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리베로의 등장
굴베이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능력은 바로 프레이야가 가진 최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니걸 통신’이었다.
‘하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
굴베이그 역시 집단 텔레파시를 이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신들이 자신들의 신봉자에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텔레파시였다.
바니걸 통신은 단순한 집단 텔레파시와는 달랐다. 프레이야의 신봉자에 대한 집착, 아니 원기의 사람에 대한 집착이 낳은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엘프와 다크엘프들이 정령으로 각성하게 된 것도,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는 원기의 집념이 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령으로 각성하는 것이 엘프와 다크엘프라는 ‘종’에 한정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엘프와 다크엘프는 온전히 ‘프레이야에 종속된 종’인 반면, 인간이라는 종, 특히 프레이야의 휘하에 있는 백성들 안에서조차 프레이야보다는 다른 신에 귀속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정령 각성을 이룰만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레이야 제국의 민심을 알게된 이후로 프레이야 여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이능 각성이 급격히 감소했다.
게다가 알지 못하고 이능을 각성하는 이들은 바니걸 통신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이능을 각성했으나 여신을 모르는 이들과 여신의 신실한 신봉자이면서 이능을 각성 못한 이들로 나눠져 있었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인 혼란의 씨앗이 될 소지가 극히 컸다.
프레이야의 바니걸 통신은 이능자들이 허튼 짓을 하지 않도록 억제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니걸 통신을 받는 자들은 당장의 경제적 문제, 혹은 국가에 정체가 알려진 탓에 국가에 소속되는 길을 걷던가, 언젠가 여신의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국가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자신을 숨기는 길을 택했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빗거나, 자신을 노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자연 이능 각성자였다. 간절한 염원과 지극히 비슷한 것이 병적인 집착이었다.
바니걸 통신을 받는 이들은 단순한 이능 각성자와는 조금 달랐다. 특히 여신의 모습을 보고 각성한 이들은 이능 각성과는 관계가 없었다.
이들은 간절한 염원을 갖기 이전에, 여신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기는 모르고 있지만, 바니걸 통신은 듣는 이들에게 꽤 큰 만족을 안겨주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고, 아껴준다는 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 정신적 만족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마약이 주는 쾌락과는 다른, 정신적 만족 곧 행복 그 자체를 주고 있었다.
쾌락을 빼앗기는 것과 행복을 빼앗기는 것 가운데 어느쪽이 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가는 말하기 어렵지만 쾌락을 빼앗기는 것이 일시적 광란을 불러온다면 행복을 빼앗기는 것은 깊고 큰 어둠을 불러온다는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데, 그것이 인간을 초월한 여신이라고 생각하니 세상, 아니 우주로부터 사랑받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바니걸 통신을 받는 이들 가운데 이미 이능을 각성한 자들을 제외하면 이능이 쉽게 각성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배부른 사자에게 행복한 인간에게 간절한 염원이라는 것은 쉽게 생겨나지 않았다.
조제성이 교묘하게 원기를 컨트롤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했다.
‘지구를 완전히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바니걸 통신을 받는 이들이 간절한 염원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 목적이기도 했다.
그저 주어진 행복이 아니라, 쟁취하지 않으면 언젠가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었다.
이능을 사용하기 위한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정신력이지만, 이능을 만드는 것은 세계수로부터 전해지는 여신의 축복이었다.
총으로 비유하면 인간의 정신력이 화약이라면, 총과 탄환을 이루는 것이 여신의 축복이었다.
여신의 축복을 충분히 받아서 각성하는 이능은 다양하고 경이적인 이능이 많았다. 물론 쓸데없는 이능도 만만치않게 많았다.
반면 여신의 축복은 단순한 계기에 불과한 이들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능들을 사용했다. 병적인 집착을 가진 이들이기에 위험성은 매우 컸다.
하지만 그 때문에 탐나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프레이야의 능력자들에 대해 알고있는 극히 일부의 슈퍼 엘리트들, 국가와 대기업들에겐 아주 매력적인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프레이야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프레이야는 국가에 소속된 능력자들에게 국가를 지키고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이외의 일에 이능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프레이야는 ‘가능한 한’, ‘되도록’ 삼가하고 ‘피치 못할 경우에’는 사용해도 좋다고 말했지만, 이는 국가의 입장에선 죽어도 쓰지 말라는 소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극히 건전한 목적과 연구 이외에는 도움이 안되는데다가 내버려둬도 사고칠 일이 없는 안전한 존재(반쯤 거세된 듯 얌전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특히 기업에 고용되는 길을 택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기업에 들키면 국가에 자진신고하고 국가 소속이 되는 것을 택했다.
