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조인트 콘서트
프레이야의 협력자가 된 이능자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깃털인 이들은 혼란과 불만으로 가득했다.
원기는 단순한 텔레파시의 접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추종자들에게는 강제력을 지닌 신탁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든 것은, 여신의 신탁과 반대되는 조직의 지시였다.
여신은 명동에 모이라고 지시를 했는데, 실제로 조직에서 이루어지는 준비는 한강에서 벌어지는 콘서트에 집중되어 있었다.
상황으로 보아서, 여신의 강림이랄까 현신은 한강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에 틀림없었지만 그들이 들은 신의 목소리는 명동에 모일 것을 말했다.
믿고 싶은 목소리, 따르고 싶은 목소리가 명동에 모일 것을 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화감이라고 할지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여신의 지시는 이성을 통해서, 사무적으로만 전해지지만 여신의 목소리는 감정과 본능까지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장 불만스러운 것은 모든 깃털들은 명동은 물론이고 한강에도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위안이라면, 깃털들은 물론이고 엘프들조차도 접근 불가의 명령이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고대 종교에서 보면 신은 위대한 주신, 보편신과 특정 부류를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나뉘어진다.
이슬람의 알라나 그리스도교의 야훼는 창조주이자 보편신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지만, 근원이 되는 유대교의 신은 보편신이 아닌 수호신 그 가운데에서도 민족신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엘프들에게 있어서 프레이야는 보편신이 아닌 수호신이었다.
수호신은 수호할 대상과 수호하지 않을 대상으로 나누는 신이었다.
엘프들을 보호하는 엘프들의 민족신이자 수호신이며, 엘프들을 위해 엘프 외의 모든 종족과 싸우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스가르드에서는 보편신보다는 수호신을 선호했다. 고대인들이 주신 혹은 창조신을 무시하고 종속신이자 하급신인 자신들의 수호신을 선호했던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한국이 분쟁을 일으켰다면, 보편신은 어느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일본도 한국도 보편신의 똑 같은 자녀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수호신이 있다면, 모든 분쟁에서 한국편에 서주게 되는 것이다. 설사 한국이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보편신 신앙은 모든 이들을 신자로 받아들이려고 든다. 모든 이들은 평등하고 신은 공정하다. 죄인이건 이방인이건 신 안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 보편신 신앙인 것이다.
하지만 수호신 신앙은 다르다. 민족신은 오로지 그 민족의 신이어야만 한다. 다른 이들이 신의 품안에 들어오면, 그들과 신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수호신을 일본도 섬기게 된다면, 한일의 수호신이 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분쟁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수호신이라 할지라도 품안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공정한 존재여야 하므로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엘프들은 프레이야의 품안에 드는 종족이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들이 수천년 목숨을 걸고 박해받으면서 끝까지 지켜온 소중한 존재를 최근 편승한 이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프레이야와 엘프가 살아남기 위해서, 덩치를 불려야 한다는 사실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프레이야가 엘프들을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깃털들은 자신들의 상급자인 엘프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엘프들 역시 명동에서 모이고 싶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왜 자신들에게 여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지, 왜 자신들을 신도로 받아들여주지 않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나가자 엘프들은 보기드물게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런 깃털들이 최후의 보루로 삼은게 나이트 엔젤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찬균이었다.
다크 엘프들과 함께 하던 테러 나이트의 협조자들은 이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여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불만은 나이트 엔젤의 깃털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신님의 이름이라, 별 것도 아닌데 말이지.”
원기와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들의 경우에는 신앙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간절히 도움을 원할 때, 여신의 도움을 받아서 인연을 맺게 된 조제성이나 한희연, 유연하 등은 신앙심이 가장 먼저 바탕에 깔릴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누나인 박승희나 찬균, 호철 같은 친구들의 경우엔 가족애, 우정같은게 먼저 깔린 상태에서 딱히 바라는 것 없이 여신의 스카우트에 응한 경우였다.
그리고 장수한의 경우에는 중간 지점에 있었다. 친분으로 일하다가 여신의 은혜를 입게된 것이었다.
이는 여신에 대한 충성심이나 신심의 온도차이로 나타났다. 과도하게 진지한 조제성이나 한희연, 유연하의 경우와 꽤 유연한 편인 장수한, 최찬균, 박호철의 태도 차이로 나타날 수 있었다.
신심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박승희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예언자는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신앙에 둔감하던 찬균과 호철까지도 신의 목소리에는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성만이 아니라 감정과 본능까지도 휘어잡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서양잡귀라느니, 믿지 말라느니 하는 말을 듣는 것은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그리고 깃털들은 사전에 알고 있던 명동에서 한강으로 장소 변경에 대한 여신의 공지가 들려왔다.
단순한 장소 변경의 알림이지만, ‘한강으로 오라’는 메시지는 여신을 보러 가고 싶다는 깃털들의 열망을 더욱 부추겼다.
