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91화 (291/497)

291화 삼위일체와 국교

엘프를 돕는자는 프레이야 여신이 자신의 백성으로 맞아 들인다.

이 사실은 엘프들도 들었다. 이를 이용하면 엘프들은 간단히 인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겠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죽어도 인간의 도움은 받지 않겠어.’

‘적어도 목숨이 위험한 경우 외에는 결코 도움을 받아선 안돼.’

엘프들은 여신이 자신들의 것임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프레이야 여신이 이루고자 하는 적극적인 변화가 자신들을 위한 것임을 알기에 더욱 경애하고 있었다.

문제는 여신이 한국인에 대해서 좀 더 마음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쪽 세계의 인간들은 엘프들이 보기에도 더 문명적인 존재였다. 여신은 엘프들을 지극히 소중히 여기지만, 그것은 ‘그녀의 백성’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구인들 가운데서 계약자로 받아들여진 이들은 엘프들보다 더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조제성을 비롯한 능력있는, 가치있는 계약자들을 깎아내릴 마음은 없지만 늘어나는 것 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엘프들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도움을 받기 싫은 엘프들과 도움을 주고 싶은 인간들의 갈등이 극심하게 벌어지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제성 빌딩이었다.

미모의 경비원들이 엘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 소수지만 있었다. 그리고 사원들 내에는 자각은 못하고 있지만, 바니걸 통신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팀장님. 혹시 바니걸하고 통화하시지 않았어요?”

최팀장이라는 사내는 흠칫 놀랐다. 바니걸 통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같은 과의 여직원이 있었다. 싹싹하고 일 잘한다는 평판인 여직원이었다.

‘이 아가씨도 여신님의 연락을 받는 걸까? 혹시 국정원이나 여타 조직에 속해있는 것 아냐?’

최팀장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국가 기관에 발각난 이들은 여신을 위해 일할 기회를 잃게 되어 있었다. 사실 전에는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신님이 영원히 지구를 떠날 것이며 일부만을 데리고 가신다고 선언한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여신님과 함께 가고 싶었다.

“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최팀장의 반응을 보고는 여직원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음, 전 비밀 공무원 같은 부업 같은 건 안하거든요. 어쨌든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혹시 함께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말이지요. 바람 같은 건 보일 생각도 안하고 해서. 다시 생각해보니 자칫하면 들킬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러셨군요. 전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저도 막막해서 좀 곤란하던 참입니다. 함께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최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함께 회사 로비를 향해서 걸어 나왔다. 그런 그들의 눈에 묘한 것이 보였다. 로비에서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제성건설의 사장 모습이 보였다.

국내만이 아닌 해외 건설 및 세계 각지의 부동산도 관리하는 상당히 큰 회사였다. 급성장해서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력한 회사였다.

제성 빌딩에 입주한 기업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업이었다. 사장은 50대 초반의 매너있고 근엄한 신사로 알려져있었다.

그런 그가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사람들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원들이 퇴근하는 시간과 겹쳐서 로비를 지나는 이들은 대부분 그것을 못본척 하고 지나갔다.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미인 경비원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미모의 여성 경비원은 그것을 거부하는 듯한 모습이라 대부분 못본척하고 지나가려는 것이었다.

최팀장도 그것을 못본 척 지나가려고 했다.

“제발, 도와드리게 해주세요. 아무 것이든 좋습니다. 할 줄 아는건 별로 없습니다만…”

제성 건설 사장의 작은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최팀장은 깜짝 놀라서 무심결에 경악성을 흘렸다.

“서, 설마?”

“그 분들인건가요?”

“도움 따위는 필요없어요. 그리고 방금 일로 저희에게 곤란을 안겨주신 것 알겠지요? 당신들도 입 다물어요.”

미모의 경비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경비실로 들어가 버렸다.

“엘프를 찾는다고 되는게 아니었군.”

“그렇군요.”

최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분위기를 보니 경비실의 인원들이 모두 엘프인 것으로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음, 미안하군. 내가 실수를 한 것 같네. 마음이 급해서.”

“전사장님도 바니걸 매니아신 겁니까?”

“바니걸 매니아라. 그래. 그런 셈이지. 가족들도 함께 팬이 되었으면 해서 티켓을 좀 얻어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쉽진 않군.”

“아, 저도 그 마음 알 것 같습니다. 아직 부양 가족이 없다는게 다행이군요.”