반면에 이 야생 능력자들은 프레이야를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탈도 많지만 쓸모도 많은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야생 능력자들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날 경우에는 프레이야 신자인 능력자들을 활용해서 제압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었다.
야생 능력자들이 폭주하는 것을 막는 것은 국가와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프레이야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었다. 야생 능력자들이 프레이야에게 접촉하는 것을 흔히 ‘오염’이라고 표현했다. 한번 바니걸 통신을 접하게 되면 이용 가치가 사라지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야생 능력자들의 존재는 제성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제성은 프레이야에게 이들의 존재를 알리고, 교섭에 임했다.
이 야생 능력자들은 기본적으로 정신이 불안정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신자들을 늘리는 것에는 제약이 존재했다.
축복을 듬뿍 받은 바니걸 매니아들이 각성하는 편이 더 효율이 높았다.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메리트가 없었다.
그래서 제성은 야생 능력자들을 국가에서 사용하는 것을 묵인하고 그들이 프레이야 신자가 되는 것을 되도록 막는데 협조하기로 하고 대가를 챙기기까지 했다.
‘발신성 능력은 두가지가 필요하군.’
현재의 굴베이그는 지성형 굴베이그인 비숍이 될 터였다. 비숍은 자신의 능력에 바니걸 통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바니걸 통신을 자신의 이능으로서 각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투형 굴베이그인 나이트는 여전사였던 공주의 기억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나이트에게는 수신성 능력을 부여했다.
카즈키나 희연처럼 적들을 발신성 이능으로 제압해서 학살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신성 능력으로 적의 움직임이나 주변환경등을 읽는 경우가 사실 전투면에선 유리했다.
물론 카즈키나 희연을 비롯한 근접전의 달인을 상대로 할 경우엔 생각을 읽는다고 해도 유리해진다고 볼 수는 없었다.
생각과 공격이 극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뿐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상황에 맞춰서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수의 협공 등을 당할 때라든지, 방어적인 측면에서는 수신성 능력이 더 좋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굴베이그 본체에는 발신성 능력을 부여했다. 현재는 어린 굴베이그가 잠들어있지만, 다중 인격화 할 경우에는 모두 깨어서 동시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경우 비숍과 나이트의 모습을 환영의 형태로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면, 미숙한 본체가 활동할 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굴베이그는 이능을 나누면서 동시에 인격을 분리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인격의 성장과 함께 이능도 함께 성장해 나가도록 배려했다.
바니걸 통신과 버금가는 능력도 언젠가는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조용하게 명상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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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딘과 조제성은 타인을 이용할 줄 아는 교활함과 냉철함에서 닮은 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오딘의 경우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것이고, 조제성의 경우엔 ‘영원한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둘의 목적이 다르다는 데에서도 나올 수 있었다.
오딘의 목표는 완전한 지배였다. 반면 제성의 목표는 자신의 행복이었다.
이로 인해서 오딘은 공존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고, 제성은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죽이 맞던 로키가 적으로 돌아선 것도 그 때문에요, 천공의 성좌에 앉아서 모든 이의 뒤를 캐는 존재가 된 것도 그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토르와 티르는 오딘의 지배를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그들은 오딘을 신뢰하지 않았다. 오딘이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아스가르드는 척박한 대지이고, 먹여살릴 수 있는 인구는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딘은 끊임없이 전쟁을 통해서 인구를 유지하고 지배력을 굳혀왔다. 토르와 티르는 그런 오딘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키도 오딘의 의형제 답게 부하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는 요르문간드에게 오딘과의 대치를 맡겨두고 재빨리 헬과 로키의 영역을 차지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요르문간드 역시 로키의 그런 속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헬의 영역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토르와 티르를 혼돈의 대륙에 쳐넣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요르문간드와 로키가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분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오딘은 자신의 욕심을 차릴 생각을 했다.
