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37화 (237/497)

237화 왕재

‘다시금 왕으로서의 내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아더왕은 프레이야의 제의에 당혹감을 느꼈다.

프레이야의 입장에서 본다면, 펜릴의 제국은 아직 완전히 손에 넣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굴베이그 왕국은 운영이 제대로 되어 간다고 할 수는 없었다.

현재 굴베이그 왕국의 왕은 엘프에게 맡겨져 있었다. 다수의 귀족들이 귀족 신분으로 남아있지만, 실권은 엘프들이 귀족으로서 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귀족들은 기득권자로서 개혁에 도움이 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섵불리 현대 사회를 체험하게 해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엘프들은 욕망이 희박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욕심이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는 뜻이지만,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투적인 면에서는 모성애를 기반으로한 무시무시한 공격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어적이었다.

상대를 공격해서 자신과 무리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의식은 있어도, 상대를 공격해서 약탈한다는 의식은 없었다. 그래서 더 냉혹하고 철저하게 학살을 저지르기도 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엘프들은 적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인간끼리 싸울 때처럼 타협의 여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살려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철저하고 깔끔하게 목숨만을 거둬갔다.

욕심중에는 편해지고자 하는 욕심도 있고, 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욕심도 있는 법이었다.

엘프들은 현대 사회를 보고 부럽다고 여기는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 뿐이었다.

오딘을 필두로 하는 아스족이나 거인족들과 마찬가지로 군사력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음악도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만족할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예민한 미각은 다양한 식재료에 숨겨진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감자든 콩이든 사료든 그 안에 숨은 맛을 즐기며 살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그나마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장수한 때문이었다. 장수한은 지구의 문화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그 훌륭함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지구 출신의 프레이야님이 문화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그 결과 엘프들이 문화에 대해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배우고 따라가려고 한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굴베이그 왕국의 인간들이 삶을 개선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굴베이그 왕국의 인간들의 삶을 바꾸고,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맛보게 하기에는 엘프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존재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돌연 아더왕과 멀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랜슬롯을 통해 알게된 아더왕과 멀린의 모습은 조제성과 박원기가 손뼉을 칠 만큼 이상적이었다.

야만의 시대에서 이상을 꿈꾸던 왕과 재상이자, 현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스스로는 실패했다고 여겼지만, 사랑과 충성을 한 몸에 받아들인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원기는 나지예를 통해서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었다.

굴베이그의 왕이자, 펜릴 제국을 지배할 인간들의 황제로서.

당연히 랜슬롯과 멀린은 찬성이었다. 그들은 아더의 모든 면을 사랑했고, 동시에 왕으로서의 아더가 가장 아더 답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스가르드에 가서 굴베이그 왕국을 보고 온 랜슬롯은 프레이야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지, 그리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더왕이 왜 필요한지도 알 수 있었다.

엘프들의 세상에서 인간들은 만족할 수 없다. 하지만 야만의 세계에 찌든 인간들은 쓸모가 없다. 문명의 세계에서 자란 인간들 역시 엘프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야만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이상을 추구했고 현대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보면서도, 긍정적인 면을 사랑하는 아더는 더할나위 없는 인재였다.

조제성의 계산으로도 굴베이그를 변화시키는데 5년은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조제성은 멀린과 아더를 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안정을 추구할 뿐, 권력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꿈은 은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레이야라는 구심점을 믿었다.

랜슬롯은 아더에게 직접 텔레파시를 보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알고있는 진솔한 언어로 아스가르드에서 보고 온 것을 전했다. 그리고 그것을 프레이야와 나지예는 원문 그대로 아더에게 전달했다.

아더는 마음을 굳히고 성호를 그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였지만, 동시에 오드를 천사로서 받아들였던 템플 기사단의 초기 멤버였다.

‘주님께서 이 시대에 날 쓰시기로 마음먹으신게 틀림없어. 과거의 실패는 오늘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지.’

