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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10화 (310/497)

310화 퀸의 특별함

“이거 은근 열받는데? 좀 두들겨 패고 가도 좋지 않을까? 그러자. 여긴 포로를 학대하면 안된다는 법도 없는데.”

카즈키는 희연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희연이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희연은 쓴 웃음을 지었다. 포로라지만 상대는 뱀파이어의 ‘퀸’이었다. 종족의 로드는 왕이나 여왕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종족을 가호하는 신에 필적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학대 같은 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상대의 반감을 살 수는 없었다.

“때리실 건가요?”

뱀파이어 퀸이 애처러운 눈빛으로 희연을 지그시 올려보았다. 희연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숨이 나왔다. 밖에서는 아직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슬슬 뱀파이어 종족들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을 터였다.

“이 채찍을 쓰시면 될거에요. 꽤 아프답니다. 헬 여신이 준 아티팩트라 주인을 가리긴 하지만, 희연님이 써도 되도록 제가 허가했어요.”

퀸은 그렇게 말하면서 채찍을 주워서는 희연에게 내밀었다.

“뭐라고?”

“마음이 풀리실 때까지 때려주세요. 그런데,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니면 여신님이라고 부를까요?”

희연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즈키가 코웃음을 쳤다.

“변태네.”

“흥. 너 같은 천한 벌레가 감히 고귀한 이 몸을 평가하는거냐?”

퀸은 오만한 태도로 돌아와 카즈키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퀸의 태도가 바뀐 것은 희연에게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공포이자 경외의 여신인 헬을 섬기는 그녀는 두려움을 체감한 순간 희연에게 매료된 것이었다.

“고귀한 이 몸이 평범한 사랑에 만족할 수 있을리가 없지. 그리고 평범한 것들은 특별함을 이해 못할 뿐이다. 변태가 아니라, 특별한 거야. 그건 그렇고 여신님. 안때리실 건가요?”

퀸의 눈빛에 희연은 한걸음 물러났다.

“헬 여신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요?”

“예. 아무래도 의심은 들었는데, 방금 확신이 생겼어요. 그건 그렇고 안때리실 건가요?”

“로키는 헬 여신의 부재를 이용해서 헬, 그리고 펜릴의 영역을 점령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프레이야 여신님께선 이걸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신 거지요. 당신은 뱀파이어 일족을 제어할 인질이에요. 그러니 저항을 포기하라고 뱀파이어 일족에게 알리세요.”

“제가 인질이로군요. 그럼 절 묶을 도구가 필요하겠군요. 제가 골라도 될까요? 그건 그렇고 안때리실 건가요?”

“절대로 안때려요.”

“난 때리고 싶은데. 내가 때려도 될까?”

“닥쳐, 카즈키.”

“그래. 닥쳐라. 천한 것.”

퀸의 지시는 뱀파이어들에게 절대적이었다. 최루탄의 여파에서 어느정도 안정을 회복한 뱀파이어들은 엘프들에게 협력해서 로키의 군세와 싸워서 그들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뱀파이어들을 말살하고 그들의 식량이자 가축인 인간들을 오크들의 식량이자 가축으로 확보하려고 나타난 무리들이었다.

뱀파이어들은 헬의 총애를 받는 종족이긴 했지만 숫적으로는 극히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가장 약한 세력이기도 했다.

충인족과 언데드들과는 거리를 지닌 독립 세력이었기 때문에 로키 역시 그리 많은 전력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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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이라. 로키와 본격적으로 싸울 생각인가? 반 신족치고는 꽤 파격적인 생각을 하는군.”

오딘은 퀸과의 전투 역시 지켜보고 있었다. 차원 기술을 가진 프레이야 세력을 주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제성은 대외적으로 퀸을 인질로 삼아 뱀파이어들을 조종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헬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그녀를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오딘이 알게되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굴베이그의 능력이 생각보다 뛰어납니다. 그리고 저 리베로라는 슈탈 크리그의 소형도 괜찮군요.”

엘룬의 말에 오딘은 피식 웃었다. 프레이야나 굴베이그의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단점이 적지 않았다.

인간형 ‘본체’라는 것은 유지비가 들지는 않지만, 위험도가 컸다. 실제로 프레이야 진영측에서는 프레이야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반면 오딘은 세계수들을 통해 존재하는 만큼, 위험도가 적었다.

여차하면 프레이야와 굴베이그를 잡아서 감금해두는 것만으로도 프레이야 진영을 완벽하게 굴복시킬 수 있었다.

