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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75화 (275/497)

275화

하비에가 앞으로 나서자 카즈키는 재빨리 몸을 숙이고 앞으로 전진했다. 말의 다리를 베어 넘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는 희연이 취했던 행동과 완전히 똑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비에가 겨뤄온 이들 중 대다수가 취했던 행동이기도 했다.

하늘 높이 뛰어올라 자신을 노리거나, 아니면 땅을 깔리듯 오면서 말을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카즈키는 일부러 희연과 하비에의 전투를 참고하지 않았다. 알고 싸워서 승리하면 그것 때문에 자신이 득을 보는 것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이보그의 육체는 힘이 넘치긴 했지만, 에인페리아의 육체보다 유연함이 떨어졌다. 검술을 최대한 예리하게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육체가 더 낫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있게 뛰어들어서 검으로 말 다리를 베어버리려는 순간, 갑자기 허공으로 몸이 딸려올라갔다. 그리고 쿵하는 충격과 함께 허리쪽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엑스칼리버의 보호막이 그녀가 양단당하는 것을 막아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그녀는 땅바닥에 처박혔다.

“제길!”

그녀는 땅을 짚고 일어나서 침을 땅바닥에 뱉었다. 몸을 일으킬 때 흙먼지를 조금 먹은 것이었다.

“호오, 내 검을 맞고 무사하다니 의외로군.”

하비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의 검술은 대단히 뛰어났다. 어쩌면 자신보다 뛰어날지도 몰랐다. 자신의 중력검은 흡인력을 이용해서 상대까지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양다리가 땅에서 떨어지면 상대는 당황하게 마련이었다.

다만, 그정도 흡인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순간에 끊어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땅에 발을 못딛게 만들 수는 없었다.

상대가 이런 상황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비에에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몇차례 검으로 내려쳐 봤지만, 상대의 몸뚱아리는 예상 외로 단단했다. 같은 능력자가 하나 더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전투를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도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는 작은 소녀와 달리, 상대의 몸은 암살자의 검을 휘두르기에 이상적인 체격이었다.

‘어, 정말 바보같군. 저런 걸 대체 무슨수로 이겨.’

하비에가 경계하는 것과 달리, 츠루기는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카즈키가 고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돕겠다고 가봐야 카즈키는 짜증을 부릴테고 별 도움도 되지 못할게 분명해 보였다.

땅을 디딜 수 없다는 것은 츠루기에겐 악몽이나 다를 바 없어보였다.

하비에는 카즈키가 휘두르는 검에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 튼튼한 방어구가 썩썩 갈라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애검은 이가 나가는 정도였지만, 상대의 검을 둘러싼 기운은 보통 기운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는게 다행이로군.’

발에 땅이 닿지 않는 상황에 패닉을 일으킨 탓에 카즈키는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앙탈을 부리는 것에 가까웠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땅에 닿는 순간들을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그리고 위협적으로 전투를 벌일 수 있을 터였다.

하비에는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과연 자신의 부관 프란시스의 안색이 안좋아져 있었다.

하비에의 이능이 흡인력임엔 틀림없지만, 그 위력을 높여주는 것은 프란시스의 타동능력이었다. 오랜시간 호흡을 맞춰온 염동력자인 그녀가 하비에가 발하는 흡인력에 힘을 싣는 것으로 위력을 증폭시켜 온 것이었다.

“흐랴아!”

하비에가 힘있게 검을 치켜들면서 기합성을 외쳤다. 이는 프란시스와 힘을 합치기 위한 신호이기도 했다. 그리고 카즈키의 몸통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 허공으로 붕 떠오른 그녀의 몸통을 하비에가 대검으로 힘껏 후려갈겼다. 양손으로 잡고 마치 야구배트를 휘두르듯 갈겼다.

그리고 그와 함께 카즈키의 몸통이 수십미터? 수백미터가까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호-무란!”

츠루기는 하비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감탄하듯이 중얼거리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감탄했다는 듯이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는 그녀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자신도 딱히 하비에를 당해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승부가 안되는 상황에서 승부를 고집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하비에에게는 황당한 무승부였고, 카즈키에게는 굴욕적인 패배로 기록되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봐, 괜찮은가?”

“좀 쉬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비에는 비틀거리는 프란시스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츠루기는 하비에가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박수를 쳐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준 덕분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아, 짜증나. 뭐하러 왔어요!”

“뭐긴. 홈런볼 주우러 왔다.”

카즈키는 일어나면서 여기저기가 아파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엑스칼리버가 즉사를 막아주긴 했지만 데미지를 모두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관절에 걸린 부담은 상당했다.

“쉽진 않네요. 하지만 재미는 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겠더라. 규칙이 없는 싸움을 동경해왔는데 이건 상식을 넘어서는구나.”

츠루기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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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이나 상식을 초월한 전투에 매력을 느낀 츠루기와 펜릴은 닮은 꼴이었다. 펜릴은 규칙에 얽매인 스포츠에 매료되었다.

“시발! 저런 새끼가 감독이니 지지! 다음 번엔 좀 잘해야 하는데. 시박.”

