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69화 (269/497)

269화 전설의 시작

희연은 빼어난 미인이었다.

하지만, 동양인으로서 빼어난 미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럽출신들로 이루어진 아스가르드인들의 기준에서는 미인이 아니었다.

과거에 서양인들을 괴물로 여기던 동양인들은 헐리웃 영화가 범람하면서 백인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그 도가 지나쳐서 백인에 대한 지나친 동경까지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도 꽤 오랬동안 흑인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했고, 최근에 와서야 흑인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동양인의 아름다움이나 엘프의 아름다움을 일반적인 아스가르드인들은 인식하지 못했다.

반면 프레이야 제국에서도 문화가 번창하기 시작한 중앙에서는 엘프의 아름다움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동경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동양인의 얼굴을 기본으로 만든 프레이야의 얼굴이나 희연, 연하 등의 얼굴 때문에 황인종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줄 아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TV 등의 매체를 보급했다면, 그 확산 속도가 빨랐겠지만 전기, 전자 제품에 한해서만큼은 최대한 보급을 늦추고 있었다.

장수한의 제안으로 저렴한 중고 TV들을 산처럼 구입해서 모아두고는 있었다. 적당한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보급해서 문화적 수준을 급격히 향상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블러드 라인2에서 물자를 창조해서 아스가르드나 지구로 옮기는 것은 프레이가 시험해 보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블러드 라인 2는 프레이라는 신이 꾸는 꿈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 안에서 물체를 창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을 밖으로 빼내는데는 물질로서의 창조가 필요했다. 막대한 신성력이 소모되는 것이었다.

블러드 라인2에 물자를 보관하는 것도 고려되었지만, 게이트를 이동하는데 소모되는 신성력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특히 로키가 대량의 군세와 물자를 게이트를 이용해서 블러드 라인 2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블러드라인2 내에 있는 게이트에서 소모되는 신성력은 프레이야측이 짊어질 수 밖에 없었다.

로키측도 이 문제를 알아챘다. 그들이 미드가르드, 곧 지구라고 믿고 있던 블러드 라인2의 땅에서 얻은 식량이나 물자 등을 혼돈의 대륙으로 가져오려고 들면 사라져있었다.

다만 딱히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게이트 마법이 아직 불안정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특히 혼돈의 대륙에서 혼돈의 힘을 이용해서 게이트를 연 것은 로키도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블러드 라인2의 물자는 블러드 라인 2 내에서만큼은 확실했다. 그리고 넓은 대지와 풍부한 식량을 생각하면 물자를 들여 보내야 할 시기지, 빼낼 시기는 아니었다.

대지를 장악하고 나중에 게이트를 보완해도 될 일이었다.

“무슨 일이냐?”

“교섭을 원한다.”

희연은 군신마를 탄 에인페리아의 고압적인 자세에 대해서 조금도 굽히지 않는 자세로 응했다. 티르가 보낸 강도단은 총 7개로 희연이 조우한 집단은 3번째 부대였다.

3번대 대장이라기보다는 강도단의 두목은 희연을 지그시 내려다 보았다. 티르의 영토에서 온 그의 눈에는 엘프나 희연이나 오크나 고블린을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엘프랑은 또 다르게 괴물같이 생긴 년이군. 확 밟아버리는 건 어떨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군신마의 배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마치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희연의 쪼렙 학살에 걸린 탓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눈치채진 못했다.

‘음, 박차가 잘 안들어갔나?’

그는 채찍을 들어 엉덩이를 치려고 했지만, 왠지 몸이 말을 안들었다. 희연과 눈빛이 마주친 탓이었다.

그는 자신이 쪼렙 학살에 걸렸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그저 왠지 모를 긴장감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는 희연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자 그녀의 허리 부근에 날개와 녹색 꼬리가 보였다. 그녀는 건벨트를 풀어서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챙이 넓은 모자 때문에 더듬이는 보이지 않았다.

‘메뚜기나 방아깨비의 일종인가? 헬의 일족이로군. 인간의 외형이 대부분인 것을 보니 피가 옅은 잡종인가 본데…’

낫이 보이지를 않고 녹색 곤충의 꽁무니만 보이자, 그는 사마귀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프레이야 제국으로 흘러들어온 잡종이니 별볼일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왠지 자세에서 풍겨오는 달인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군.’

“교섭 조건은 뭐냐?”

“열차를 역사에서 빼서 그대들에게 넘기겠다. 화물을 챙겨서 떠나라. 여신님은 인명 피해를 원하지 않는다.”

“거부한다면?”

“화물을 운반할 일꾼이 줄어들겠지.”

희연은 뒤에 서있는 병사들을 보면서 말했다. 골렘술사 역시 에인페리아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뒤에 선 부하들도 방탄이라는 보증은 없었다.

