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299화 (299/497)

299화 등업

“젠장. 엘프들은 있는데 도울 방법이 없으니.”

“저도 생각은 해보고 있습니다만, 딱히 아쉬울게 없는 이들이라…”

“사장님은 엘프들의 정체도 알고 계실정도인데도 그런가요?”

“글쎄. 프..아니 바니걸 여~님이 과연 누굴 데려가실지 어떻게 알겠나. 먼 발치에서 잠깐 뵌 것 뿐인데. 최소한의 인원만 데려가실텐데 난 정식 계약자도 아니고 한낱 계약직이니.”

사장은 소주를 한잔 들이키며 한숨을 쉬었다.

“계약직이라, 왠지 그 기분 알 것 같네요.”

차팀장은 쓴 웃음을 지었다. 바니걸 통신을 듣는 이들에게 있어서 여신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간절한 바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여신님의 본명도 알고있고, 직접 뵌적도 있는데 갈 수 없단 말이야? 앞길이 캄캄하군.’

바니걸 여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함께 데리고 가준 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하는 열망은 바니걸 통신을 듣는 누구에게나 존재했다.

“놀원님, 저희도 바니걸님하고 같이 갈 수 있는거 맞지요?”

“아, 진짜. 내가 여신이라니까. 바니걸 여신님하고 동등한 여신이야.”

“정말로 동등해요?”

“같은 여신이니까 꽤 비슷하지. 바니걸 여신님이 왕이라면 난 신하가 되는거지. 그리고 너희는 가축이하고.”

‘왠지 신하라기보다는 말단 공무원같은데.’

놀원의 친구, 아니 똘마니들 역시 바니걸 통신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추가로 놀원까지도 바니걸 통신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바니걸 통신은 펜리아 여신이 된 놀원에게도 확실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내 똘마니들 주제에 내 말을 못믿는다니.’

놀원은 내심 투덜댔지만, 프레이야가 최소한의 인간만을 데리고 갈 거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프레이야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신이 멋대로 사람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저희 엄마, 아빠도 같이 데려갈 수 있나요?”

놀원을 충실히 믿고 따르는 귀여운 외모의 여학생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 말에 잠깐 놀원은 당황했다.

“그건, 나중에 바니걸님을 만나면 물어볼께. 내가 멋대로 사람들을 데려갈 수는 없거든.”

‘동등하긴 뭐가 동등해. 완전 말단 공무원이네. 믿고 따라도 좋을지 모르겠네.’

놀원의 측근들 눈빛이 약간 싸늘해졌다. 하지만 놀원은 패왕 기질이 강하면서도 사람들이 따르고 싶어지는 카리스마를 가졌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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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함께 가고 싶어한다고요? 가족도 버리고 차원을 넘어서 가고 싶어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일단, 선택의 여지는 있었으면 하는 거겠지요. 무조건 갈 수 없다는 것보다는 원하면 갈 수 있다는게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꼭 따라간다는 법은 없지만 함께 갈 수 있는 권리 정도만이라도 확보하고 싶다는 거겠지요.”

“그런 건가요?”

“그런 겁니다. 혹시 전쟁이 난다던가, 지진이 크게 난다던가, 원전이 폭발한다던가 해서 이쪽에서 살 수 없게 되면 어쩔겁니까. 여신님 따라서 다른 세상을 갈 수 있는 것과 갈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크지요.”

“아, 그건 저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숫자 제한이 있는 건 틀림없지요? 신자를 마구 늘렸다간 템플 기사단 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것이니.”

“예. 우리가 적당한 범위를 지켜주지 않으면, 템플 기사단만이 아니라 각국의 숨겨진 지배층들이 우리를 위험분자로 간주할 겁니다. 신자 수 제한이 가장 강력한 보호장치라고 할 수 있지요.”

조제성은 조금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 유인 달탐사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그 자체만으로는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된 것은 규모였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투입된 것이었다. 이는 절대 중국 단독의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루트로 알아본 결과 중국의 유인 달탐선에 세계 각지의 자본과 기술, 인재들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쟁자인 소련과 미국의 기술까지도 투입된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엔 달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프레이야 교단이 달에 대규모 기지를 건설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세계가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아직 섣불리 판단하긴 이르지만, 안전책은 만들어 둬야겠지.’

빠져나갈 구멍을 고민하는 조제성이었다.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따라 갈 수 있는 권리라고 할지 약속을 해주자는 거로군요.”

“예. 계약자들 말고는 확실하게 아스가르드로 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으니까요.”

최소한의 인원만을 데리고 아스가르드로 간다는 원기의 생각이 바니걸 통신을 통해서 전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바심을 내는 것이기도 했다.

원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버림받는 것은 버림받는 것이었다.

“그럼, 아스가르드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는 약속을 해줄 필요가 있겠군요.”

“그렇지요. 여신님이 있는 마법과 검의 판타지 세계입니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당연하지요.”

“그도 그렇군요.”

프레이야는 살짝 미소지었다. 당분간은 일본에 여신 상태로 머무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건 그렇고, 리베로 문제는 어떻게 되었지요?”

“실전 테스트 중입니다. 작전 투입을 위해서는 손발을 맞춰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여기 영상이 있습니다.”

오딘이 (아마도) 지켜보는 가운데, 리베로의 실전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리베로와 오우거의 대결이었다.

4미터 급의 리베로와 3미터 50급의 오우거의 대결이지만, 인간형, 그것도 여성형의 몸매를 가진 리베로에 비해 고릴라와 코끼리를 합친 듯한 오우거의 몸매 때문에 리베로가 그리 커보이지는 않았다.

