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개척시대
주서윤은 벌어진 사태를 믿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경찰들이 이렇게 민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의 조직원들은 순식간에 잡혀들어갔다. 그의 전투력은 무적에 가까웠지만, 상대는 그를 천천히 졸라 죽일 셈인 듯 싶었다.
조제성은 용의주도했다. 프레이야 교단이 가진 전력을 드러내서 적을 응징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발키리칩이나 발키리를 통해 얻은 정보들을 경찰에 흘리는 것만으로도 범죄 조직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찰들은 프레이야 교단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발빠르게 블랙 타이거들을 처리해 나갔다.
주서윤이 외톨이 도망자로 전락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강했지만 모든 추적자들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다.
가장 골치아픈 상대는 ‘여닌자’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무공인지 닌술인지 모르지만, 무엇을 배웠든 상식을 초월했다.
그는 사이보그 기술을 통해 엄청난 강함을 얻었다. 초인적인 힘이었다. 어린시절 봤던 육백만불의 사나이보다 더 강력하고 완벽한 힘이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강화된 인간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인간을 여러면에서 초월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육체의 스펙은 주서윤이 위였지만, 상대의 움직임은 그것을 보완하고도 남았다.
체조선수와 발레리나를 합쳐놓은 것 같은 역동성과 유려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내가 상대하는게 인간이 맞는지 모르겠군.’
확실한 것은 트인 공간에서 자신은 그 빌어먹을 여자들에게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공적인 공간 내에서는 충분히 당해낼 수 있었다.
경찰에게 쫓기는 그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의 피해를 신경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무적의 방패와 무기가 있었다.
‘그 무기라는게 쌍절곤이라는게 문제지만.’
그는 지하철역이나 지하 상가등을 이용해서 움직였다. 전철에 들이 받혀도 죽지 않는 엑스칼리버가 있는만큼 경찰들은 무력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포위하고 드는 것은 놀라울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추적을 위해 한국의 이능력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능력자들이 ‘바니걸 통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엑스칼리버 건너의 위험성을 바니걸 통신을 통해서 알렸다. 이능만으로 상대하기엔 너무 버거운 적이었다. 희연을 제외하면 이능만으로 엑스칼리버 건너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찰들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협조하겠다고 알려온 이들이 있었다.
‘여기도 이미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나?’
슬슬 엑스칼리버의 사용도 한계가 와 가고 있었다. 주어진 연료가 소모되고 있는 것이었다. 경찰들도 그런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응이 소극적이고 피해를 줄이면서 최대한 귀찮게 만드는 식으로 일을 벌였다. 본토의 조직은 이미 한국 지부를 잘라냈다. 한국처럼 치안이 좋은 나라에서 경찰들과 이런 대규모 사단을 벌였다면, 장사는 접어야 했다.
자신이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이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반쯤 체념했다.
그의 눈 앞에 경찰들이 존재했고, 그 가운데에는 그가 알고 있는 얼굴이 존재했다.
“너, 이 년!”
주서윤은 자신이 그녀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들에게 현자회의 무기를 준 상대였다.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인이었나?’
일본도를 들고 앞으로 나선 소녀의 모습에 그는 이것이 최후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거래는 어떻게 된거지? 모두 함정이었나?”
“너희들이 이렇게 대형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고 해야겠지.”
그녀의 말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급전이 필요해서 한국에서 사고를 친 것은 다름아닌 자기 조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저들에게 감추지 않아도 되는건가?”
“물론이야. 우리가 너희와 거래를 한 것은 모두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지. 저들에겐 잘 들리지 않겠지만 들려도 상관 없어.”
“미국? 돈이 필요해서 우리에게 넘긴다는 건 거짓말이었군.”
블랙 타이거는 폭력조직을 넘어서는 군벌에 가까운 존재였다. 중앙 정부의 통제에 거스르는 존재인만큼 강해질수록 사회의 혼란과 중앙정부의 통제력 상실을 불러오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된 거, 네게 장착된 파츠를 회수해야 겠어. 네게 있는 블러드 코어는 상당한 귀중품이거든. 그리고 사이보그 파츠도 마찬가지지.”
