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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35화 (235/497)

235화 첫서임

소녀는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여신님과의 연결에 극히 감동했다.

여신님의 썰렁한 농담도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배려라고 생각하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따뜻한 품안에 안긴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녀는 여신과의 대화를 마음에 새기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나지예.

그녀가 이능을 각성하게 된 것은 사고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타고가던 자동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벼랑에서 굴러 떨어졌다. 몇차례 전복을 거듭한 자동차는 계곡 아랫쪽에 쳐박혀 있었다.

아버지는 즉사했고, 그녀는 피를 흘리며 차 속에 갇혀 있었다. 악몽과도 같은 사고였다. 그녀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인적도 드물고 그들이 사고가 났다는 사실 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경찰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며칠은 걸려야 움직일테고 그때 쯤이면 그녀는 시체가 되어 있을 터였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기도하면서 도움을 청했다. 죽은 아버지 옆에서 슬픔과 두려움, 피로와 배고픔, 고통에 시달리면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의 간절한 구조 요청이 어머니에게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응답이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에게 자신의 도움 요청이 확실하게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꿈이 아니었다.

그리고 몇시간이 지나서 빈사상태의 그녀는 구조되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고, 그것이 기사화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혈연간의 왠지 모를 예감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약 두달간 절대 안정을 이유로 집중 치료실에 있었고, 그 사이에 언론은 잠잠해져 있었다.

다만 초능력 연구소 소장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 의외의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그녀의 능력은 극히 증명하기 쉬운 형태의 능력이라는 사실과, 그 사용법도 연구소장과 함께 밝혀낸 것이었다.

프레이야 여신이라는 이름을 알게되는 순간, 그녀는 자신에게 힘을 준 여신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여신이 초능력을 거줘 줬을리가 없다, 뭔가 대가를 원하는게 틀림없다.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에는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 심한 두통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죽을 목숨, 여신의 선물이라고 불리우는 능력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대가를 달라는 이유로라도 나타나 준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심하게 사용하면 두통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 여신을 간절히 찾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차츰차츰 능력이 강화되어갔고 마침내 자고있는 원기에게 도달한 것이었다.

지예는 여신님에게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것을 묻는 대로 다 알렸다. 연구소의 위치, 정체, 인원 등 모든 것을 알렸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초능력 연구소라고 합니다. 국방부와 국정원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는군요. 예상은 했지만 부담스럽긴 하네요.”

[어차피 이리 될 거라는 사실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각성자가 ‘한국인’과 ‘엘프’로 한정된 것만 해도 다행이지요. 게다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능력자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원기는 조제성의 말에 아더왕과 멀린을 떠올렸다. 적이 아니라는 제스춰 정도만 간신히 익힌 상태에서 아더왕과 격돌하는 것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전해졌는지 모를 제스춰보다는 나지예의 이능이 훨씬 효과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전쟁시에도 핫라인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일방통행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원기 역시 자신으로 인해서 이능을 각성한 모든 이들에게 일방통행이지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덕분에 현재 나지예와는 완벽한 쌍방통행으로 실시간 통신이 가능했다.

“하지만 믿어도 될까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초능력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여자애인데. 자칫 잘못하면 이쪽 정보가 흘러나갈 수도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정체를 모르는 여신보다는 조국이 더 소중하지 않겠어요?”

조제성은 원기의 물음에 선뜯 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원기가 원치 않는 답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능을 가진 자들은 이능을 부여한 이들과 영적으로 연결된다. 프레이야는 그들에게 있어서 뿌리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었다.

망치로 손을 내리치면, 손을 보호하기 위해서 재빨리 피한다. 하지만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면, 손으로 막는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굳이 원기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기에게 있어서 추종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힘이 늘어난다기 보다는 지킬 것이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지금으로도 버겁게 여기는게 사실이었다.

그가 주도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조제성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도 바로 그때문이었다. 자신의 미숙한 판단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고 싶은 충동은 원기에게도 있지만, 그것을 우선시하기엔 마음이 여렸다.

조제성은 그것을 고려한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이능을 각성한 이들과도 대립할 수 있는데, 원기가 그들을 자신과 연결된 이들로서 느낀다면 그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들까지 배려하려면 골치가 아픈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터였다.

