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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08화 (308/497)

308화 퀸

연하와 계약을 맺은 정령, 윈드는 자신의 새로운 몸이 될 리베로를 점검했다.

‘운동신경이 완전히 초기화되었군. 그래도 전에 움직여 본 경험이 있으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네.’

리베로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확실히 작아보였다. 인간들도 작아 보여서 어색한 것 같았다.

엘프 정령들은 자신들의 과거와 인연은 끊어졌다고 생각했기에, 과거의 이름을 버렸다. 정령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프레이야 여신을 위해서 도구가 되는 것, 프레이야 여신과 엘프들, 그리고 여신의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의의였다.

그 미련이 그들의 혼을 정령의 형태로 이 세상에 머무르게 만들고 있었다.

‘이 아이의 이능은 장난이 아니군.’

윈드는 연하의 이능을 보면서, 이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보는 이능도 뛰어나지만,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이능도 굉장했다.

그리고 연하는 자신의 이능을 제대로 자각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저 목표를 명중시키는 것만이 능력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윈드는 백전연마의 엘프 여전사였기에, 전쟁은 적을 죽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의 목표는 승리였다. 그리고 승리를 위해서는 효과적으로 적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했다. 적을 죽이는 것도 결국은 적을 무력화하고 통제하는 수단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오크 군단이 오우거들을 비롯한 몬스터들과 함께 날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헬이 흡수 능력을 이용한 몬스터들을 만들었다면, 로키는 방출 능력을 이용하는 몬스터들을 만들었다.

오크와 트롤, 오우거 등이 바로 로키의 몬스터들로 이들은 평소에 모아둔 에너지를 전투시에 방출함으로써 강해졌다.

펜릴의 수인족들의 변신도 몬스터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이나 엘프 등 생물로서 완성된 경우, 이능은 육체를 강화시키지만 변화는 못시켰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이능을 통해서 육체 자체가 변화되는 것이 가능했다.

오크들은 광폭화라고 해서, 평소의 녹색 피부가 전투시에는 붉게 변하면서 두배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트롤들은 전투중에 비정상적인 회복 속도를 자랑하게 되었다.

오우거는 피부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저격총의 관통력을 능가하는 에인페리아가 쏘는 화살도 튕겨낼 정도였다.

일거에 능력을 증폭시키고 달려드는 오크 무리에 뱀파이어들은 필사적으로 막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우거 수십마리가 날뛰는 상황에서는 성벽도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좋아. 작전대로 실시한다.”

멀린의 지시가 떨어지자, 연하의 리베로 윈드가 그레네이드를 들고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연하는 감으로 화살을 날려대는 편이었다. 강력해 보이는 적들을 제거해 나가면 된다는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연하는 단순한 궁수였다. 타겟이 있으면 타겟을 명중시킨다. 그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반면 윈드는 연하와 달리 명사수가 아니었다. 생전에 그녀의 활솜씨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 속도는 꽤 느린 편이었다.

감으로 쏴서 척척 맞추는 연하 같은 존재를 부러워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결점을 지혜를 통해서 매워나갔다.

그녀는 궁수가 되는 대신 사냥꾼이 되는 길을 택했다. 사냥꾼은 사냥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사냥감의 습성을 알고 생각을 읽는다.

사냥감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덫을 파고 미리 매복해서 찬스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부족한 활솜씨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오크 무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오우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프레이야가 엘프들의 숲에 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오우거의 무릎을 노려.’

윈드의 생각이 연하에게 전달되었다. 오우거들의 전투 모드는 상처를 입음과 함께 발동되었다. 그리고 연하의 경우에는 전투 모드에 들어서기 전의 오우거라면 헤드샷으로 일격에 죽일 수 있었다.

그녀는 의문을 가졌지만, 윈드의 말에 따랐다. 윈드가 경험많은 엘프 전사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호흡을 고르고 활을 겨누는 순간, 갑자기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된거지?’

연하는 영문을 몰랐지만, 마음이 왠지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경지수의 경지와도 비슷한 극도로 평온하고 냉정한 마음 상태가 이어졌다. 세상 모든게 느리게 움직이는 듯 보였다.

새로운 이능이 각성한 것이었다.

‘연하의 이능 가운데 이런 능력도 있었나? 이런 능력이 내게 있었다면 어땠을려나.’

윈드는 자신의 부족한 사격 능력을 매워줄 이능의 존재에 부럽다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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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정령이라는게 참 요상한 존재야.”

