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09화 (309/497)

309화 퀸의 이능

“뱀파이어 퀸에게 매혹의 이능이 있다는 사실은 왜 안알려준거지?”

“설마, 내가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 아이의 비밀을 밝힐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장수한은 헬의 이야기에 할 말이 없었다. 뱀파이어 퀸의 정보를 헬이 알려주는 것은 로키가 헬을 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가 아니면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헬은 마음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었지만 열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몰랐다.

“뱀파이어 퀸이 온다면, 약속은 지킬거야. 그런 년이지.”

펜릴이 장수한의 어깨를 두들겼다. 카즈키는 몰라도 희연의 강함은 펜릴이 잘 알고 있었다. 원기의 숨겨진 능력 페인 마스터리는 일종의 필살기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 필살기에만 주의한다면, 희연이나 카즈키가 원기에게 패할 일은 없다고 보았다.

뱀파이어 퀸은 전투형 에인페리아라기보다는 신의 대리자에 가까운 에인페리아라서 일신의 전투 능력만으로는 희연을 당할 수 없을 터였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 반칙 같은 능력이 있으니. 죽여놓고 부활 쿨타임이 오기 전에 뱀파이어 퀸을 정리할 수 있겠지.”

펜릴은 그렇게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수한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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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무섭잖아.’

카즈키는 핀치에 몰려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원기는 무시무시했다. 카즈키의 가시형 엑스칼리버가 날아오는 것들을 거의 무시하듯이 치고 들어왔다.

원기의 신체는 전투에 이상적인 근육질 거구였다. 게다가 원기의 전투 경험은 결코 적지 않았다. 숱하게 죽어본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맞은 공격의 숫자는 셀 수도 없었다.

수많은 공격을 당하면서 최후까지 버티다가 죽는 비참할 정도로 처절한 전투 방식을 거듭해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상대의 공격이 날아오는 순간, 직감적으로 어느정도의 타격이 있을지를 알 수 있었고,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원기 자신이 평소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성향의 문제였다.

희연이라는 뛰어난 공격력을 가진 학살자가 있기 때문에, 원기는 막아주면서 시간을 버는 수비적인 전투 방식을 취해왔다.

그래서 전체적인 비중을 방어에 뒀다. 그리고 적이라고 해도 죽이는 것보다는 제압하는 것을 선호했다.

원기가 쌍검을 들고 전장에 나서는 것은 다른 이들이 죽어나가는 대규모 전장이었다. 소규모 전투, 주변에 있는 동료가 에인페리아거나 게임 캐릭터들이라 동료를 잃을 걱정이 없는 전투에선 죽이는 것보다는 제압하는 것을 선호했다.

제압에 특화된 능력인 페인 마스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뱀파이어 퀸에게 정신 지배를 당해서 퀸의 적을 죽이는데만 집중하는 원기는 전혀 달랐다.

자신이 입는 피해보다 상대에게 큰 손해를 주는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방어는 최소한에 머물렀다. 무기사랑과 유사한 신체강화의 기술을 이용해서 뼈와 장기만 보호하며, 상대가 공격을 받은 상태에서 반격에 들어갔다.

카즈키가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 사용하는 예측하기 힘든 공격에 원기는 무방비로 노출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소한의 대처는 하고 있었다.

수많은 화살 공격이나 몰매를 맞아본 경험이 있었다. 이런 공격에 대처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몸을 최대한 웅크려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곳만을 보호하고, 왠만한 공격은 몸으로 버티는 거였다.

검에 동반된 엑스칼리버의 이능은 치명적이었지만, 그 외의 공격은 그렇게까지 치명적이진 않았다. 왠만한 공격은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죽이는데 집중하다보니, 제압용 기술인 페인 마스터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카즈키는 오히려 목숨을 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정상적이었으면, 벌써 다섯번은 죽었겠군. 아니, 정상적이었으면 이런 꼴은 안당했나.’

평소의 원기는 제압만을 노리는데다가, 방어적이어서 카즈키는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재미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원기가 공격을 무시하고 역습에 나오니,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발목을 잡아채서 바닥에 내동댕이 쳤을 때는 엑스칼리버의 이능이 없으면 즉사했을 수도 있었다.

페인 마스터리를 썼다면, 저항 능력을 잃고 그대로 죽었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퀸을 공격하려던 희연을 뒤에서 공격해서 추가 부상을 입히기까지 했다.

