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떡밥깔기.
“고민입니다. 우리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는지.”
조제성은 세스룸니르의 회의실에서 트리아 여제와 장수한을 불러놓고 연극을 시작했다.
오딘이 가장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대상은 역시 조제성이었다. 조제성이 회의실에 나타나면, 오딘이 지켜보고 있다는 반응이 거의 백퍼센트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장수한은 내심 피식 웃었다. 오딘과 조제성은 꽤 닮은 꼴이었다. 다만 집착의 대상이 다를 뿐이었다. 인간 욕망의 덩어리가 구현된 것이 오딘이었다. 오딘의 본질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지혜라기보다는 교활함과 배신이 그의 본질이었다.
반면 조제성은 아쉬울게 없는 인간이었다. 부에 의해서 타락되기엔 그의 지능이 너무 높았다. 그는 세상 만사의 허무함을 알았고, 쾌락의 지루함도 깨달았다. 인간은 인간을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인간에게 굶주렸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가진 힘에 이끌리는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과 인간적인 소통은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것을 가졌기에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 커졌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유혜서가 나타난 순간, 덥썩 물고는 절대 안놔줄 기세로 매달린 것이기도 했다.
원기와 조제성의 비슷한 점과 상이한 점이기도 했다. 원기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권력도 없었다. 하지만 돈과 권력이 있다한들 건강이 없는 그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원기는 자신의 사람에게 집착했다.
조제성이 자신을 봐주는 단 하나의 사람에게 집착했다면, 원기는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집착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원기 역시 여신이 아닌 자신을 봐주는 사람을 은연중에 원하게 되었고, 그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는 것도 조제성이었다.
사랑의 유통기간은 의학자들에 따르면 3년이라고 한다. 사랑할 때 분비된다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의 양으로 따지는 것이었다.
사랑에는 유통기간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집착에는 유통기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딘도, 조제성도, 원기도 그런 면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여신님의 의견은 어떻게 되지요?”
“제게 일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어깨가 무겁군요.”
“형님 생각을 말씀해 주시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만.”
“일단 선택지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움직일 것인가, 몸을 낮추고 이 환란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것인가.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엔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될거라고 봅니다.”
“그 이유가 뭐지요?”
트리아의 질문에 조제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열차포의 등장입니다. 오딘은 로봇병기와 열차포를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우리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열차포와 로봇 병기인 리베로를 준비하고 있지요. 열차포나 리베로가 외부에 노출된 적은 없지만, 이미 깔려있는 철도 때문에라도 우리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향할 겁니다. 나치의 군대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오딘은 우리가 미드가르드와 소통할 수 있는 게이트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의심할 것입니다. 아니 이미 확신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추가로 오딘에 반대하는 세력은 우리와 오딘이 연결되어 있을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오딘을 치기 전에 우리를 친다는 선택도 가능하지요.”
“그렇군요. 타당한 이야기에요.”
“대처 방법은 없는 겁니까? 이대로라면 절대적인 위기인 셈인데.”
“최악의 경우에는 확실한 대처 방법이 하나 있지요. 미드가르드로 전면 철수를 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차원 게이트를 모두 닫아버리는 겁니다. 인간들까지는 무리지만, 엘프와 다크엘프들이라면 모두 거둬서 철수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무리해서 이곳에 교두보를 열어둘 필요는 없습니다. 엘프들과 다크엘프들만의 안전이라면 어렵지않게 확보할 수 있지요. 차원 게이트의 경우에는 안정성 확보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지요. 실제로 차원의 틈새에 빠져서 영원히 미아가 되어버린 이들도 많습니다. 이쪽 세계로 물자를 옮기기 위해서도 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야 했지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손에 쥐고온 물건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건 정말 당혹스러웠군요. 물자라면 모를까, 인간도 그꼴을 당할 수 있다는건.”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사이의 접점이 불확실한 경우엔 발생할 수 있는 문제지요. 아마 펜릴과 헬이 사라져버린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오딘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원게이트의 비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확신했다. 뭔가 처리를 하지 않으면, 아스가르드에 속하지 않은 존재는 아스가르드로 오지 못하고 차원의 틈새로 사라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블러드 라인 2의 모순이 풀렸다.
그리고 한가지 더 조제성은 교묘하게 오딘을 압박했다. 여차하면 모두 던지고 지구로 도망가서 퇴로를 끊어버릴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딘에게 있어서는 강력한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스가르드만의 제패,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오딘이 아니었다. 게다가 후환을 남겨두는 셈이 되었다. 프레이야 세력이 모조리 떠난 후 강력해져서 돌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아스가르드만이 아니라 미드가르드까지 제패하는 것, 가능하면 유일신이 되는 것이 오딘의 속내였다.
“움직인다면, 어떤 쪽으로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일단 오딘이 우리가 가진 기술들이 귀찮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술들이지요. 그리고 식량을 비롯한 자원을 공급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딘과 적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봐야 합니다. 오딘이 우리를 먼저 노릴 가능성이 큽니다. 프레이야 여신님은 되도록 자기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하는 분인데다가, 다른 이들이 순순히 지원해줄 보장은 없습니다. 반면 오딘과 손을 잡을 경우엔, 우린 그냥 오딘의 열화 복제품에 지나지 않게 되겠지요. 우릴 우선적으로 노릴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그리고…”
조제성은 잠깐 말을 끌었다.
