연 뛰어났다. 150% 이상의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원기의 역량은 120%가량이었다.
반면 프레이는 한계 이상의 힘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90%가량이 최대였다. 원기는 블러드라인 내에서라면 희연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희연이 가진 기술에 의한 우위가 사라졌다면, 원기는 체격에 의한 우위가 사라졌다.
덩치가 크다고 힘이 더 세지는 않게 만들어진 것이 블러드라인이기 때문이었다.
희연에게는 풍부한 대전 경험과 심리전 능력이 있었고, 원기에겐 희연보다 깊은 게임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현실에서 희연과 원기가 7:3이라면 게임 속에선 6:4 혹은 5.5:4.5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프레이는 희연을 제외하면 자신이 최강이라는 자부심이 산산이 깨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게임에 좀 더 파고들어갈 각오를 굳혔다. 그는 자신이 ‘블러드라인’의 신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펜릴조차도 블러드 라인을 탐내지는 않고 있었기 때문에 프레이가 블러드 라인의 신이 되는 것은 확정적이었다.
‘신으로서 최강의 유저가 되어야만 하는데. 왜 맘놓고 게임을 못하게 만드는 거야. 망할 헬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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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신분증입니다. 이게 CIA 신분증이고, 이게 MI6 신분증입니다. 이번에는 MI6신분증을 사용하지요. 리디아님은 MI6 특수 요원 넘버 078입니다. 저는 084로군요.”
조제성이 넘긴 신분증은 그 밖에도 많았다. 인터폴의 신분증을 비롯해 다양한 기관의 신분증이었다.
“이건 모두 가짜 신분증일텐데, 이렇게 신분증을 도용해도 되는 건가요?”
현실 세계를 배우는데 가장 편리한 도구인 영화를 많이 본 터라, 리디아 역시 CIA라든가 007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영국에서 일본으로 향한 터라 영국 첩보요원의 신분증이 있으면 여러면에서 특혜를 받을 수 있지만, 도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할 터였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건 가짜지만 진짜인 물건입니다. 조회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조제성은 자신있게 말했다. 리디아를 통해 만든 연줄과 템플 기사단을 통해 얻은 연줄이 있어서, 각 기관에 협력자들을 만들어 놓았다.
문제가 생길 때까지는 조회해도 각 기관에서 신분을 보장해 주게 되어있는 특수 신분증이었다. 만약 사고가 터지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해킹에 의해서 도둑맞은 신분증으로 처리될 터였다.
그때까지는 완벽한 신분증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외교관 특권을 이용할 수 있는 신분증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기와 희연, 그리고 보디가드로 고용된 용병들은 무장한 상태로 공항을 지나올 수 있었다.
“돈과 권력은 많아서 나쁠 것은 없지요.”
조제성은 평소의 지론을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리디아와 함께 현자회의 스폰서가 있는 요츠비시 가문을 방문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잘 오셨습니다. 본가로 안내해 드리도록 하지요. 죄송하지만 보디가드는 네 분까지만 가능합니다.”
요츠비시 기업 옥상에서 헬기를 통해, 조제성과 리디아는 요츠비시 본가가 자리한 섬으로 이동했다. 조제성은 제법 큰 섬이 눈에 들어오자 예상을 넘어선 모습에 당황했다.
대기업 요츠비시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헬기는 섬에 자리한 거대한 신사에 착륙했다.
헬기 착륙장과 크루즈용 선착장이 있는 거대한 신사였다.
“카게나시 가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녀의 복장을 한 시중인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 조제성은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서양인들 위주로 움직이는 현자회가 일본인들을 중추로 끌어넣을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 미스였다.
“이 세상 모든 왕가는 신화로부터 이어집니다. 단군왕검이 신이었고, 박혁거세가 신이었던 것처럼, 모든 왕들은 신이었지요. 하지만 지금도 왕이 신인 나라는 오직 일본 뿐입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지요. 그걸 제가 잊고 있었군요.”
조제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리디아가 들을 수 있도록 독백과도 비슷한 말을 흘렸다.
적어도 인구 십만은 넘을 만한 섬이었다. 그리고 그 섬에서 떠받들어 지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요츠비시 가문은 카게나시 가문을 섬기는 가문일 것이 틀림없었다.
‘카게나시, 그림자가 없다는 뜻이로군.’
어떻게 나오든 일은 쉽지 않을게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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