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브레멘
로키와 적대하는 용신족측에서 오딘에게 보고가 들어갔다. 그것은 로키측 움직임을 포착했다는 것이었다. 수인족이 어느 항구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보급품을 약탈하기 위해 항구를 노리고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였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신들의 부대를 보내서 수비에 협조하겠다는 것이었다.
요르문간드 휘하의 용족들 가운데에는 용신족에게 협조하는 이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적당히 가공해서 오딘에게 알려주곤 했다. 대게 로키가 유리해서 공세를 일으키는 시기의 정보였다.
그리고 반면에 놀제로가 이끄는 수인족측에서는 로키에게 오딘측 항구를 약탈하겠다는 제안이 들어갔다.
식량과 보급물자를 확보할 겸, 인간측 세력을 위축시키기 위해서 공격하겠다는 통지였다.
로키측에서 군사를 움직여서 항구 약탈을 돕던가, 아니면 항구 약탈으로 적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군사목적을 달성하든가 로키가 원하는대로 하라는 통보였다.
오딘과 로키는 두 정보를 손에 넣고, 고심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득을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원기측 시나리오는 결정되어 있었다.
연하가 이끄는 용신족 부대와 원기가 이끄는 수인족 부대가 격돌하기로 되어 있었다. 전투에 돌입할 때, 다대다 결투로 설정하면 죽어도 경험치 손실을 보지 않았다. 보통 결투는 죽은 즉시 승패가 결정되고 부활하지만 굴욕전으로 설정해 놓으면 십분간 시체 상태로 있어야 하고, 부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부활되기 때문에 경험치의 손실 없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결투 상대가 아닌 다른 적에게 죽으면 일반 죽음의 페널티를 받게 되어 있었다.
용신족에도 수인족에도 복속은 시켰지만 지나치게 거칠고 공격적인 이들이 있었다. 반사회적인 괴물들이었다.
전장의 영웅이 될 수는 있어도 평화로운 세상에 복속시킬 수 없는 이들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잡아먹는게 취미인 놈들을 사회화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용신족과 수인족에서 이 특별히 ‘용맹한’ 이들을 전선에 배치했다. 반면 사회화가 가능한 이들은 되도록 앞날을 위해서 후방에 배치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들 만족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회화가 가능한 이들은 자신이 아끼는 이들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반겼고, 사회화가 불가능한 이들은 자신들의 야심과 공격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선봉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앞장서겠다. 그러니 너희들은 최대한 수비에 집중하라.”
유연하는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이 사회화가 어려운 자들이라고 해도 헛되이 소모시킬 그런 존재는 아니었다. 유연하 곁에는 츠루기가 함께 하고 있었다. 츠루기는 레벨 10짜리 첫보스인 리자드 나이트 용가리와 합체한 상태라서 멋진 리자드 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희연이 꼬리를 사용해서 중심을 낮추는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도 꼬리를 사용하는 전투를 익힐 생각이었다.
‘희연 언니와 원기 오빠를 상대로 싸운다니, 왠지 재밌을 것 같은데.’
연하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새롭게 각성한 바리어 윙 덕분이었다. 그녀는 타동 능력자였다. 꼬리나 날개를 자유자재로 움직인 것도 실제로는 타동 능력이 발휘된 덕분이었다.
사람에게도 꼬리뼈가 있으니, 꼬리라면 자동능력으로 어떻게 조종할 수 있지만 양팔이 있는데 날개까지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리어 윙은 에너지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날개라서 보호막의 역할도 할 수 있지만 적을 공격하는 무기로도 쓸 수 있었다. 네개의 날개로 하늘을 날면서 상공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화약을 탑재한 화살을 이용해서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원기 일행의 목표는 항구 점령도 항구 약탈도 아닌 부유석의 확보였다. 한번에 무조건 성공한다는 욕심은 없었다. 파티 결투를 벌이는 것이 가능한 만큼 적들에게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용신이 된 연하는 아직 오딘에게 노출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용신을 보고 연하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게임 캐릭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했기 때문에 그녀는 죽지 않는 편이 좋았다.
원기와 희연은 게임 캐릭터이기 때문에 죽었다가 부활해도 오딘이 굳이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오딘은 ‘특수한’ 에인페리아로 인식하고 있었다. 동물과 합체하고 어디서든 부활하는 에인페리아라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꽤 매력적인 능력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에인페리아가 지천에 깔린 그가 탐낼만한 능력은 아니었다.