아스가르드에서는 죽은이들이 정령화 되는 현상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사실 말이 정령이지, 유령이라고 하는게 옳을지도 몰랐다.

그들이 극히 평화로운 존재이며,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존재이기에 정령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장수한과 프레이는 정령의 존재를 통해서 이능에 접근해 나갔다. 정령은 생전의 이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블러디 코어에는 ‘이능’은 있지만 영혼도 없고 운동신경도 없었다. 운동신경이 백이고, 영혼이 혼이라면 블러디 코어는 ‘백’에 가까운 존재이기는 해도 백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통해서 장수한과 프레이는 이능의 실체에 좀 더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정령과 블러디코어, 그리고 리베로.

이 세가지가 인간의 영혼이 가진 구조를 명확하게 해줬다고 할 수 있었다.

정령들은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지극히 평화롭고 조화로웠지만 무기력했다.

인간의 정신은 혼과 백으로 나뉜다면, 모든 욕구는 육체로부터 비롯되었다. 피곤하면 자고 싶어지고, 배고프면 먹고 싶어진다. 종족 번식이 하고 싶어지는 것도 육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개나 고양이가 수술로 성욕에서 해방되는 것도 그때문이었다.

문제는 백과 혼이 섞이는 부분이었다.

인간의 욕구는 육체에서 비롯되지만, 때로는 그것이 정신을 물들이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 욕구가 바로 그것이었다.

육체가 충족되면 대부분의 욕구는 사라진다. 하지만 정신적 욕구는 만족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가 있나? 육체가 충족되었는데 욕구가 계속 남아있는?]

프레이의 질문에 장수한은 피식 웃었다.

“내가 군대에 갔을 때 말이지, 하루는 카레가 엄청 먹고 싶더라고. 하지만 메뉴를 내가 고를 수는 없으니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카레가 나온거야. 목구멍에 찰때까지 먹었는데도 왠지 충족이 안되더군.”

[그냥 식탐이 아닌가?]

“글쎄. 그건 모르지. 하지만 마음의 상처나 특정한 사건, 경험 등이 집착을 낳는 경우가 있어. 집착은 채워지지 않는 변질된 욕구의 일종이라고 해야겠지.”

프레이는 의외로 인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꽤 오랜 시간을 신으로서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부분이었다.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는 부모의 심정을 모른다는 말처럼, 신으로 태어난 자는 인간의 심리를 완전히 알 수는 없을지도 몰랐다.

‘이건 약점이라고도 볼 수 있으려나. 제성형님에게 이야기 해봐야겠는걸.’

기본적인 욕구와 쾌감은 육체에서 얻어지는 것이고, 하위 백과 연결되어 있었다. 혈정은 이 하위 백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위 백과 상위 혼 사이에 존재하는 중위 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정신적 욕구이자 이능이었다.

“혹시 정령을 통해서 이능이 각성되는 경우는 없을려나? 백을 공유하는거니까 말이야.”

[네 이론대로라면 가능하겠지. 혼과 백의 연결에서 변질된 욕구인 집착이 생겨난다면 정령 역시 혼이 될 테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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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는 화살을 당기고 쏘는 과정에서 주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오우거들의 무릎에 화살을 날렸다.

한쪽 무릎에 화살을 맞는 순간, 오우거의 특수 능력인 육체 경화가 실행되었지만, 육체 경화가 채 발동되기도 전에 다른 쪽 무릎에도 화살이 적중했다.

장수한이 과거에 즐기던 게임에서 이름을 딴 연하의 이능 ‘블릿 타임’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연하는 자신의 사격 능력에 아쉬움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각성할 수 없는 이능이기도 했다.

하지만 연하와 이 이능의 결합은 연하가 자랑하는 사격 능력을 몇배로 강화시켜주는 강력한 이능이었다.

동시에 멀린과 연하의 리베로가 최루탄을 연사하기 시작했다.

성 주위가 매캐한 연기로 가득찼다. 오크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서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정신이 쏙 빠지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마찬가지로 패닉에 빠진 오우거들이 있었다. 다리를 당한 극심한 고통과 매캐한 연기, 눈을 뜰 수 없는 극통도 있는데다가 눈을 떠도 연막 때문에 주위가 보이지 않았다.

정신 지배를 하는 오크들의 집중이 깨어진 탓에 오우거들의 패닉을 진정시켜주지도 못했다.

