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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297화 (297/497)

297화 소년의 죽음

“예상 밖이로군요. 원기의 판단으로서는 이해가 가지만, 여신님으로서는 좀 이해가 안가네요.”

“어디가 이상한거지? 난 여신님으로서 지극히 합당한 거라고 생각되는데? 자넨 모성애가 이타주의라고 생각한건가?”

조제성의 반문에 장수한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예? 모성애가 이타주의가 아닌가요?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멍청한 소리야. 모성애가 이타주의라면 집단이기주의도 이타주의지. 그저 범위가 다를 뿐이야. 모성애는 헌신적일수는 있어도, 그리 숭고한 것은 아니야. 그저 이기주의의 범위가 가정일 뿐이지. 가정이기주의보다는 자녀이기주의라고 해야할지 모르겠군. 자기 자녀를 보호하고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남을 공격하고 죽이는 것이 자연에 존재하는 모성애의 본질이지.”

“하하.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제 생각과는 좀 다르네요.”

“자기 자녀가 굶는데, 빵을 남에게 나눠주는게 모성애인가? 빵을 훔쳐서라도 자기 자녀에게 먹이는게 모성애 아니야? 지금도 아스가르드에서 분쟁이 벌어져서 자신의 자녀들이 죽어가는데, 지구 인류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성력을 쓰는게 모성애인가?”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세상 인류를 쥐어짜서라도 아스가르드의 엘프들을 먹여살리는게 프레이야의 본분이 아닐까? 하지만 프레이야 여신님은 그렇지 않았지. 누구든 자신의 품으로 들어온 사람은 감싸안았고 그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주었지 않나.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입히려고 들지도 않았지. 그저 지키려고만 싸웠을 뿐이야. 그게 어디가 잘못된거지? 내가 본 프레이야 여신님은 좀 더 각박해도 좋다고 봐.”

장수한은 조제성의 생각을 읽었다. 조제성은 유혜서 말고는 안중에 없었다. 지금의 계약자들과 엘프들에게만 집중해 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엘프들의 불만도 이해가 갔다. 자신들의 동족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여신님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힘을 나눠주고 있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에게 힘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들이 좀 불쌍하다고 그들을 낫게하는데 힘을 쓰는 것은 달갑지 않을 터였다.

‘프레이야 여신님이 조승상을 신뢰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장수한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바라는 여신의 이미지를 어느틈엔가 기대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여신은 분명한 원칙에 따라서 일관성있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으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더 든든해졌다.

“자네, 엘프들과만 어울리다보니 한가지 잊었나보군. 왜 사람들이 엘프를 필사적으로 찾는지 생각해보게.”

장수한은 조제성의 말을 듣고 쓴 웃음을 지었다. 바니걸 통신을 듣는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바니걸은 자녀를 아끼는 어머니 같은 여신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들은 아직 완전한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한 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었다.

장수한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것 뿐이었다.

프레이야는 차별없는 절대자가 결코 아니었다. 구별하는 유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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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과가 좋게 나왔네. 내일 일반 병실이 비는데로 그리 옮겨가게 될거야.”

‘쯧쯧. 안됐지만, 네가 지상에 나갈 일은 더 이상 없을거다. 이제 지하 7층의 특별 병실에 수감될 테니.’

“악, 배가, 배가 아파요.”

오가와라는 요시다 연구원의 생각을 읽고 깜짝놀랐다. 그리고 타인의 생각을 읽고 놀랄 때마다 늘 그래왔듯이 오가와라는 꾀병을 부렸다. 순간적인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함으로써 놀란 표정을 감추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7층의 특별 병실은 오가와라가 잘 알고 있었다. 이능을 각성했거나 각성이 확실시 된 사람들이 갇히는 곳이었다. 도저히 탈출할 수도 없었고, 지금처럼 치료라고 속이지도 않았다.

늑대들이 양의 탈을 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본색을 드러낸 늑대는 한층 잔인하고 끔찍한 법이다.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아요. 토할 것 같네요.”

엘리베이터에 타면 끝장이었다. 요시다는 지하 7층으로 직행하는 버튼을 누를 것이었다.

“그래? 그냥 잠깐 참으면 안될까?”

“속이 너무 안좋아요.”

“그렇군. 그럼 잠시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쏘이는게 좋겠구나. 같이 좀 걷자.”

‘기회다. 이게 왠 일이야.’

오가와라는 내심 기뻐했다. 지상에 나가면 달아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금방 안색이 굳어졌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7층으로 내려가면 되겠지. 거기에서 토하건 설사를 하건 내가 알 바는 아냐. 아래층의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요시다는 오가와라를 부축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왔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 순간 오가와라의 몸이 내려앉으면서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어이, 괜찮아?”

“아, 예. 좀 힘들지만 괜찮아요. 바람좀 쐬면 좀 더 나아질거에요. ”

그렇게 말한 오가와라는 벽을 짚고 일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요시다는 그것을 보고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상황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어차피 이시간이면 윗층에서 이 엘리베이터를 쓸 사람도 없으니 그냥 안에서 7층 버튼을 누르면 되겠지.’

지하 연구소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지상 1층으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출퇴근 교대시에만 사용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윗층 버튼을 누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오가와라가 다시 기침을 하면서 쓰러지듯 몸을 기대왔다. 요시다는 살짝 떠밀려서 엘리베이터 안쪽 벽면에 등을 기댔다.