희연과 원기가 비행정에 탑승해서 탈취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 연하가 화약달린 화살을 발사해서 비행정을 폭파시키고 태워버리는 것이 목표였다. 부유석 자체는 일정 고도에 머무는 성향이 있어서, 나중에 연하를 비롯해 비행형 몬스터와 합체할 수 있는 이들이 회수할 수 있었다. 물론 가능하면 부유석을 직접 챙겨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부서진 부유석을 보급품 상자에 묶어서 보급품 상자를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계획도 동시에 추진 중이었다.
비행정 자체를 통째로 탈취하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모험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한 상태였다.
희연과 원기, 카즈키가 공격측에 츠루기와 연하가 방어측에 포진하는 형세를 취한 것은 약탈 성공과 피해 확대를 위한 밸런스 조종이었다.
“넌 상공에서 지원이나 해주면 된다. 내가 그 세사람을 막아주지.”
츠루기는 의욕을 불태웠다. 자신이 희연보다 열세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전장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에 있어서 상황은 바뀔 수 있었다. 물론 그 점에서도 희연과 원기가 츠루기보다 위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런 도전 자체가 그로서는 재미있었다.
카즈키가 희연을 압도한 이유를 츠루기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희연의 경험 부족 탓도 있지만, 카즈키가 자신보다 강하고 빠른 상대와 싸운 경험이 많기 때문이었다.
츠루기를 비롯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깔보는 덩치큰 남자 선수들과 검을 나누곤 했다. 마초도 제법 있는데다가 프라이드로 뭉친 남자 선수들과 실적과 건방짐을 겸비한 카즈키가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수의 폭력 린치 같은 것은 수준 떨어지는 학교 검도부에나 있었고 카즈키는 일류 검사들과만 싸웠기 때문에 별 문제는 안생겼지만, 늘 사고를 치고 다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카즈키는 열받은 남자선수, 자신보다 연상인 선수들과 겨뤄왔다. 자신보다 강하고 빠른 공격을 피하면서 승리를 따내는 수법을 자신의 재능으로 캐치해 낸 것이었다.
반면 츠루기는 달랐다. 강하고 빠른건 그야말로 승리의 왕도였다. 자신보다 힘이 센 이들은 본적 있지만, 자신보다 강하면서 동시에 자신보다 빠른 이는 본적이 없었다. 아니 자신보다 빠른 이도 본 적이 없었다.
상대보다 빠르면, 상대는 헛점투성이가 된다. 그리고 헛점 만들기는 그 헛점을 치명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일격에 상대를 쓰러뜨리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고 빠르면 헛점은 의미가 그리 없었다.
자신보다 빠르고 강한 상대가 무기사랑까지 들고 있으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이보그 시절에는 엑스칼리버와 절대적 우위를 자랑하는 파워가 있으니 희연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츠루기는 현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서 강함을 추구하던 그 기분을 되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즈키를 때려잡고 원기를 때려잡고, 희연에게 도전한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미션이었다.
작전은 간단했다. 상대의 목적은 약탈이었다. 초반 전투에서 몸을 사리면서 상대가 약탈에 들어가는 시기에 각개격파를 노리는 것이었다.
그거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어차피 이 혼돈의 대륙에서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에인페리아들이 맥을 못추고 있기 때문에 오딘으로서도 항구 수비에 용신족의 협조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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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헤헤헤. 인육이다. 인육.”
혈안이 되어 인육을 탐하려고 드는 수인족들의 모습은 가관도 아니었다. 수인족들 가운데 진수들은 놀제로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지휘부에 도전하는 놈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제압하는게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원기의 페인 마스터리였다.
원기는 세 패턴의 전투방식을 사용했다. 강자를 상대할 때에는 맨손의 발톱을 썼다. 검을 이용해서 페인마스터리를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상대에게 검을 찔러 넣고 페인 마스터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페인 마스터리의 효과도 약화되어 메리트가 없었다.
하지만 발톱에 상대가 걸리는 순간, 페인마스터리를 사용하면 상대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었다.
반면 다수의 병졸들을 상대할 때에는 단연 쌍검이 압도적이었다. 검신만 이미터를 넘어가는 대검을 양손에 들고 휘두르면, 전장에 남아나는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패턴이 다수의 적을 공포에 몰아넣기 위해 쓰는 것으로 적병사를 무기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머리나 다리를 쥐고 무기처럼 사용하면 적병들의 사기를 순식간에 깎을 수 있었다.
문제라면, 인체란 무기로 쓰기에는 부적합해서 몇번 못휘두르고 부서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세번째 패턴은 원기 자신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라, 되도록 피할 생각이었다. 소수의 강한 적은 페인마스터리와 신체 강화를 이용한 발톱으로 상대하고 다수의 적은 대검을 이용한 쌍검술을 사용하는게 원기의 기본적인 전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 발톱, 무시무시하게 아프군.”