현재의 원기는 전부 아니면 한사람에게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고, 조건을 설정해서 조건을 충족하는 다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조제성은 원기에게 메시지가 갖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피했다. 메시지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득이 된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메시지의 부작용에 대해서 알면, 원기는 사용을 자제할 가능성이 컸다.
장소변경의 공지가 깃털들의 갈등을 더 부추기는 상황은 찬균으로서도 그냥 넘어 갈 수는 없었다.
찬균은 지금까지 여신에 대한 신심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해왔지만 그냥 둘 수 없는 문제라고 보고 원기를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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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성은 한강 수상 콘서트를 기획했다. 자선 공연 콘서트 같은 기획은 언제나 찾아보면 있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조제성은 거기에 교묘하게 편승하는 수법을 택했다.
여신이 수상 콘서트에 등장하게 된다면, 콘서트를 기획한 이들을 조사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조제성은 그저 좋은 기획에 편승해서 판을 조금 키운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조제성은 출연자에 연하와 놀들을 포함시켰다. 연하의 발키리가 워낙 노래를 잘해서 뛰어난 외모와 완벽한 가창력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놀들은 노래에 야성의 살기를 실어서, 사람들을 전율시키는 독특한 매력으로 제법 유명한데다가 서구에서 활약하는 밴드라는 인상 때문에 내한 공연을 화제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판이 커지자, 유명 가수나 그룹, 밴드가 참여해서 더욱 화려한 면면이 갖춰졌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공연이고 십만 전후의 관객이 예상되었다.
“너무 물을 많이 타셨어요. 십만이라니…”
십만 관객에서 천명 남짓으로 예상되는 이능 각성자들을 확인하는 것은 꽤 피곤할 것이 틀림없었다.
여신 캐릭터로 콘서트 상황을 보던 원기, 프레이야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때 대기실로 찬균이 들어왔다.
“여, 잘왔다.”
프레이야는 찬균에게 반갑다는 표시를 하면서 손을 들어보였다. 조금은 과장된 또래 사이의 인사법이라, 여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찬균은 실제로 본 여신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과거에 학교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전에 가슴 한번 만져보고 싶다고 그랬지? 한번 만져 볼래? 덥치려고 들면 안된다.”
찬균은 호철과 함께 호텔방에서 원기와 떠들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때 나온 이야기 중 하나였다. 여신 캐릭터의 외모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감촉 한번 확인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여자 가슴모양 마우스 패드의 감촉과 비교하면서 나온 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떠올린 찬균은 다가오는 프레이야에 당혹해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며 말했다.
“이, 이러지 마세요. 이러시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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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진정된 찬균과 이야기를 나눈 원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신 캐릭터가 추종자들에게 갖는 이미지가 당혹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메시지의 위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여신의 축복을 받은 이들에게 여신은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가볍게 떠들던 찬균과 호철이었던만큼, 그 말에는 진실미가 있었다.
찬균의 비유는 원기가 생각해도 걸작이었다.
‘만약 내게 미인인 모델 엄마가 있다고 하고,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옛날 누드 사진집을 보는 듯한 불쾌감을 몇십배, 아니 몇백배로 증폭하면 딱 내가 느끼는 기분일거야.’
미인인 모델 엄마는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젊은 시절 수영복 사진집 정도만 되어도 그냥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미모의 탤런트였다고 한다면, 아버지 아닌 다른 사람과 키스를 하는 옛날 드라마를 보는 기분도 그러할 것이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특별한 법이었다. 그리고 여신도 추종자들에게는 그러했다.
가볍게 격없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드는 것 자체가 상처를 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원기에게 생각해 볼 여지를 주고 있었다.
“슬슬 공연이 시작될 모양입니다.”
발키리가 조종하는 연하의 본체는 그다지 전력이 될 수는 없었지만, 에인페리아인 세비지 빗치스, 놀들은 충분한 호위 전력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조제성이 불러들인 경비 요원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장내를 둘러 봐야겠군.’
프레이야는 바바리코트에 중절모, 썬글라스에 마스크까지 껴서 완전 무장한 다음, 경호원들과 함께 장내를 돌기 시작했다.
‘알아보기 어렵지는 않은데 숫자가 너무 많군.’
프레이야는 약 십여미터 거리에서 사람들의 정보창을 보고 그것을 읽었다. 블러드 라인 캐릭터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메시지가 통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녹음기를 이용했다. 나중에 데이터베이스화 할 예정이었다.
‘초능력 연구소 사람들도 와있군.’
나지예가 알려준 이름들도 눈에 보였다. 초능력 연구소에서 어떤 능력자들을 데리고 있는지 아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쓴 프레이야의 존재는 공연에 집중한 관객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공연에 관심이 없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포착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우리 좀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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