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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77화 (277/497)

277화 놀원의 우울

‘어떻게 폭력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을까.’

놀원은 미소를 지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생각보다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혼돈의 대지에서 대부분의 종족들은 무리를 짓는다. 몬스터들도 기본 무리를 짓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약한 종족이나 몬스터라고 함부로 공격했다가는 되려 역습을 받아서 죽을 수도 있었다.

단독으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호인족이 전설로 남은 것이 바로 그때문이었다.

무리를 지은 사냥감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선, 조금의 방심도 있어서는 안되었다. 때로는 무리를 뚫고 들어가서 우두머리를 제일 먼저 사냥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들키지않게 접근해서 우두머리를 제거하는 역할은 놀원같이 뛰어난 자들의 몫이기도 했다.

‘단숨에 죽여버리고 뼈까지 씹어먹으면 편한데, 그건 안되겠지.’

비명도 못지르게 만들고 죽여버리는 것은 간단했다. 물론 그 경우엔 자신이 구한 살집이 실한 소년도 죽여버려야 했다.

단숨에 네명을 처리하진 못하겠지만, 그늘진 곳에 숨겨두고 일주일정도면 먹어치워서 증거인멸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맛도 없고 위험부담도 크고 메리트가 없어.’

썩은 고기도 잘 먹고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이젠 신선한 음식만 먹고 살 수 있었다. 잘익힌 음식이 더 맛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선생이나 부모에게 고자질을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강력한 폭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을 일거에 분쇄해 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잔인함과 살기를 가지기 시작했다. 가까운 교사가 나타날 때까지는 약 5분, 빠르면 2분 안에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 안에 작업을 마쳐야 했다.

“지금부터 너희에게 벌어질 일은 절대 비밀이다. 만약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일러바칠 경우에는 죽을 각오를 하는게 좋을거야.”

“하하. 얘 정말 귀엽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가 하고 있네.”

“그래. 우리가 같이 놀아줄께. 대신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된다.”

인터넷으로 인해서 초등학생들이라고 하지만 많이 변질되어 있었다. 야생의 세계에서 자란 놀원도 인터넷이라는 수라장에서 자라온 아이들도 과거의 초등학생과는 개념이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 게임에서 어른들에게 욕설을 해대고, 음담패설을 같이 떠들고 포르노를 본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일 수가 없었다.

소년들은 포르노에서 본 행위들을 놀원에게 시도해 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놀원은 잔혹한 눈빛으로 한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는 다가가면서 손을 리더격인 소년의 사타구니로 향했다. 잡아뜯지는 않겠지만, 저항도 못하고 지옥을 보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놀원의 머리카락이 팍하고 곤두섰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일어서는 모습을 본 소년들이 깜짝 놀라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초야채인처럼 일어선 것은 아니고, 마치 민들레의 솜털처럼 일어섰다. 그녀는 눈을 돌려 자신의 옆을 보았다.

“기섭아. 누가 전기총 쏘랬어!”

“말리래매. 말릴 때 전기총 쓰라고 했어.”

“아, 진짜. 다짜고짜 전기총 쓰라는 소리냐? 그냥 야한짓 못하게 말려보라고 한거지.”

“에이. 난 시킨대로 한건데.”

“좀 똑바로 해. 그건 그렇고 제대로 맞은 거 맞냐? 왜 멀쩡하지? 전기가 안통했나?”

놀원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간섭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기충격용 테이저에 맞았다. 코끼리는 몰라도 하마 정도는 일격에 쓰러뜨릴 정도의 전기충격이 주어졌지만, 그녀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능 자체가 전기를 조종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그녀는 손 안에 전기를 모아들이자 그녀의 머리카락도 부풀어오른 원피스도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기로 고문하라고 힌트를 준건가?’

놀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소년들을 보았다. 소년들은 그녀의 손에 빛의 구슬이 나타나자 놀랐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일어선 것도 그녀의 눈동자에서 전기가 튀긴 것도 그들은 보았기 때문이었다.

“귀, 귀신인거야?”

그 순간, 놀원은 현대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를 떠올렸다. 시체나 귀신이었다. 놀원은 시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야생의 육식동물에게 시체는 호화로운 음식상이나 다름 없었다.

하이에나만이 아니라 사자나 늑대, 들개도 모두 썩은 음식을 먹는다.

썩은 시체를 두고도 목숨을 건 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신선한 시체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다만 신선한 시체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이들이 적었다. 그래서 썩은 시체를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이 더 치열한 면이 있었다.

