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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11화 (311/497)

311화 헬의 후계자

“그런데 바퀴벌레들이 내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살충제에 대해서?"

바퀴벌레들 가운데에는 사제나 성기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쉽게 무력화되지 않았다. 그들은 희연과 원기가 제거했다. 아니 원기는 제압하고 희연은 제거했다.

“그건 딱정벌레야. 큰 딱정벌레였어.”

바퀴벌레를 쳐다보는 것도 어려워하는 희연은 한쪽에서 귀를 막고 자신을 세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바퀴벌레’에 대해서 언급하는걸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크기가 크다는게 희연에겐 위안이었다. 크면 클수록 벌레처럼 안보인다는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녀가 싫어하는 벌레 중 으뜸인 바퀴벌레는 인간만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누가봐도 바퀴벌레였는데. 그런 것 치고는 잘 싸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원기는 피식 웃었다. 호철과 찬균은 바퀴벌레들을 모두 죽였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기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퀸이 헬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면, 헬의 일족도 원기의 휘하에 들어오게 될 터였다.

그렇기에 원기는 바퀴벌레 일족을 가능한한 죽이고 싶지 않았다.

살충제를 쓰는 것에 대해 망설인 것도 그때문이었다. 원기의 그런 집착은 이미 많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있음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더 강해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반면 찬균과 호철은 바퀴벌레들에게 살충제 내성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너희가 바퀴벌레에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성을 가진 바퀴일족이 나온다는 건 무리야.”

장수한이 딱 잘라서 말했다.

“어째서지요? 바퀴벌레들이 살충제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유명한건데요.”

“스프레이 타입의 살충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내성이 없지. 그냥 식성이 바뀐 것 뿐이야. 카스텔라나 설탕처럼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특성을 이용해서 먹는 살충제를 써서 효과를 봤는데, 그 결과 달콤한 걸 좋아하는 놈들은 죽어 없어지고, 단 거 싫어하는 놈들만 살아남아서 기존의 바퀴약이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 뿐이다. 결정적으로 저 바퀴일족은 진화하기엔 수명이 너무 길어.”

늑대인간이 늑대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듯, 바퀴벌레 인간들도 바퀴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었다. 외형과 신체 능력은 바퀴의 장점을 가져왔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간보다 번식 속도는 빠르다고 하지만, 대량의 알을 낳는 것은 아니었다. 뱃속에서 키워서 나오는 방식으로, 낳는 것은 알이 아니라 번데기였다.

“만약 진화를 한다면, 적어도 몇대는 걸쳐야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지. 오늘 여기서 살아남은 놈들이 새끼를 치고, 그 새끼들이 새끼를 치는 것이 몇대 혹은 몇십대가 벌어져야 소위 진화가 이루어지지. 바퀴벌레라면 그게 몇십년 안걸리지만, 저놈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또 그 아이가 아이를 낳으려면 몇십년은 걸릴거다. 진화에는 수천년이 필요할거야.”

장수한은 자신있게 말했다. 단순한 식성 변화 정도라면 몰라도, 종의 특성 자체가 바뀌는 변화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바퀴벌레는 수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별다른 진화를 이루지 못한 종이었다.

바퀴벌레의 능력 역시, 그렇게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었다.

강하고 두껍지만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외피와 인간을 능가하는 감각, 그리고 회복능력을 제외하면 그 외의 신체 능력은 인간을 조금 능가하는 정도였다.

게임 캐릭터의 레벨로 따지자면 약 30에서 40레벨 정도되는 신체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상적인 인간의 한계 능력치가 레벨 30에 달하는 만큼, 신체 능력만으로도 인간을 가볍게 압도한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최대한 단련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치가 레벨 30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었다. 레벨 30의 능력치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급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보통의 단련되지 않은 평균적인 인간 남성은 약 13전후이고, 여성은 10전 후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련된 남성 무술가의 경우 약 20레벨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가졌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육체 능력의 비교이며, 전투 기술과 경험에 의한 판단은 배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자연에서 자란 엘프들의 신체 능력은 25레벨 전후이고, 다크엘프들은 남성이 25레벨, 여성이 20레벨 정도되었다.