엘프들을 찾는 것보다, 엘프들을 돕는다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나이트 엔젤을 돕는 조직 ‘날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대부분은 나이트 엔젤들이 엘프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엘프들이 어디있는건지 알려주길 나이트 엔젤들에게 청했지만 나이트 엔젤들은 극비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깃털들 사이에서 조금씩 나이트 엔젤들이 엘프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엘프를 돕겠다는 원기의 생각이 되려 엘프들의 정체를 캐내게 만드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엘프들 사이에서도 바람을 읽는 이능을 발현시킨 이들이 있습니다. 다만, 기계에 약하다는 점이 아쉽군요. 저격수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엘프들은 비문명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기계 조작에 약한 면모를 보였다. 물론 새롭게 자라나는 엘프 어린이들은 좀 달랐지만, 엘프들이 완벽하게 문명의 이기를 다루는데는 꽤 오랜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물론 기계라지만 총기를 다루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엔진이 달린 기계를 다루는 것에는 익숙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자전거에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익숙해진 것에 비하면 의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다행히 인간 각성자들 가운데 모터 스포츠에 관심과 재능을 가진 인물들이 있어서 그들을 카즈키의 서폿으로 돌렸다.

그리고 프레이야 일행은 카리브 해의 한 화산섬에 도착했다.

21세기에 돌연 등장한 이 섬은 리틀 아일랜드 섬이라고 불리웠다. 화산 폭발과 동시에 나타난 이 섬을 최초로 장악한 것은 범죄조직이었다.

카리브 연안 국가들은 이 섬에 대해 공권력을 발휘할 만한 기회를 얻지 못했고, 덕분에 이 섬은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인구 약 칠천의 작은 섬이지만,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은 인구 5000이하의 소국을 비롯해서 인구 5만 이하의 국가들이 다수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리틀 아일랜드 섬은 그런 면에서 충분히 독립을 선언할 만한 규모였다. 다만 그 승인에는 미국의 힘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그 장기 이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군요. 배양된 자가 장기 이식이 되는 겁니까.”

미국 정보기관 소속의 알렉스 핸들러는 주변 경관을 살폈다. 해저에서 화산으로 분기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제법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었다.

커피, 코카인 등이 재배되는 농장들도 있었다. 대부분 미국에 수출(?)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군벌 안토니오 페론이 섬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마약 산업의 완전 폐지와 의료, 관광 산업으로의 전환을 약속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된 것은 리디아였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미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갖고 싶습니다.”

안토니오 페론은 리디아의 추종자이면서, 동시에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였다. 그의 군벌은 혁명 자금을 얻는다는 명분으로 불법적인 이권에 개입을 했지만, 리디아의 휘하에 들어가서 나타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핸들러는 CIA의 정보를 통해서 그런 내막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특정 정보기관의 소속이 아닌, 미국의 유력자들의 대리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프레이야의 장기 공장계획을 지원하기 위해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리디아님이 도착하실 시간이군요.”

“그럼 나도 이곳에서 기다리기로 하지.”

잠시후, 프레이야 일행을 실은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그리고 화물칸에서 승합차 정도의 크기를 한 화물이 내려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비행기에서 내려오는 여신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은 리디아가 프레이야 여신의 수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섬에서 벌어지는 사업이 프레이야 여신의 능력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프레이야 여신을 본 순간, 프레이야 여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프레이야 여신의 눈에는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상태창이 떠오르는 모습이 함께 보였다. 그리고 프레이야 여신은 쓴 웃음을 지었다.

보통 사람들은 프레이야 여신의 후광에 가까운 카리스마를 보고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이었다.

반면에 여신임을 알고 프레이야를 접한 이들은 그 영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별한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의 경우에 그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프레이야 여신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리디아 덕분에 강한 호의를 가지고 있던 그들이 신도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반갑습니다.”

프레이야가 그들에게 인사말을 건내자 그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조제성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된 김에 새롭게 탄생하는 이 나라의 국교를 프레이야교로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모든 국민이 프레이야 여신님을 믿게 하는 겁니다.”

“영광입니다. 이 나라를 프레이야님께 봉헌하고 싶습니다.”

“멋진 생각이십니다. 저도 전력을 다해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원기가 황당해서 반응을 못하는 사이에, 두 사람이 열렬한 찬성을 보였다. 그리고 어쩔줄 모르던 호위병들 역시 조제성이 프레이야 여신이라고 말하자, 자신들의 지도자를 따라서 고개를 숙였고 그들의 머리 위로도 스테이터스 창이 떠올랐다.

“이건 곤란 한 것 아닌가요?”

