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38화 (238/497)

238화 약속변경

“저보고 사이보그가 되라고요? 제정신? 검술 오타쿠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이가 없네요.”

카츠키의 반응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검성 마츠모토는 상냥하고 심약한 아버지였고, 좋은 스승은 못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카츠키는 좋은 스승이 필요없는 천재였다. 그리고 그녀에겐 스승보다는 스파링 파트너가 필요했고 그런 스파링 파트너로서 검성은 아주 적절한 상대였다.

“사이보그가 된다고 하지만, 젊음이 유지되고 건강해지는 거다. 아이도 낳을 수 있어. 심장과 폐, 그리고 뼈의 일부만 교체하는거다. 장기 대부분은 그대로야.”

“그래서 현자회라는 사람들한테 일생 정비를 받아야 하고 말이지요? 정체도 모르는 연료를 넣으면서?”

“그건 그렇다만, 내가 꾸던 꿈 중 하나였으니.”

“찬바라 오타쿠같으니. 사람 베는게 그리 좋아요?”

“그래. 난 검술이 본연의 모습을 찾는 걸 원했으니까.”

마츠모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이 세상을 좌우하던 시대는 그에게 있어서 꿈이었다. 자신을 만족시킬 만한 라이벌을 만나지 못하면서 스포츠로서의 검술은 그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생과 사를 오가는 험로에서 자신이 익힌 검술으로 활로를 열어가는 것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거 한번 보겠니? 내가 저번에 싸운 전투 동영상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동영상을 TV화면을 통해 실행시켰다. 80인치 대형 화면에 그와 희연의 모습이 비추기 시작했다.

현자회의 초고성능 카메라가 촬영한 고해상도, 초고속 화면을 편집해서 만든 동영상이었다.

그리고 천재 카츠키는 그 영상을 보는 순간 눈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불여우라 불리우는 여우 코스프레(?)를 한 소녀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빼앗아 갔다.

마츠모토는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는 존재한 적이 없던, 친구보다 연인보다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일생을 걸만한 라이벌의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음, 아빤 잔재주 밖에 없네요.”

“아, 그래. 네 말대로야. 잔재주 뿐이다.”

검성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승부의 세계는 실력이 3할, 경험이 7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상대는 제대로 된 검술 상대와의 대인전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질리도록 차고 넘쳤다.

그것을 이용해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지만, 승리할 수는 없었다. 양산형 엑스칼리버의 패배도 있었지만, 승리를 얻어내지 못한 자신의 문제가 컸다.

“사이보그화라. 생각해 보고 싶어졌어요.”

----------------------------------------------------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어요.”

희연은 원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늘 곁에 있어 왔는데, 꽤 오랜 기간을 게임내 메시지를 이용하는 것은 여전히 이질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허전함이 희연의 마음에 잠자고 있던 감정들을 움직였다. 늘 곁에 있다는 만족감이, 싹트고 있던 사랑의 감정을 동결시켜 두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강자가 상대라면 큰일이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상대할 방법은 알았으니까요. 검성은 검술가지 전사가 아니에요.”

희연은 자신있게 말했다. 검성의 약점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의 검은 일대 일에 특화되어 있었다. 아더왕은 물론이고, 희연의 경우에도 전장에서의 다대 다 전투를 숱하게 겪어왔다.

눈 앞의 상대에게만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옆이나 뒤에서 덥쳐오는 적을 시야의 한계까지 이용해서 확인하고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검을 휘두를 때에도 눈앞의 상대만 보는게 아니라, 움직임에 맞춰서 고개를 돌려 전장 전체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수영을 할 때, 숨을 쉬려고 고개를 돌리듯이 사방을 파악하는 시야가 중요했다.

마츠모토가 엑스칼리버를 얻은 것은 그런 면에선 행운이라고 할지, 불운이라고 할지 몰랐다. 엑스칼리버는 저격총의 탄환에게서도 그를 보호했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눈앞의 상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 전투가 가능한 것은 행운이지만, 그런 상태로는 성장하기는 쉽지 않았다.

엑스칼리버를 관통하지 못할지라도 에인페리아가 휘두르는 묵직한 검이나 창 등의 공격은 무시할 수 없었다. 적어도 맞으면 몸이 튕겨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대 다의 전투에서 신경쓸 상대가 많아지면, 그는 파탄을 드러내게 되어 있었다. 쪼렙학살 같이 최단 시간에 적들을 줄여놓는 희연의 전투 이능은 엑스칼리버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사 현자회가 엑스칼리버를 양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쪼렙학살의 양산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하지만 쪼렙 학살을 각성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지닌 또다른 누군가가 있을거라는 사실을 희연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명동에서 모이는 건가요?”

여신의 목소리는 희연에게도 들려왔다. 프레이야의 이름을 알고있고, 프레이야의 정체도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인간이 섬기기를 원치않는다는 말에는 희연 조차도 알게모르게 상처를 받았다.

명동으로 모이라는 프레이야 여신의 ‘신탁’은 그녀에게도 명동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기에 아쉬운 마음을 막기 힘들었다.

[아니. 그럴리가.]

원기에게선 의외의 답변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희연은 신탁과 전혀 대치되는 원기의 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여신에게 초능력을 받은 초능력자들이 명동 거리에 모인다는 소식을 들어 알게 되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초능력 연구소에서는 당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명동 구석구석에 초고해상도 감시 카메라들과 감시 인원들을 배치했다.

