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츠키시마
조제성은 멀리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를 듣자 안색이 변했다. 대량의 개들을 숲속에서 자신들을 찾기 위해 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엘프들은 재수없는 종족으로 유명했다. 엘프들 가운데 대다수가 눈먼 화살에 맞아죽었다는 이유였다.
실제로는 엘프들이 은신과 회피에 뛰어나서, 탄막을 치지 않고는 잡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노리고 쏜 화살로 잡기는 어렵고, 탄막을 쳐서 잡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숲속에서의 엘프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늑대인간 셋이나 뱀파이어 다섯이 필요하다는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엘프 백명을 상대하는데에는 늑대인간 백오십이면 충분하고, 뱀파이어 이백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엘프가 집단전에 약하다기 보다는, 엘프의 강함은 소수 게릴라전에서 크게 발휘된다고 할 수 있었다.
다수의 사냥개를 투입하고 수백 아니 수천명의 무장한 사람들에게 쫓긴다면 엘프라고 해도 승산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리디아가 민첩하게 움직여서 랜슬롯을 확보한 것이 이 경우에는 안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나마 사냥개를 동원한 것을 보면, 추적용 발신기는 붙여놓지 않은 모양이군.’
랜슬롯을 탈취 당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테니 문제는 없을 터였다. 구출 부대를 보내라고 연락은 해둔 상태였다. 문제는 운송 수단이었는데, 하인드 헬기는 아시아에는 한대도 없었다.
한국, 북한, 일본, 중국이 서로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는 데다가 용병들이 나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민간헬기들의 비행도 물샐틈 없이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장한 하인드 헬기를 방치할 리는 없었다.
미군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템플 기사단과 현자회 양측이었다. 현자회를 상대할 때는 템플 기사단도 미군의 힘을 쉽게 빌릴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올 수 있는 방법이라면, 배를 이용해서 오는 방법이었다. 일본으로 입국해서 어선이나 보트를 빌려서 오는 방법 뿐이었다.
‘시 재킹이라도 시켜야겠군. 스텔스 보트라도 있었다면 좋을 것을.’
남미에 다수 있는 밀수용 잠수함과 스텔스 보트를 떠올린 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스텔스 보트는 항공기와 달리 만들기 쉬운 편이라서 밀수 조직들 가운데에도 갖고 있는 곳이 많았다.
문제는 역시 치안이라, 당국에 의한 적발 가능성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본쪽에도 연줄을 좀 만들어 두는건데.’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일본이라는 땅은 놀라운 나라였다.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고등종교들이 일본에만 자리를 잡지 못했다. 흰두교,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제대로 교세를 갖지 못했다.
불교는 장례식을 치러주는 장의사와 비슷했고, 그리스도교 전통이라고는 결혼식에나 있을 뿐이었다. 요괴나 짐승조차 신으로 모시고, 돈을 바치고 복을 비는 원시 종교가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인간에 불과한 한낱 왕을 아직도 공식적으로 신으로 여기는 나라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흡혈귀들이 신 행세를 하며 호화스럽게 숨어 살 수 있는 안식의 땅이었다.
‘이 섬만이 거점이 아닐 수도 있겠군.’
조제성은 오랜만에 무력감을 느꼈다. 게임 캐릭터로 오긴 했지만, 만렙도 아니었다. 설사 만렙이라고 해도 전투를 벌이는데는 무리가 있었다.
개들이 짖어대고, 사람들이 몰려온 이상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옷을 다 벗어요. 그리고 사타구니와 겨드랑이를 속옷으로 잘 닦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리디아는 자신이 해치운 뱀파이어들의 옷을 벗겨왔다. 그리고 무기력한 상태의 랜슬롯의 옷을 벗겼다. 조제성은 리디아가 시키는 대로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아직 체취가 남았어요. 겨드랑이 쪽을 런닝으로 좀 더 잘 닦으세요.”
리디아는 뒤도 안돌아보고 말했다. 그녀의 지시대로 꼼꼼이 닦은 다음 옷을 입으려고 하자, 그녀는 몇가지 나무진을 섞은 진흙을 온 몸에 바르고 옷을 입도록 시켰다. 그리고 랜슬롯의 몸도 그렇게 처리한 다음 뱀파이어의 옷을 입히고 움푹 패인 곳에 조제성과 함께 두고 나뭇가지로 덮었다.
인간의 후각은 거의 쓸모가 없지만, 엘프들의 후각은 개들만큼은 아니라도 개체를 구별할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개들만큼 먼 거리에서 인간을 식별할 수는 없지만, 근거리에서는 식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엘프들은 냄새를 왜곡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면, 추적자들을 교란시킬 수도 있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엘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뱀파이어는 물론 늑대인간들과도 싸워왔다.
개보다 후각이 뛰어난 늑대인간들을 냄새로 속이고 함정에 빠뜨려서 살아남아온 것이 엘프들이었다. 머리나쁜 개들을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냄새를 제대로 못맡으니, 개들을 속일 수 없을 뿐 이었다.