희연은 손을 살짝 들어서 동전을 하늘로 튕겨 올렸다. 그러자 동전이 한번 더 튀어오르고 나서야 총소리가 났다.

연하가 역사의 창문에서 저격한 것이었다.

“좋아. 알겠다. 받아들이지.”

그는 내심 놀랐다. 거리가 꽤 되는데다가 바람도 부는 속에서 동전을 맞춘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동전의 궤도가 바람에 뒤틀리는데다가 총알도 역시 바람에 휘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위험할 수 있었다.

어차피 화물을 노리고 온 것이니만큼 큰 문제는 없었다.

‘엘프들의 추격대도 골치아프지.’

엘프 에인페리아들로 이루어진 최강의 추격대가 있었다.

2륜 산악 자전거 부대였다.

그들은 인력으로 움직이는 열차를 타고 움직였다. 인간의 3배 이상의 힘을 가진 엘프들이 펌프질을 해서 움직이는 추격용 차량은 증기기관차보다 더 빨랐다.

인력 열차로 움직여서 빠르게 사건 현장으로 이동한 다음, 산악 자전거를 이용해서 추격했다. 초인적인 힘과 인간을 초월한 균형감각과 운동신경 때문에 산악 자전거는 어떤 지형에서도 날라다녔다.

숲에서 산악자전거로 나무위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

자전거라는 기계 자체는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에 오딘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도입했다. 힘만으로 험지에서 자전거 고속 주행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엘프와 다크엘프들을 위한 장비라고도 할 수 있었다.

엘프들은 양손을 핸들에서 떼고 무게중심을 이용해 방향전환이 가능했기 때문에 총을 쏘는 것만이 아니라, 달리면서 장전하는 것도 가능했다.

군신마와 에인페리아를 대적할 수는 없다해도, 부하들과 약탈품을 공격당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좋아. 열차를 이곳까지 빼낸다.”

여객용 열차에는 철강, 화약 등 무기류가 일체 실리지 않는다. 여행객들의 짐을 제외하면 식량과 돈 정도 뿐이었다. 굳이 여객용 열차를 노리지 않게 만드려는 배려였다.

얻을 것은 그리 많지 않고 부피만 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쳐들어온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힘을 믿고 있었다.

스톤 골렘은 사실 힘이 약한 편이었다. 덩치와 위압감에 비하면 그랬다.

문제는 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불러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점을 이용해서 역사에서 골렘을 불러내는 식으로 돌을 뜯어낼 수도 있었다.

원기에게는 좀 억울한 일이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들이받지 않았다면 골렘의 느리고 덩치에 비하면 약한 공격에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희연이 교섭 완료에 대한 신호를 보내자 곧 열차가 천천히 후진해서 그들 쪽에 와서 화물칸을 끊어 역사 외부에 두고는 다시 역사 내로 들어갔다. 강도단의 임무 역시 물자 탈취였고 가능한 그 밖의 피해는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역을 습격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은 아스 신족의 에인페리아들이 호전적인 미친놈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오딘은 뛰어난 전사를 에인페리아로 삼았다. 그리고 그 에인페리아들의 다른 호칭중 하나가 광전사, 베르세르크였다. 곰의 속옷을 입은자라는 뜻의 베르세르크, 늑대의 모피를 입은 자라는 뜻의 울프헤딘이 오딘의 에인페리아를 뜻하는 말이었다.

용맹한 전사의 영혼을 발키리가 거둬서 신의 전사를 만들어서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데, 이성과 기억도 모두 잃어버리고 미친놈이 되어 짐승처럼 오딘의 적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오딘의 이름은 ‘격노’와 ‘광란’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주신이 이모양이니, 아스 신족이 정의의 편일 수 없었다. 티르의 에인페리아들도 반쯤 미치광이에 살육을 즐기는 놈들이었다.

아스가르드의 문명과 문화가 중세에도 못미친 것은 척박한 환경과 인구의 부족 탓도 있지만, 야만적인 종교와 문화의 탓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교섭이 끝난 상황에서도 기습을 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희연이 그것을 교묘하게 제지했다.

희연의 쪼렙 학살은 적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고, 자신들이 무엇을 당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희연은 꼼짝 못하게 된 적들을 두고 자기 능력을 구구절절이 설명해주는 그런 악취미는 없었다. 가능한 효율적으로 적을 제거해 나갈 뿐이었다.

문제는 쪼렙학살이 적에게 알려진다고 해도 그 능력 자체에는 헛점이 없었다. 안다고 대처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피해를 줄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적이 다수를 동원하지 못한다면 희연으로서도 아쉬울게 없었다.