“역시 범상치 않은 놈이야.”
원기는 수인족들에게 공포의 발톱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두려움을 사게 되었다. 막되먹은 놈들을 페인마스터리로 굴복시킨 덕에 희연과 카즈키에게 도전하는 놈들은 없었다.
“조심해요. 츠루기씨가 벼르고 있으니까. 지난 번과는 다를거에요.”
“그래. 그 놈은 쉽게 볼 수 없어.”
호랑이의 귀와 꼬리를 한 카즈키는 이를 갈며 말했다. 츠루기의 헛점 만들기 이능에 휘둘려서 굴욕적인 참패를 맞았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이후의 전투에서 카즈키와 원기에게 형편없이 밀렸던 것은 새로 얻은 이능에 휘둘렸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능에 의존하지 않을 때, 더 강할 수도 있는 완성된 검사였다.
오딘의 눈이 항구에도 미칠 가능성은 컸다. 항구에 정박한 함선들 가운데에는 세계수가 심어진 거대 함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서로가 최선을 다하는게 좋았다.
그녀는 일부러 암호랑이를 골라서 희연을 도발했다. 그녀 역시 지난번 대전 후에 전투 스타일을 과감히 바꿔서 이도류로 전환했다. ‘자신의’ 엑스칼리버를 사용하게 되면서, 무기에 대한 자유도가 높아진 것도 있었다. 양손으로 카타나를 들기엔 게임 캐릭터도 에인페리아도 힘이 지나치게 센 것이 틀림없었다.
카즈키는 희연보다 ‘미완성’이라는 단점이자,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호랑이보다는 고양이같군.’
원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가 둥근 호피무니 고양이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게 은근히 어울리는 듯 했다.
희연 역시 여우라기보다는 늑대나 개과 동물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지나치게 완고하고 경직되고 절제된 느낌이 있었다. 애완견 같은 것이 아닌 과묵한 경비견 같은 느낌이랄까.
반면 카즈키는 변덕스럽고 돌출적인 면에서 늘어진 암표범 같은 느낌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서로를 과도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개와 고양이, 연하는 닭이려나? 왠지 브레멘 악단이 만들어질 것 같군.’
연하는 순진하면서도 자신의 관심사에만 집중하는 성향이 있었다. 먼 곳을 지긋이 바라보는 독수리와도 비슷하다고 할까, 아무 생각없는 닭과 비슷하다고 할까.
남은 리디아를 당나귀와 연결해 보려고 했지만, 원기는 그다지 당나귀와 비슷한 점을 찾지 못했다.
‘아! 귀가 당나귀 귀다!’
원기는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을 쳤다. 그 소리에 희연과 카즈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원기는 상황을 얼버무리기 위해서 작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파티 채팅을 켜고 조제성과 장수한에게 물었다.
“이쪽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키는 어떻게 하기로 했지요?”
[움직이긴 움직일테지만, 우리 측에 알려주진 않을 모양입니다. 로키도 꽤 신중한 것 같군요. 그리고 연하양쪽에서 알려준 소식에 따르면 오딘측도 이렇다할 전력 증원은 없는 듯 합니다. 항구 수비를 연하양측에 거의 전담시킨 듯 합니다. 전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게 좀 부자연스럽군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보여. 그렇다고 안싸울 수도 없고.]
장수한 역시 묘하게 상황이 흘러감을 느끼고 말했다. 이미 정보는 흘려보냈으니, 전투를 벌일 필요성은 있었다.
[놀제로에게 연락해서 추가 전력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항구를 아예 점령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군요. 츠루기씨를 실력으로 제압하고 연하양을 쫓아내도록 해주십시요.]
“추가 전력이 도착하기 전에는 무리입니다. 전력차가 그리 크진 않아요.”
원기는 츠루기의 이능을 봉인하고 싸우는 것을 생각해 봤지만, 그것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용신족에서 보낸 전력이 지나치게 약하면 오딘의 의심을 살 가능성이 컸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지만, 들키면 손목이 날아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흠. 우선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게 좋겠군요. 일단 빨리 전투를 끝내고 상황을 확인하도록 합시다.]
오딘과 로키의 개입이 없다는 것은 함선을 포획하는데 유리한 조건이었다. 부유석의 확보는 그리 어렵지 않을게 틀림없었다. 다만 로키와 오딘이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른다는 것이 프레이야 진영측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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