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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46화 (246/497)

246화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일본 속담에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몇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보는 건강해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감기에 걸리기는 하지만, 걸린 줄도 모르고 지내는 사이에 낫는다는 이야기였다.

연하의 머리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몸을 주로 사용하는 스포츠라고 해도 머리가 나쁘면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발키리는 육체적 재능보다는 발전적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연하의 머리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녀가 머리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몸으로 부딛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이었다.

신중함이 결여되고, 즉흥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중력은 대단히 높은 편인데, 그로 인해서 주의가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사나 코치들은 자신들의 재미없는 수업을 참고 들어주는 단순한 인내심을 집중력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몰두하는 집중력이 높은 이들이 오히려 주의가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기 쉬웠다.

집중력이 높으면, 다른 부분에 둔감해 지기 쉽다. 책을 읽는데 집중하면 곁에서 벼락이 쳐도 모르는 것이고, 적의 목숨을 노리는데 집중하면 자신을 노리는 적에게 어이없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연하는 높은 집중력과 뛰어난 지능을 지니고 있지만, 머리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여러면에서 둔감한 편이었다.

감기에 걸리고도 자신이 감기에 걸린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바보’와 같은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이 강력한 이능을 각성하고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는 한계를 모르고, 불가능을 모른다. 그래서 한계를 깨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업적을 이루는 이들은 바보 같은 이들이기도 했다.

희연과 연하는 극단적으로 다른 타입이지만, 도리어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연하는 희연에게 생각하는 것을 맡겨놓고 시키는데로 움직이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연하가 각성한 이능 하나는 ‘타겟의 의도를 읽는 능력’이었다.

타겟이 어디로 움직이고자 하는 지를 이능으로 알아챘지만, 그녀는 그것을 그저 ‘운이 좋았다’’찍었는데 맞았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바람을 읽고 저격하는 그녀의 능력과 궁합이 좋은 능력이었다.

물론 쏜 다음에 상대가 생각을 바꿔서 움직이는 경우, 빗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투중에는 시시각각 적의 움직임에 맞춰서 생각을 바꿔야 할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빗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연하는 자신이 그런 고도의 이능을 각성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각성한 능력은 자신의 몸에 부착된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이었다.

몬스터와 합체할 경우 몬스터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쿨타임 동안은 몬스터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뀐 외형은 그대로 육체적 능력으로 이어졌다. 호랑이의 코로는 후각이 상승했고, 큼직한 여우의 귀로는 청각이 상승했다.

사람은 보통 귀와 꼬리를 움직일 수 없지만, 동물 형태가 된 상태에서는 귀와 꼬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인간에게 퇴화되었지만 꼬리뼈와 꼬리를 움직이는 감각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날개’는 아니었다.

척추동물은 기본적으로 4지를 가지고 있었다. 팔이냐 날개냐 앞발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양서류부터 파충류, 조류,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였다.

천사나 드래곤처럼 팔다리꼬리 말고 날개까지 달린 존재는 상상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인간은 날개를 조종할 능력이 없었다. 팔이 날개로 변했다면 모를까, 팔따로 날개따로 조종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연하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자체를 안했다. 귀찮기 때문이었다. 그저 ‘내 맘대로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보니 날개가 생각대로 움직여 줬고 그녀는 그럴려니 하면서 넘어갔다. 사소한 것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패기가 넘치는 그녀였다.

이능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능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이야 뿐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변화를 눈치챈 이들은 거의 없었다.

게임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장수한 조차도 그녀가 날개를 쓰는 것을 보면서, ‘지금 쿨타임 아닌가? 스킬이라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쓰는데. 저것도 재능인가?’라고 생각한 것이 고작이었다.

연하는 밤하늘을 날아 빅벤의 벽을 향해서 날아갔다. 약 60키로 이상의 스피드로 벽을 향해 뛰어들면서 벽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인간의 몇배나 되는 완력이 충격 에너지를 완벽하게 완화시켜서 벽에 가볍게 달라붙었다. 단검은 손잡이의 스위치를 누르면 칼날 내부에서 돌기가 튀어나오는 특수 사양이었다. 덕분에 벽에 완벽하게 고정되었다. 단검 손잡이에는 고정용 고리가 달려 있었고 그곳에 로프를 걸어 허리에 연결하자 양 다리만으로 벽에 몸을 고정할 수 있었다.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에 벽에 붙은 상태로 저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장비였다.

준비를 마친 그녀는 빅벤의 색깔에 맞춘 천을 덮어서 자신의 몸을 감췄다.

웨스트민스터궁이라고도 불리우는 영국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높은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높은 탑이라면 성 마가렛 성당이 존재할 뿐이었다.

