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자진검열
여신의 게임 안내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신의 안내 방송은 암암리에 각국 정부의 고위층에게도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일거에 병을 낫게하고 사람들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는 ‘여신’의 존재가 관심사가 아닐 수는 없었다.
템플 기사단 역시, 오드의 능력을 다시 되살릴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과거 오드의 능력이 있던 시기에는 미신이 만연했기 때문에 오드의 능력은 그다지 경이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이 지배하고 무신론이 강해진 이 시대에 오드의 능력이 선을 보인다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템플 기사단에는 굳건한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장로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혹세무민’하는 악신의 능력을 활용하게 될 가능성은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 틀림없었다.
젊은 템플 기사들이 현자회로 넘어가는 현상은 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프레이야의 존재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아폴로에게 동조해서 현자회로 넘어가거나, 프레이야 교단(?)과 더욱 긴밀한 협조를 말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블러드 라인 2의 베타 테스터 응모 홈페이지는 대외적으로 일체의 홍보 없이, 숨겨진 버튼을 이용해서 접속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들어오는 방법은 원기의 ‘바니걸 통신’을 이용해서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모자의 수가 5만을 넘어섰다.
실제로 바니걸 통신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이만오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어느정도는 정보가 누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응모자 선정에 대한 압력과 로비 활동 역시 이루어졌다.
[여러분, 바니걸입니다. 백명을 모집하는데 약 5만명이 등록을 해주셨더군요. 안타깝지만 모두를 뽑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제 통신을 듣지 않는 분들도 다수 신청해 주셨더군요. 클로즈 베타 테스트인만큼 공정한 선출이 아니라 제가 고르겠습니다. 베타 테스터의 수는 게임 테스트 진행에 따라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테스터로 선택된 분들은 그날 중으로 테스트에 동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분에게 미뤄집니다. 여러분들이 게임에 접속하실 경우, 여러분들의 생명력과 정신력의 일부는 흡수되어 저를 위해 사용되게 됩니다. 그 점 생각하시고 테스터 등록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게임 시간에 비해서 좀 피곤하다는 느낌은 드시겠지만, 그 이상의 부작용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원기는 공정한 선출이 아닌, 프레이야 여신이 선택하겠다는 선언을 공공연하게 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회사에 대해서 걸리는 압력이나 로비는 줄어들었다.
동시에 베타테스터로 선출되고 싶다는 염원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었다. 여신의 애매해서 은근히 무섭게 들리는 경고문 역시 사람들의 그런 열망을 식히지는 못했다.
설사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여신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었다. 동시에 설사 목숨을 잃는다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신의 메시지에는 여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심리까지 직접 전해지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선택되는 걸까.’
이런 의문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나이트 엔젤의 깃털들은 응모가 금지된 탓에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신으로부터 직접 떨어지는 지시와, 다수에게 전해지는 메시지 중 지시를 우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메시지가 더 마음속을 울리는 탓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상부의 지시는 서류로 날아오는데, 바니걸 통신은 마음 속에서 강렬한 의무감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나타나는 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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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리, 코드네임 서유기라고 불리우는 그녀는 알파 테스터로서 먼저 선택된 상태였다.
프레이야가 제공한 아티팩트는 작은 나무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장수한은 그것에 껍데기를 씌우고 액정판넬을 이용해서 작은 스마트폰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아직은 시제품이라 나무판이 외부로 돌출되어 있고, 배터리도 외부로 나와있었다.
“로그인.”
게임에 들어가는 방법은 극히 간단했다. 침대에 누워서 프레이의 아티팩트를 쥐고 로그인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었다.
그저 그것만으로 그녀의 영혼은 프레이가 만든 가상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건 완전히 진짜 세계 인데? 소환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야.”
서유리는 혼잣말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에는 조잡한 시제품의 단말기가 아닌 말끔한 형태의 휴대폰이 보였다.
그녀는 남의 시선을 기피하는 습관이 있어서, 타인이 자신을 쳐다보면 말을 못할 뿐이지, 혼자 있을 때는 도리어 활달해 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상대가 자신을 기피하거나 두려워하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상대를 괴롭히려고 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 결과 그녀는 인터넷 세계에선 악플러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도 싫어하는 추녀의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고는 ‘내가 유연하보다 더 청초하고 예쁘다.’는 식의 글까지 올려놓고는 악플을 달고 다녔다.
실제로 그녀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유연하보다 못하지는 않다’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연하 역시 햇볕을 보지않아 창백해 보이는 서유리의 진짜 모습을 보고는 자신보다 예쁘다, 하얀 피부가 부럽다고 말할 정도였지만 그런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못생긴게 주제도 모르고 드립질을 하고 다닌다는 평가 덕분에 그녀의 글에는 악플이 쏟아졌지만, 그녀는 그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그녀는 아직 외모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실제로 가상세계 안에서 돌아다니는 인물들은 블러드 라인에서 늘 보던 NPC들 그대로였다.
실제 아스가르드인들과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러드 라인의 마을을 옮겨놓으려는 프레이의 게임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이질적인 결과였다.
완벽한 가상 게임 속에 돌아다니는 위화감 넘치는 3D캐릭터들이 시작의 마을을 장악하고 있었다. 물론 덕분에 서유리는 별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NPC들에게 고도의 인공지능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많은 신성력을 소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자연환경은 거의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지만, 이성을 지닌 지성체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찬균이 만들고 있는 페르소나가 블러드 라인2에 이식되게 되는 날에는 큰 변화가 생겨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것을 위해서 프레이 역시 찬균이 만드는 페르소나를 정밀히 분석 중이었다.
