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스쿨라이프
놀원은 등교할 때 거대한 리무진을 사용했다. 이는 놀원이 원한 것이 아니고, 장수한의 생각이었다.
아이들과 동등한 관계에서 친해질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괜히 서열 정한다고들다가 사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아예 기선제압을 해두는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한의 생각과 달리, 놀원은 아이들과 경쟁할 생각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비록 지식도 적고 나이도 어리지만 무리의 부두목이자, 보스의 후계자였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을 이빨로 짓밟고 굴복시킨 폭군이기도 했다. 스포츠건 무술이건 싸움이건 머리가 나쁘면 잘할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해선 잔꾀든 뭐든 써도 된다는 인간형 야수들의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머리가 나빠서는 불가능했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최강의 라이벌은 바로 희연이었다.
이미 전쟁의 여신 헬의 신성을 이어받을 인물의 인선도 조제성과 장수한의 협의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검토중인 것은 공포 능력자인 서유리였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을 즐기는 측면이 있고, 제어가 쉽다는 면에서 고려된 것이었다.
그것은 프레이야 진영에서 종속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의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적성 맞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으로 충분한 존재인 것이었다.
프레이야 제국은 프레이야가 있고 조제성과 장수한이라는 수뇌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종속신들이라는 것은 그저 상징처럼 존재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희연과 연하, 리디아등은 원기의 최측근이지만, 그녀들에게 헬의 신성을 맡기는 것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그들은 되도록 프레이야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금은 펜릴 제국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웠지만, 만약 펜릴의 후계자인 펜리아로서 펜릴 제국에 알려지게 된다면, 그녀는 펜릴 제국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될 터였다.
‘그 전에 어떻게든 친위대의 자리를 차지해야 해.’
놀원의 예리한 감각이 승부처가 어디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본이 전혀 안되어 있어서 애를 먹고는 있지만, 좋은 과외교사가 붙어있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성적은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인간들의 사회에서 문제없이 생활해 나간다는 사실만 보여주면 되었다. 중등부와 고등부 모두 혜서 학원에서 보내게 되어있는 만큼, 이곳 초등학교에서 무난하게 지낼 수만 있으면 되었다.
학교를 무난히 마치고, 현대인 특히 한국인으로서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가 될 수 있다면, 충분히 친위대의 자리 쯤은 노려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런 면에서 장수한이 고른 학교는 멋진 오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수한이 고른 학교는 귀족학교로 유명한 사립학교였다. 고가의 수업료가 존재하고 설비가 끝내주는 학교였다.
특히 사고를 치는 일이 생기면, 외부 개입없이 조용히 처리해주는 서비스가 붙어있는 특수한 학교였다.
사고 수습에는 좋지만, 그만큼 사고가 많은 학교이기도 했다.
좋은 집안 자식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다. 아주 엄격한 교육하에 자라는 엘리트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자식들이 엘리트가 되지는 못했다. 특히 뛰어난 엘리트가 형제중에 하나가 만들어지면, 나머지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기 쉬웠다.
도덕적이고 냉철한 엘리트와 낙오자가 된 불만분자들로 나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 부유한 집안의 부모들은 일이 되었든 놀이가 되었든 정치가 되었든 활동이 많고 바빠서, 엇나가는 자식을 바로잡아줄 여유가 없었다. 그저 돈으로 뒤를 봐주는 정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 학생들이 이 ‘특수하고 비싼’ 학교에 모여드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건방져. 저런 리무진을 타고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해. 천박한 딴따라 주제에. 과시라도 해보겠다는거야?”
“특이한 컨셉으로 히트한번 친게 고작인 반짝이에요. 언니가 신경쓸 가치도 없어요.”
“맞아요. 저런 것들하고 한 학급이 된다는 것만으로 불쾌해요.”
“일단은 두고보도록 하지. 건방지게 굴지만 않으면 귀여워 해줄 수도 있으니까.”
동급생이면서 언니라고 불리우는 소녀는 모재벌가의 손녀였다. 아버지가 실세였기 때문에 그녀의 영향력은 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놀원은 왕따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녀의 청각은 꽤 뛰어난 편이라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을 청취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장난따위에 휘말려 들 일은 없었다.
특히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모른다고 무시해 버린 것이었다.
물론 조기 영재교육을 받은 것들이라고 영어로 말을 걸어오면, 신이 난듯이 영어로 속사총처럼 할말을 하면서 상대의 억양과 발음이 틀린 곳들을 지적했다.
영어에 자신있던 아이들 몇 명이 콩글리쉬라고 무시를 당하자, 놀원에게 말을 거는 이들은 사라졌다.
‘이해가 안되는 어리석은 족속들.’
학급 내에는 놀원만이 따돌림의 대상은 아니었다. 복잡한 인간관계가 자리잡혀 있었다. 놀원은 왕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온갖 비열한 짓을 다 해왔다. 놀원 밑으로도 놀제로에게서 태어난 자매들은 여럿 있었다. 척박한 야생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놀원만큼은 아닐지라도 꽤 재능이 뛰어나서, 조금만 돌봐주면 살아남을 만한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놀원은 미래의 경쟁자를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무리가 습격당하면 약자를 잘라내고 무리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놀원의 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놀원 같은 하극상의 정점을 달리는 막내가 나타나자, 그 이후로 태어난 자매들중에도 그런 존재가 없으란 법은 없어서 직접 죽이진 않아도, 사지로 내몰아서 처분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놀 제로도 마찬가지였다. 놀원이라는 마음에 꼭 드는 후계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새끼들 가운데 놀원을 능가할 만한 싹수가 나오진 않을까 기대를 해볼 뿐이었다. 그리고 놀제로의 눈에 차는 새끼들은 없었기 때문에 무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약하고 어린 놈들이 희생되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그것이 놀원이 막내인 이유였다. 놀원 이후로 태어난 이가 없어서 막내가 아니라, 놀원 이후로 살아남은 놈, 아니 년이 없어서 막내인 것이었다.