“고작 인구 일만도 훨씬 못미치는 작은 섬입니다. 이름만 국가일 뿐이지요. 이 섬에는 원주민도 없으니, 필요하다면 다른 섬으로 이주시키면 됩니다. 그리고 이 섬에 신자들을 이주시키면 됩니다. 신자들이 조금 늘어나는 정도입니다. 무기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었는데 잘 된 셈이지요. 설득할 필요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조제성이 손뼉을 치자, 컨테이너가 열리면서 붉은 인간형 로봇이 일어났다.

“여신님께서 하사하시는 건설기계일세. 그리고 이 섬에서는 이 건설기계용의 ‘연장’을 제작했으면 싶군. 꽤 쓸모 있을걸세.”

4미터를 조금 넘기는 인간형 기계는 지나치게 미끈한 인간형이었다. 그리고 그 동작은 미묘하게 둔하면서도 우아했다. 엘프 출신의 정령이 조종하기 때문이었다. 탑승한 인간이 화기를 제어하고 정령이 기체를 움직이는 형태라고 봐야 했다.

둔한 움직임을 엘프의 뛰어난 균형감각과 양 어깨에 장착된 부유석을 통해서 제어했다.

인간에 가까운 기체 디자인은 그 때문에 채택된 것이었다. 투박하게 만들수록 정령들의 적응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움직임은 인간의 움직임에 비교하면 조금 둔해 보였지만, 기계로 생각하면 대단히 빠르고 우아한 것이었다. 따라서 충분히 전투에 사용 가능한 물건이 나왔다.

건설 기계로서 각지에 수출하고, 이 섬을 비롯한 현지에서 생산한 무기로 무장을 시키는 방식을 조제성은 고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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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는 오딘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한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그것은 헬과 펜릴의 세력을 흡수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아더왕과 굴베이그였다.

굴베이그의 본래 인격, 아니 신격은 열살 남짓의 소녀였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원기이자 프레이야의 경험과 지식을 복사하듯이 가져와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굴베이그가 있었다.

이 굴베이그는 프레이야와 매우 흡사한 외형을 사용했다. 지나치게 어려보이면 사람들을 이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씨앗이 심겨져 있던 공주의 기억 또한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

굴베이그가 이 세 페르소나를 하나로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본신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소녀의 그릇이 커져야 했다.

무리하게 지식과 경험, 기억등을 집어넣으면 제대로 된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굴베이그령의 인간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프레이야로부터 받은 지식과 경험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굴베이그의 본래 인격을 재워둬야만 했다.

‘이대로는 본체가 성장할 수 없어.’

굴베이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장수한에게 연락했다. 조제성과 유혜서가 함께 리틀 아일랜드의 해안에서 휴가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원기 일행도 함께였기 때문에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체 왜 통합해야 하는 거지요? 그냥 분리해 두는게 낫지 않나요?]

마법소녀 매니아인 최찬균이 끼어들었다. 그는 굴베이그 여신이 이십대 초반의 미녀 모습과 열살 남짓의 소녀 모습을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전 마법소녀물에 빠진 오덕의 기질 탓이었다.

장수한은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의도는 어떻든 일리는 있어 보입니다. 인격을 분리해서 갖고 있는게 가능하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요? 다중 인격을 가진 신들은 신화에 보면 심심치않게 보이지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는 다르겠습니다만, 세 인격을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전쟁의 여신과 풍요의 여신처럼 말이지요.]

굴베이그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굴베이그에게 있는 공주의 기억은 공주라기보다는 여기사에 가까웠다. 여신의 씨앗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순수와 자애, 정의인가.’

자애는 더러움을 끌어안고 용서하는 그런 이미지였다. 순수와는 달랐다. 정의 또한 자애나 순수와 일치할 수 없는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인격을 통합하는게 아니라, 분리하고 공존시킨다면 본체를 강제로 잠재우지 않아도 될 터였다.

‘이능도 고르게 나눠가질 필요가 있겠지.’

여신의 아바타를 사용하는 상태에선 모든 이능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엔 막대한 신성력을 소모하게 되었다. 반면 ‘영혼’이라고 해야할지 ‘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이능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원기의 영혼 상태로도 발휘되는 이능들이 그것이었다.

총애받는 신자가 발휘할 수 있는 이능과 큰 차이가 없지만, 꽤 도움이 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굴베이그는 비숍, 나이트, 리틀 프린세스로 페르소나의 이름을 정하고 자신을 새롭게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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