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츠키시마의 비밀
십만명이 넘어가는 관객들 가운데, 약 2만명 가량이 잠재 각성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딱히 바라는 것이 없는 이들이었다.
살이 빠졌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만 하는 사람은 정말로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강한 마음은 말과 행동이 따르는 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이들이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는 있지만, 각성에 이를 정도로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일반적일 경우, 신앙심 수치는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잠재 각성자들은 그런 면에서 내버려 둔다면 조용히 원래대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컸다.
언론에서는 마술 쇼에서 종교 퍼포먼스를 했다는 식으로 가볍게 다뤘다. 그 덕택에 동영상이 흘러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여파는 없었다.
바니걸 도우미가 종교 집회에서 벌어지는 기적쇼를 흉내내서 조롱하는 퍼포먼스라고 받아들여져서 아주 조용하게 묻혔다.
“별 일 아닙니다. 이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츠키시마에서 돌아온 조제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엘프들이 다수 투입되면서 츠키시마의 제압은 간단하게 끝났다. 뱀파이어들은 엘프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주민들의 처리가 문제였다. 뱀파이어들을 처치했다고 그들이 엘프들을 반길 리는 없었다. 뱀파이어들은 주민들에게는 신들이었으며, 그들의 혈족들 또한 그들 곁에서 살고 있었다.
리디아가 그들의 민원들을 해결해 주면서, 교묘하게 민심을 장악해가고 있지만 제법 시일이 걸리는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츠키시마에서 발견한 소득들 가운데에는 엄청난 것이 있었다. 츠키시마는 주술로 만들어진 인공섬이라는 사실이었다.
일본에는 지진도 많고 화산도 많은 편인데, 용암이 굳을 때 만들어지는 돌 가운데에는 급하게 굳는 가운데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해서 가벼운 돌들이 종종 있었다.
이를 부석, 혹은 경석이라고 부르는데 제주도의 현무암 가운데에도 종종 발견되는 돌이기도 했다.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이 언제 인간들에게 발견되어 쫓길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섬이 외부에 발견되지 않도록 결계를 치는 것만이 아니라, 섬을 조성할 때 이동 가능한 섬으로 만든 것이었다.
용암이 늘 끓는 온천과 화산을 이용해서 주술로 부석을 만들고 그 부석을 이용해서 거대한 배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물론 언제든 항해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닻처럼 섬을 바닥에 고정시켜둔 기둥을 뽑아 올리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주술력만해도 천명 단위의 산제물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다. 변변한 추진기관이 없어서 이동한다고 해도 원하는데로 빠르게 이동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섬의 존재는 조제성에게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즉시 프레이에게 섬에 사용된 주술과 섬의 구조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프레이는 주술로 만들어진 섬을 세계수로 제어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그 결과, 섬을 움직이는데에는 꽤 강력한 세계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레벨 4이상의 세계수가 있으면 신성력을 통해서 세계수를 유지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벨 4 이상의 세계수를 급속도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수만명의 신자가 필요했다.
조제성은 리디아를 통해 츠키시마의 주민들을 차츰차츰 신자로 감화시킬 생각을 가졌다. 어차피 뱀파이어를 신으로 섬기던 인간들이니, 신자로 만든다고 나쁠 것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작업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츠키시마를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내에 강력한 세계수를 키워낼 다수의 신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2만명의 잠재 각성자가 발생했다.
내버려 두면 원래대로 돌아갈 사람들이었다.
“일단 각성한 사람들이 사고를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의 정도는 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군요. 프레이야님을 믿지 마라. 혹시 초능력이 생기더라도 불안해 하지 말라는 안내 정도는 해주는게 좋을 겁니다. 초능력 연구소에서 상담 서비스 같은 것을 해줘도 좋겠지요.”
조제성은 원기의 심리를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원기는 자신을 여신으로 섬기는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들었지만, 메시지가 갖는 파괴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목소리를 접해보지 못하고 이능조차 각성못한 잠재 각성자들은 그냥 내버려두면 원래의 보통 사람들로 되돌아갈 터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원기는 조제성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갑자기 2만명이나 되는 초능력자가 튀어나온다면 그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그리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저는…누구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원기는 ‘아이시발’이라고 하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너무 체신없이 구는 것이 도리어 사람들을 상처입힐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레이야’라는 이름을 드러내기도 곤란했다.