비정하고 끔찍한 일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택한 인간의 지혜와 동물의 야만성을 지닌 존재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명백한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놀이 본 왕따행위의 대부분은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불필요한 소모성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해왔다.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그녀라고 순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라이벌인 언니들과 각박한 야생의 생활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죽음의 위기를 겪어왔다.
살아남기 위해서, 보나 나은 미래를 손에 넣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연애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보다 강한 새끼를 낳기 위한 번식 뿐이었다.
‘단지 재미인건가? 저걸로 우월해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경쟁사회, 낙오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정글 이상의 혹독한 곳에서 살아온 그녀는 경쟁에 살아남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놀제로의 무리는 무조건 불어날 수는 없었다. 먹을 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먹거리인 인간들은 소중하게 다뤄졌다. 식용이라고 해서 장난삼아 죽이거나 가지고 놀거나 하지는 않았다.
반면, 능력없는 자매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동료에서 미끼나 먹거리로 전락했다.
제한된 식량을 무가치한 동료에게 줄 수는 없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승리해야 했다.
방법은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을 갈고 닦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요구되는 경쟁은 경쟁자를 억압하는 것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나간 놈들이로군.’
그녀는 그렇게 판단내렸다.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그녀는 공부에만 관심을 쏟았다.
학급 애들은 경쟁 상대도 아니고 상대할 가치가 있는 존재들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배가 고파지면 쓸모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녀가 알고있는 세상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었다. 지진이라든가 해일, 화산폭발, 태풍 등도 있을 것이고 전쟁 같은 것도 있을지 몰랐다.
그걸 생각하면, 비상식량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귀찮은 일은 적을수록 좋았다.
“아, 젠장.”
놀원은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복도에서 떠드는 아이들을 헤치고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철책을 올라가서 뛰어내리려던 뚱뚱한 소년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울면서 눈을 감고는 뛰어내릴 각오였지만, 막상 행동에 옮기지 못하던 소심한 소년은 자신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놀원은 소년을 들고는 울타리에서 뛰어내렸다. 제법 높은 울타리였지만 그녀는 소리도 안나게 가볍게 착지했고, 손에 들린 소년도 땅에 닿거나 하진 않았다.
“왜?”
소년은 그렇게 밖에 말을 못했다. 놀원은 소년의 질문에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아니, 귀찮아서.”
학교에서 사망자가 나오면 여러모로 골치아파지니까 조심하라고 장수한이 누누히 당부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반 학생이니 죽으면 여러가지로 피곤해질 것은 틀림없었다.
“반에서 누가 죽으면, 귀찮아지거든. 대체 왜 죽으려는거냐?”
억양과 발음은 조금 어색하지만 유창한 한국말을 술술 내뱉는 놀원에 소년은 내심 당혹감을 느꼈다. 소년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나, 죽을 용기도 없구나.”
놀원은 소년을 보면서 내심 혀를 찼다.
‘이 미친놈이 또 죽으려고 하면 골치아픈데.’
놀원은 지구의 장례를 보면서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쩡한 고기를 파묻어 썩히거나 태워서 재만남기는 것은 자원 낭비였다.
“죽어서 고기를 남길 것도 아닌데, 굳이 죽을 필요는 없어.”
놀원은 자신이 한 말이 소년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소년을 설득하기 위해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살기위해 필사적이었던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늘 무리에 위기가 닥치면 일순위로 잘라 내버릴 약한 자매가 누구인지부터 최악의 상황이 되면 어떻게 다른 이들을 죽게 두고 자신만이라도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를 미리 고민해두던 그녀에게 자살이라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게 그녀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옥상으로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우는 소년들이 올라왔다. 뚱뚱한 소년을 괴롭히던 무리임을 깨달은 놀원은 하늘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했다.
죽겠다는걸 말리는 방법은 모르지만, 대부분의 행동은 폭력으로도 충분히 말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가 빵도 하나 제대로 못챙겨오고. 시발. 여기서 연애질이냐?”
“미, 미안해. 하지만 지갑이 너희한테 있어서.”
“그러니까, 그걸 능력껏 해결하라는거 아니야. 이새퀴야. 지혜, 용기 그딴건 뒀다 어따쓰냐. 돼지새끼야.”
윽박지르던 소년의 옆에있던 소년이 놀원의 존재를 눈치챘다.
“이봐, 저 애. 놀원아냐? 새로 전학온.”
“야. 험한꼴 보고 싶지 않으면 좀 비켜라.”
제법 덩치는 크지만 가소로운 초등학생들이 위협하듯 움직이며 다가오자 놀원은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어린 모습이지만 인형 같은 빼어난 미모를 지닌 그녀가 자신들을 보고 미소를 짓자, 소년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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