그는 이 세상의 섭리를 주관하는 창조주를 믿으면서, 그의 사랑을 전달하고 구현하는 존재로서 프레이야를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북구 신화의 잔재가 남아있던 과거에는 오드라는 이름을 버리고 숨겨야 했지만, 지금에 와서 프레이야의 이름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었다.

그는 멀린을 통해서, 프레이야에게 통고했다.

자신의 신앙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며,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창조주의 사랑의 매개체로서 프레이야를 믿고 충성을 바치겠노라고.

물론 원기는 그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아니 오히려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그 역시 그리스도교 신자인 부모 밑에서 자란만큼, 불멸성을 지니지 못한 프레이야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영적존재’일 수는 있으나, ‘절대자’는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 조제성이 끼어 들었다. 그리스도교의 포교는 허가가 있을 때까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스가르드에 지나친 혼란이 야기되면 세상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조제성의 주장이었고, 그것에는 원기와 아더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더가 생각하기에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가치는 자유, 평등, 사랑이었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창조주의 사랑에 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프레이야와 거래를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프레이야 역시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감히 자청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가 알던 과거의 오드와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을 낮추는 여신의 모습에 그는 비록 신앙은 아닐지라도 충성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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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궁합이 더 잘 맞는군.’

조제성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템플 기사단과의 협력을 굳힐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현자회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협조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조제성은 템플 기사단과 교류를 키워나가는 동시에, 단숨에 흡수할 수 있지는 않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멀린과 잘 협력할 수 있다면 현자회의 자산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다.

츠키시마처럼 유용한 자산들이 현자회에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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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 패배.

아더왕이 패하는데 연기는 굳이 필요없었다. 아더왕이 언제 어느 규모로 습격하는지를 통보받은 원기는 확실하게 함정을 마련했다.

철저한 포위 공격에 아더왕은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엑스칼리버를 사용하는데 모든 정신력을 소진하고, 짬 타이거에게 붙들렸다.

원기는 나름 고통을 줄여서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원기의 고통에 대한 기준이 꽤 높았기 때문에 아더는 지옥을 보고 까무러쳤다.

그리고 원기는 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전쟁터에서 고조되는 긴장과 흥분은 통증을 경감시키는데다가, 당시에는 오드의 힘을 빌려 치료하는 신관들이 있었다.

게다가 아더에게는 그 옛날에도 무적의 검이자 불침의 방패인 엑스칼리버가 있었다.

아더의 의지가 강하긴 했지만, 고통에 둔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쯧. 생각보다 무능했군.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지.”

멀린의 말에 아폴로는 피식 웃었다. 스폰서들에게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이렇게 잡혀간 경우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더를 되찾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성적 노리개로 스폰서들에게 제공될 전력이니, 큰 관심은 없었다.

“고루한 템플 기사단과 연결된 놈들이야. 자네의 옛주군이 모욕을 당할 일은 없을거다. 아발론에 다시 봉인하려고 들지는 모르겠군.”

아폴로는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게는 이미 엑스칼리버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강력한 카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노린 것은 적의 최강 카드라고 할 수 있는 희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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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츠루기는 사이보그의 육체를 통해서 새로운 검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엑스칼리버는 놀라운 기술이었다. 소총은 물론 저격총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었다. 사이보그의 뛰어난 육체와 엑스칼리버를 이용해서, 그는 RPG탄까지 갈라내는데 성공했다.

전차포탄 같은 고에너지 탄은 불가능하지만 보병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무기로는 그를 해칠 수 없었다.

그리고 전설의 용자인 아더왕과의 대결은 그에게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물론 성장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을터이지만, 그의 검술 기교는 투박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검도의 역사 속에서, 수천만 아니 수억에 이르는 검사들이 테크닉을 발전시켜 왔다. 거기에는 수많은 기교들이 존재했다.

인간의 눈을 속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엘프들이 매복하거나 사냥할 때, 눈을 감아서 사냥감이나 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인간의 눈은 생각보다 속기 쉬웠다.

마술사의 눈속임 테크닉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였다.

