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자유 초능력자 연맹의 대두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차완식 팀장은 최소영의 추진력에 당황했다. 그녀는 대뜸 회장실로 쳐들어간 것이었다.
“사전 약속이 없이는 회장님을 뵐 수 없습니다만.”
제성 빌딩과 별개로 있는 본사인 혜서 빌딩으로 가서 다짜고짜 면회를 신청한 것이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뵙겠다는 거에요.”
“사유를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만.”
“당신이 알아도 될 비밀일지 모르겠네요. 당신 혹시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거 아닌가요?”
“예? 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최소영의 반문에 당황한 안내양이 답하자, 최소영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당신 응대를 보니, 전혀 말이 안통하네요. 비서실이라도 연결해줘요.”
“지금 회장님은 자리에 안계십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요.”
최소영은 그렇게 말하며 연락처를 남기고는 가볍게 빠져 나왔다. 차팀장은 최소영에게 휘둘리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중요한 사람이라고 만나기 힘든 건 아니에요. ‘용건 없이’ 만나는게 어려울 뿐이지, 용건만 분명하면 만나기 어렵지는 않아요.”
“최소영씨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어.”
“그건 비밀이에요.”
“숨기지 말고, 말해주면 안되겠어요? 동료인데?”
“그러니까, 비밀이라고요. 비밀. 비밀을 알고 있다는게 힘이라는 거에요.”
“아, 그 뜻이었군요.”
“예. 바니걸 여신님은 불친절한 분이 아니에요. 최대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알려주고 싶어하세요. 초능력을 각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지요. 하지만 당신의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엘프들을 도와달라고 하시면서도 엘프들이 어디있는지는 안가르쳐 주셨지요. 그리고 재상, 아니 승상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말씀해주셨지만, 누군지는 설명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그렇군요. 감추면서 좋아하실 분은 아닌 것 같으니.”
“예. 그건 비밀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는거에요. 아마도 보호하기 위해서겠지요. 엘프들도 그렇고, 우리들도 그렇고 말이지요. 우리가 여신님에 대한 비밀 정보를 알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험해 질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도움을 필요로 해요. 비밀을 퍼뜨려선 안되는데, 비밀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당장 쓸모있는 사람에게만 비밀을 알려주는 거에요. 반면 우리처럼 어느정도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도 있겠지요. 팀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을 제거하는 일은 없겠지요. 그 바니걸 여신님이라면. 그렇군요.”
“예. 비밀을 아는 사람은 당장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되도록이면 당장 쓸 수 있는 귀중한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만 비밀을 알려야겠지만, 우리처럼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재능이 있건 없건 써먹을 필요가 있겠지요.”
“재밌는 이야기로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차팀장은 흠칫 놀랐고, 최소영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섰다.
“역시 귀가 밝으시네요.”
한국말을 유창히 쓰는 백금발 여성을 보고는 최소영은 엘프라고 확신했다.
“역시 들으라고 한 소리였던 거였군요.”
“승상님 곁에 엘프들이 없으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군요.”
엘프들은 귀가 좋아서, 외국어를 배워도 발음이 틀리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도 차이가 났다.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백금발의 여성이 흔할리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일본으로 가세요. 도착하면 아마 사람이 나와있을 겁니다.”
엘프는 그렇게 말한 다음 돌아서 건물 내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집에 가서 여권을 챙긴다음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하네다 공항에 떨어지자마자,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끌려 고급 호텔로 갔다.
층별로 대여하는 고급 호텔에는 회의실과 사무실들이 고급 객실과 함께 제공되어 있었다. 잠시 응접실에서 기다리자 조제성이 등장했다.
“흠. 자네들이로군. 내가 조제성일세. 조승상이라고도 불리고 있지.”
조제성은 바짝 긴장한 두 사람을 살펴봤다. 차완식 팀장은 그냥 저냥 쓸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최소영은 조제성이 보기에도 꽤 재밌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처세술이 뛰어났다. 두뇌가 빠르게 회전함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사들의 평가는 협조성이 좋다는 것 뿐이었다.
‘헛똑똑이는 아니로군. 머리를 쓸 줄 아는 인종이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그냥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알아보기 쉽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가 좋다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머리좋은 것을 과시하는 대신에 미움이나 따돌림을 받기도 쉬웠다.
반면 머리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두뇌를 드러내야 할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으로 완전히 나누는 습성이 있었다.
그리고 최소영은 머리를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조용히 병풍처럼 존재하면서 정보를 수집하다가,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선 자네들을 얼마나 써먹을 수 있을지 알아봐야겠군. 앗차, 지금은 메신저를 쓸 수 없나. 이봐. 여신님께 연락드려. 돌아오시는데로 응접실로 와달라고 말씀드리게.”