키크고 날렵한 여자 모델과 뚱뚱하고 다부진 전사, 아니 스모선수의 대결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이 리베로는 드워프들이 만든 갑옷을 이곳저곳에 걸친 탓에 군인과 닮은 느낌의 다크 리베로와 달리 로봇이나 기사와 더 닮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는 제법 박진감있게 흘러갔다. 붙들고 넘어진다음 몽둥이로 내리쳐서 리베로의 머리통과 어깨가 박살났고, 흥분해서 날뛰는 오우거를 다른 리베로 넷이 억지로 떼어내는 장면이 보여졌다.

“꽤 괜찮은데요?”

오딘은 비웃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오우거는 생물이었다. 오우거보다 좀 뒤쳐지는 듯 보였지만, 엘프의 균형감각을 잘 살려서 제법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거인족 에인페리아들과 붙는다면 필패는 틀림없었다.

거인족 에인페리아들이라면 오우거쯤 힘으로 눌러 잡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거인족과 리베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리베로는 무기를 장착하고 다루는 로봇의 일종이고, 토르가 자랑하는 거인족 에인페리어는 그저 강력한 거인일 뿐이었다.

거인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거나 신성력으로 창조해야 했다. 하지만 로봇은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물론 정령의 수도 한계는 있지만, 지금까지 그다지 쓸모가 없었던 정령들을 활용할 수 있었다.

부서져도 정령들이 죽을 일은 없으니 다시 만들면 끝이었다. 인원 제한이 있는 게임 캐릭터보다는 정령들이 훨씬 더 보급하기 쉬웠다.

리베로는 무적의 무기가 아니라, 양산해서 필요한 곳에 적당히 써먹는 도구였다.

“요츠비시에서 제작하는 시작품의 설계를 훔쳐서 만들었습니다. 조만간 개량 버전이 만들어질테지요. 시제품이 나올 때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만, 기대가 됩니다.”

“그럼, 오우거를 능히 상대할 수 있겠군요.”

“당분간은 아스가르드에 개량 버전을 투입할 예정은 없습니다. 오딘은 이게 시험 제작품이 아니라, 지구의 기술을 최대한 짜내서 만든 완성품이라고 생각해 줘야 하니까요. 드워프들의 세부 개량과 외부 장갑의 조종은 하겠지만 출력, 반응성, 기본 설계는 손을 대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대로도 헬의 제국에 돌입시켜서 성문을 부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군요. 오딘이 있으니.”

“언젠가 인간의 무시무시한 생산력을 보여주지요. 아마 놀라서 까무러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조제성의 말에 프레이야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했다. 바니걸 통신을 흘려도 좋을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바니걸 통신입니다. 자꾸 여러분들의 시간을 빼앗아서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저와 함께 다른 세상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이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서 불안해 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약속드립니다.

바니걸 팬클럽 정회원분들은 가시고 싶다면 저와 함께 갈 수 있는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바니걸 통신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기본 ‘준회원’입니다. 그리고 등업은 게시판 지기인 승상님께서 전담하시겠습니다.

추가로 영구준회원 분들도 승상님에게 명예정회원 자격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승상님은 제 대리인입니다. 제 현재 결정이 과거의 결정보다 우선하듯, 승상님의 현재 결정 또한 제 과거의 결정보다 우선합니다.

제가 여자는 정회원이 될 수 없다고 말했더라도, 승상님이 오늘부터는 여자도 정회원이 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면 여자도 정회원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승상님께는 등업의 권한말고 강등의 권한은 물론 강퇴의 권한도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등급의 회원분들은 지인이나 가족들을 동반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정회원의 인원수도 승상님이 조종하게 될 겁니다.

바니걸이 여신으로 있는 판타지 세계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혹시 있다면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문을 원하는 분들 모두에게 기회를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니걸 통신이 끝나는 순간, 사람들은 열쇠가 엘프가 아닌 ‘승상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젠장. 도대체 승상님이 누구인거지? 지구인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은데.’

차팀장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눈앞의 사장을 보았다. 사장은 황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승상님이시지요? 제가 첫타인가봅니다. 등업신청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하하.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무슨 일이시지요?”

“아, 차팀장? 아직 있었나? 별일 아닐세. 자넨 엘프들하고 잘해보도록 하게나. 도와줄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하이.”

사장은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회사가 있는 층으로 가버렸다.

“승상님과 직통라인이 있었나보네요. 우리 이야기도 좀 물어봐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치사하게 말이지요.”

“아마 조제성 회장님일거에요. 승상님이란 분.”

“어떻게 아신거지요?”

“차팀장님도 참 생각좀 해보세요. 엘프들이 경비서는 회사가 어딨겠어요. 바니걸님이 애지중지하는 엘프들이 경비를 서는 회사라는건, 회사가 엘프들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지금 표정을 보니, 단순히 정회원도 아니고 꽤 등급이 높은 것 같더라고요. 적어도 처자식은 충분히 데리고 갈 수 있을 정도일거에요.”

차팀장은 눈앞의 여직원 최소영을 다시 볼 수 밖에 없었다. 차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엘프 경비원에게 갔다. 그리고 조제성 승상님의 방문 스케쥴에 대해 물었다.

“조승상님? 무슨 용건이지?”

“만나게 되면, 등업좀 부탁드릴 생각입니다.”

“승상님이라면, 아무나 등업시켜주시진 않을거야. 정에 호소하는건 소용없어.”

차팀장은 그냥 솔직하게 물었다. 엘프들에게 거짓말은 안쓰는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엘프답게 별 생각없이 답변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그래서 더 신뢰가 갔다.

“소영씨가 맞았군요. 이거 참, 회장님 마음에 드는 사원이 되어야 한다니, 왠지 막막해지는군요.”

“그도 그렇군요. 업무와 관련된 능력이라도 눈을 떠야 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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