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34화 (234/497)

234화 퍼스트 컨택트

조제성은 왠지 리디아가 말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게임 캐릭터 특유의 메시지 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조제성이 끈질기게 묻자, 리디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메모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여신님이 주무시게 조용히 해야 합니다. –

리디아는 그렇게 메모를 한 다음, 글씨도 더 이상 안쓰겠다는 듯이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조제성은 그제야 자신에게 어렴풋이 들려온 게임 메시지와 비슷한 무언가를 떠올렸다. 분명 원기, 그러니까 프레이야 여신이 보낸 듯한 말이었다.

‘아오 시발. 잠좀 자자. 시끄럽다였던가?’

조제성은 황급히 원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 제가 그런 소리를 했나요? 저 그런 메시지 보낸 적 없는데요.]

“확실히 제가 들은 기억이 나긴 하는데…”

[글쎄요. 전 정말 아닌데요.]

원기는 확실하게 부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잠결에 한 소리라서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제성이 확인해보자, 그 메시지를 들은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게임 세계나 아스가르드 쪽에서는 못들었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이능을 가진 이들 모두가 들었다.

그리고 다들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엘프들은 물론이고 다크엘프들조차 리디아처럼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조제성이 나섰지만 소용 없었고, 원기가 일일이 메시지를 보내자 겨우 자신들이 들었던 신탁을 떨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스가르드에 살던 이들에게 신탁이라는 것은 어떤 모순된 것이라도 따라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원기와 직접 메시지를 소통하는게 훨씬 대단한 것이어야 하지만, 신탁은 그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영광이었고,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메시지를 소통하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라서 상상도 못해봤기 때문에 오는 혼란이었다.

고위 신관들이라면 어느쪽이 우선인지 알고 있지만, 고위 신관들은 아스가르드에서 신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소동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

[대체 누가 그런 신탁을 보낸 거지요?]

원기의 질문에 조제성은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잠결에 날린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능을 가진 자들에게 보낸 광역 메시지라고 생각하니 별로 대단할 것은 없어 보였다.

‘의식적으로는 아직 사용 못하는 것 같지만, 그리 쓸모는 없겠군.’

하지만 조제성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여파를 불러오고 있었다.

-----------------------------------------------

“아오 시발이 무슨 뜻이에요?”

상급자인 미모의 엘프 소녀가 묻자, 천사의 날개 소속 깃털 요원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깃털 요원 역시 ‘아오 시발’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왜 묻는지는 알고 있었다.

내용도 내용이고, 그걸 여신님이 친히 말씀하셨다고 말하기가 참 난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엘프 소녀가 묻는 것은 차라리 나았다. 험상굳은 다크 엘프 사내가 ‘아오 시발이 무슨 뜻이냐?’하고 물으면 듣는 쪽에서도 뭐라고 답하기가 참 애매했다.

문제는 그 말을 들은 이들이 모두 프레이야의 휘하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이능이 봉인된 이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일시적으로 ‘아오시발’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서 급상승했고 도시 괴담처럼 소문이 퍼져 나갔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듯한 ‘아오시발, 잠좀자자. 시끄럽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초능력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당시 영국에 있던 원기는 새벽 4시경에 그 메시지를 발출했다. 그리고 찬균과 호철 역시 그때는 자고 있어서 못들었다.

하지만 한국은 12시였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깨어 있었다. 그래서 이능을 가진 자들은 모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조제성의 이능 봉인은 어디까지나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다. 초능력에 대한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면 이능 봉인 자체가 위험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미 봉인 작전팀은 철수한 상태였다.

인터넷을 검색하며 한국에 있던 장수한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조제성에게 보고했다.

“이 능력을 잘 사용하면, 이능 각성자들을 우리 측에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지 모릅니다. 봉인된 자들도 깨워줄 수도 있겠지요.”

[스스로 그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도 모르고 계시더군. 아마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보내신 것 같은데…좀 생각해 봐야할 문제같군.]

-------------------------------------

“틀림없어. 여신님의 메시지임에 분명한 것 같군. 그런데 정말로 ‘아오시발’이라는 말씀을 하신 건가?”

여신의 존재에 한껏 고무된 연구소장은 자연스럽게 ‘여신님’이라는 표현을 썼다. 실존하는 초월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능이 봉인된 이들이 메시지를 들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이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여신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그것이 엄청난 힘이 될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 틀림없어요. 여신님으로부터 온 메시지임에 분명해요.”