조제성이 자리를 비우자, 비서가 그들에게 음료수를 제공했다.
“응접실이라는 건 이곳을 말하는 거겠지요?”
“아마 그렇겠지요?”
차완식은 물론이고 최소영 역시 가슴이 뛰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차완식이나 최소영은 콘서트장에서 각성한 케이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바니걸의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고, 황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덜컥 열리고 인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아름다운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조승상님은 어디?”
‘설마 했는데…’
조제성 역시 늘 게임 캐릭터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 혹은 일본처럼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에 있을 때는 본체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메신저를 쓸 수 없어서, 다른 이를 통해서 전언을 보냈다.
원기는 좀처럼 없는 조제성의 메시지를 받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달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차완식과 최소영은 프레이야의 카리스마에 위압되면서, 동시에 프레이야를 뛰어오게 만든 조제성의 존재에 대해서 압박감을 느꼈다.
“아, 오셨군요. 이 두 사람의 능력을 좀 봐주십사 해서 청했습니다.”
“그런가요. 급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군요. 두 사람의 능력은 안타깝지만 아직 개화되진 않았네요. 조만간 개화될 것 같아요. 그리고 용량은1등급 정도 되는군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에게 맡길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 저녁식사나 함께 하는 걸로 하지요. 차완식씨와 최소영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여신이 자신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조제성은 그들에게 임무를 알렸다.
“자네들, 아니 최소영양에게 맡기고 싶은 임무가 있네. 바로 야생 능력자 길드의 관리일세.”
“야생 능력자요?”
“자유 초능력자 연맹, UFE라는 것이 결성되어있네. 여신님을 모르는 능력자들이지. 그래서 주인없는 초능력자라는 뜻으로 야생이라고 부르고 있네. 자네들과는 다르다고 해야겠지.”
최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니걸 통신을 통해서 알게된 것이지만, 여신의 축복으로 초능력을 각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아직 각성하지 못했다는 것도 방금 대화로 알 수 있었다. 여신의 눈으로는 각성했는지 모르고 있는 숨겨진 능력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신님에게서 자유롭다는 뜻으로 자유 초능력자, 프리 에스퍼라고도 부르지. 유니언 오브 프리 에스퍼, 그래서 UFE일세.”
“자유보다는 유기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네요.”
최소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차완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니걸 통신을 통해 여신과의 연결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신랄하군. 유기견은 좀 심한 표현이고, 우리는 그들을 고아라고 부르지. 일부 사람들은 들개라고 표현하기도 하네.”
“그럼, 자유 초능력자 연맹은 우리의 적이 되는 건가요?”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만든 것인데.”
조제성의 말에 두 사람은 살짝 당황했다. 최소영은 질렸다고 말해야 옳을지 몰랐다.
“야생 능력자들이 각성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조직을 만들겠나. 내가 몇몇 능력자들을 보내서 그들을 조직화시켰지. 알아서 무리짓게 방치해두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나. 그래서 최소영양에게 한국 지부를 맡아줬으면 하네. 차완식군은 보좌 역할을 해주면 좋겠군.”
“그럼, 스파이 역할을 하라는 겁니까?”
“그건 아니야. 야생 능력자들은 여신님의 존재를 모르는데 어찌 적대할 생각을 하겠나. 그저 관리하면서 쓸만한 능력과 인성을 지닌 자가 있으면 알려주면 되네. 그리고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으면, 연맹의 이름으로 응징하면 되는걸세.”
“저희는 초능력이 없는데요.”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자네들에게 초능력을 쓰게 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니까.”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며 비서에게 손짓을 했다. 비서는 상자를 가지고 와서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핏빛 보석들이 보였다.
“블러디 코어라는 물건이지. 이 블러디 코어들에 손을 대보게.”
보석처럼 보여서 맨손으로 만져도 되는지 불안했지만, 그들은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다. 그러자 일부 보석이 빛이났고, 일부 보석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흠, 자네에겐 이게 어울리겠군. 중력 제어의 능력일세. 공격과 방어 모든 면에서 쓸 수 있지.”
조제성은 최소영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보석을 가리키면서 수행원 중 한사람에게 뭔가 지시를 내렸고, 수행원은 조제성이 지적한 보석을 가지고 방 밖으로 물러갔다.
“차완식군은 혹시 운동을 하지 않았나?”
“검도를 학생시절에 좀 했습니다. 그 밖에는 군대에서 해본 태권도 정도입니다.”