“괜찮은거냐? 어어어이이이…”

오가와라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지상 1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요시다의 의사 가운 주머니 안에는 유사시에 환자를 제압하기 위한 마취제 주사가 있었다. 그의 생각을 읽어온 오가와라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기대는 동시에 그의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마취제 주사를 쏜 것이다.

주사침 없이 인슐린을 쏘듯이 쏘는 방식의 마취제였기 때문에 요시다는 자신이 마취제를 맞았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오가와라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정신없이 뛰었다.

아쉽게도 치료소 1층 로비와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아니었고, 직원들만 사용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가와라는 온 힘을 다해서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려는 순간, 그의 몸이 경직되었다.

오가와라는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초능력자인 시로세였다. 원거리에서 인간의 움직임을 강제로 정지시키는 능력자였다. 그림자 묶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 능력은, 자신도 꼼짝 못하는 대신에 자신보다 약한 힘을 가진 사람을 못움직이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안돼! 이대론 안돼! 제발, 제발 움직여줘!”

오가와라는 미친듯이 발버둥쳐봤지만,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미친듯이 소리치며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니 잠겨 있지 않았지만 열 수 없었다. 그의 손은 문고리를 잡은 상태로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탈출하려고 생각한거지? 아무래도 초능력을 터득한 모양이군.”

오가와라는 그 목소리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흡수 능력자인 야부키였다. 인간의 기운을 빼앗아서 자신의 육체를 활성화시키는 능력자였다. 직접 손을 대서 사람을 기절시키는 정도의 흡수밖에는 못하지만, 그걸로 정력을 회복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오가와라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했지만 그의 어깨에 야부키의 손이 닿았고 그는 곧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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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지?”

오가와라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MRI와 비슷한 거대한 기계가 눈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검은 색의 공포스러운 기계였다.

‘MRI보다는 그래 화장터 같다.’

벽의 주위에는 영화나 게임에서만 볼 수 있었던 온갖 고문기구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몸은 꽁꽁 묶여서 화장대에 이어지는 듯한 벨트 컨베이어 위에 놓여 있었다.

“지하 7층인건가. 아니면 처형실인가?”

“대단하네. 오가와라군. 놀랐어. 자네 꽤 대단하더군.”

“타니가와 소장?”

“그래. 한번도 소개를 안했는데 잘 알고 있군. 굳이 말로 안해도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겠지. 놀라운 능력이야. 무의식을 읽을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마음속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거지.”

오가와라는 상대가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에 자백제를 사용한 듯 싶었다.

그리고 지금 곧, 자신이 죽을 거라는 예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용한 능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블러디 코어를 만들 때, 의식을 잃고 있으면 영혼이 블러디 코어에 충분히 흡수되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블러디 코어에 영혼이 흡수되었다.

그래서 오가와라가 의식을 찾게 된 것이었다.

“정말 편하군 그래.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어. 그래. 자넨 죽을 거야. 처참하게. 자네 능력은 내가 잘 써주도록 하지.”

타니가와 소장은 기분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좀처럼 나타나기 힘든 극우파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결합한 최악의 인간 말종이었다.

그는 기계를 작동시켰다. 불꽃과 송곳들이 무시무시한 움직임을 보였고, 자신을 실은 벨트 컨베이어가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오토 메이든이라는 이름을 붙인 악취미적인 기계였다.

그리고 오가와라는 그 기계에서 짧고 한많은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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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들어요?”

오가와라는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보자, 아름다운 여성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분들이 많네요. 죽어서 천국에 온게 틀림없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천사님도 옆에 계시는군요.”

오가와라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가 깨어나서 죽기 전에 본 것은 바로 전쟁의 천사 발키리였다. 그는 타니가와 소장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발키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프레이야 여신님,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외쳤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엘프인 레이니가 들었던 것이었다.

“소리가 들려요. 여신님 이름과 비슷하네요. 푸레이야 메-카-리-사-바, 다-수-케-테?”

“프레이야 메가미 사마, 다스케테?”

카즈키가 종합을 하자, 한희연이 그것을 듣고 한국말로 번역했다. 물론 원기 역시 오덕기질이 있었으므로 그정도는 굳이 번역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원기는 즉시 발키리를 풀어서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오가와라에게 발키리를 붙여준 것이었다. 발키리는 오가와라에게 그가 처한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를 구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죽는 즉시 영혼을 새로운 몸에 넣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죽는 순간의 고통을 없애줄 수 있다고 했다.

오가와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통을 없애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죽고 싶어질만한 고통은 잔뜩 맛봤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육체에서 느끼게 될 고통이라면, 놓치는 것도 왠지 아까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끝나지 않은 고통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

그는 발키리를 보내 준 여신에게 감사했다.

새롭게 받은 육체는 너무나도 상쾌하고 편안했다. 활기가 넘치고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왠지 옛 육체가 떠올라서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아쉬운 느낌이었다.

[미안하구나.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함과 안스러움이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전해졌다. 바니걸 통신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프레이야 여신의 모습이 보였다. 프레이야 여신은 소년의 손을 가볍게 쥐어 주었다.

“아니에요. 정말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오가와라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흐음. 저녀석도 나처럼 에인페리아가 된건가. 남의 생각을 읽으면 싸울 때 유리할지도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여신님의 손을 언제까지 잡고 있을 생각이지?’

오가와라의 머리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가와라는 당황했다. 혹시 여신님의 마음을 읽게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당신의 능력은 ‘일본어’를 듣는 능력이에요. 그리고 전 아직 일본어를 모른답니다. 아, 조금은 알아요. ‘야메테’, ‘소코와 다메’같은 거요.]

미소짓는 여신님의 농담에 오가와라는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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