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리디아 각성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전하.”
조제성은 깍듯이 리디아를 맞아 들였다. 프레이야의 진영에 있어서 실질적인 이인자, 아니 일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제성이었다.
원기는 조제성을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제성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트리아 여제와 리디아의 아래로 자리잡고 있었다. 대외적이고 형식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조제성은 그게 실질적인 자리가 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별 일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원하는데로 움직여도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전하가 엑스칼리버를 각성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습니다. 서유리양과 전하는 같은 타입입니다. 엑스칼리버하고는 상성이 정말 안좋습니다.”
리디아는 발신형 텔레파시 이능의 최강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치우친 이능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계통의 이능을 획득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저도 전투에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적어도 곁에서 몸을 던지는 역할이라도 할 수 있으면 합니다.”
“지금부터는 곁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맡길 생각이었습니다. 굳이 엑스칼리버 따위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조제성은 리디아가 엑스칼리버에 도전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지만, 그것이 안먹힐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리디아의 여신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히 강했기 때문이었다.
트리아가 초대 여제로 선택된 것도 그때문이었다. 트리아 모녀가 가장 강한 충성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엘프 족장들 사이에서 돌아가면서 황제를 하도록 시킬 예정이었지만, 엘프들 스스로가 트리아가 가장 어울린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무리해서 바꾸지 않는다면, 트리아가 계속 여제로 있게 될 가능성이 컸다.
“발키리 칩은 잘 작동이 되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전하가 힘을 써주신 보람이 있습니다.”
조제성은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다. 장수한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리디아의 배가교환을 이용한 교섭술을 이용해서 미국 주요 군사시설물에 발키리 칩을 심어 놓았다.
너무 많이 심어놓은 탓에 배치할 발키리가 없는 빈 칩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칩들에 발키리가 깃들면 해킹이나 도청, 도촬이 가능해졌다.
특히 잠수항모 엔터프라이즈에는 발키리가 내부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그 덕택에 조제성은 아폴로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무얼 하려는지까지 모두 꿰고 있었다.
신형 잠수항모로서 두자리수 승무원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려면 수백명의 승무원이 필요했다.
발키리칩만으로 함을 탈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사시에 조제성의 손짓 한번으로 영원히 잠수를 계속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일정 심도 이하에서 잠항하고 있다면, 아무도 탈출 못한 상태에서 모두 죽게 만들 수도 있었다.
“무리한 일정으로 추진하게 된 점 죄송스럽습니다.”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엔터프라이즈 탈취 사건 자체를 예측한 예지 능력자가 있었다. 정확히는 엔터프라이즈 사고로 침몰이라는 뉴스를 보는 미래의 자신을 예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조제성은 엔터프라이즈가 탈취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리디아를 급파해서 미국쪽 최신 무기들에 발키리칩을 몰래 삽입하는 작업을 시도한 것이었다.
뉴스에서는 예지 능력자가 본대로 최신예함이 사고로 침수되어 침몰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기사가 떴다.
핵 미사일은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과 승무원들이 모두 살아서 귀환했다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었다.
“아폴로 녀석도 제법 능력이 있군요.”
조제성은 생각보다 스무스하게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서 살짝 감탄의 표정을 드러냈다. 핵 미사일과 승무원을 모두 미국에 되돌려 준 것이었다. 이는 그의 외교력과 담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엔터프라이즈에는 핵 미사일이 탑재되어 있었다. 이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담보가 될 수도 있지만, 미국이 도저히 묵인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아폴로는 승무원들과 탑재된 핵탄두 전부를 미국에 돌려줌으로써 미국의 움직임을 막은 것이었다.
어차피 대형 원자력 엔진을 탑재한 함선이기에 만약 공격받아 파괴된다면 인근 해역의 핵오염을 막을 수 없었다.
아폴로는 CIA쪽에 자신의 편을 들어줄 끈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비록 테러리스트화 했다지만, 핵을 갖지 않고 미국에 적대하지 않는 존재라면 방사능 누출과 국제적 비난의 위험을 감수하며 공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로비활동 등을 통해서 적당히 자기 편을 들어줄 소수의 정치가와 실세만 있어도 국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은 가능했다.
단체는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핵미사일 교섭에 성공한 CIA 간부들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더 좋다고도 할 수 있었다.
반정부 게릴라라고해도 미국의 이익과 연결된다면 암암리에 지원하는 것은 흔히 있어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소련과 싸우도록 무자헤딘을 지원해 온 것도 미국CIA였다.
중동을 지배하는 광신 집단은 미국의 적이기 때문에, 그들과 싸워준다고 하면 미국으로서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결국 그로 인해서 엔터프라이즈호는 침몰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아폴로의 함선은 타이푼급 원잠으로 취급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구 소련에서 만든 세계 최대급 원자력 잠수함인 타이푼급함은 전부 6척으로 3척은 퇴역한 상태였다.
미국은 퇴역한 타이푼급 함 중 한척을 정체불명의 무장세력이 노획해서 사용한 것으로 주장하기로 방침을 결정했다. 그쪽이 훨씬 모양새가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는 잠수항모 엔터프라이즈가 타이푼급 함보다 두배 가까이 컸지만 미국이 그렇게 주장하는데 반대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신조함 엔터프라이즈는 역사상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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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아직 괜찮아요.”
리디아는 20번 이상을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유용한 이능으로 인한 뛰어난 외교 능력으로 나름 기여해왔지만, 내심 희연이나 연하처럼 일선에서 싸우고 싶어했다.
원기가 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능 엑스칼리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들은 순간, 가장 먼저 지원했다. 하지만 맡고 있던 일이 중대했기 때문에 뒤늦게 참가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모니터 룸에서 보고있던 서유리는 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지만, 딱히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그녀를 돕기 위해, 그녀가 느낄 두려움의 강도가 최대가 되도록 강한 사념을 보내는 것 뿐이었다.
수십차례 온갖 무기에 난자당하며 죽임을 당해서일까, 그녀는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희연과 연하도 이미 수차례 죽음을 경험해야만 했다. 비록 부활할 수 있다고 해도, 죽음의 고통과 공포, 긴장은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원기는 희연과 연하보다도 더 많이 맞고, 죽었다.
리디아는 그걸 떠올리면서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두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것 때문에 그녀가 이능을 각성하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반복해서 고통과 공포, 죽음을 경험하자, 그녀의 인내도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고통을 견디기 힘들다는 마음과 이대로 아무것도 못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덮쳐왔다.
그리고 그녀는 화살이 날아오자, 눈을 질끈 감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막아줄 보호벽을 원했다.
다음 순간,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이 ‘벽’에 막혀서 그녀를 상처입히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뜨뜻한 액체가 그녀의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그녀가 눈을 뜨자, 거기에는 서유리가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화살을 보면서, 영문을 몰랐다.
“내, 내가 왜 여기에?”
이상을 감지하고 모니터룸과 처형장이라 불리우는 수련실의 영상을 확인한 조제성은 혀를 찼다.
“역시, 엑스칼리버는 안생겼군.”
리디아는 새로운 이능 ‘인간장벽’을 각성했다. 그녀가 위험을 느끼면, 적아를 가리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와 그녀가 보호하려는 대상을 위해 방패가 되어주는 정신계 이능이었다.
그리고 그 첫번째 희생자가 서유리가 되었다.
전투에 어울리는 능력은 아니지만, 비전투시의 원기의 보디가드로서 가장 적합한 능력을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길거리에서 습격을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지나가던 행인들이 모두 저도 모르게 방패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디아는 자신이 얻은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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