이는 다른 잡신들보다도 깨끗하게 처리가 된다는 점에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엘프들을 비롯해 에인페리아들의 충성도는 극히 높아서, 프레이야만 확보한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 안될 것이었다.

“일단 두고 보도록 하지. 우리쪽도 뛰어난 놈들은 많으니까.”

슈탈크리그도 그렇고 지크프리드도 그렇고 기체 자체의 성능은 어중간한 편이지만, 이능과 결합되면 그 성능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트 엔진을 이용해서 비행 유닛인 하우니브의 성능이 향상되고, 이능을 가진 조종사를 탑승시킨다면 슈탈 크리그의 성능은 파격적으로 향상될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이능은 운이 좋아야 발생하는 복권과도 같았다.

아스가르드의 인간은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문화적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했다.

반면 프레이야는 지구의 풍부한 인간들을 통해서 각성된 이능자들을 공급받고 있었다.

성역의 범위는 오딘이 훨씬 넓지만, 프레이야의 성역에는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었다. 최초로 만들어진 장소는 서울 외곽 지역이었고, 남미 오지 등 사람을 피했지만, 국가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장소는 한결같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초능력 각성자들이 국가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딘에게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좋은 이능을 가진 이들을 골라 에인페리아로 보유해 왔지만, 슈탈 크리그에 어울리는 이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 맹점이 있었다.

“나치 녀석들이 말하는데로 전차들을 대량 보유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

철갑으로 만들어져 20톤이나 나가는 전차는 몬스터들로는 상대할 수 없는 움직이는 요새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수백대 규모로 빠르게 움직인다면 무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라고 오딘은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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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딘이 전차들을 대량 생산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능과 규모로 만들 것 같은가?”

“최소한 타이거 전차는 넘어서는 걸 만들겠지요. 적어도 50톤에서 60톤급 전차를 만들지 않을까요? 그걸로 수만대는 만들어내지 않을가 생각되는군요.”

호철은 설레는 기분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젊은 밀리터리 오덕에게 2차세계대전 독일의 잔당들은 관심이 가는 소재가 아닐 수 없었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다르군요. 일단 전차를 상대할 필요가 없는데 타이거 전차를 만들까요? 몬스터를 상대한다면 보병 지원용 3호 전차나 4호 전차 수준도 충분할 겁니다. 그리고 오딘의 생산력을 생각한다면 수천대 쯤은 만들어 내겠지요.”

2차 세계대전시의 전차들은 기본 20톤 정도였다. 현대의 장갑차들이 기본 20톤을 넘어가는 것을 생각한다면 대단히 작고 가벼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전차 라이플이라든가 대전차용 바주카포 등은 이 20톤급 전차들을 상대할 때 의미가 있었다.

현대의 주력 전차들은 타이거 전차와 같은 중량급 전차가 기본일 뿐만 아니라 기술도 향상되어 대전차 라이플이나 바주카는 장갑차를 상대하기도 벅차다고 할 수 있었다.

조제성은 장수한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변수는 있어. 이능으로 강화된 20톤급 전차라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지.’

실제로 나치가 자랑하는 전차 아스티거는 무게가 10톤이지만, 실중량은 80톤이 넘어가는 강력한 전차였다. 부유석을 사용하는데다가 마력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시속 백키로 이상으로 달리며 수직 3미터 수평 십미터 가량을 점프 도약까지 할 수 있는 황당한 물건이었다.

마력로를 탑재한 전차로 생산은 물론 유지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두 대나 만들어진 것도 놀랍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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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멋있어.”

퀸은 희연이 전장을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시역으로 남겨진 카즈키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심사가 뒤틀렸다. 자신이 인정하는 라이벌인 희연을 인정하는 것은 내심 마음에 들었지만,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랑 저거랑 대체 어디가 그렇게 다르다는 거지? 내 이능은 공포야. 저녀석의 이능은 단순히 경직시키는 것이고. 내 이능이나 저 짐승의 이능이 더 헬하고 어울리지 않아?”

카즈키는 그렇게 말하면서 전장의 원기의 모습을 보았다. 부활한 원기는 대형 몬스터들을 상대로 멋지게 활약하고 있었다. 고통을 통해 제압하고 효율적으로 숨통을 끊었다.

대형 몬스터들은 희연의 이능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원기 쪽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 볼 수 없는 대형 몬스터들은 그 존재 자체가 아군에게 큰 위협이었다. 그렇기에 원기는 조종당할 때만큼은 아니어도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대형 몬스터들을 제거해 나갔다.