희연은 다수와의 전투를 벌여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전투가 시작되려는 순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계기가 되는 것은 호전적인 한 두 놈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희연은 쪼렙학살로 그런 놈들을 교묘하게 묶어서 김을 빼놨다.

물론 전투가 벌어지면 희연이 적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강도단들을 제거하는 작업도 은밀히 이루어지는 편이 나았다.

적들에게 탈취당하는 식량들 가운데에는 애완동물용 인식 칩이 포함되어 있었다.

애완동물에 칩을 삽입하는 것이 의무화된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수술에 대한 의식 제기가 문제가 되었고, 그 때문에 먹이는 전자 태그가 개발되었다.

이것을 살짝 개조한 칩이 탈취당하는 식량에 포함되어 있었다. 작은 캡슐에 감싸인 미세한 칩이 캡슐에 녹으면서 장의 일부에 걸리게 되어 있었다.

무해하지만 특수한 전자파를 받으면 정보와 함께 전자파를 반사하게 되어 있었다. 개체식별과 위치식별이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분실한 애완동물을 찾기 위한 장치였다. 특히 항공 정찰로 야생화된 애완동물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훗날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강도단의 포착 섬멸은 물론이고, 적의 군대에도 칩을 보유한 자들이 있다면 그 움직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작전은 프레이야 제국의 안위를 지키면서 적들에게 타격을 줄 준비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티르의 에인페리아들처럼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는 들지 않아도 황금알을 꺼내겠다고 항문에 손을 집어넣으려고 드는 무지몽매한 놈들이 없지 않다는게 문제였다.

‘빠른 시일내에 정리하는 편이 좋겠지.’

희연의 눈길이 바닥에 짜부러진 원기의 시신을 향했다. 희연이 벌레를 싫어하는 것은 작고 불결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벌레를 연상시키는 것은 잘 먹지도 못했다.

하지만 인간 크기인 원기의 변신 모습은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밟혀서 박살난 모습을 보니, 왠지 벌레에 대한 거부감이 되살아났다.

‘너무 조바심을 냈군.’

원기는 강도단이 수레에 짐을 옮겨싣고 있는 와중에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 강도단이 떠난 다음에 부활할 생각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적들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몸통이 반쯤 땅바닥에 묻혀 있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부활했다. 어차피 교섭이 이뤄진 상황이니 만큼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진 않을 터였다.

‘다음부턴 좀 더 신중하게 다가가야겠군.’

군신마만 없으면 역사에 피신한 이들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게 사실이었다. 킬 욕심에 무모하게 돌진해서 퍼스트 블러드를 헌납한 꼴이었다.

어차피 죽을 각오는 하고 있었다. 자신을 정찰용 SCV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의 전력을 확인도 못하고 바로 죽어버리는 것은 문제였다.

원기가 몸을 일으키자, 모두의 눈이 원기에게 쏠렸다. 하지만 당당하게 걸어서 희연에게 다가갔다. 그런 원기의 태도에 강도단은 전의를 일으키지 못했다.

“뭐냐? 저새끼는? 투구벌레인줄 알았는데 뿔만달린 바퀴벌레였냐? “

어이없다는 듯 말에 탄 단장이 말하자, 강도단의 모두가 웃어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분위기는 험악해지지 않았다.

원기에게 뿔달린 바퀴벌레라는 별명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기분은 좋지 않지만, 상황상 나쁘진 않군.’

아스가르드에도 바퀴벌레는 존재했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유명했다. 벌레형 육체가 죽었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으니, 부활해서 전투를 재개해도 의심을 받지는 않을 터였다.

뿔달린 바퀴벌레라는 이름이 전설이 될 정도로 유명해지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기는 그냥 만족하기로 마음 먹었다.

“같이 돌아가지.”

원기는 날개를 펴면서 희연의 허리를 감싸려고 했다. 신체의 일부만 변하는 여성형 캐릭터의 특성상 비행 능력은 완전 변형하는 남성형 보다 딸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안고 날아서 역사로 되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허공을 휘져었다. 무의식적으로 희연이 뒷걸음질 쳤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바퀴벌레는 질색이라. 아니! 오빠가 바퀴벌레라는게 아니고…”

언제나 냉철하던 희연이 보기 드문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기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죽은 모습이 바퀴벌레를 연상시킨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부활시에 깨끗한 모습으로 부활하기보다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이 죽은 자리에서 부활해서 흙먼지와 체액이 껍질 일부에 남아있었다.

희연이 얌전히 품에 안겨서 함께 날아갈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당황한 희연의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연하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실감이 나기도 했다.

문제는 강도단에서도 폭소가 터졌다는 것이었다. 희연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날개를 펴서 날아갔고, 원기도 그 뒤를 쫓아서 황급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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