바퀴벌레의 신체 능력이 엘프나 다크엘프를 압도하지만, 도구 사용이나 균형감각, 몸의 유연성 등을 고려한다면 엘프는 물론이고 다크엘프들도 동수의 바퀴벌레는 능히 압도할 수 있었다.

등의 단단한 껍질과 빠른 주력, 그리고 다수를 살린 빠른 돌격이 바퀴벌레족의 특기였다.

가장 강력한 특기라면, 수직의 성벽을 기어서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걸 인질이라고 봐야 하는건가?”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대외적으로 퀸은 뱀파이어 일족을 조종하기 위한 인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잡혀왔다기보다는 한희연에게 들러붙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뱀파이어 일족들은 그녀 덕분에 순순히 따라왔다. 헬 여신의 부재가 큰 영향을 준 것이었다.

로키의 침공은 헬 여신이 사라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헬의 총애를 받은 탓에 충인족과 언데드로부터 견제의 대상이 된 그들로서는 달리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프레이야의 납치시도(?)는 뱀파이어 일족에게는 구명줄이나 다름 없었다. 엘프를 각별히 아끼기는 하지만,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유명했다.

적으로서는 연약하고 무르다는 평가를 받으며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지만, 막상 헬을 잃고난 뱀파이어들에겐 유일한 생존구가 될 것이었다.

인간의 피를 빨지는 못하겠지만, 세계수의 신성력은 뱀파이어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였다. 아니, 인간의 피가 신성력의 대체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프레이야는 인간을 식료로 삼는 것은 금지하지만, 그녀의 휘하에 들어간 종족 가운데 굶주리는 이들은 없었다.

퀸은 뱀파이어 일족의 로드로서, 프레이야가 쳐들어 오자 내심 기뻐했다. 실제로 뱀파이어 일족들은 거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레이야에게 자진 항복하는 것보다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 무서웠어.’

퀸은 희연이 주는 공포에 매료되었다. 도망치게 만드는 공포는 저급한 공포였다. 진짜 공포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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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은 격리 처리라는 명분으로 블러드 라인에 들여보내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주인이던 헬을 만났다.

“그렇군.”

헬은 퀸에게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침묵에 잠겼다. 어느정도는 예상한 것이었다.

헬은 로키를 따랐지만, 로키는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존재였다. 자신 역시 이용 대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헬은 잠시 후, 자신의 후계자로 서유리를 지목했다.

“전 반대예요. 이 여자의 공포는 진정한 지배자의 공포가 아니에요. 전 희연언니만이 헬 여신님의 후계자로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야만스런 충인족과 언데드들을 휘어잡을 강함이 필요해요.”

퀸의 말에 주위에 모여있던 이들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이 헬의 후계자 후보가 되어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좋아하지만, 누군가와 얽히는 것은 싫어했다. 사실 낯가림이 극도로 심한 그녀가 헬 여신이 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조제성은 장식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헬의 종족들을 빠르게 수습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저도 헬 언니랑 공포영화나 보면서, 여기서 사람들 놀래키는게 좋아요.”

헬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에게 칼을 들이댄 희연에게 신성을 넘기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복수의 여신이기도 한 그녀는 속이 좁은 편이었다.

“그럼 저 여자는 어때? 불여우만큼 강하고 공포를 사용하는 듯 한데…”

헬이 묻자, 퀸은 고개를 저었다.

“적이 도망치게 만드는 공포는 헬 여신님의 공포로는 부족해요. 누가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겠어요?”

헬은 퀸의 마음이 희연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헬은 짜증도 나고 화도 났지만, 퀸의 말대로 헬의 자리에 어울리는 강함이 희연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쉰다음, 희연에게 자신의 신성을 넘기는데 동의했다.

“그건 그렇고, 괜찮겠어? 바퀴벌레들도 희연의 백성이 되었는데.”

새로 운명의 캐릭터를 만든 희연에게 프레이야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희연의 안색이 돌변했다.

“내 소중한 바퀴벌레들을 잘 부탁해.”

프레이야의 말에 희연은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고, 헬은 찝찝하던 기분이 싹 날아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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