“저 짐승은 희연 언니의 카피판인가. 싸우는 스타일은 조금 마음에 드는군.”

“내 말이 안들려?”

“천박한 너 같은 칼잡이가 고귀함을 알지는 모르겠지만, 두려움이라고 해도 다 같은 두려움이 아니야. 네가 주는 두려움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 천박한 두려움이야. 칼든 미친년이 주는 두려움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네. 무섭긴 하지만 그 뿐이지. 희연 언니가 주는 두려움은 말하자면 시간이 주는 듯한 두려움이야.”

“시간?”

“운명이라고 해도 좋고, 죽음이라고 해도 좋겠지. 착실하게 다가오고 피할 수 없는 느낌이지. 감정의 폭발이 주는 짧고 화끈한 것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가 가져다 주는 차갑고 절대적인 두려움이라고 해야겠지.”

퀸은 그렇게 말하며 희연을 황홀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간간히 원기의 모습도 훔쳐 보았다. 희연과는 꽤 닮았지만 동시에 많이 다른 것이 원기의 전투였다.

희연은 마치 태풍이나 쓰나미가 사람을 죽이듯 일체의 감정 없이 적들을 처리해 나갔다. 농부가 낫으로 밀과 벼를 수확하는 듯 했다.

전쟁터에서 넘쳐나는 광기와 분노, 증오, 두려움, 퀸이 생각하기에는 그것들은 전장을 더럽히는 오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똥물 튀기는 전장에서 홀로 고결하게 춤을 추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원기도 비슷했다. 증오나 분노, 광기, 두려움 등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원동력을 표현하자면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애정’과 ‘헌신’이 있었다.

“넌 그냥 미친년이고. 아, 너도 변태로군.”

카즈키에게는 분노나 증오,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광기와 쾌락이 그녀 안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흥. 내가 더 강해. 아직 내 힘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카즈키는 그렇게 말했다. 퀸 보다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에 가까웠다. 카즈키는 퀸이 자신과 비슷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네가 말하지 않았나? 나도 ‘특별’한거야.”

퀸은 카즈키의 말에 피식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둘은 의외로 쉽게 친해져 가고 있었다.

“이봐. 광년아. 일이 더럽게 될 것 같다.”

전투가 끝나갈 무렵, 멀리서 나타난 무리들을 보면서 퀸은 눈살을 찌푸혔다. 그들은 로키의 후방을 공격하고 그들을 쓸어버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뱀파이어 일족의 친구는 아니었다. 프레이야 제국의 아군 또한 아니었다.

“빌어먹을 바퀴벌레들 같으니. 아, 이건 비유가 아니야. 진짜 바퀴벌레 들이야.”

무리를 지으나 리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규율은 없으나 집단으로 움직이는 마치 폭주족과도 비슷한 족속들이었다.

헬 진영 최악의 존재가 바로 이들 바퀴벌레들이었다.

뛰어난 종족이지만 헬에게 외면당한 종족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변변한 능력도 없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헬 여신의 총애를 받아온 뱀파이어 일족이었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빠르게 진격해서 오크의 잔당들을 해치우고는 뱀파이어 일족과 원기 일행을 포위했다.

[빗나가길 바랐습니다만 최악의 예측대로 바퀴벌레 일족이 나타났군요. 싸워선 승산이 없습니다.]

조제성의 메시지에 원기는 한숨을 쉬었다. 바퀴벌레 인간들은 갑충과 같은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회복력도 높고 생명력도 강했다. 널린 시체를 주워먹고 빠르게 회복되는 특성도 있었다.

육체의 스펙은 엘프를 확실하게 넘어서서 하나하나가 에인페리아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살이나 총알이 잘 통하지 않았다.

‘젠장. 이런 사태가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원기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할 수 없다. 뿌려.”

멀린의 리베로와 연하의 리베로가 유탄 발사기로 사방에 바퀴벌레 살충제를 뿌렸다. 일명 바퀴벌레 연막탄, 혹은 훈증제로 불리우는 것이었다.

곤충류에게만 통하는 독, 바퀴벌레 일족에도 성기사와 신관이 있기는 했지만 조금 더 버티는 것에 불과했다. 호흡기에 작용해서 일순간에 숨이 넘어가는 강력함에 당해낼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사히 뱀파이어 일족을 이끌고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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