그녀는 좀비 영화를 보면서, 시체가 자신을 쫓아온다는 사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쫓아오게 뒀다가 배고플 때 먹으면 되는 것이다.

둔하고 물기밖에 못하는 놈들은 그녀에게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저런 놈한테 물릴 정도의 멍청이는 혼돈의 대륙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귀신?

혼돈의 대륙에선 죽음의 위협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육식동물에게 가장 큰 위협은 아사였다. 굶어죽을 확률은 굉장히 컸다. 굶주리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없었다. 좀비 영화를 보면서 별다른 두려움이 안느껴지는 것도 그때문이었다. 좀비를 먹었다가 죽는다면, 뭐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굶어죽는 것보다는 먹고죽는게 나았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하지 않던가.

귀신에 죽은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설사 있다고 해도 극소수일터였다. 다른 굵직한 이유로 숱하게 죽어나가는데, 고작 죽은 놈의 허깨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공포영화를 여러편 보아뒀다.

그건 그녀가 원기 일행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현대인들은 묘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원기의 경우엔 압도적인 육체와 두려움을 모르는 정신으로 적들 틈에 들어가서 적들을 분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쌍검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은호의 발톱을 이용해서 적을 찢는 모습도 곧잘 보여주었다. 놀원은 그 모습에 매료되기도 했다.

희연의 경우에는 호쾌함보다는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녀의 칼날이 오갈때마다 죽음이 생산되었다. 놀원조차 그녀의 모습을 보면 두려움이 느껴졌다.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죽음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뱀앞의 개구리처럼 꼼짝도 못하고 목이 날아가는 잡병들의 모습을 보면, 사신이 수확을 위해 낫을 휘두르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원기는 시신들을 두려워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라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었다. 희연은 원기만큼은 아니지만 시신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다. 그리고 벌레를 끔찍하게 무서워했다.

두려움은 약점이었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약점이 있다면 알아둘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사람들이 무섭다고 말하는 것들의 코드는 미리 알아둔 바 있었다.

“그거 알아? 난 영능력자야. 이건 도깨비 불이라고 하는거지. 내 수호령이야. 잠깐 전에는 내게 빙의한 거라고 할 수 있지.”

뇌전의 덩어리, 건드리기만하면 수십명은 감전사시킬 수 있는 덩어리지만 그녀는 그것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착각을 유도했다.

“너 아버지가 장관이었다지? 그리고 출세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안가렸다고 하네. 덕분에 원한을 많이 샀어. 덕택에 네게 원령이 붙었네.”

아무리 되바라져도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신비한 현상을 목격하고 그녀가 위협적으로 말하자,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왜, 왜 나야?”

“그거야 네가 약한 주제에 사악하니까 당연한거지. 약한 놈을 노리는 건 상식이야. 그리고 착한 사람에게 저주를 거는 건 힘들어. 하지만 나쁜 놈은 저주를 받기 쉽지. 이 반지를 줄 테니 끼고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봐. 그럼 귀신이 보일거야. 괜히 기절하지 말고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내게 알려줘. 그럼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지.”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리더인 소년이 당황해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살짝 뒤에서 불안한 얼굴로 서있는 두 친구가 보일 뿐이었다.

소년은 심호흡을 하고 반지를 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등 뒤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피투성이의 무시무시한 여자 귀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년은 심장이 멈출 듯 했지만, 놀원의 말을 듣고 놀원에게 가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무서워서 손을 떨면서 반지를 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귀신이 한걸음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년은 눈이 뒤집히면서 마치 줄끊어진 인형처럼 정신줄을 놓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그의 바지에서는 소변이 줄줄 새고 있었다.

“정신 차려. 멍청아.”

소년들은 리더격이 소년이 기절하자, 선생에게 알리지 않고 놀원에게 왔다. 놀원은 귀신으로 분장한 발키리의 약발이 아주 효과적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을 차린 소년은 눈물콧물을 흘리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내가 다가온다고 했지. 아직 다행히 거리가 좀 남았네.”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제발 도와주세요.”

소년은 놀원에게 존댓말을 하며 매달렸다. 인터넷의 영향을 듬뿍받은 덕택에 아이다운 순진함은 별로 없었다.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처세술은 제법 배운 탓이었다. 순진한 아이들은 동년배로 보이는 소녀에게 저렇게 데꿀멍은 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별거 없어. 착하게 살아. 착한 사람은 저주를 받지 않아. 네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수록, 저런 저주를 끌어들이는거야. 마이너스 에너지가 모여드는 것처럼. 착한 사람에겐 저런 게 다가오질 못해. 쟤네들 뒤에도 있는거 못봤어? 남에게 미움받는 놈은 죽으면 지옥으로 끌고갈 수 있겠지만, 착한 놈이 죽는다고 지옥가겠어? 잘 생각해.”