[글쎄요. 그녀가 얼마나 여신님을 생각하는지가 문제겠지요. 텔레파시라는게 깊이 있게 들어가면 상대방의 본질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녀에게선 어떤게 느껴지십니까?]

원기는 나지예와의 텔레파시를 통해 느낀 것들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구세계와 신세계의 중간적인 느낌, 그것은 마치 이베리아에서 춤추는 탱고의 여인이 친숙하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원기는 썰렁함을 깨닫고, 수습하기 시작했다.

“역시, 제겐 유머 감각이 부족한 것 같네요. 확실히 절 믿고 의지하는 느낌이 들었군요. 예.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가 이 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원기의 말에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결국 중요한 전력이면서 원기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늘어난 것이었다. 연구소에서는 프레이야 여신에 대해서 보안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듯 싶었다.

한편으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이라는 존재에게 감추려고 들어봐야 무슨 득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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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과 연결이 된거냐?”

“예. 여신님과 연결이 되었어요.”

연구소장은 지예를 통해서 원기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알고 싶어했다. 특히 이능이 주어진 이유에 대한 것과 부작용에 대한 것, 그리고 여신이 이들에게 원하는 것이었다.

“부작용 같은 것은 없는지 여쭤봐라.”

“부작용은 너무 머리를 혹사하면 생기는 것이니, 잘 먹고 푹 쉬고 건강 관리 잘하면 딱히 없다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이 초능력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에서 발휘되는 힘이니까, 절대 인체 실험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하시는군요. 초능력은 간절한 염원이 힘으로 발휘되는 것이라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건 천천히 알아갈 수 밖에 없다고 하세요.”

“봉인된 능력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영원히 사라진 건가?”

“봉인된 능력은 여신님의 신관이 풀어줄 수는 있다고 하시는군요.”

“혹시 우리 연구소에 있는 봉인된 능력자들을 풀어줄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씀드려봐.”

“음. 답변이 없으세요. 아마도 걱정하시는 듯 해요. 연구소장님과 그 윗쪽 사람들을 믿을 수 없으신 것 같아요.”

지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프레이야 여신이 말한대로 자신이 이쪽 상황을 모조리 보고하고 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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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지예양을 신관으로 임명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들의 요청에 따라 봉인된 자들을 풀어주는 능력을 주는 정도로 말이지요.]

“하지만 그녀가 위험해 지지는 않을까요?”

[애매한 입장에서 있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겁니다. 신관으로 임명된다면 프레이야 여신의 이름으로 그녀에 대한 보호를 강하게 천명하실 수도 있겠지요.]

원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녀의 능력은 특히 현 상황에서 꼭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래, 스파이질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겠지.’

이능에 대해서 조사한다고 원기나 조제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적대할 이유도 필요성도 없었다. 그녀가 어느정도 초능력 연구소 내에서 고립될 가능성은 있지만, 프레이야와의 협력 관계를 위해서도 필요할 터였다.

‘초능력 연구소 쪽에서도 그녀의 능력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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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께서 말씀하시는군요. 이능을 봉인한 것은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고 하십니다.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여신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만약 국가에서 올바르게 관리를 한다면 봉인을 풀 자격을 부여해 주실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혼란을 불러오길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신자를 만들 생각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신님의 이름을 비밀로 해주셨으면 하시는군요.”

신자를 만들 생각도, 이 사회에 혼란을 불러올 생각도 없다는 말에 연구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회에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 분명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나지예의 경우엔 좀 달랐다. 신자를 만들 생각도, 이름을 가르쳐 줄 생각도 없다는 여신의 말이 진심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자신이 거부당한 느낌이 들었다.

‘홍길동 이야기 같아.’

서자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처지와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여신에게 아끼는 백성들은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신은 자신과 같은 이들이 그녀에게 다가서는 것을, 그녀의 품안에 드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신관이 된다는 건, 날 신자 중 하나로 받아 주신다는 것일까?’

그녀의 마음에는 신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잡았다. 연구소장 역시 사람을 관찰하는게 일인 사람이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자기가 쥔 카드 가운데 하나가 신관이 되는 것은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군. 자네를 신관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게.”

“음, 제 안전과 자유를 보장해 주신다면 가능하다고 하세요.”

연구소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여신의 태도는 전형적인 ‘선신’의 태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교섭의 여지는 충분해 보였다.

정부에서 초능력자들을 관리하는 것이 용이해 진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지예는 프레이야의 신관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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