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연사가 가능한 총을 대량 생산해낼 정도의 생산력은 아직 아스가르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량으로 보급된 더블 배럴 라이플과 리볼버 권총은 세상을 바꿀 듯이 보였다.
석궁의 등장에 이은 총기의 보급이 기사의 시대를 종식시켰다.
하지만 기사와 에인페리아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기사는 어디까지나 단련된 인간에 불과했다. 무술을 갈고 닦아도 일이십년을 넘기기 힘들었다. 육체의 한계와 노화가 있었다.
기사가 갖추는 갑옷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장비할 수 있는 갑옷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에인페리아에게는 수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예의 기술을 갈고 닦는 데에도 시간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인한 육체가 있었다. 그들의 괴력은 두꺼운 갑옷을 걸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쏟아지는 총알의 빗속을 갑옷을 두르고 유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현자회의 사이보그가 스펙상의 성능은 에인페리아보다 뛰어나지만, 전투 경험과 전투 기술은 에인페리아들이 더 뛰어났다.
전쟁의 신 티르는 독특한 피조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군신의 말이라고 불리우는 군마였다.
티르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간단히 말하면 말의 에인페리아였다. 뛰어나고 용맹한 말의 영혼을 티르의 비술로 취해서, 에인페리아처럼 티르가 창조한 이상적인 육체에 이식하는 것이었다.
치타보다 빠르고, 수십미터를 도약하며, 적의 병사들을 발굽으로 짓밟아 으깨며 무거운 짐을 싣고도 가볍게 움직이는 이상적인 군마였다.
에인페리아 인간과 에인페리아 말의 조합은 평원에서 만큼은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엘프, 다크엘프, 늑대인간, 뱀파이어, 거인족 등등과 대등하게 겨뤄온 티르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군신마는 그런 면에서 강력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전신을 갑옷으로 감싸고 중갑옷을 입은 에인페리아를 싣고도 가볍게 점프로 3미터 높이 정도는 뛰어넘었다.
목책 정도라면 몸통 박치기로도 부숴버릴 수 있었다.
보병이 든 대기병용 장창도 가볍게 씹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에인페리아들이 날뛰는 전장에서도 군신마의 존재는 빛을 발했다.
“연하씨. 종을 쏴요! 역 위에 있는 종탑의 종이요!”
리디아는 군신마의 존재에 대해 눈치채고 다급하게 외쳤다. 연하는 리디아의 지시대로 호텔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는 소총으로 종을 쐈다.
시계가 보급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신전과 역에서 시간이 되면 타종을 해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줬다.
아직은 기계로 된 시계를 보급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전과 역, 관공소 건물의 종탑에서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호텔에서 난 총소리와 역의 종탑에서 들리는 종소리에 사람들이 잠에서 깼다.
“모두들 역건물로 대피해요! 습격이에요!”
리디아는 호텔 건물 지붕에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을 향해서 외쳤다. 역과 신전, 그리고 풍차와 같은 건물들은 튼튼한 석재로 만들었다. 이런 건물들은 도적떼의 습격 등에 마을 사람들이 피신하기 위한 쉘터의 역할을 해주었다.
목책이나 성벽이 없을 경우에는 이런 건물이 작은 성의 역할을 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역사는 그런 면에서 충분히 피신소겸 요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새롭게 건설된 프레이야와 굴베이그의 신전들 역시 그런 용도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다급히 역사로 몰려들었다.
원기를 위해 길들여진 덤프트럭을 가볍게 상회하는 거대한 말을 탄 중무장의 에인페리아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중전차에 가까운 군신마와 에인페리아의 조합이라면 역사 건물의 두꺼운 목재문은 가볍게 부서져나갈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 할까요?”
희연은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물었다. 희연은 엑스칼리버의 이능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연습을 통해서 망토를 무기사랑으로 강화하는 것이 가능했다.
망토를 이용한다고 해도 엑스칼리버처럼 전방향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상당히 넓은 범위를 총탄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가능했다.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에서도 충분히 통용될만한 능력이었다. 망토로 후려치는 수법도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검이 없다고 해도 희연의 경우에는 다양한 전투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기다려. 희연의 능력은 눈에 띄기 쉬워.”
