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오우거
크리스탈칩으로 구동되는 리베로들은 빠른 속도로 양산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크리스탈칩 역시 기체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백만 남은 크리스탈칩의 경우에는 자아가 없어서 학습 능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이 때문에 파일럿이 수개월 이상 크리스탈칩을 성장시켜 나가야 했다.
걸음마부터 낙법까지 완벽하게 터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다만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과는 달랐다. 파일럿이 이미 걸음마를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걸음마를 학습하기보다는 뇌경색 환자가 리허빌리를 통해서 몸의 통제권을 회복하는 것과도 비슷했다.
걸음마를 보조해주는 장비를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령칩 리베로를 조종한 경험이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었다.
결국 이는 정령칩에 대한 수요를 확장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탈 칩이라는거 어찌 대해야 할지 난감하군요.”
원기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질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크리스탈 칩에 대해서 제동을 걸게 된다면, 대부분의 국가를 적으로 돌리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조제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무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간의 움직임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는 거인이라면, 기존의 무기 체계보다 뛰어날 수 밖에 없었다.
리베로용 장비들도 각국에서 차례차례 개발되고 있었다. 7미터급 기체를 위한 대물 저격 라이플도 개발되었다. 전장 5미터, 포신만 4미터를 넘기는 저격 라이플은 전차도 노릴만한 관통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저속 비행하는 헬기나 전투기도 공격가능한 탄속을 보여주었다.
치킨 미사일과는 다르지만, 헬기나 차량 탑재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미사일들도 리베로용으로 개조되고 있었다.
“현자회의 잔당들은 이미 국가의 비호를 받고 있습니다.”
인권 의식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나라들이 주로 현자회를 끌어들였다. 크리스탈 칩은 후진적인 독재국가들이 생산할 수 있는 전략물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나중에 논의하기로 하지요.”
원기는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정치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중’이 언제가 될 지는 알 수 없었다.
크리스탈 칩의 확산은 프레이야 측에도 꽤 유리한 점이 많았다. 리베로에 대한 기술이 발전되면 발전될수록 아스가르드에 투입될 전력이 향상되는 것이었다.
다만 각 정부의 견제도 조금씩 심해져오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승리한 프레이야가 그 힘을 가지고 지구로 역침공을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따라서 프레이야 측이 무기를 확보하는 것에 대해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크리스탈 칩이 양산되는 것은 프레이야측에는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발키리를 이용해서 크리스탈 칩을 녹여버리면 되기 때문이었다.
유령처럼 자유롭게 기체 속을 통과할 수 있는 발키리가 크리스탈 칩을 녹여버리면, 리베로는 완벽하게 무력화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면을 고려하면, 프레이야 측에서는 현재의 리베로 광풍을 방치할 수 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오딘의 비행정에서 신형 마력 변환로를 사용한 기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신근호가 토르 진영에서 알려온 정보였다.
“그렇군요. 그럼 마력로에 비밀이 없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가능성이 큽니다. 너무 빠르거든요.”
조제성은 보란 듯이 오딘이 던진 떡밥에서 냄새를 맡았다. 서로가 떡밥을 던지면서도 쉽게 물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놈이 당장은 사고를 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고 봅니다.”
오딘은 조제성이 마력로의 비밀을 눈치 못채기를 바라고 있었다. 전기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품질 경쟁력에서 오딘은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리베로에 장착되는 발전기용 디젤 엔진은 독일제였다. 현실적으로 가장 효율이 높고 파워도 뛰어난 엔진이었다.
미국의 터빈 엔진은 파워는 높지만, 연료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드워프들을 투입해서 엔진을 만들어도 독일제 엔진은 커녕 중국제 엔진만도 못한 것이 나오고 있었다.
기계를 이용해서 찍어내는 기술은 드워프들에게는 아직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이었다.
리베로용 저격총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제 포신과 미국제 총신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수많은 생산과 전쟁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노하우는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벤츠를 사서 뜯어본다고 벤츠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같은 구조를 가진 물건이라고 같은 성능이 나올 수는 없었다.
조제성은 그 점을 확신하고 있었다.
F-1 레이싱에 투자해서, 인지도를 올리는 효과를 보고 있는 반면에 팔만한 마땅한 슈퍼카를 만들어내고 있지 못한 것도 결정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자동차 회사 말씀인데, 정령을 끼워 파는 건 어떨까요? 엘프 정령이 깃든 슈퍼카라면 사람들이 환장할텐데요.”
스티브와 해리엇의 연결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큰 사건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저 게임의 유니크템 문제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블러디 라인과 리베로 리그에 빠진 이들에게 있어서는 대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리지널과 함께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은 예외가 없다할 정도로 동영상을 찍었다. 카피들의 기계적인 반응과 다른 오리지널의 인간적인 반응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특히 오리지널들은 파일럿들에 대해서 꽤 냉정한 편이었다. 정중하지만 마지못해서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고, 동시에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느낌을 주었다.
다크엘프들이라고 해도, 인간들과 동등하다는 의식은 갖지 않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들은 하위종족이자 야만인이었다.
이는 사람들의 눈에는 고귀함을 연상시키는 프라이드로 느껴졌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령을 쓰는 것을 통해서 고귀한 귀족, 아니 왕족을 하녀로 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일종의 위화감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스티브와 해리엇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리베로 리그의 준비 단계라고 하지만 모의전에서도 리베로 리그의 중계 방식을 따랐다. 리베로 리그의 중계를 위한 준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콕핏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이 가능했다.