빅벤이 독보적으로 높고 주변 건물이 낮다는 점 때문에 저격에 유리한 면도 있지만, 동시에 노출되기 쉽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적당한 저격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날아서 마가렛 성당 종탑과 빅벤을 오가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시계탑 아래에 몸을 고정한 상태에서 웹 검색 모드로 들어갔다. 블러드 라인에서는 흔히 ‘정줄놓은 상태’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몸이 고정된 상태에서 마이룸이라고 불리우는 가상 공간을 열고 그 안에서 웹을 검색하거나 간단한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국회의사당을 밤에 습격해 봐야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적들의 습격은 낮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대담한 작전이라고 해야겠지. 주 목표는 연하가 있는 의사당이 될거다. 역사에 남을 테러가 될지도 모르겠지.”

“그럼 희연양을 그쪽에 배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왕궁쪽도 무시할 수 없지. 국민감정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조제성은 현자회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쿠데타라고 말은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작전은 테러 행위였다.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민들이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테러에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템플 기사단의 입김이 닿은 정치가들은 대부분 비둘기파의 온건론자들이었다.

반면 현자회의 협력자들은 대부분 극우 주전론을 펴는 매파였다.

그런 속에서 왕궁과 의사당 두곳에 대한 테러를 가하는 것이다.

현자회의 협력자들은 대부분 정식 의원이 아니었다. 일선에 나서는 것은 되도록 피해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의사당을 습격해서 대부분의 의원을 죽여버리는 것이다. 매파건 비둘기파건 관계 없이 죽여버리면, 의원들을 다시 선출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왕궁이 피해를 입고 왕족들이 대거 사망한다면, 국민들이 분노할 터였다.

대거 매파들이 의원 당선이 될 것이고, 그 결과 현자회가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수 있게 될 터였다. 추가로 언제든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권한까지 얻게 된다고 할 수 있었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가 그러했다.

911테러를 일으킨 이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자였고, 이라크 후세인 독재정권은 양복을 선호하는 융통성있는 세속주의 수니파 정권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미국은 빈라덴과 대립관계인 이라크를 쳤다.

김정일의 북한이 테러를 저질렀는데, 남한을 응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결과 이라크에는 원리주의자들이 많은 시아파 정권이 들어섰다.

911에 대한 시민의 공분을 정치가들이 개인적 이해 타산으로 사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정치나 세계 정세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들의 약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현자회가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왕궁과 의사당을 습격한다. 그리고 신속한 군의 출동으로 테러를 제압한다. 물론 그때 공을 세우는 것은 현자회의 입김이 닿은 군간부들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현자회의 협조자들을 의원으로 당선시키고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템플 기사단을 공격한다.

“테러로 세상이 좋아지진 않지만, 공포와 미움으로 세상을 악화시키는 것은 간단하지.”

조제성은 그렇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테러리스트들 가운데에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없진 않겠지만, 그들의 행위가 불러오는 것은 결코 긍정적인 결과는 아니었다.

“연하가 과연 엑스칼리버를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괜찮아. 프레이가 만든 대 엑스칼리버용 무기가 있으니.”

“테스트라도 좀 해봤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장수한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테스트를 해볼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자네도 알지 않나.”

“그런 면에서 원기를 투입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엑스칼리버를 상대할 수 있는 건 희연을 제외하면 원기 뿐이니까요.”

“어차피 시간이 맞지않아. 모처럼이니 국내에서 좀 쉬다가 가시게 해드리는게 좋겠지.”

조제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기가 안고 있는 정신적 문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삶에 대한 욕구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누나가 혼자되는 것이 안타깝기에 살아왔을 뿐이지, 늘 죽고싶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죽음이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전장에 나서는 것은 실제로는 그런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의식 속에 강하게 깔려있는 문제였다. 자신이 가장 위험한 곳에 있어야 마음이 편한 강박관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는 외로움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감이라는게 존재한다. 친하면 가까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존경이라는 마음은 거리가 멀수록 강해진다.

존경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마음의 거리를 벌리고 싶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되도록 거리를 벌려서 마음의 공경심을 키우는 것이다. 존경의 마음은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보다는 충성을 위해 목숨만이 아닌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이 훨씬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은 왕 다울수록 고독해질 수 밖에 없다. 마음으로 신뢰하는 이들일수록 거리를 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제성은 일찌감치 거리를 두었고, 장수한은 무리해서 ‘가까운 척’을 할 뿐이었다.

원기가 여신의 힘을 쓰면 쓸수록,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는 고독해 질 것이었다. 야심을 가진 이라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고독에 몸부림치던 소년에겐 가혹한 운명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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