‘에이. 욕설만 아니면 되었지.’
[저는 여러분이 어제 마술쇼에서 보셨던 ‘바니걸’입니다.]
그 순간, 조제성은 마시던 음료수를 저도 모르게 뿜었다. 조금 전까지 나누던 이야기 중에 너무 체신없이 구는 것은 삼가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양잡귀, 아이시발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고 말한 후에 나온 명칭이 ‘바니걸’이라는 사실에 조제성은 당황했지만 내심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여신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직접 들리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국제 학교에 심겨진 현세에서 첫번째 심겨진 세계수를 성장시킬 준비는 된 상태였다. 레벨 4 이상으로 키워서 츠키시마에 이식하면 움직이는 섬을 거점 중 하나로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조제성의 계획인 남미 지하(육), 츠키시마(해), 월면 지하(공)의 교토삼굴 계획이 성립되는 것이었다. 물론 츠키시마 이전에 해저 도시에 대한 검토도 하고 있었지만, 해저 도시의 건설은 지나치게 많은 비용 때문에 포기한 상태였다.
수압보다는 진공이 차라리 비용이 적게드는 만큼 월면기지가 더 효과적이며 비용도 적게 든다는 결론에 뒤로 미룬 상태였다.
조제성은 손수건을 꺼내 흘러넘친 음료수를 닦은 다음, 눈을 감고 여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감미로운 음악처럼 마음 속 깊은 곳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었다.
박원기가 그 사실을 안다면 방송행위를 꺼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조제성은 다른 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원기에게는 입을 다물도록 입막음을 시켜 둔 상태였다.
[제 목소리가 들리는 여러분들은 초능력에 눈 뜰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초능력이 생긴다고 경솔하게 행동하셔선 안됩니다. 현재 한국에는 국방부와 국정원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초능력 연구소가 있습니다. 초능력을 함부로 사용하시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은 초능력 연구소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원기는 그렇게 말하고 살짝 망설였다. 2만명이 모두 초능력 연구소에 기록된다면, 그 안에서 인재를 뽑아오는 것은 어려워졌다.
[저는 국가와는 관계없이 비밀리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신분이 국가에 노출되면, 제게 도움을 주실 수는 없게 됩니다. 물론 국가를 위해 여러분들의 재능을 사용하실 수는 있습니다. 혹시 제게 도움이 되고 싶은 분들은 정체를 드러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능력은 육체와 상관없는 영혼의 능력이므로, 건강상의 부작용은 없습니다만 과도하게 사용하시면 두통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적당히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사용한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초능력의 가능성이 생긴 것일 뿐이지, 초능력이 이미 생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상한 일이 생겼다면, 상담소에 연락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가져온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고, 이상한 종교 권유 등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술쇼에서 본 것은 마술쇼에 불과합니다. 초능력이나 저에 대한 언급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능력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비밀을 엄수하시기 바랍니다.]
원기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원기 자신은 무난하게 끝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2만명의 잠재 각성자들은 프레이야의 메시지를 듣고, 자신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여신의 목소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마술쇼에서 본 바니걸의 존재를 다시한번 떠올리고 마음에 새겼다.
마술쇼에서 본 그 순간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그들은 실감하면서 마음 속으로 큰 기쁨을 얻었다.
그리고 여신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정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원기는 몰랐고, 조제성은 훤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세계수가 성장해서 레벨 4에 달했다.
엘프들은 불만스럽게 여겼지만, 깃털들에게도 프레이야 여신을 섬길 권리가 주어졌다. 그리고 초능력 연구소에서도 나지예를 중심으로 프레이야를 섬기고자 하는 이들의 집회가 벌어졌다.
불참하고자 하는 이들은 없었다. 프레이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그들의 이능을 회복시켜 줄 뿐 아니라, 강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새롭게 여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 2만명이었다. 그들은 ‘아이시발’이라는 명칭도 들어본 적 없었다.
여신이라고 확신을 갖게 된 존재가 있다는 사실과, 여신이 바니걸의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만 알 뿐, 여신의 이름을 비롯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을 ‘바니걸’이라고 소개한 여신에 대해 알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졌지만,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바니걸’ 뿐이었다.
그들은 검색창에 ‘바니걸’을 쳐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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