자신에게 주어진 부품들을 회수한다는 말에 그는 죽음을 각오했다. 상대는 말도 안되는 강자, 강자에게 죽어서 여한이 없다는 생각따윈 없었다. 그는 호강하다가 늙어죽는게 꿈이었다.
하지만 죽을 수 밖에 없다면, 멋지게 싸우다가 죽는게 조금 나을 것이었다. 항복한다고 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는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절권도의 영웅 브루스 리의 흉내였다. 좀 쑥스럽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아, 무슨 흉내지? 정신 나간거야?”
카츠키는 일본어로 비웃듯이 말하고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의 궤적이, 반달처럼 그를 향해 날아왔다.
“아쵸우!”
그는 기합성과 함께 쌍절곤을 휘둘렀다. 쌍절곤의 빛이 검의 빛을 부숴버렸다.
“헤에. 제법 하는걸?”
그녀는 이채로운 듯이 바라보고는 자세를 취하면서 검을 그에게 겨눴다. 그 순간 주서윤은 지금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말도 안되는 강한 위압감을 느꼈다.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죽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는 스텝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쌍절곤의 한쪽을 옆구리에 끼웠다. 저항하지 않고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뺨을 그녀의 머리카락이 스쳤다. 쌍절곤은 옆구리에서 빠져 나가지도 못했다. 그의 허리가 일순에 두동강이 나면서 바닥에 무너지며 떨어졌다.
‘이대로 죽는건가?’
주서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죽을 거라면 빨리 의식이 사라지기를 원했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멀쩡했다.
“살고싶으면 입닥쳐.”
카츠키의 입에서 차가운 질책의 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하지만 그 차가운 목소리가 왠지 따뜻하게 들린 것은 주서윤의 착각일지 몰랐다.
그녀는 두동강난 그의 시신을 가져온 냉동함에 쓰레기를 버리듯 던져 넣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몰랐나? 미 정보국에서 이자에게 사용된 부품을 가져오기로 계약되었는데.”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어차피 죽었어. 그리고 이자를 부검할 생각이야? 기밀 취급 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경찰 특수부대 지휘관은 그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미정보부쪽 연줄로 뒷처리를 위해서 온 만큼 별개의 지휘계통이었다. 사실상 상급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말도 못하고 보낼 수 없기에, 의견 제시를 한 것이었다.
의료용으로 보이는 대형 냉동 용기에 담긴 주서윤의 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허리가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반신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물론 탈출 시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상반신만으로 도망쳐봐야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도 몰랐다. 어차피 조직에서는 뒷일을 수습하기도 힘들 것이었다.
잠시 후, 냉동 용기가 열렸다.
“흠, 아직 싱싱한건가.”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거요?”
“글쎄. 내 임무는 부품 회수야. 그리고 넌 제법 쓸만한 부품으로 보이고. 얼굴 좀 갈면 재활용이 가능하겠지. 물론 폐기인가 재활용인가 중 제대로 된 선택만 할 수 있다면.”
주서윤은 그녀의 말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그녀가 자신을 쓸만한 존재로서 인정했다는 사실이 왠지 살아남았다는 사실보다 기분좋게 느껴졌다.
“그럼 전 이제 미국인이 되는 겁니까?”
“웃기는 소리. 넌 미국의 도구가 되는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자조적인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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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제국은 전에 없는 성대한 번영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내부에는 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문제로 차별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엘프들에 대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엘프들은 프레이야에게 있어서 대단히 소중한 전력이었다.
따라서 엘프들에 대한 범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일반인들이 엘프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엘프들 자체가 스펙이 인간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 제국은 엘프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 인간들에게는 불만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인명에 대한 이런 차별이 당당히 공적인 지침으로 내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엘프들은 전투시에 죽어서는 안된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여신을 위해서 엘프는 먼저 피신하라는 지침은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모든 엘프들이 귀족으로 군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되는 지침에 가까웠다.
특히 인간 귀족들은 불만을 가졌고, 펜릴 제국과 티르 제국에 접한 귀족들은 더 그러했다.