그녀는 세 사람의 냄새를 진하게 묻혀 놓은 옷가지들을 이용해서 개들을 세 루트로 분산시켰다.
그 결과 숲을 포위해오던 포위망이 흐트러졌다. 아무래도 개들이 향한 쪽을 향해서 사람들이 몰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얇아진 틈을 리디아가 노렸다.
리디아는 조용히 풀숲에 자리잡고 눈을 감았다.
인간의 눈 역시 동물들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움직이는 사물을 잘 식별하는 편이다. 움직이지 않거나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는 보고도 못알아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동물들이 가장 쉽게 적을 식별하는 표식은 바로 ‘눈’이었다. 눈의 형상과 반짝임은 적이 경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까마귀들이 둥지에 반짝이는 것을 모아놓는 것이나, 나방의 날개에 눈동자 모양이 존재하는 것은 모든 동물들이 갖는 근본적인 공포,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리디아는 청각만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수풀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개들이 다른 곳으로 짖으며 몰려갔기 때문에 사람들은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걸어가면서 리디아의 앞을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리디아는 사람들을 습격해서 양 다리에 칼침을 먹였다. 옆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뜨끔한 아픔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리디아는 사람들을 죽이는 쪽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미드가르드에서는 민간인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프레이야가 아스가르드에도 만들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이지 않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양 다리에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심각한 고통을 주는 부상을 남겨놨기 때문에 적어도 한달은 침상에 누워서 살아야 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자, 그 소리를 듣고 다른 이들이 몰려들었고 리디아는 그 틈에 재빨리 빠져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리디아 전하가 저런 괴물인지 몰랐군. 혹시 엘프와 숲에서 싸우게 될 때 유효한 전술이 있나?]
조제성은 장수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엘프에 대한 대항책을 알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펜릴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숲에 불을 지르거나 마을을 공격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늑대인간들로도 쉽게 추적이 안된다고 합니다.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성가신 종족이라고 합니다. 상대하려면 NBC병기가 최고라고 하더군요. 융단폭격도 쓸모 있을거라고 합니다.]
추적자 겸 사냥꾼으로 유명한 늑대인간들이 보통 엘프에게 고전할 정도라면 에인페리아급 엘프들이 얼마나 골치아플지는 알만했다. 오딘이 프레이를 회유하고, 프레이야를 멸절시키려고 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핵, 가스, 세균, 융단폭격, 네이팜탄 등을 해결책이라고 펜릴이 내놓은 것을 보면 할 말이 없었다. 엘프를 잡는데는 다크 엘프 말고는 오딘 조차도 답이 없을 정도였다.
‘현대에는 그만큼 엘프를 대처할 방법이 많아졌다는 뜻이군.’
숲속에 사람들과 개들이 풀린 이상, 가스나 세균, 융단폭격 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제성은 안도했다.
[리디아 전하, 지금 같은 습격은 오히려 효과가 적습니다. 조금 위험할 지 몰라도, 눈에 띄게 습격해 주십시요.]
제성의 말에 리디아는 습격 방식을 바꿨다. 지금까지는 양 다리에 칼이나 나무로 만든 꼬챙이가 박히기 전까지는 자신이 습격받은 지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쓰러진 다음에는 누가 자기를 찔렀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리디아는 수풀 사이로 숨어든 뒤였다.
그리고 조제성의 지시가 떨어진 다음 리디아는 습격 시점을 바꿨다. 일부러 기척을 내고는 상대가 눈치채고 반응하려는 순간 뛰어들어서 양 팔의 무기를 낚아챘다. 옆 사람이 놀라서 총을 쏘려는 순간, 처음 습격한 사람을 방패로 삼았다.
망설이는 사이에 잡은 상대의 양 다리에 상처를 내놓고, 당황하는 적을 습격해서 양 다리를 못쓰게 만들고 튀었다. 물론 놀라서 동료를 방패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을 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리디아에게 있어서 별다른 위협은 아니었다. 민간인인 적을 죽이는 것을 피할 뿐, 꼭 살려야 한다는 의식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습격이 몇차례 이어지자, 사람들은 당황해서 풀 숲에서 인기척만 나도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오발 사고가 벌어지면서 인명 피해가 늘어나자, 민간인이었던 그들은 순식간에 패닉을 일으키고 궤멸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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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식훈련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듯 싶군요.]
민간인들이 총만 들었다고 군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투나 다름 없었다.
조제성은 이 섬을 제압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숲으로 가득한 자연이 잘 보존된 뱀파이어들의 지상낙원이었지만, 엘프들의 낙원이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과거에 만들어진 결계 덕분에 일본의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단 말이지. 생각해보니 이것도 큰 수확이로군.’
“랜슬롯씨.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지요. 현자회의 뒤에는 뱀파이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셨는데 계속 함께 싸우실 겁니까?”
조제성은 리디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랜슬롯을 회유하면서 정보를 빼내는데 전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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