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손바닥
“위협이 사라진 듯 합니다. 날개는 자리를 뜬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기습의 의미가 없어진 듯 싶은데 작전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요?”
“일단 작전 내용에 변경은 없다.”
대장인 엑스칼리버 건너가 무심하게 말했다. 정찰병은 기습 작전을 위해 배치된 외부 부대원이었다. 특수 탐지 능력을 가진 그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부대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귀한 능력이지만, 파견받은 외부인으로서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쓸만한 길잡이나 사냥개 취급을 받다보니 작전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불여우가 올지도 모릅니다.”
정찰병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역할은 기습 작전이 성공하도록 위험 요소를 파악해서 안내하는 것이었다. 발각되었을 시의 대처에 대한 설명은 받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라. 대응 준비는 다 되어있다. 클레이모어와 산탄총이면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걸리게 되어있다.”
엑스칼리버 건너들은 가슴에 클레이모어들을 부착해 놓았다. 폭발의 반동이나 파편을 몸으로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사용 가능한 무기였다. 엘프들이나 희연의 고속 전투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눈빛만 봐도 꼼짝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만…”
“군말이 많군. 원거리 공격 팀도 포함되어 있다.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희연의 이능에 의한 학살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현자회가 준비한 것이 원거리 지원 사격이었다. 유탄 발사기와 기관포를 사용해서 쪼렙 학살의 범위 밖에서 견제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정찰병은 리더의 담담한 목소리에 침을 삼켰다. 그 대처법이라는게 하나같이 엑스칼리버 건너들의 생존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엑스칼리버의 능력이 없는 그는 클레이모어, 유탄, 기관포탄, 파편 수류탄 등을 뒤집어 쓰고 죽을 수도 있었다.
불여우가 나타나서 자신 하나만 희생되고 끝난다면 현자회로서는 엄청난 수확이 되겠지만, 정찰병은 그정도 충성심은 없었다.
희연이 나타나면 어떻게든 숨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엑스칼리버 건너들도 그렇지만, 정찰병도 새롭게 현자회에 가담한 전투 요원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용병 출신이었다.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나 고문, 보복 폭행등으로 회복 불능이 되어 병원에서 연명하던 이들이었다.
현자회는 이들에게 사이보그화를 통한 육체의 회복과 블러드 크리스탈을 이용한 이능을 부여해주고 자신들의 병대로 쓰게 된 것이었다.
어차피 악마와 계약하라고 해도 기쁘게 계약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자회와 손을 잡는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들 가운데는 블러드 크리스탈을 만들기 위해, 저항할 수 없는 아이들이나 무력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이는데 자진해서 참가하는 정신 나간 살인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군에게도 인정사정 없구만. 망할 새끼들.’
정찰병은 내심 욕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갑자기 닥쳐온 느낌에 퍼뜩 놀랐다.
“위험 감지! 위험 감지! 레벨 1!”
정찰병은 그렇게 외치며 재빨리 엄폐하기 좋은 곳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 모습을 본 엑스칼리버 건너들도 몸을 피하며 적당한 곳으로 엄폐했다. 레벨 1은 즉시 사망할 위험성을 의미했다.
“적은 어딨지?”
숨어서 주위를 살피던 리더가 무전기를 켜서 지원 팀에게 물었다. 정찰병은 주위를 살필 수 없을 정도의 위치에 바짝 숨어있었다. 한심하고 짜증도 나지만, 그는 나름 귀한 능력자였다.
연하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저격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템플 기사단도 나름대로 돈이 넘치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휴대용 대공 미사일 정도는 충분히 확보 가능했다. 엘프들이 대공미사일을 들고 이곳 저곳에 은신해 있기 때문에, 현자회도 전투 헬기 같은 것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연하만이 아니라, 엘프 스나이퍼들이라면 전투 헬기를 대물 저격총으로도 격추 가능했기 때문에 공중에서 습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엘프들의 경우, 헬기가 보이지 않아도 소리로 위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엘프쪽이 먼저 조준하고 공격할 수 있었다.
원거리 지원팀 쪽에서 정찰용 드론과 쌍안경을 이용해서 탐색했지만 연하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날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여우도 보이지 않습니다.”
“뭐야? 오작동도 하나? 겁쟁이 같으니라고.”
리더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정찰병은 자신에게 느껴지는 공포스러운 느낌이 착각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마구 심장이 뛰고, 귀에서는 이명까지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는 리더에게 팔을 붙잡혀서 끌려나왔다. 하지만 두통과 이명은 더욱 심해졌다.
“뭐야? 이자식? 망가진건가?”
다음 순간, 정찰병은 두통과 이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묘한 이질감은 느껴졌지만 가슴이 급격히 뛰던 것도 순식간에 안정된 느낌이었다.
‘어라? 정말 부작용이었나?’
현자회의 기술은 대단하지만, 급격한 사이보그화 때문에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괜찮아졌습니다. 아마도 이식 거부반응 탓이었나 봅니다.”
정찰병이 안정을 되찾자, 리더는 한 숨을 쉰 다음 다른 엑스칼리버 건너들과 함께 전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자신들을 막아 선 불여우와 마주하게 되었다.
“어떻게 된거지?”
리더가 묻자, 정찰병은 그제야 조금 전 느꼈던 비정상적인 경고의 의미를 깨달았다.
불꽃 같은 붉은 머리칼과 귀와 꼬리를 가지고 서있는 아름다운 동양계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정찰병은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예전에 본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렸다. 사람이 펑펑 터져나가는 그로테스크한 맛에 보던 애니메이션이었다.
‘거기에 나오던 대사가 떠오르는군. 난 이미 죽은건가.’