일요일 명동에 들린 모든 사람들을 촬영하고, 그 얼굴들을 얼굴 인식프로그램에 등록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신상까지 파악해서 전부 데이터화 해 둘 생각이었다.

결정적으로 미국과 일본측에서 초능력 연구소에 개입해 왔다. 군사 동맹을 이유로, 초능력 연구소의 모든 데이터를 복사해 갔다.

그리고 추가로 초능력자들을 미일이 필요할 때 동원할 수 있는 권한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그리고 초능력 연구소와 별개로 미국과 일본의 첩보원들까지 명동 거리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이 되기를 고대했다.

---------------------------------------------

이능자들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여신 캐릭터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펜릴이 된 놀원이나 굴베이그도 프레이야의 이능자들이 가진 정보를 열람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원기는 프레이야로 나서야 할 상황임을 생각해서 포획된 아더왕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희연은 여전히 아발론의 추적을 위해서 영국에 남아 있었다.

아더왕을 목적으로 간 찬균과 호철은 당연히 아더왕과 함께 한국으로 넘어왔다.

“오, 진짜 블레이드인건가?”

“진짜 블레이드는 아니지 않아? 알멩이가 남잔데.”

“소녀에 아더왕이면 블레이드가 맞아. 성별 따윈 사소한 문제야.”

오덕스러운 토론을 벌이는 두 사람을 보면서, 아더왕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현자회에서도 그렇지만, 프레이야 진영측에서도 복장에 대한 집착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최상위층을 차지한 오덕 삼인방에, 여신조차도 오덕 성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기도 했다.

인공심장과 폐를 적출하고 기적에 가까운 신성 마법으로 원래의 장기를 회복시키는 시술을 받아서 내장은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특수 티타늄 합금으로 대체된 뼈들은 본래 인간의 뼈보다 좀 무겁기는 했지만,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기본적인 소녀보다는 건강상태나 근육상태가 좋은 편이지만,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은 없었다. 에인페리아의 육체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신뢰할 수 있게 되면 게임 캐릭터를 사용하게 할 예정이었다.

“소개하지요. 이 아이가 새로운 펜릴입니다. 놀원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이쪽 소녀가 굴베이그입니다.”

아더왕은 강한 야성의 눈빛을 가진 소녀와 차분한 눈빛을 가진 소녀 둘을 보며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펜릴과 굴베이그는 그가 다스려야 할 백성들의 신이기도 했다. 신에 어울리는 외모라고 보기엔 좀 무리는 있어 보이기는 했다.

“세비지 빗치스의 리더를 맞고 있는 놀원이다. 그런데 약해보여.”

외모와 달리 파격적인 대사를 내뱉는 놀원의 모습에 아더왕은 살짝 당황했다. 소녀의 모습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 펜릴님이 원하는 왕은 아마 ‘세기말 권왕’쯤은 될테니까요.”

아더왕은 세기말 권왕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펜릴답다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한 눈에 신뢰할 수 있을 것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차분한 굴베이그 여신의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수인족들과 인간들, 그리고 엘프들의 조화는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과제가 될 듯 싶었다.

------------------------------------------------------

‘여신님이 지정하신 날이로군.’

불현듯 들려온 소리에 자신이 이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꽤 많았다. 봉인당한줄도 모르고 봉인당한 사람들도 있었고, 봉인당하지 않았지만 자각을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서, 마음속에서 돌연 들려온 여신의 목소리는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능력에 대한 각성이 있고, 마음속으로 연결되었다는 의식이 강해지면 이능을 갖게 된 것만으로는 만족 못하게 될 수 있었다.

이능 각성자는 약 일천명에 달했다. 대부분 쓸모 없는 능력이지만, 각성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초능력 연구소에서 주로 연구하는 것도 그것이었다.

자신이 각성한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얻기가 쉽다는 사실이었다.

동물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은 인간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을 간절한 염원과 수련을 통해서 각성하고 강화할 수 있었다.

혹은 동물을 강제로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능력을 얻을 수도 있었다.

이능 자체가 뛰어나면 그 이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신 수련을 할 수 있지만, 이능이 쓸모 없다고 해도 유용한 능력을 각성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여신이 약속한 것은 그것이었다.

여신의 도움이 되도록 쓰거나, 나라에 소속되거나 이능으로 일생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었다.

그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명동 거리에 나갈 준비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서양잡귀 아이시발입니다.]

돌연 들려온 여신의 목소리에 그들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장소 변경을 공지해 드립니다. 명동은 마땅히 모여서 즐길 거리도 없고, 교통도 혼잡할 것 같군요.

한강 공원에 오세요. 다양한 문화 행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적당한 공연이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게 좋겠지요. 운이 좋으면 저와 직접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순간, 초능력 연구소를 비롯해서 초능력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려던 이들의 안색이 돌변했다. 자신들의 준비가 쓸모 없어진 것은 비극이지만, 여신이 직접 등장한다는 선언은 차원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포획 같은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여신의 모습을 다양한 장비로 촬영하거나 기록해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여신님께 쏠리게 될 겁니다.]

원기는 조제성의 메시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긴장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여신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선언하고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