“로키의 세력 역시 내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펜릴과 헬이 차원의 틈새에 떨어진 것이 토르와 티르의 반발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 사실을 생각하면, 펜릴과 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세력들은 로키에 반발할 수 있습니다. 요르문간드가 그 사실을 지적한다면, 펜릴과 헬의 잔존 세력들은 요르문간드를 중심으로 뭉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펜릴제국과 교류를 해왔으니, 그걸 확대하면 됩니다. 리베로를 비롯한 무기와 식량 등을 펜릴 제국에 제공하고 그걸 토대로 요르문간드가 로키를 누르고 거인족 최고신으로 등극하게 만들면 됩니다. 펜릴과 헬을 로키의 함정인 차원의 틈새에서 꺼내기 위해서라도 요르문간드가 거인족 최고신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펜릴 제국과 헬 제국은 기꺼이 요르문간드의 편이 될 겁니다.”
“잠깐만요. 펜릴과 헬을 차원의 틈새에서 꺼낼 수 있나요?”
트리아 여제가 반문하자, 조제성은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요르문간드가 최고신이 된 다음에, 불가능하다는게 알려진다고 그가 화를 낼 것 같지는 않군요. 미리 넌지시 알려줘도 되겠지요.”
조제성의 작전은 오딘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었다. 조제성의 아이디어는 오딘이 추진하는 것보다 더 매끄러운 면이 있었다.
“거인족의 내분을 이용해서 로키와 싸운다는 거로군요.”
“잘하면 오딘과 협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제가 보기엔 로키보다는 오딘이 더 강력합니다. 로키의 비장의 수단인 혼돈의 대륙은 오딘에게 반쯤 빼앗긴 상태이고, 오딘은 나치와 손을 잡았으니 어떤 카드가 더 나올지 모르지요.”
“오딘과 손을 잡는게 현명한 선택일까요?”
“어차피 우리는 이쪽 세상에서 생존하는 것만이 목표입니다. 우리를 살려두는 것이 이득이라는 사실만 납득시키면 가능하지요.”
“무리한 요구를 해오지는 않을까요?”
“그때는 별 수 없지요. 모두 접고서 도망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미드가르드의 기반에만 의지하는 것은 어렵겠습니다만.”
오딘이 듣고 있을 것을 고려한 논의는 세심하게 진행되었다. 연극이라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토론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교섭용 최종 카드로서 주어진 것은 화약과 휘발유, 경유였다.
“이게 우리를 공격하는데 쓰이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는게 문제군요.”
“중요한 것은 이게 소모품이라는 겁니다. 전쟁 중에 상당량 소모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공격 받으면, 우리로서는 도망가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인질을 요구받거나, 기술을 요구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그렇군요. 프레이야님이나 굴베이그님을 요구받는다면, 그건 최악이 되겠지요.”
“한번 사절을 보내볼 필요는 있습니다. 사실 토르와 손을 잡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요. 나치의 병기들에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으니.”
오딘이 듣고있다는 것을 의식한 발언들이었다. 제대로 낚인다면, 화약과 석유를 통해서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
슈탈 크리그는 하우니브라는 원반형 비행 유닛과 크리그로 불리우는 로봇 유닛이 결합된 기체로, 원반이 백팩처럼 등에 붙어있는 형태였다.
공중에 뜨는 부유석을 발견한 나치는 이 놀라운 물질을 이용해서 전투 비행체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일단 하늘에 뜨긴 뜨지만, 지나치게 무거웠다.
공중에 뜬 배라고 봐도 좋았다. 프로펠러는 물론이고 제트엔진을 달아도 속도가 나오질 않았다. 원반형으로 만드니 방향전환은 쉽게 되는 편이었다.
결국 하우니브는 전투기보다는 헬리콥터와 비슷했지만, 훨씬 무겁고 느린 물건이 되어 버렸다. 결정적으로 부유석의 추가 입수가 불가능해서 양산도 불가능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초기에 만들어진 하우니브들은 미군이 재빨리 입수해서 비밀리에 옮겨져서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부유석의 입수 경로를 몰라서 나치의 기술력에 감탄했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정 고도에 떠있으려고 하는 돌덩어리와, 그 돌덩어리에 적당히 붙여놓은 양철 껍데기, 그리고 기관총이 있을 뿐이었다.
헬리콥터가 개량되고 성능이 향상되면서, 정체모를 원반형 고철로서 미국의 비밀 창고에 보관되고 있었다.
포탈을 탐색하러 보내진 나치 친위대들은 넘쳐나는 부유석을 이용해서 원반형 비행체를 개발하고자 했지만, 그 한계는 명확했다.
결국 느려터진 원반형 헬리콥터에 지나지 않았다.
크리그를 부착해서 적을 공격하는데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한 것 뿐이었다.
크리그는 양손을 이용해서 총이나 칼, 창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공격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땅에 내려서면 빠르게 걸을 수 있었다.
마력로를 이용해서 프로펠러를 돌리는 것보다 다리를 이용해서 걷는 것이 빠르다는 모순을 가진 장비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