발신계 텔레파시스트인 그녀의 능력은 ‘이름’ 혹은 ‘얼굴’을 떠올림으로써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었다.

세계수를 매개로 연결된 아스가르드의 신족들은 신자들로부터 기도를 직접 받을 수 없었다. 신자들의 정신을 마음대로 엿볼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저 신전에 모인 이들의 반응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정확하게 기도, 곧 텔레파시를 전달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염파가 누구에게 향하는지, 누구로부터 오는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실제로 모든 이능자에게 공명하며 의사를 전달한 것이 프레이야를 제외하고 누가 있을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신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성력이 필요했고, 신성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여신 캐릭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프레이야 여신을 지정해서 보내지는 염파를 받는데는 여신 캐릭터가 필요 없었다.

그리고 자신과 정신적으로 연결된 이능 각성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또한 그리 큰 신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의식중에 염파에 염파로 답하다보니 나온 현상이었다.

“다시 한번 요청해 볼 생각이에요.”

그녀는 정신을 집중했다. 조용히 하라, 시끄럽다는 이야기가 자신을 향한 이야기가 아닐까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도 컸다.

나 말고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믿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프레이야 여신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여신님. 프레이야 여신님.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누구세요?]

그런 그녀의 기도에 응답이 왔다.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지난 번에 들었던 여신의 그 느낌과 같았다.

“여신님? 프레이야 여신님 맞으시지요?”

그녀는 자신의 기도에 회답해 준 것에 기뻐하며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크게 내서 반문했다. 그녀가 목소리를 내자, 명상실 내부의 모든 이들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다.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그런 사람 없어요.]

당황한 듯한 느낌의 여신의 목소리가 들린 후, 순간적으로 염파가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단절되었다고 할까, 거부되는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여신님인가? 뭐라고 말씀하셨지?”

그녀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전화(?)가 잘못 걸렸다는 소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여신님은 대체…’

-----------------------------------------

원기는 깜짝 놀랐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텔레파시로 자신을 불러낸 것이었다. 게임 채팅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텔레파시 능력자와 직접 교신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원기는 텔레파시를 주고 받는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캐치할 수 있었다. 명확한 대상을 지정하지 않았던 전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말한 상대에게 국한 지어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깜짝 놀랐네. 도대체 누구지?’

원기는 자신의 대응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실없는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황급히 조제성에게 게임 채팅을 보내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염파로 조제성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제성 사장님. 들리세요? 들리시면 응답해 주세요.’

조제성은 원기의 부름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겪으니 참으로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하지만 프레이야 여신이 보냈다는 느낌이 드는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들립니다. 지난번에 들려온 신탁은 여신님이 보낸 것이 맞는 것 같군요.]

“음. 여신님 소리는 그만 두세요.”

원기는 쓴 웃음을 지으며 게임 메시지로 바꿨다. 아는 사람들한테 여신 취급 받는 것은 그다지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은 여성들에게 여신 취급 받는 것은 그나마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남성들이 여신님이라고 부르면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랄지, 거부감이 드는 간지러움이 등골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아쉽군요. 원기님의 그 목소리는 왠지 감미롭게 들리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거지요? 능력에 눈을 뜨신 겁니까?]

원기는 조제성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알렸다.

[잘하셨습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쪽 정보를 알리는 것은 곤란하지요. 하지만 ‘전화 잘못거셨는데요’는 좀 문제가 있긴 하군요. 일단 접촉은 다시 해보십시요. 그리고 상대가 누군지 한번 캐 볼 수 있으면 캐 보시기 바랍니다.]

조제성은 원기의 그 마음을 건드리는 메시지가 단순한 텔레파시가 아니라 강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능을 가진 누군가가 정보를 캐내고자 한다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원기에게 다시 텔레파시 소녀의 염파가 도달했다. 거절당했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좀 전의 일을 생각하니 살짝 민망했다. 그래서 그는 장난기 많은 여신으로 컨셉을 잡기로 마음 먹었다.

{죄송합니다. 프레이야 여신님이신가요?}

“여보세요. 신속 배달을 자랑하는 중국집. 프레이야 반점입니다. 짜장면 하나에 군만두 하나 시키셨지요? 좀 전에 출발했거든요. 맛있게 드세요.”

소녀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원기는 이번엔 부드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인간들의 유머를 배웠는데 그리 재밌지 않은 듯 하구나. 무슨 일로 날 찾은 것이냐. 내 사랑하는 딸아.’

원기는 손발이 살짝 오그라드는 느낌이지만,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몰라도 아는 척이 중요한 법이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