“그렇군. 이건 엑스칼리버라는 능력일세. 무협 소설에서 강기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그런 능력일까. 몸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무기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 총알에 맞아도 안죽게 될 수 있지.”
수행원은 역시 새로운 보석을 가지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블러디 코어라는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가지고 왔다.
“자네들은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지는 못했지만, 이 보석에 깃든 능력을 사용할 수는 있네. 다만 능력 효율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꽤 떨어지지. 하지만 야생 능력자들보다는 훨씬 뛰어나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네. 그리고 목걸이 뒤에는 작은 스위치가 있을거야. 그걸 누르면 일시적으로 몇배는 강력한 능력을 쓸 수 있게되네. 다만 귀한 것이니 함부로 쓰지 말게. 목걸이에는 각각 3회분의 증폭 연료가 들어있네.”
현자회가 만든 블러디 코어는 혈정만을 이용해서 발현되었지만, 프레이가 개량해서 이능을 가진 이들은 약 1/3가량의 효율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추가로 혈정을 이용해서 능력을 증폭시켜 사용할 수 있었다.
블러디 코어와 혈정 모두 끔찍한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현자회를 타도한 다음에 손에 넣은 것들을 그냥 폐기할 수는 없었다.
몇백회분의 혈정과 강력한 블러디 코어들이 조제성의 손에 들어온 상태였다.
혈정이 다 떨어질 즈음까지, 프레이가 세계수의 수액이나 신성력으로 대체할 방법을 찾기로 한 상태였다.
하데스의 중력조절과 카즈키의 엑스칼리버를 두 사람에게 제공했다. 굳이 증폭하지 않아도 중력 조절과 엑스칼리버라면 다른 초능력자를 압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가와라는 일본 조직 ‘노라’의 일원이 되기로 한 상태였다.
“UFE의 모임은 모두 가면을 쓴 상태로 이루어진다. 자네들은 우선 최대한 많은 이들이 나오는 모임을 계획해 주게. 그러면 거기에 가면을 쓴 여신님이 참가하실거야.”
“여신님이요? 무슨 일이지요?”
“별거 아냐. 신상털기지.”
프레이야 여신은 신자들에 한해서 세부 프로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야생 능력자들 역시 세부 프로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들 역시 프레이야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초능력자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 들여주는 것은 아니었군. 인원 제한은 꽤 엄격한 것 같은데.’
“저희는 그럼 정회원이 될 수 있는 겁니까?”
“이미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아.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자네들을 강등시키거나 강퇴시킬 생각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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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달탐사 계획이 급하게 추진된 것은 바로 프레이야의 월면 지하 기지 때문이었다. 지하 수백미터에서 공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외부에서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달 탐사선에서 보내진 탐사장비 중에는 지진 관측기가 있었다.
그리고 공사가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지진 관측기가 그것을 탐지해서 보고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중국의 유인 달탐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미국측이 그 프로젝트에 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뛰어들자, 러시아와 일본까지 숟가락을 얹게 된 것이었다.
조제성은 발키리를 통한 염탐으로 이런 정보들을 얻게 되었다.
‘이거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시기가 다가오고 있군. 뱀파이어 퀸 포획 작전이 잘 풀려나가고 있다는게 다행인가.’
조제성은 오사카 마린, 곧 멀린을 떠올리고 미소지었다. 장수한은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여러모로 쓸모있는 능력자였다. 여러 이종족들의 호감을 얻어내는 점도 상당히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뭔가를 믿고 맡기기엔 좀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먼 부분이 걸렸다.
곁에 두고 다니는 두 오덕들은 그런 보스의 부족함을 매꾸기는커녕 더 크게 벌이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결국 조제성이 감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서 좀 불편했다.
하지만 멀린은 달랐다. 경험치는 오히려 조제성보다 풍부했고, 충분히 냉철하며 충분히 완벽주의자였다.
아더왕과 랜슬롯, 멀린의 조합은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뱀파이어 포획 작전은 멀린에게 맡긴 상태였다.
리베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작전도 멀린이 짜고 있었다. 그리고 최소영에게서 조제성 자신이나 멀린과 비슷한 속성을 발견했다.
머리가 좋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머리를 쓸 줄 아는 것이다.
‘잘하면 짐을 좀 덜 수 있겠군.’
조제성은 회의의 연속으로 쉴틈도 없음을 느끼면서 한숨을 쉬었다. 빨리 은퇴해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인 그의 성격 탓에 안심하고 은퇴할 상황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조제성이라는 보루가 있기 때문에 박원기도 장수한도 프레이도 자신들 하고 싶은데로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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