새끼 시절부터 오크들에게 길러져 온 오우거들은 정신 지배가 없어도 오크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상태였다. 오크 부족들 간의 전쟁에도 오우거들이 동원되는 만큼, 오크를 죽이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 전에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지 못했다.

오우거들은 미친 듯이 곤봉을 휘둘러댔다. 움직이는 모든 것을 향해서 미친 듯이 공격해대기 시작했다. 양 무릎에 화살을 맞아서 무릎을 꿇고 있는 오우거들이 미친 듯이 곤봉을 휘둘러대자 주위의 오크들이 죽어 나갔다. 으깨지고 터지고 날아가는 오크들의 모습은 참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숨을 멈춰라! 눈을 감아!”

뱀파이어들은 그렇게 외쳤다. 뱀파이어는 헬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자, 실패작이었다.

그들은 생명이라기보다는 인체 성분으로 만들어진 기계에 가까웠다. 그래서 호흡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다. 진공에 노출되어도 죽지 않는 존재였다. 살아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살과 뼈로 만들어진 로봇에 가까운 존재지만, 작동하는 모든 부품은 살과 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했다.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눈이 필요했다. 최루탄의 효과는 그들에게도 작용했다. 숨을 안쉬고 며칠이라도 버틸 수 있는 그들이지만, 눈과 목 모든 점막의 고통은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연기를 토해내기 위해 기침을 하면서 연기를 들이 마셨기 때문에 오크들만큼은 아니지만 최루탄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엘프들은 방독면을 쓴 채 최루탄 연기를 피해서 나오는 오크들을 향해서 사격을 했다. 오크들의 피부색은 대부분 녹색이었다. 전의가 불타오르면 피부가 붉게 물드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얼마나 혼란에 빠진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총이 통하지 않는 오크 성기사와 오크 신관 등은 아더와 랜슬롯, 그리고 나이트 굴베이그가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리베로는 최루탄 연기속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닥치는대로 학살을 하고 있었다.

아더와 랜슬롯, 나이트 굴베이그는 방독면이 아닌 산소 봄베가 연결된 소방용 특수 헬멧을 사용했다. 방독면을 쓰고서는 호흡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혼란을 틈타 내부로 잠입한 원기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은빛 호랑이와 붉은 여우, 푸른 여우가 바로 그들이었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군.”

연기가 꽉꽉 들어차서 앞이 아예 안보일 정도였다. 빛이 차단되어서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하의 이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의 외부에서 바람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그녀의 이능을 이용해서 윈드는 최루탄의 연기가 모조리 요새 내부로 흘러들어가도록 최루탄을 뿌려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내부는 호흡이 극도로 곤란한 지경이었다.

뱀파이어들은 호흡을 안해도 죽지는 않지만, 근력이나 사고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반쯤 가사 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동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비실비실대는 뱀파이어들을 피하면서 원기 일행은 발키리의 안내를 따라 성 가장 깊숙한 곳, 퀸의 거처로 뛰어들어갔다.

“네 녀석들은 누구냐?”

예상 외로 퀸은 당당한 모습이었다. 성기사들이나 신관들이라해도 최루탄의 피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신성력은 상처나 몸의 이상을 회복시키는 치유와, 몸의 변질을 막아주는 보호의 두가지가 대표적이었다. 보호의 경우에는 극독은 물론이고 병균이나 방사능까지도 막아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루탄은 그 어느쪽도 아니었다.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도 아니었고, 몸에 침투해서 내부를 변질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이능을 쓴 걸까요?]

희연이 메시지로 물었다.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희연의 이능인 쪼렙 학살은 통하지 않았다.

원기의 페인 마스터리를 사용하는 방법 말고는 상처입히지 않고 포획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원기에게서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조사가 부족한 모양이군. 날 습격하는데 수컷을 데리고 오다니. 헬 여신님의 총애를 받는 내게 말이지.”

희연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하지만 어깨에 부상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무의식중에 검을 휘두르려고 하다가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회피가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원기의 손톱이 그녀의 어깨를 할퀴고 지나간 것이었다.

뱀파이어 퀸은 헬이 가장 믿고 아끼는 수하이자 에인페리아였다. 헬의 총애를 받는 만큼 그 이능도 강력할 수 밖에 없었다.

뱀파이어라는 종족 자체가 인간의 생기를 빨아먹고 그 인간을 하수인으로 부릴 수 있는 정신 지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뱀파이어 퀸은 그것을 강화한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이 꼬인 것 같네. 죽여도 되는 거지?”

카즈키는 그렇게 말하며 엑스칼리버의 기운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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