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93화 (293/497)

293화 달과 리베로

“달이라고요? 그정도로 진척되어 있었나요?”

프레이야의 질문에 조제성은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벌인 일이 많아서 보고가 늦어진 부분들이나 누락된 부분들이 있었다.

보고를 왜곡하거나 고의로 누락 시킨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원기 자신이 알고 있었다. 신뢰하에 합의된 것이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라는 철칙에 입각해서 조제성에게 신뢰를 주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정보조차도 조제성이 손댈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사실 바니걸 통신에는 ‘진심’이 개입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조처이기도 했다.

조제성이 곤혹스러운 것은 이런 반문을 받을 때 왠지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보고가 좀 늦어졌습니다만, 리베로들 덕분입니다.”

부유석 없이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초기 개발된 리베로였는데, 밀리터리 오덕인 호철이 ‘부유석 없어도 달에서라면 걸을 수 있지 않아요?’라는 의견을 던진 것이었다.

그래서 부유석 강탈팀을 보내기 전에, 리베로 개발팀을 달로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이제까지 정령들은 발키리에 비해서 쓸모가 없었다. 어떤 기계에든 적응해서 스펙을 최대한 발휘하는 발키리들과 달리, 고작 몇 개의 스위치를 조작하는게 고작인데다가 정확도도 떨어졌다.

발키리들은 시간을 정확하게 인식해서 0.001초 단위도 오차가 없는데, 정령들은 정령칩 앞에 시계를 달아줘야 겨우 시간을 맞추는데다가 오차도 있었다.

게다가 집중력 문제도 있어서 단순한 작업을 계속 시키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문제까지 있었다.

하지만 인간형 로봇을 다룰때는 달랐다. 발키리가 기계로서 하나하나 컨트롤하는 과정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과 달리, 그냥 자신의 몸처럼 움직이다보니 부하가 많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움직임에 적응하지 못했던 초기에는 형편없었지만, 계속 움직이다보니 ‘적응’해 버리는 것이었다.

엘프들은 귀가 크고 길뿐만 아니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귀를 움직여서 소리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보지 않고도 파악하는 것이다.

소리를 주워들이는 마이크, 곧 음향 센서를 몇 개 설치하고 귀 부분에 작동 가능한 귀형태의 집음 장치를 장착해 두니 호흡소리나 사소한 움직임 소리만으로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의 위치를 기억해 두는 것이었다.

박쥐처럼 초음파로 장애물의 위치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를 훑어보고 소리나는 곳만 확인해도 장애물의 위치를 파악하는게 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보지 않고도 발밑에 돌아다니는 인간들이나 장비들을 밟지 않을 수 있었다.

전파나 초음파를 이용한 센서보다 저가일 뿐 아니라, 정보의 해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이 이상적이었다. 다른 형태의 센서는 컴퓨터가 분석해서 정령들에게 제공해야 하고, 정령들이 그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진공 상태에서 작업할 때에는 도움이 안되는 문제가 있지만, 달기지는 외부 탐사선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지하에서만 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리베로는 아스가르드와 지구에서 사용될 것을 전제로 달기지에서 훈련을 겸한 작업에 동원되는 것이지, 진공 상태의 작업용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었다.

지구 중력의 1/6밖에 안되는 달의 저중력하에서 리베로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중력 가속도 자체도 1/6이라서 리베로에 적응 못한 엘프나 다크 엘프가 넘어지더라도 파손의 위험은 없었다.

소수의 뱀파이어와 드워프들이 만의 하나를 위한 탈출 장소로 작업하던 달기지가 리베로를 훈련시키는 중요한 장소가 된 것이었다.

중력이 작으니 리베로의 힘으로도 충분했다. 크레인이나 포크레인, 불도저에 비하면 힘이 부족하다는 결점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었다.

게다가 원래 육체 사용이 섬세한 다크 엘프와 엘프들이라 작업의 정교함이 대단히 뛰어났다.

투박하고 변변한 센서조차 없는 손으로 계란을 한알한알 주워담는게 가능할 정도였다. 그리고 작업이 빨랐다.

발키리는 학습이 필요없는 뛰어난 컴퓨터라면, 정령은 학습이 필요한 존재였다. 그리고 학습을 마치면, 그들은 완전한 생물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직도 학습중이며, 성장중이었다.

로봇의 육체를 무의식중에 완벽 이상의 자연스러움을 보이며 사용해 내고 있었다. 작업이 빨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량의 월석을 캐내고 내부에 밀폐용 금속 벽을 설치하고 리베로 생산 공장을 짓는 이런 과정이 부실공사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수의 엘프와 다크엘프들이 투입되면서 세계수의 성장도 빨라졌다. 그 결과 일만명 이상이 살 수 있는 거대 공장이 지하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적어도 일년 내에 십만 명 이상이 거주 가능한 지하 도시로 확장될 터였다. 물론 월면에서 수백미터 지하에 존재하는 만큼, 월면에서는 관측이나 확인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조제성의 애초 계획대로라면 월면 기지 정상화에 최소 5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5년이면 월면 국가를 건설할 기세였다.

“이건 완전 거대 달토끼들이로군요. 엄청나요. 역시 훌륭하세요.”

“하하. 별 말씀을요. 보고가 늦어진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동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월면 지하 공장의 모습들을 살펴본 프레이야가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성은 기쁨을 느꼈다. 프레이야가 놀라면서 기뻐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기분도 있었기 때문에 보고를 늦추는 경우도 있었다.