소년은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만이 아니라 두사람 뒤에도 희끄무레한 사람 그림자를 본 듯 했다. 자신보다는 덜 분명했다.

“선명해지고, 다가올수록 위험해지는 거야. 그리고 반지는 돌려줘. 네가 무서워하면 무서워할수록 원령을 불러들이는거야. 남에게 말하지 마. 앞으론 언급도 하지말고 생각도 하지 마. 열심히 잊어버려. 그리고 최대한 남들에게 사랑받도록 노력해. 선생님 말 잘듣고.”

“남에게 말하면 어떻게 되지요?”

“남들이 너한테 귀신이 어땠는지 물어볼테고, 넌 설명해야 할거야. 그러다보면 넌 더 무서워질테지. 그럼 원령은 그 힘으로 네게 더 다가갈거야. 2미터 이상 남아있으면 아직은 안전한거야. 잘 생각해. 원인모를 이유로 자다가 죽는 일은 없어야겠지.”

놀원은 3사람의 소년을 순식간에 개과천선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경호원에게 연락받고 감시하던 장수한의 감탄을 자아냈다. 빠른 잔머리는 확실히 하극상을 이뤄낼 재능으로 보였다.

하지만 장수한의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전기를 저정도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호피무늬 비키니가 어울리는데. 작은 양뿔이 예쁜 몬스터가 어떤게 있지? 꼬리는 필요없는데. 염소 펫이랑 합체하면 될려나?”

“비키니 같은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전기 능력자라면 역시 레일건이라고 생각하는군요.”

AI 개발에 협력하던 찬균이 장수한의 비키니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밀리터리 매니아인 호철도 찬성했다.

“맞아요. 레일건이야말로 총기의 로망입니다. 휴대용 레일건을 개발하는건 어떨까요.”

“무슨 소리야. 레일건은 손으로 동전을 튕기는게 맛이지! 난 무기를 말하는게 아니라고.”

찬균은 반대의견을 냈다. 하지만 놀제로와 그 딸들이 전기를 사용하는 능력자이긴해도 레일건을 쏘는 재주는 없었다.

그들이 발산하는 전기출력을 이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총기의 개발로 타협을 맺었다. 쇠구슬을 발사하는 BB건만 해도 그녀들의 전기 출력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살상무기가 될 수 있었다. 레일건이 되었든 모터를 사용하게 되든 전기계 능력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놀원에게 문제는 한가지 더 있었다. 죽고싶어하는 잉여를 어떻게 살고싶게 만드는가였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안전한 나라가 자살률이 높은 이유중 하나가 그거라고 하더군.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살고싶다’’죽고싶지않다’ 같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 그러다보니 생존욕 자체가 약해진다고 하지. 반면에 너처럼 야생에서 살면 ‘필사적’으로 살고싶어하지.”

장수한은 나름대로 답을 냈다. 놀원은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렇게 좋은 세상인데 행복하지 못한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럼, 한번 혼돈의 대륙에 끌고 가볼까요?”

놀원은 장수한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녀가 신이라지만, 조제성과 장수한은 프레이야가 신뢰하는 수뇌부였다. 뻐겨봐야 얻을 것은 없었다.

“참아. 애 잡을 일 있냐?”

혼돈의 대륙에서 육식동물계통의 수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일반적이고 만만한 먹거리는 ‘인간’이었다.

뱀파이어가 피를 빨듯이, 육식계 동물의 성질을 띤 수인들은 고양이나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듯이 가끔 식이섬유를 섭취하기는 해도 육식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판타지 소설에서 인간형 몬스터를 잡아먹는 것도 기피 대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거기서 놀원이 날뛰는 모습을 어린애가 보면 정줄 놓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 어때? 초등학생들이 아무리 어른 흉내를 내도 코피터지면 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하더군. 맞는 걸 너무 무서워하면 그것 때문에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사람을 때리는 것도 사람에게 맞는 것도 경험해 보는게 나쁘진 않지.”

놀원은 장수한의 말에 학교에 가서 방송실 마이크에 대고 거창하게 선언했다.

“평범한 인간에게 관심없습니다. 이중에 왕따, 찌질이, 잉여가 있다면 제게 와 주십시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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