문제는 지나치게 남자가 좋아하는 여성상에 맞춰서 만들어졌다는 점이었다. 남성용 인공지능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고, 여성들에게는 달갑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때문에 시작의 마을 부분에는 블러드 라인에서 옮겨온 듯한 홀로그램 같기도 한 NPC들이 가게를 지키거나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서유리는 주위를 좀 살펴보다가 허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NPC들만 없으면 현실과 착각할 만한 느낌이었다.
음식 냄새, 바람 냄새, 숲의 냄새 등도 느껴졌고 오감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숲속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여신의 성 ‘세스룸니르’의 모습도 멀찌감치에서 보였다. 알파 테스터들은 실제로 아스가르드에 방문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유리는 스마트폰 형상의 단말을 들어서 사진을 찍었다.
기존의 게임처럼 시야 한구석에 메뉴가 뜨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모든 작업은 스마트폰 형상의 단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스크린 캡쳐도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사실 게임이라기보다 프레이 신이 만든 가상의 또다른 세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지 몰랐다.
카메라의 줌 기능을 사용하자, 여신의 성 내부가 보였다.
당연히 사람은 없었다.
“메이드 복의 엘프들은 안보이는군.”
서유리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알파 테스터들이 여신의 성에 도착해서 보고 놀란 것 가운데 하나는 메이드복을 입은 엘프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장수한의 업적(?)이었다. 궁전에서 여신을 위해서 일하는 여성들은 메이드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여신도 메이드복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고 단언했다.
조제성은 아무래도 좋다고 외면했고, 원기는 메이드복 입은 엘프도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실제로 리디아에게 메이드복을 입힌 적도 있었으니, 따로 할 말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시녀들만이 아니라 세스룸니르에서 일하는 모든 엘프들이 메이드복을 입게 되었다. 거기에는 고위신관은 물론이고 황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장수한의 오산이기도 했다.
신관을 비롯해서 트리아 여제도 여신을 위해서 일하는 존재이고, 여신이 기뻐하시는 복장이라고 했으니 그것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처음에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것을 보던 장수한이었지만, 엘프들에게 메이드복을 입힌 원흉으로 역사에 남게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대책을 강구하는 중이기도 했다.
다만, 엘프들의 여제 트리아 역시 시녀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엘프다움이라면 엘프다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디 좀 앉고 싶다.”
서유리는 허리만이 아니라 다리도 아파오자 가까이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았다. 딱딱한 바닥의 감촉도 그렇고 냉기도 느껴졌다. 목도 말라왔다.
“이건 게임으로 실격 아닌가.”
서유리는 한탄하며 그렇게 말했다. 너무 완벽한 현실성은 게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유리는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 내부에는 술집 주인과 여종업원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뭘 드시겠습니까?”
“시원한 음료수 한잔 주세요.”
“펩카 콜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많이 듣던 이름의 콜라가 튀어 나왔다. 블러드 라인에는 없던 기능이었다. 서유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종업원이 콜라를 가져왔다. 서유리는 콜라를 맛보고는 깜짝 놀랐다.
콜라 맛 자체는 시판되는 현실의 콜라와 완벽히 똑같았다. 하지만 콜라의 상태는 말 그대로 최상이었다. 얼음이 얼 듯 말듯한 온도의 차가움과 강렬한 탄산까지 막 콜라 병을 딴 그 순간보다 조금 더 강한 듯한 탄산이 느껴졌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도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식사는 어떤게 될까요?”
“메뉴판을 보시면 됩니다. 단말에 표시됩니다.”
서유리는 자신의 단말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메뉴가 떴다.
“뭐야? 이건 술집이야? 맥도리아야?”
그녀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맥도리아의 메뉴가 그대로 나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햄버거를 주문했다. 그러자 따끈따끈한 햄버거가 사진 그대로의 모습으로 탁자에 운반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파 테스터라서 모든게 무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임으로서의 매력은 그리 높지 않을지 모르지만, 콜라와 햄버거 만으로도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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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있으면 피곤하고 걸으면 더피곤하고, 뛰면 숨찬데 이걸 게임이라고 할까요?”
장수한은 유혜서에게 물었다. 아직 컴퓨터 시스템이 복귀가 되지 않은터라 조제성은 블러드 라인에서 귀환하지 못하고 있었다. 블러드 라인 2와 블러드 라인 사이에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꽤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레벨 업이 되면, 피로도 덜 느끼고 숨도 덜찬다고 합니다. 그 성취감이 꽤 클거라고 하시는군요.”
유혜서는 조제성의 말을 전했다. 조제성은 유혜서를 통해 연락을 취하면서, 동시에 블러드 라인에서 렙업 중이었다.
안전을 위해 게임 캐릭터를 사용하면서도 능력치를 못올렸던 것도 있고 실전에 대비한 훈련을 겸한 것이기도 했다.
실제 블러드 라인 2에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의 최고치는 실제 세상에서 통용되는 능력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전투 훈련과 초인적 육체의 적응 훈련을 겸한 이상적인 전사를 양성할 수 있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죽돌이 들인가.”
알파 테스터들 대부분이 마을 식당에서 죽치고 이런 저런 메뉴만 섭렵하고 있었다. 음식의 맛을 패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고급 술을 파는 것도 고려해 볼만 했다.
아니, 범죄의 영역도 무궁무진했다. 술보다 강력한 마약을 판다거나, 미녀 NPC를 이용한 매춘 사업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 무서운 일이었다.
“역시 벗겨지지 않는 무적의 속옷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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