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라이벌의 마음가짐
부유석의 회수와 잔여 병력의 회수는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로키와 오딘에게 대항하기는 불가능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혼돈의 대륙을 일거에 비워줄 생각 역시 없었다. 나름대로 저항하면서 최대한 적에게 피해를 주고 퇴각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놀 제로에게 그 임무가 맡겨졌다. 최대한 적들이 혼돈의 대륙을 장악하는 것을 방해하며 최악의 경우 블러드 라인2로 퇴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딘과 로키의 목적이 게이트라는 것을 생각하면 혼돈의 대륙 장악을 노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뜻대로 조종되지 않는 귀찮은 몬스터와 패잔병들이 넘쳐나고 가축을 기를 수 없는 악조건의 대륙이었다. 반면 블러드 라인2는 인간이 없을 뿐 풍부한 자연이 넘쳐나는 땅이었다.
통로만 확보하고 블러드 라인2를 개척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수지맞는 장사일 가능성이 컸다.
놀 제로를 남기고 원기 일행은 후퇴할 예정이었는데 예기치않던 사건이 터졌다. 츠루기가 놀 제로에게 반한 것이었다. 결국 츠루기는 귀환하지 않고 놀 제로 곁에서 머물면서 혼돈의 대륙에서 벌이는 게릴라전을 지원하기로 되었다. 놀 제로도 그리 싫지 않은 눈치여서 놀원과 카즈키가 자매가 될 날이 올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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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키양을 연예인으로? 그건 아니야. 즉시 중단하게.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네.”
조제성은 카즈키의 데뷰 계획을 접하고는 즉시 중단시켰다. 그가 생각하기에 카즈키의 쓸모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가 가진 육체는 에인페리아의 육체였다. 그녀의 본체는 사이보그가 되었다가 폭파가 된지 오래였고 지금의 본체는 에인페리아였다. 그런 육체를 연예계에 투입한다는 것은 낭비였다.
희연과 연하의 경우만해도 본체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꽤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육체와 발키리의 조합이면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스포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에 벌어들일 돈의 규모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제성은 고작 그런 돈이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연하와 희연의 유명세는 이젠 크게 의미없지만, 브리싱가멘이라는 브랜드가 시장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제성 산하의 연예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지탱하고 있었다. 연하보다는 떨어질지 몰라도 희연과 원기의 인기는 안정적이었다. 아이돌과 달리 탤런트나 영화배우는 결혼한 것만으로 인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배우나 탤런트 자체의 팬도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등장인물에게 매료되는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희연과 원기의 발군의 연기력은 의외로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었다.
“그럼 어떤 분야에 쓰실 생각이십니까?”
“레이싱이야. F-1에 진출해보면 어떨까 생각되는군.”
“와오! 그거 멋지군요. 역시 조승상이십니다.”
장수한은 조제성의 정확한 의도는 몰랐지만, 그저 F-1에 진출한다는 것만으로 기뻐했다.
그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등을 좋아했고 그들 가운데는 레이싱 관련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식으로 진출하실 생각입니까? 역시 워크스 팀이겠지요?”
“무리야. 드워프들을 갈아 넣어도 F-1엔진은 못만들어.”
장수한의 기대에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드워프의 금속 가공기술은 인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인간 수준의 천재적 재능은 드워프들에게선 그냥 평범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밀 가공에서 기계를 능가할 재능은 드워프들에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력이 뛰어난 하급 엔지니어지, 과학자나 설계자 쪽의 재능은 그다지 없었다. 과학자의 재능은 인간 이하, 설계자의 재능은 인간보다 조금 나았지만 그렇다고 천년 이상 차이나는 기술 격차를 뛰어넘을 수준은 아니었다.
과학자의 재능은 오히려 엘프들이 뛰어났다. 그들은 자연의 신비를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설계 공돌이를 드워프들로, 과학자들을 남자 엘프들을 양성하는 것이 현재 인재 양성 계획이었다.
다만 이들이 쓸만해지려면 최소 십년 이상은 필요했다.
조제성의 기업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진짜’ 대기업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진짜 대기업들은 강대국에는 못미치지만 왠만한 선진국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주력기업이 전차라고 한다면, 조제성이 가진 것은 달랑 소총뿐인 보병 열댓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제성에겐 주력 기업이 없었다. 틈새 시장을 뚫기 위해 노력중이지만, 실제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의료 산업 뿐이었다.
이족 보행 로봇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인정받을지는 미지수였다. 최신형 전차 앞에 이족 보행 로봇은 장난감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화력도 방어력도 최고 속도도 전차를 당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와플이나 사성전자 같은 기업들이 자랑하는 스마트폰 같은 정밀 전자기기 시장도 난공불락이지만, 근대 자동차만해도 제성으로서는 넘보기 힘든 영역이었다.
그런 자동차 회사들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워크스팀은 무리였다.
그리고 F-3이하의 하위레이스에선 기업이 운영하는 워크스팀이 일반 레이싱팀을 압도하지만 F-1쯤 되면 특정 기업에 얽매이지 않는 순혈의 레이싱팀이 워크스팀보다 우위에 서있었다.
빨간 구슬이라는 뜻의 레드 볼이라는 팀이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레이싱 팀을 하나 꾸며볼 생각이야. F-1 레이싱에서 성공한 여자 드라이버는 거의 없지. 미모의 일본 소녀 카즈키가 F-1 레이싱에 등장한다면, 꽤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을거야. 드워프들은 일단 튜너로서 키워볼 생각일세.”
정밀 기계들이 만들어낸 정교한 예술품인 레이싱 엔진이라지만, 인간이 조립하고 많은 부분을 인간이 체크해야 했다. 금속과 대화를 나눈다는 드워프들의 섬세한 청각과 촉각, 후각을 생각하면 그들은 튜너로서 대단히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요?”