야바위꾼들도 관객들의 시선 정도는 가볍게 유도할 줄 안다. 그리고 일류에 이른 검사들에게 있어서, 상대의 감각을 교란시키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옷깃을 흔들어 검끝의 움직임을 못보게 한다든지, 발가락으로 움직여 거리감을 착각시킨다든지, 어찌보면 치졸하기까지 한 수많은 테크닉들이 존재해 왔다.

검끝의 미묘한 변화로 승부가 갈리는 그런 수많은 대전들을 아더왕은 겪어보지 못했다. 갑옷과 검을 믿고, 힘과 용기로 전장을 헤쳐나온 용자에게 수많은 승부로 닳고 닳은 검사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블레이드라고 했었나.’

그는 아더왕이 등장한다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일본도를 쓰는 유명한 검사가 ‘전사’가 아닌 ‘자객’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일대일 승부에 지나치게 특화되어 온갖 기교와 눈속임으로 적을 일격에 해치우는 것을 노리는 자신은 자객에 어울릴 지도 몰랐다.

‘그건 그렇고, 불여우라고 했나. 내 딸아이와 같은 또래로군. 기량은 제법 뛰어나. 하지만 아직 미숙하군.’

대치해보니, 아더왕보다는 싸워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힘과 속도는 자신이 압도적으로 위였다. 하지만 상대방은 인간을 넘어서는 힘과 속도에 익숙해져 있었고,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

‘무기는 내가 위로군. 공방일체의 엑스칼리버라니. 하지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군.’

몸으로 적의 검을 맞으면서 싸우는 전법이 엑스칼리버를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겠지만, 검의 달인으로서의 프라이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상대는 제법 검술의 테크닉을 잘 알고 있었다. 시선의 배치와 유연한 자세, 그리고 검끝의 움직임까지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제법’과 ‘뛰어난 편’으로 그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검이 교차되면서, 희연의 몸에는 잔 상처들이 남기 시작했다. 마츠모토의 압도적인 우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희연이 지금까지 상대에게 보여온 우위가, 역으로 지금은 열세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츠모토의 표정은 굳어져가고 있었다.

“죽어!”

그는 있는 힘껏 살기를 담아 외쳤다. 살기의 부족, 그것이 그가 느낀 자신의 부족함이었다. 승부의 경험은 많지만, 상대를 죽인 경험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필살의 일격.

그리고 그것과 함께 희연 역시 필살의 일격을 날렸다.

검과 검이 교차하는 순간, 마츠모토는 어느쪽이 이겼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잘린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마츠모토는 옆구리에서 심한 격통을 느꼈다. 희연의 검이 자신의 검을 가르고, 자신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던 것이다.

검과 몸을 감싼 이중의 엑스칼리버가 간신히 죽음에서 그를 건져냈다.

양산형 엑스칼리버의 문제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능은 이능 각성자와 함께 성장한다. 나타난 이능이 비슷해 보일지라도 내면에서는 각양각색의 차이가 존재했다.

아더의 엑스칼리버는 마츠모토의 엑스칼리버를 가를 만큼 예리하지 못했지만 희연의 무기사랑을 견디고 부술만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희연의 무기사랑에는 마츠모토의 엑스칼리버를 가를만한 예리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츠모토는 재빨리 도약해서 물러났다. 옆구리에 깊은 검상이 생겼지만, 사이보그의 육체는 여전히 잘 움직여 주고 있었다. 목이 달아나거나 심장 부분의 중요 장치가 파괴되지 않는 한은 멀쩡한 사지는 제대로 움직여 줄 터였다.

마츠모토는 한계를 느꼈다.

엑스칼리버는 강해질 것이고, 이 강력한 육체에도 익숙해질 터였다. 하지만 상대는 더 성장할 것이다.

유연한 자가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검성 마츠모토는 크게 성장하기엔 너무 여물었다.

“딸아이에게 사이보그화를 권하는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군.”

그는 딸 카츠키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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