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53화 (253/497)

253화 인간과 엘프

“이거 안좋은 거 아닙니까? 인간들에게서 마음이 멀어졌다는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 것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당연한 수순이었지. 일단 성향 자체가 달라.”

조제성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원기의 성향은 인간보다는 엘프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성장 과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평범한 인간은 보다 나은 삶을 꿈꾼다. 장사하는 부모가 자식은 관료가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길 원하는 것과 같다.

보다 많은 것을 갖고 누리고 싶어하는 욕망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해 온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장애나 사고 등을 통해서 평범함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평범함을 꿈꾼다. 다리를 못쓰게 된 사람은 ‘남들처럼’’평범하게’ 걷고 뛸 수 있기를 바란다.

원기도 그랬다. 원기의 바람은 오로지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평범하게 생활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이루어질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평범함의 추구는 조화의 추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조화를 추구하며,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을 가진 것이 바로 엘프들이었다. 인간은 얻기 위해 싸운다면, 엘프는 지키기 위해 싸운다.

인간들이 능동적이라면, 엘프들은 수동적이었다.

“리더에겐 비전이 필요해. 하지만 신에게도 비전이 필요할까?”

조제성의 질문에 장수한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들을 한 마음으로 묶는데는 희망이 필요했다. 희망 역시 욕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보가 분열되는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악인을 구원하길 바라고, 어떤 사람은 악인을 처벌하길 바란다. 지금 세상에 만족 못하는 것은 같지만,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

원기는 솔직하게 말하면 딱히 꿈꾸는 세상이 없다.

그런 건 바라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과 자신이 아는 이들, 그리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이들이 무사하고 평안히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제성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것도 그런 면이 있었다. 그리고 조제성은 그런 부분이 신으로서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능이 약화된 건 문제가 아닐까요? 인간과 멀어지는 것도 곤란하고 말이지요.”

“인간과 멀어져? 그건 아니라고 보는데. 자네 이능이 약해졌나? 희연이나 연하의 이능은 어떻지? 인류 전반에 대해 실망을 했을 뿐이지, 개개인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깊어진 것 아닌가?”

조제성의 말대로 원기와 개인적 친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엘프들 이상으로 강한 연대를 느낄 수 있었다.

“인류에 대해 조금 배우신 것 뿐이야. 욕망 때문에 한없이 어리석어질 수 있는 종족이지. 그리고 언젠가는 욕망 때문에 가치있는 종족이라는 사실도 깨달으시게 되겠지.”

조제성의 말대로 상황은 나쁜 것이 아니었다. 장수한도 그것을 깨달았다. 프레이야는 본래 엘프들의 신이었고, 적어도 인간들을 외면할 그런 존재는 아니었다.

자신들에 대한 신뢰는 더 깊어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번 사태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 프레이야 여신의 뜻이 지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상실감을 맛본 이들은 프레이야 여신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었다. 실제로는 버린다기 보다는 ‘두고 떠나는’ 것이겠지만 당사자로서는 별 차이는 없었다.

그로 인해서 에인페리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신을 위해 영원히 싸우는 전사인 에인페리아에 대해서 처음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자유를 즐기며 살아온 현대인들에게는 바보 같은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레이야가 지구에서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프레이야와 영원히 이어질 수 있다는 에인페리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초능력 연구소에서는 에인페리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들이 신관인 나지예에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여신을 위해 공을 세우면 에인페리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지예 역시 프레이야 여신과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현세, 적어도 지구에는 프레이야 여신이 안계시다는 사실을 알렸고, 그것이 더한 조바심을 부르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깃털들은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깃털들 가운데에는 이능 감소를 겪지 않은 이들이 있었고, 에인페리아 이상의 존재 ‘계약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약자가 된다면, 죽을 때까지 프레이야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바라는 것이 없고 욕심이 없는 원기의 마음을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느낀 사람들은 프레이야의 곁에서 안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엘프들 가운데 각성한 이들은 없나? 나이트 엔젤의 힘이 필요한데.”

“이능을 각성했다고 하더라도 자각하거나 활용방법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하지만 엘프들의 신체 능력을 보다 활용하는 방법은 발견했습니다.”

현재 주 전력은 일부 계약자를 제외하면 엘프들이었다. 그들의 이능이 강화되거나 각성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었다.

특히 유럽에서 현자회의 일제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엘프의 전력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엘프들의 숲속에서의 강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연구되었다. 그것은 연막탄과 스파이더 네트였다.

엘프들이 도시에서보다 숲에서 강력한 것은, 숲속의 경우 극히 시계가 불량해서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청각의 활용도가 높은 엘프들에게 유리한 면이 컸다.

또 하나는 나무 가지의 존재였다. 체조선수들이 봉의 탄력을 이용해서 고난이도 기술을 발휘하는 것처럼, 엘프들은 나뭇가지의 탄성을 이용해서 온갖 테크닉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점을 시가전에서 활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특수 연막탄과 스파이더 네트였다.

영화 스파이더 맨에 나오는 것처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빨랫줄과 같은 것을 건물과 건물 사이에 설치할 수 있었다.

전깃줄과 빨랫줄 같은 것은 탄성이 강해서 엘프들이 도약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 사용되는 연막탄과 시야를 가리기 위한 작은 은박으로 만들어진 채프탄은 엘프들역시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유리한 전장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게릴라전을 펼침으로써 현자회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오기는 했지만, 엑스칼리버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엑스칼리버 능력 자체가 빈틈이 없기 때문이었다. 엘프 자체 육체나 약화된 게임 캐릭터로는 엑스칼리버를 상대할 방어력도 공격력도 갖추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활약하고 있는 것이 바로 희연과 연하였다.