일본계 미소녀 레이서와 드워프 정비사들을 이용해서 레이싱 팀을 성공시키는 것은 가능해 보였다. 카즈키는 몰라도 발키리가 운전하게 된다면 오차가 없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레이싱이 가능할 터였다.
타임 어택으로 폴 포지션을 획득하고 선두로 주욱 달려나가면 우승 가능성은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한낱 레이싱팀의 성공에 지나지 않았다. 조제성이 고작 그런 그림에서 끝날 리는 없었다.
“그 다음에는 수제 슈퍼카를 만드는 회사를 차리는 거지. 실적도 없고 성능도 떨어지는 엔진이겠지만, 우리가 만든 레이싱팀은 기꺼이 채용할거야. 물론 성적이 너무 떨어지면 곤란하겠지만. 그리고 그걸 통해서 전 세계에 메이커 이름을 선전하는거야.”
사람들은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를 만드는 회사와 도요타 같은 일반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를 동급으로 간주하는 성향이 있다. 아니 람보르기니 쪽이 더 비싼 차라고 더 우대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슈퍼카를 만드는 회사는 일반차를 만드는 회사와 비교가 안되었다. 구멍가게와 거대마트를 비교하는 꼴이었다.
람보르기니의 시작도 트랙터 회사 사장이 페라리 회사측에 조언했다가 트랙터나 잘만들라는 비웃음을 받고 오기로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최고급 슈퍼카 시장에는 꽤 덩치가 작은 수제 자동차 회사들이 많았다.
그들이 성공하는데는 실력도 필요하지만 운, 결정적으로 유명세가 필요했다.
조제성은 이미 슈퍼카 급의 수제차들을 몇대 드워프들을 통해서 생산하긴 했지만, 그것을 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상당수 주요 부품들은 유명 메이커의 부품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시험제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레이싱 팀을 떠올린 것이었다.
F-1 레이서에게는 인체의 한계에 가까운 과도한 관성이 걸리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에인페리아라면 인체의 한계 쯤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슈퍼카 회사로 유명세를 얻고, 고급차 시장에서 일반차 시장으로 조금씩 뻗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게 조제성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게 성공하면, 워크스팀을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그 파일럿으로 연하를 집어 넣는거야. 그럼 어떻게 될 것 같나?”
“우와. 조승상님. 역시 악마십니다. 이건 뭐…”
일본인 미소녀가 F-1 레이싱을 석권한다. 일본의 동향에 관심이 있는 한국 언론들도 좋건 싫건 다루기 시작할 것이었다. 일본에 비하면 F-1 레이싱에 대해서 관심도 지식도 없던 사람들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한국인 미소녀 연하가 F-1레이싱에 등장, 멋지게 카즈키에게 승리를 거둔다면 미친듯한 F-1 열풍이 불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움직이는 돈을 생각한다면, 이건 천문학적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였다. 따로 광고를 하지 않아도 언론이 미친듯이 보도를 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거 카즈키가 받아 들일까요?”
“받아들이겠지. 우리는 피겨여왕의 재현이 목표는 아냐. 일본 시장도 한국 시장도 다 중요하니까. 어느 한쪽의 압승은 별로 득이될게 없지. 한번 이기고 한번 지고 하는 식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은 자신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기 싫어하는 카즈키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랬다. 과연 장수한이 카즈키에게 이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자마자, 카즈키는 조제성에게 독대를 요청하며 뛰어들었다.
“이 카즈키를 발판으로 쓰시겠다고?”
“그렇습니다. 카즈키양. 당신은 제게 있어서 장기판의 말과 같은 존재입니다. 적재적소에 이용하는게 제 임무지요.”
“맘에 안들어. 이 카즈키의 라이벌이 왜 연하야. 희연으로 해줘. 그리고 내 승률을 높여줘.”
조제성은 카즈키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희연으로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둘 다 출전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희연이 더 어울릴 수도 있었다.
피겨여왕처럼 압도하는 것도 좋지만, 승률 3할 정도로 조금 열세에서 도전해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법이니까.
“좋습니다. 그럼 카즈키양과 희연양의 승부의 경우 7대3 정도로 만들겠습니다.”
“7대3이라고? 내가 7이고 희연이 3? 맘에 안들어. 너무 높아.”
조제성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막무가내라면 곤란했다.
“8대2는 좀 곤란하군요.”
“아니, 8개2는 말도 안돼고, 6대4가 좋지 않을까? 아니야 5.5대4.5가 좋을까? 희연과 내 대결이라면 좀 더 박진감이 필요해. 5.1대4.9? 그것도 좀 재미없을 것 같고.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조작 승부인데 희연에게 이기는 것도 이상한 것 같네. 5대5? 왠지 시시해 보일 것 같네. 그래. 희연이 좀 더 센게 나을 것 같아. 4.5대5.5가 좋을까? 아냐 확실하게 라이벌이 우위인쪽이 불타오르지. 4대 6으로 해줘. 그정도가 좋을 것 같네.”
카즈키의 반응은 조제성도 어느정도는 예측했지만, 예측을 좀 더 상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찌되었든 나쁘지는 않았다. 카즈키가 압도적으로 우승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희연이 등장해서 콧대를 누르는 연출은 충분히 가능했다.
조제성은 간단하게 승률만 이야기했지만, 어떤 승부에서 이기고 지는가가 더 중요한 면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7대 3이라는 조건 제시는 사실 함정이 있는 계약 조건이었다.
‘재미있는 아가씨로군. 조종하기는 오히려 쉬울 수도 있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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