펜릴 제국은 펜릴이 없어진 덕분에, 딱히 프레이야 제국에 대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티르 제국은 티르가 주도적으로 프레이야 제국에 대해 간섭하도록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그래서 특히 변경의 귀족들은 엘프들에 대한 반감을 백성들에게 교육시키고 자신들의 군사력을 증강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티르 제국으로 넘어가지 않은 것은, 오로지 식량과 자원 때문이었다.
프레이야 제국은 철도를 통해서 모든 도시들을 연결하는 방대한 작업을 펼쳤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새로운 도시를 세웠는데 그 도시가 바로 센트럴 씨티였다.
세스룸니르가 엘프들의 수도이자, 프레이야의 집이라면, 센트럴 씨티는 프레이야 제국의 교통의 중심이자 새로운 행정 경제 수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철도를 통해서 각지로 대량의 식량과 비료, 무기, 자재 등이 배포되었다. 식량과 질소비료와 시멘트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재료였다.
모든 굴베이그 백성을 군인으로 만들고 생업에 종사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땅덩어리를 놀려둘 이유도 방치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도로를 만들면서 비료를 이용해 비옥한 농경지로 전환하는 작업 모두를 군대에게 맡겼다.
각 귀족들은 이렇게 무상으로 분배되는 자원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중앙정부에서 세금으로 각지의 산물을 거둬가고, 그 몇십배는 되는 식량과 비료, 건설 자재와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모반을 결심한 귀족들도 최대한 프레이야 제국에 머무르다가 결정적인 타이밍에 뒤집을 생각으로 행동을 늦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조제성과 장수한의 의도이기도 했다.
오래도록 프레이야 제국에 머물다보면, 백성들의 인식이 깨어나고 풍요로움과 문화에 중독된다는 것이 그들의 계산이었다.
일반 백성들에게는 엘프나 귀족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차라리 엘프가 귀족이 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인류의 자존심이니 긍지니를 떠드는 또라이들도 많기는 했지만, 귀족이나 왕족 따위에게 꼬리치는 이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왕족과 귀족에 대한 세뇌가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십년 이상 들여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였다.
귀족들이 중앙정부의 지원에 맛들여서 미적대는 사이에, 일반 백성들이 하나라도 더 프레이야 제국의 일원으로 각성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골치아픈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열차강도였다.
경제가 태동하게 되면서, 식량만이 아니고 돈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산화가 안되어 있으니, 은행업은 전적으로 우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우편물과 중앙정부의 지원을 실은 열차는 말그대로 일확천금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던전을 뒤지지 않아도, 엄청난 떼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지방귀족들이 이끄는 치안유지군인데, 지방 귀족들이 몰래 열차강도단을 만들어서 열차를 털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하면, 열차에 실린 지원을 고스란히 사적으로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열차를 털고는 뻔뻔스럽게 지원을 제대로 못보낸 중앙정부에게 항의를 하면서 다시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중앙정부에선 지원을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조제성이나 장수한의 눈으로 보면, 열차 한번 보내는 분량이야 푼돈에 불과했지만, 이쪽 기준으로는 막대한 양의 돈과 식량이 암시장에 풀려서 안좋은 쪽으로 사용되게 되는 것이었다.
열차를 턴 다음에는 자신들을 사주한 귀족들을 배신하고 독립된 강도단이 되는 놈들도 있었고,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강도단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골치아픈 것은 티르의 에인페리아들이었다.
펜릴 제국의 늑대족을 비롯해서 여타 종족들도 풍요로운 프레이야 제국에 꼬여들었지만, 티르의 에인페리아들은 티르가 맘잡고 보낸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도단들을 토벌하는데 여념이 없는 것이 아더왕 블레이드와 랜슬롯이었다.
티르의 에인페리아들은 평범한 엘프들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적들이었다. 굴베이그의 영토는 굴베이그 여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꽤 황폐한 황무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엘프들이 활동하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기마를 위주로 한 부대들의 전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방 귀족들이 몰래 빼돌린 총기들 탓에 완전히 서부 영화의 무대처럼 되어 있는 것도 문제였다.
전투 전문 요원의 부족과 지방 귀족의 정리를 위해서, 원기와 희연, 연하의 전문 전투 요원의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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