사람들은 스티브와 해리엇의 관계를 보면서 기사와 공주, 아니 시종과 여기사의 관계를 연상했다.
아니, 검을 들고 전선에 나선 여왕과 그녀의 명을 따르는 호위 기사의 관계가 더 적절할 지도 몰랐다.
정령들의 긍지, 자부심은 철저히 숨겨졌다. 그들은 인간 파일럿을 존중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숨겨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조제성은 최찬균의 의견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부호들은 정령이 깃든 슈퍼카라면 수십억을 주고라도 사들일 것이었다. 정령들은 발키리처럼 차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운전하듯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가능했다.
따라서 유사시에는 차량 제어를 정령이 가로채서 운전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다.
“전 반대입니다. 인신매매로 돈을 버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장수한이 반대의사를 비췄다.
“리베로를 위한 정령칩을 대여하는 것과 그리 큰 차이는 없을텐데.”
“그건 아니지요. 국가에 ‘전사’로서 대여하는 것과 개인에게 판매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원기는 장수한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제성 역시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사업의 폭을 넓힌다는 점과 기술자들을 섭외하고 기술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자동차 회사의 성공이 필요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령의 수요는 지금도 차고 넘쳤다.
정령칩을 국제시장에서 경매에 붙인다면, 수백억 단위에 팔릴 것이었다. 현재 대여를 통해서 얻어내는 잇권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국경 분쟁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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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사격 준비!”
아더의 지시에 병사들이 총기를 들어올렸다. 인간 병사 약 오천명 가운데 천명 가량이 돌격 소총을 장비하고 사격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창을 들고 있었지만 구형의 대포도 몇기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오크 위주로 이루어진 군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는 약 이천에 달했다. 숫적으로 인간이 우위, 무장도 인간이 우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 병사들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오크의 우두머리가 돌격 명령을 내리자, 오크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발사!”
아더의 지시에 일제히 소총들이 불을 뿜었다. 하지만 소총의 효과는 그다지 없었다.
돌격해 오는 최전열의 오크들이 모두 성기사였기 때문이었다. 성기사들은 신성력을 사용해서 방어력과 회복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이들을 앞세우고 뒤에는 일반 오크들이 따라서 돌격하는 방식을 취했다.
직사무기인 소총에 대한 유효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총알을 앞열에서 막아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몇몇 오크들이 다리에 맞았다.
그러나 즉사하지 않은 오크들은 사제의 치료를 받고 바로 일어나서 다시 돌격을 계속했다. 머리와 심장만 철저히 보호하고 그 외에는 회복력과 신성치료로 커버하는 것이었다.
아더의 곁에 있던 엘프가 대물 저격총으로 성기사의 머리를 쐈지만, 그마저도 튕겨냈다.
“성역인가.”
아더는 적진을 살폈다. 그리고 오우거들에게 보호받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성직자들이었다.
오크들은 순식간에 코앞까지 돌격해왔고 병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가자. 펜드래곤.”
아더의 지시에 따라서 땅바닥에 덮혀있던 천이 펼쳐지며, 아더왕의 리베로 펜드래곤이 몸을 일으켰다. 영국제 리베로 ‘아더’를 바탕으로 센서등을 제거하고 화려한 장식을 붙여 만들어진 기체였다.
무장은 토르의 거인 에인페리아들이 사용하는 도리깨를 본떠 만든 오지편곤이었다. 다섯개의 기둥이 붙어있는 형태의 무기였다.
오크들과 오우거들은 갑자기 등장한 7미터의 거체에 당황했다. 오우거들이 거대하다지만 7미터급 리베로 앞에서는 보잘 것 없었다.
아더는 펜드래곤에 올라탄 뒤 오지편곤을 휘둘렀다.
머리위로 쏟아지는 거대한 기둥에 오크 성기사들은 당황하면서도 몸을 웅크렸다.
폭음과 함께 딱이 움푹 패였다.
“대단하네.”
아더는 땅바닥에 박혀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꿈틀대며 기어나오는 오크 성기사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잊었다.
즉사를 면치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살아남았다. 물론 팔다리가 성한 놈은 없어서, 전투에 복귀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했다.
소총은 물론이고 대포도 성역 내의 성기사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았다. 강력한 폭발이 있으면, 날아가버리기 때문이었다.
땅바닥에 내리찍힌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정도이니, 폭발에 휘말려 날아간 정도로는 쉽게 죽지 않을 정도였다.
아더는 펜드래곤을 이용해서 오우거들을 가격했다. 거대하고 터프한 오우거들이지만, 성기사들만한 방어력이나 생명력은 없었다. 리베로가 휘두르는 편곤에 맞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성역을 처리해야 해.”
아더는 편곤을 휘두르며 오우거들이 보호하는 성직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리베로의 앞에 오우거들은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무리를 향해 가차없이 편곤을 내리쳤다.
“뭐지?”
펜드래곤의 팔이 오우거에게 잡혔다. 그리고 순식간에 부러져 나갔다.
아더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우거에 성기사가 있었나? 그럴 리가 없을텐데.”
오우거는 오크와는 완전히 달랐다. 오크는 인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종족이라면, 오우거는 그냥 몬스터였다. 오크들이 이능을 통해 정신지배하는 몬스터였다. 따라서 성기사나 성직자가 있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현저히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리베로를 압도하는 오우거의 등장에 아더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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