티르와 토르를 쳐넣고 게이트를 붕괴시켜 버린다면, 그들도 펜릴과 헬처럼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차원의 문이 있고, 넘어갈 차원이 있다면 아스가르드를 통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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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와 조제성은 인형 병기, 리베로의 성능을 시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부유석을 이용하기 때문에 미묘한 부자연스러움은 있지만, 움직임은 상당히 훌륭했다.
이태리어로 자유인이라는 의미의 리베로는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운동선수를 뜻하는 용어였다.
상황에 따라서 불도져나 포크레인 등의 중장비를 대신하거나, 장갑차 등의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붙인 이름으로 꽤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멋지군요. 거북 전차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군요.”
“그동안 많은 기술자들을 섭외한 덕분입니다. 그리고 정령들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발키리는 모든 기계를 조종하는데 우수한 편이었다. 기계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뛰어난 컴퓨터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 정령들은 자연의 힘에 의지를 불어넣어 만들어지는 존재였다. 정령사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자연의 힘을 기본으로 만들어지는 영체라서 대부분 대화는 커녕 자아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령화 엘프는 달랐다.
기본적으로 자아도 있고, 의지도 있고, ‘경험!’도 있었다.
자동차에 탑재하면 간단한 조작정도나 도와주는 좀 멍청하고 둔한 인공지능이었다.
하지만 인간형 병기에 탑재시키니 이야기가 달랐다.
정령화 엘프들이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좀 지나자, 부유석 없이도 걷기 시작했다. 몸에 적응하고 걸음마까지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재 리틀 아일랜드에 가져온 리베로에는 다크 엘프의 정령이 탑재되어 있었다. 엘프의 정령이 다크 엘프의 정령들보다 우수하지만, 그들은 인간들을 싫어했다.
반면 다크엘프들은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엘프들은 인간들을 혐오하고 경계했지만, 다크엘프들은 인간들을 경멸하고 이용하려고 들었다.
인간과 접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크 엘프들이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크 엘프들의 경우 전사들은 남성이 많아서, 속칭 다크 리베로는 남성형이 많았다.
그리고 엘프의 정령을 사용한 리베로는 그에 맞춰서 하이 리베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래서 새롭게 개발되는 고성능의 하이 리베로들은 여성형의 몸체를 지니고 있었다. 엘프들과 극소수의 계약자들만 탑승하게 될 터였다.
일반인 파일럿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양산형 1호기인 다크 리베로 디아로스는 엘프들에게는 악명높은 다크 엘프의 전사였다.
나이들어 은퇴해서 어린 전사들의 스승 역할을 하다가 천명을 다한 다크 엘프들 전사 중에서도 전설적인 존재였다.
프레이가 아스 신족이었다면, 도중에 죽여서 에인페리아로 만들만한 인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신중하고 영리한 전사였던 그는 리베로에 자발적으로 이식해서 성공적으로 적응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부유석 보행기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다리 부분의 관절 유연성과 반응 속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부 부품만 개선되어도 부유석 없이 완전히 걸어다닐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엔지니어들의 예측이었다.
“마력로 문제는 어떻게 되었지요? 분명 마력로도 몇 기 입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마력로는 프레이를 통해 분석했습니다. 프레이의 분석으로는 충분히 마력로를 제작하는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마력로의 효율이 문제가 됩니다. 신성력의 소모가 너무 큽니다. 신성력이 넘쳐나는 오딘이나 로키가 아니라면 도저히...”
조제성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는 원기에게 자신에게 퍼뜩 떠오른 생각을 알렸다.
“리베로를 아스가르드에 대량 투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거북 전차의 예도 있는만큼, 아마도 오딘은 금방 베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그건 가장 경계하던 것 아니었나요?”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터로 움직이고, 오딘은 마력로로 움직이겠지요. 출력은 오딘이 더 위라고 봐야겠지만, 기계 기술은 우리쪽이 더 우월한 편입니다. 아마 오딘은 리베로와 비슷한 강력한 로봇 병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건 바로 신성력이라는 막대한 자원의 낭비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마력로를 움직이는 액체 연료는 세계수의 수액이었다. 마력로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사용하게 된다면, 오딘은 스스로의 목을 조르게 될 수도 있는 거였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요?”
“달로 튀면 됩니다. 저 넓은 우주가 우리의 대지니까요.”
조제성은 자신있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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