“전투 준비! 화망을 구성하는 거다!”
리더는 바짝 긴장해서 전투 태세를 갖췄다.
“지원팀! 사격 개시!”
리더가 기세좋게 헤드셋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폭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불여우를 향해 날아간 총탄은 하나도 없었다. 비명소리와 총을 난사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 조용해졌다.
연하가 저격을 이용해서 모두 제압한 것이었다. 그들도 그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원거리 지원 부대에 엑스칼리버를 포함시켜야 했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한명 포함되어 있었군.’
아마도 연하의 최초 일격에 죽어나갔을 터였다. 리더는 쓴 웃음을 지었다.
“저격은 무시하라! 불여우가 나온 상황에서 화살에 죽은 놈은 없었다!”
엑스칼리버들에게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연하가 사용하는 특수 화살은 꽤 고가의 물건이거나 대량생산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그 근거로 불여우와 조우한 상태에서 엑스칼리버들은 모조리 불여우의 검에 죽었다.
‘화살이 아까운 거겠지.’
불여우는 바닥에 깔리듯한 특유의 자세로 그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순간, 급격히 빨라졌다. 리더는 눈빛이 마주친 순간, 사격 명령을 내리려고 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불여우의 이능이었다. 그냥 싸워도 이길 수 없을텐데, 저항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젠장!’
그는 꼼짝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을 향해 검이 날아오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일순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이 그에게는 영원과도 같았다.
‘후회는 없다. 병원에서 썩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정찰병은 리더가 일순간에 목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차례로 다른 엑스칼리버들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쪼렙 학살에 저항할 만한 실력자는 없었다. 용병으로 급조된 엑스칼리버 부대였던 만큼, 달인 수준의 실력자는 없었다.
정찰병은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머리통이 터져나가도록 시끄럽던 그 순간이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찬스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이젠 살아날 수 없다는 거겠지.’
불여우는 땅 위를 날아가듯 미끄러지면서 그의 곁을 스쳐갔고 그의 육체는 무너지듯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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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과 연하의 활약으로 현자회의 공세를 어렵게나마 막아나가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템플 기사단은 여전히 실체를 감추고 있었다. 미래에도 꾸준히 자신들의 조직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현자회의 경우에는 게이트가 실패하면서, 이판사판으로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종교의 힘이 극히 약화되면서, 현자회가 활동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독재자들이 많은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아주 빠르게 지배력을 늘려 나가고 있었다.
보병용으로 최강의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엑스칼리버 건너를 양산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결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중동 지역의 테러리스트들과도 교섭을 추진하고 있었다. 물론 테러리스트들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강대국들과 척을 지게 될 가능성이 컸다. 엑스칼리버 능력을 가진 테러리스트의 등장은 강대국들에게 있어서는 악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현자회 역시 그 부분을 의식한 탓에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강대국측에서도 현자회와 연결점을 찾으려는 이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프레이야의 존재 때문이었다.
프레이야가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이능자들은 프레이야가 제시한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초능력 연구소의 초능력자들도 그런 원칙에는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이능들은 인간의 인지를 넘는 능력이기 때문에, 스파이 등에 사용되면 좋은 능력이었다.
하지만 프레이야의 원칙 때문에, 국가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만 사용할 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첩보활동은 거부했다.
그리고 국가 내부에서의 첩보 활동도 거부했다. 정권 유지나 권력욕에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 원칙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강한 이능을 가진 이들일수록 프레이야의 뜻을 거스르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었다.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능력이지만, 사용처가 제한된 능력이 이능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허락되지 않은 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현자회의 힘을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었다.
신은 별 도움이 안되니, 악마를 부르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심산이었다.
한가지 다행한 것은 현자회가 기본적으로 아스 신족이 아닌 거인족의 추종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딘은 북구 신화의 ‘주신’이자 ‘정의의 신’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르고자 하지 않았다.
프레이야보다 더 고지식할거라는 착각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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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걸 여신 소동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화상이 완전 치유된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프레이야가 내려준 자신의 이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능력도 또한 여신이 자신에게 준 축복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능을 필요로하는 곳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바로 화상 전문 병원이었다. 그는 어린 화상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었다.
그는 민완 회계사로 제법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아들의 치료비로 빚까지 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나은 다음에는 회계사를 그만두고 화상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길을 택했다.
그의 손이 가져다 주는 진통 효과는 왠만한 진통제보다 훨씬 강력한데다가 진통제가 가진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의 아들이 프레이야 여신의 이적으로 회복된 사실을 병원 측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가진 손의 이능도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능력을 병원측에서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돕고 있었다.
진통제의 부담마저 겪기 힘든 아이들을 도우는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음, 여기에 무슨 일이 있는 거지요?”
블러드 라인 서버는 회복되었다. 다만 보안을 위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에 일부 라인만 회복시켰다. 그 덕분에 게임 서버에서 로그 아웃과 로그 인이 가능해졌다.
조제성 사장은 프레이가 만들어둔 아티팩트 화살과 함께 현실로 복귀할 수 있었고 원기는 프레이야 캐릭터를 다시 끌어낼 수 있었다.
아직 일반 유저들을 위한 회선을 열어두지 않은 상태라 게임 캐릭터들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달 서버를 위한 안전책 마련과 해킹이 불가능한 블러드 라인2의 활성화가 이루어진다면 보다 안정적으로 게임 캐릭터들을 운영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조제성에게 이끌려 화상 병원을 찾은 프레이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화상 환자들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화상 병원이 프레이야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같았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과 이세상 모든 환자들을 구할 수도 구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만나보셔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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