펜릴은 블러드 라인 내에서 온라인 TV 시청을 이용해서 스포츠 중계를 탐닉 중이었다. 전장의 긴장감도 좋지만, 재전을 기약하는 스포츠의 재미도 적지 않았다.

야구, 축구, 복싱 등등에 푹 빠졌다.

닭사람 겜폐인 프레이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야수의 왕, 아니 야수의 신으로서 맨날 닭에게 쪼여죽는것에 질렸다고 할지, 현명함을 발휘했다고 해야할지 몰랐다.

그리고 스포츠 중계가 없으면 영화에 빠졌다. 특히 액션영화들을 주로 섭렵하다가 시대를 거슬러 고전이된 홍콩 영화들을 주로 보고 있었다.

조만간 무협 소설로 진출할 것은 명백해 보였다.

그리고 펜릴이 틈틈이 하는 것이, 헬에 대한 회유 작업이었다.

게이트가 차단된 지금, 몬스터의 충원도 없고 리스폰도 없는 상태에서 헬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 미칠듯이 달려드는 유저들을 막아주는 유일한 의지는 금색 닭을 비롯한 닭군단 뿐이었다.

“로키는 이제 오지 못해. 편해지는게 좋지 않을까?”

스포츠 매니아 생활을 하면서 눈빛에서 야성이 사라진 펜릴이 지극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헬은 그때마다 펜릴을 공격해서 잡아 죽였지만, 블러드 라인에서의 죽음은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적당히 놀다가 심심하면 다시 찾아와서 한두마디 던져 줄 뿐이었다.

“뭐, 날 잡아죽여서 생기는게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야기라도 들어보는게 어때? 이것도 다 옛정을 생각해서 하는 건데 말이지.”

[옛 정이라고? 그럴 사이는 아니었을텐데. 그리고 네 변화가 정상적이라고 생각되는건가? 늑대가 아니라 집지키는 개, 아니 돼지가 되어버린 듯 보인다.]

“음. 그건 그래. 치킨과 맥주, 스포츠 중계만 있으면 세상에 모든게 다 필요없더군. 내가 지금까지 이런 만족을 몰랐다는게 한스러울 뿐이야.”

펜릴은 블러드 라인 2로 옮겨가서 닭집에서 스포츠 중계를 보는 걸 즐겼다. 사람들과 함께 소리지르며 응원하며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생활에 푹 젖은 것이었다.

조만간 현실 세계로 진출해서 직접 경기장에 가볼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대로 소멸만 기다릴건가? 아니 죽을 때까지 로키만 기다릴 셈이야? 녀석은 못와. 이곳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야.”

블러드 라인의 특수성은 헬 역시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이곳이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펜릴의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으면서까지 충성을 지킬 의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도 틀린 것 같군. 또 죽여보겠어? 스트레스는 풀릴지 모르지.”

펜릴은 하품을 하며 말했고, 헬은 고개를 저었다. 죽여봐야 의미도 없고 저항해봐야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것, 내 신성을 넘기면 내 안전은 보장되는건가?]

“그래. 프레이야는 자신의 수하에겐 한없이 물렁한 양반이지. 그런데 미드가르드의 문화를 접하고 보니 그게 이해가 가기도 해. 잘 생각해 보는게 좋을거야. 난 축구경기 보러가야겠다.”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펜릴이 포탈을 타는 모습을 보면서 헬은 한숨을 쉬었다. 펜릴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실감하고 있었다.

사실 헬의 신성을 얻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자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자발적인 협력으로 넘겨받으면, 헬 제국을 펜릴 제국처럼 혼란 없이 넘겨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황족을 비롯해 귀족들이나 백성들, 각종 부족들을 어떻게 흡수하느냐는 작지 않은 문제였지만, 세계수들이 온전하게 이양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만약 헬이 신성을 넘기지 않고 제거되면 헬 제국의 혼란이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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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는게 좋아. 저년이 저래뵈도 남자 여럿 잡아먹은 년이야.”

“그래. 애미 잡아먹을 년이야.”

놀들이 놀원을 경호할 경호원들에게 놀리듯 말했다.

세비지 빗치즈가 좀 과격한 그룹이고 노래 내용이나 공연 퍼포먼스가 좀 심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보컬인 소녀 놀원은 아름답고 귀여운 소녀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경호겸 리무진의 운전을 맡은 사내 김진광과 김기섭은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장수한이 나타났다.

“호오, 자네들이 놀원의 경호를 담당하는 사람들인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잘해주기 바라네. 학교에 폭탄을 풀어놓는 느낌이라 걱정되는군.”

장수한의 진지한 당부에 두 사람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개조된 전기충격총은 놀원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써선 안되네. 일반인에게 맞으면 즉사레벨로 개조되어 있으니까 조심해 주기 바라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경호를 하는 임무를 맡은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놀원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설마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아름답고 순진한 소녀에게 못할 말이야.’

“저 아가씨. 누가 아가씨에게 남자를 여럿 잡아먹었다고 하던데 말이지요.”

“아냐. 여자도 여럿 잡아먹었어. 아이도 안가려. 뚱뚱한 넌 꽤 취향이야. 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데.”

그들의 기대는 배신당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꽤 다른 방향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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