달 공장에서 활약하는 리베로들은 엘프들의 귀를 대신하는 집음 센서를 토끼 모양으로 설치했다. 그래서 애칭이 굴토끼였다.

“이건 마치 바니걸 같은 데요.”

다크엘프들이 타는 것은 남성형이라 흔히 수토끼라고 불렀고 엘프들이 타는 여성형은 암토끼라고 불렀다.

여성형의 경우엔 바니걸과 꽤 닮은 디자인이었지만, 바니걸이라는 호칭은 금기처럼 잘 쓰이지 않았다. 여신을 가리키는 칭호를 쓸 수는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반면 디자인은 엘프들조차 바니걸에 가까운 형태를 원했다. 여신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의 발로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의식하고 만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파츠의 교환 등이나 디자인에는 정령들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 편입니다.”

정령들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계나 복제가 가능한 컴퓨터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각각 개성이 있고 능력 차이가 있었다.

전생의 운동 신경이 달랐고, 경험량이 달랐고, 적응성이 달랐다. 과거에 영웅적 전사였다고 하더라도 자기 능력을 되살리기에 어떤 팔다리가 좋은지 잘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혹은 명필은 붓을 안가린다고, 주어진 팔다리의 능력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는 타입도 있었다.

반면 과거에 가졌던 육체보다 더 뛰어날 뿐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육체를 구성해서 뛰어난 개체로 변한 경우도 있었다.

“개체간 능력차이가 큰게 좀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조종자와 정령의 상성도 큰 문제로군요.”

엘프들은 인간을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맹수로 여겼다. 하이에나나 승냥이 같은 존재로 여겼다.

반면 다크엘프들은 멍청하고 무능한 짐승으로 여겼다. 돼지 정도로 여긴다고 볼 수 있었다.

정령들 역시 그런 성향은 지극히 컸다. 물론 현대인들과 접한 엘프들이나 다크엘프들은 꽤 달랐지만, 정령들은 대부분 아스가르드에서만 살다가 죽은 이들이었다.

기체에 적응하는 것을 보면 학습 능력은 있는데, 감정적인 부분은 쉽게 변하지 않는 듯 싶었다. 사실 정령으로 있게 만든 동기 자체가 감정적인 것인 만큼 그것이 당연할 지도 몰랐다.

따라서 전투 방법을 학습하라는 명령은 실행 가능하지만, 인간을 좋아하라는 명령은 실행이 불가능했다.

이건 인간에 대한 감정만은 아니었다. 엘프의 정령과 다크엘프의 정령들 사이에는 살의마저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정령간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적의라고 할 수 있었다.

엘프의 정령이 탄 기체에는 엘프만이, 그리고 다크엘프의 정령이 탄 기체에는 다크엘프와 인간이 탑승할 수 있다는 정도였다.

예외라면 프레이야, 그리고 장수한 정도가 있었다.

생전의 친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계약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탑승할 수 없었다.

“그거 참 난처하군요.”

프레이야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과 익숙한 엘프들의 정령이라는건 아직 없었다. 아스가르드에서 발생하는 엘프의 희생은 완전히 막을 수 없었지만, 지구에 익숙해 있는 엘프들의 희생은 최대한 막고 있었다. 대부분 게임 아바타로 활동했고, 설령 사망자가 나오더라도 에인페리아로 되살렸다.

“제가 정령이 되면 어떨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리디아가 말하자, 그에 응하듯 다른 엘프들도 자원하며 나섰다.

그 순간 프레이야의 표정이 굳었다. 진심으로 화가 났지만 화를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과는 별개로 배신감도 느껴졌다.

‘히스테리를 부릴 것 같군. 여신의 몸이라 그런가.’

원기는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백옥과도 같은 피부가 보였다. 여신의 육체는 완벽하게 인간 여성의 육체로 이뤄져 있었다. 잠도 자야했고 먹으면 싸야 했다. 더우면 땀도 났다.

호르몬의 영향도 나타나는 듯했다. 근육질에 덩치가 좋은 짬타이거 때는 왠지 더 적극적이고 대범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원기가 입을 열자, 당혹해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 몸의 내구 테스트를 안해봤네요. 한번쯤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는데.”

프레이야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을 때, 프레이야의 손이 테이블 위에 있는 나이프를 집었다. 그리고 왼손을 찍었다. 아니 찍으려고 했다. 그 순간 희연의 손이 그 손을 잡아서 막았다.

“내구 테스트야. 이 몸이 정말 상처를 입는지, 상처를 입으면 어찌되는지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겠어?”

“알 필요 없어요. 무조건 지킬 뿐이에요.”

“어른스럽지 못한 대응이다. 화가 난다고 히스테리를 부리면 안되지. 원기군.”

조제성이 화가 난 듯이 타이르자, 프레이야의 눈이 조제성의 얼굴로 향했다. 그의 눈빛에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군요. 죄송해요.”

내 마음이 아프니, 내 기분이 어떤지 한번 느껴봐라는 식의 대응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달은 원기는 한숨을 쉬었다.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맹목적인 충성심은 원치 않았다.

‘역시 프레이야 여신님인가.’

조제성은 인간적인 미숙함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더 애착이 가는 것을 느꼈다.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존재와는 동떨어졌지만, 진심으로 걱정하고 자신들을 위해 일희일비하는 존재의 사랑스러움이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