블레이드의 엑스칼리버도 이미 아스가르드에서 최상위 에인페리아의 능력으로 유명해진 상태였다.
전신에서 빛을 발하며, 무적의 상태로 적을 베어 넘기는 미소녀 아더왕, 블레이드의 모습은 충분히 화제가 될 만했다.
블레이드는 이미 아스가르드에서도 강력한 전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리고 희연의 무기사랑은 엑스칼리버처럼 뛰어난 이능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대인전투 최강에 자유자재로 학살이 가능한 희연의 기술로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망토와 리볼버를 사용해서 병사들을 학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군신마에 탄 에인페리아를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두껍고 큼직한 방패는 그 자체로 공성무기가 될 수 있었다.
“내가 나가겠어.”
원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목책 앞으로 나섰다. 군신마의 존재를 알아챘기 때문에 목책을 포기하고 모든 이들이 역사에 모인 상태였다.
‘저 말을 탄 에인페리아만 처치하면 역사를 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원기는 그렇게 생각해서 전투 태세를 갖췄다. 합체한 딱정벌레의 능력이 활성화되었다. 딱정벌레의 형상에 생명력이 깃들면서 좀 더 자연스럽게 미세하게 전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킬! 탄환비행!”
몬스터를 활성화시키고 쓸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돌진기였다. 원기의 등딱지가 열리면서,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앞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탄환 비행이라고 불리우는 딱정벌레 특유의 비행방식을 스킬화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원기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엑스칼리버의 힘을 얻는데는 실패했지만, 신체의 일부에 에너지를 집중해 강도를 높이는 기술이 가능해졌다.
무기 사랑의 신체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육체 사랑’이었다. 이 이름은 원기가 아닌 장수한이 붙인 이름이었다.
원기의 양 주먹이 은은히 빛을 발하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딱정벌레의 뿔에 기운을 모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정도의 응용은 아직 불가능했다.
원기는 처음엔 불꽃처럼 타오르는 자신의 능력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신체가 불타오르는 듯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은 여전히 싫지만, 언제나 그의 머리속에선 불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아이러니라고 해야할지, 당연한 것이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그는 빠른 속도로 군신마를 향해 나아갔다. 딱정벌레의 몸통과 군신마의 충돌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살짝 자신이 없었다.
순간, 군신마의 옆에서 말을 달리던 사내가 손가락을 위로 치켜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땅에서 갑자기 거대한 바위가 솟아올랐다.
원기는 그대로 돌벽에 충돌했다. 뿔이 박살이 났고 목을 비롯해 전신이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기는 바닥에 넓브러져서 자신이 부딛친 존재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상대는 바위로 만들어진 골렘이었다. 골렘은 원기와 부딛쳐서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곧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관절부위가 으스러져서 몸을 못추스리고 있는 원기를 바퀴벌레를 짓밟아 으깨듯이 밟아버렸다.
[사망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사망 메시지에 원기는 할 말을 잃었다. 골렘 술사와 군신마를 탄 에인페리아의 조합은 역사 건물을 끼고 있다고 해도 상대하기 쉽지 않아보였다.
‘인명 피해가 크겠는걸.’
리디아 역시 몬스터를 소환할지 진지하게 망설였다. 그녀 역시 합체용 몬스터를 테이밍해 두고 있었다.
그녀가 테이밍한 몬스터는 거미였다.
그때 에드거가 앞으로 나섰다.
“리디아님. 프레이야 여신님께서는 인명을 가장 소중히 여기신다고 들었습니다. 열차의 화물을 희생해서 인명을 지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만약 가능하다면 제가 나서서 교섭해 보겠습니다.”
리디아는 잠시 망설였다. 역사 건물이 튼튼하게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3미터급의 거대한 골렘과 군신마를 상대로 완벽하게 버틸거라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열차의 화물을 넘기는 것은 타당한 선택이었다.
“교섭해 볼 가치는 있겠군요.”
리디아는 에드거에게 교섭을 넘기지 않았다. 그가 나서서 교섭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다면 그것도 곤란했다. 나설 수 있는 것은 리디아 자신과 희연, 연하였다.
하지만 엘프인 리디아가 죽을지도 모르는 교섭의 장소에 나선다는 것은 역시 문제가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자연스럽게 희연에게 향했다. 희연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숙여 동의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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