희연의 주무기는 엑스칼리버를 능가하는 무기 강화 이능인 무기사랑이었다. 게임 캐릭터의 파워는 약해졌지만, 힘으로만 베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의 무기를 강인하게 꺾는 것은 어렵지만, 엑스칼리버의 방어막을 뚫고 치명타를 입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동력은 특수 제트팩을 이용해서 확보했다.

연하의 경우, 날개를 이용해서 방향 제어를 했기 때문에 제트팩에는 그다지 공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희연의 경우에는 제트팩을 제어할 필요성이 있었고, 거기에 사용된 것이 검 손잡이 부분의 조이스틱이었다. 오른손 엄지와 왼손으로 제트팩의 출력과 방향을 제어하는 방식이었다.

익숙해지는데는 엄청나게 공을 들여야 했지만, 제트팩의 사용과 검술을 연계함으로써 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효과적인 공격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그 패턴은 몇가지로 제한되었지만,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게임 캐릭터의 약화 때문에 도리어 강해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힘에 의존하는 전투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하는 기본적으로 원거리 공격을 하기 때문에, 힘의 약화가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연하를 위해 특수 제작된 스나이퍼 라이플은 상부에 크로스 보우를 결합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를 이용해서 엑스칼리버건너들을 상대하기 위한 화살과 일반인이나 차량을 상대하기 위한 대물 저격총을 하나의 무기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엑스칼리버 건너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포로 자리잡게 되었다. 희연과 싸울 때는 그나마 자신들이 왜 죽는지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모두들 주의 하십시오. 위험도가 높아졌습니다.”

생존 본능의 이능을 가진 현자회의 정찰병이 살짝 손을 들어보였다. 꽤 많이 제작된 현자회의 이능이었지만, 현 시점에서 마구 찍어내는 엑스칼리버들과는 비교될 수 없었다.

엑스칼리버 건너는 이미 세자리 수를 넘기고 있었다. 이는 일부 독재국가들의 인종청소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독재자들의 경호부대에 엑스칼리버 능력자들이 기본으로 배치되거나, 심지어는 엑스칼리버 능력을 가진 독재자들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엑스칼리버 각성 효율까지 상승했다는 사실이었다. 아프리카의 소년병들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독재자에 대한 충성교육을 통해 세뇌된데다가, 전투에도 익숙한 소년병들에게 엑스칼리버를 사용하는 전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각성 이미지를 인식시킨다음 필사적으로 전투를 하게 만들자 꽤 높은 확률에 높은 랭크의 엑스칼리버로 각성되었다.

일부는 재료로 썼지만, 일부는 그대로 독재자를 위한 병사로 활용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엑스칼리버의 생산을 위해 사용된 어린이들의 양은 어마어마해서 현자회로서도 생산량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엑스칼리버 각성자와 이식자의 경우, 각성자에게 새로운 능력을 추가 이식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현자회의 전투원으로 키워내기 위해 교육 시설에 배치된 엑스칼리버 각성자들도 있었다.

“스나이퍼! ‘The Wing’입니다! 모두 엄폐하세요!”

그는 자신만이 아닌 엑스칼리버에게도 적용되는 위험도를 느끼고 경고를 했다. 템플 기사단이 방어 체제를 갖추고, 현자회에서 엑스칼리버 건너들을 적극 활용해서 전투에 나서면서 공격차 이동하는 와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연하의 존재였다.

차량을 날려버리는 대물 저격총 때문에 골목골목을 도보로 이동해서 공격을 나서야 할 지경이었다.

조금 전의 경고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엑스칼리버들이 연하를 지칭하는 코드네임인 ‘날개’를 말하자 모두 자세를 낮추고 엄폐에 들어갔다.

정찰병은 위협도가 더 커짐을 느끼고 주위를 살폈다. 정찰병의 생존 본능에는 아군의 생존 자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위험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벽 뒤에 숨어있던 엑스칼리버의 가슴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바닥에 쓰러졌다.

----------------------------------

“음, 이젠 더 이상 맞아줄 것 같지 않군. 위협사격을 날려줄까.”

연하는 폭탄이 달린 일반 화살을 장전했다. 원기의 심정 변화 후에 연하의 능력이 한층 더 발전했다.

그것은 일종의 ‘명중 예감’이었다.

화살을 쏘기 전이나 쏘고 난 후에 느껴지는 막연한 명중에 대한 예감이 증폭된 것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어디쯤 맞을 지도 알 수 있었다. 신성력이 담긴 화살은 더 이상 보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꽤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연하는 화살을 다시 한 번 쐈다. 신성력이 담긴 화살을 얼마든지 쏠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그녀의 예측대로 큼직한 방패로 쳐냈고, 화살은 튕겨져서 폭발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 건너들이 재빨리 튀어나와서 그녀를 향해 조준하려는 순간, 이미 그녀는 제트팩을 이용해서 밤하늘을 날아서 사라진 뒤였다.

정찰병을 앞세워서 다시 전진하던 그들이었지만, 다시 연하에게 습격을 당했다. 연하는 정찰병을 노렸지만, 정찰병의 능력 역시 유사한 능력이라 그녀가 쏜 순간 몸을 피해서 명중에는 이르지 못했다.

연하는 정찰병을 몇차례 노렸지만, 명중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포기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