결국 희연도 퀸을 노려야 할지, 원기를 먼저 제압해야 할지 망설였다.

퀸은 방패와 채찍을 사용했는데, 둘 모두 헬 여신의 아티팩트였다. 스스로 알아서 적을 공격하는 쌍갈래의 채찍과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넓은 부분을 완벽하게 막아주는 방패는 희연으로서도 어찌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특히 방패는 사용자를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막아주는 신기였다.

‘저렇게 강력한 이능이라면 뭔가 조건이 있을거야.’

희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희연의 쪼렙 학살은 ‘자신보다 명백히 약한 적’이라는 조건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동안의 경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퀸이라고 해도 ‘남성이라는 조건’ 하나만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조종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었다.

‘제한 시간도 너무 길어.’

희연의 부상은 원기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희연의 무기사랑과 검술이 한데 어우러지면 원기의 방어를 상회하는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초반에 기습으로 부상을 당한 탓에, 충분한 공격이 불가능했다. 어깨가 깊이 파인 상태에서 등에까지 한 방 당한 탓에 강력한 일격을 가할 수 없었다.

퀸의 채찍은 팔에 붙은 방어구를 무기 사랑으로 강화하는 정도로 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희연은 카즈키가 원기를 상대하는 것을 도우면서 원기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에서 미묘한 부분을 발견했다. 등을 보이기를 꺼리는 것이었다.

물론 적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원기처럼 저돌적이고 공격적이면서, 등을 조금도 보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적을 향해 뛰어듬으로써 후면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원기도 즐겨 사용하던 전투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희연은 원기의 목덜미에 얼핏 보이는 작은 혹을 발견했다. 갑옷의 목부분에 감춰져서 잘 몰랐지만, 박쥐였다. 희연은 그것을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가장 큰 조건 중 하나를 발견한 듯 싶었다.

[목 뒤쪽에 박쥐가 붙어있어. 저걸 해치울 수 있겠어?]

희연의 메시지에 카즈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즈키는 원기와 격돌하면서 검을 놓쳤다. 이것은 고의적인 것이었다. 원기는 그 순간 희연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것을 깨닫고 희연에게 대처하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즈키의 손에서 엑스칼리버가 가늘게 뻗어 나갔다.

위력 자체가 급격히 떨어져서 장거리 공격은 하지 않았지만, 박쥐를 공격하는데에는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고레벨의 강인한 육체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박쥐의 머리통을 박살 내버렸다.

“으아아악!”

원기는 비명을 지르며 뒹굴기 시작했다. 그의 반응에 희연과 카즈키는 당황했다. 그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조종 상태가 제대로 풀린 것인지, 다른 이능의 작용은 없는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카즈키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바니걸 통신의 영향이었다. 원기를 보면서 프레이야 여신님을 떠올리기는 어려웠지만, 프레이야 여신에 대한 마음은 카즈키의 마음 속에 강하게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 박쥐를 죽여버리다니, 멍청한 짓을 했군.”

퀸의 이능이었다. 박쥐가 피를 빠는 동안은 자신의 부하로 부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쥐가 배가 불러서 피를 더 이상 빨 수 없게 되면 조종하는 시간이 끝나는 것이었다.

실제로 박쥐는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은 상태여서, 얼마 안가면 조종할 수 없게 될 터였다.

“그 녀석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을거다. 헬님의 성역인 이 내성에는 누구의 발키리도 들어올 수 없지. 죽음을 피할 순 없지.”

“아, 그래. 죽는다는 거군.”

희연과 카즈키는 그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희연은 검을 들었다. 고통을 덜어주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검끝은 미묘하게 흔들렸다.

“나한테 양보해 주면 안돼? 내가 하고 싶은데.”

카즈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원기의 숨통을 끊었다. 희연은 쓴 웃음을 짓고는 뱀파이어 퀸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내심 크게 분노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냉정해 보였지만, 카즈키는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왠지 짜릿하네. 싸우고 싶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싸움도, 피도, 죽이는 것도 죽는 것도 좋아하는 카즈키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뱀파이어 퀸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항복할께요. 여기 무기도 버렸어요.”

뱀파이어 퀸은 희연의 표정을 보고는 대뜸 항복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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