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시크릿 게임
“야, ‘그’ 동영상 봤냐?”
“오. 봤어. 굉장하더라.”
“뉴스를 보면서 전율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말이지.”
“봤냐? 해리엇이 저격총 쏘는거? 장난아니게 멋지더라.”
“그거 해리엇 맞냐? 나도 그런 느낌은 들던데. 그건 그렇고 저격총이 멋은 있는데 이상하더라. 한방 쏠 때마다 철컥거리면서 재장전하는거. 전쟁하는건데 그런 폼잡기가 필요한거냐?”
“짜식. 모르는구나. 그거 볼트액션이라고 하는거야. 자동 재장전이 편하기는 하지만, 재장전을 위해서 가스를 쓰거든. 탄약이 폭발하는 힘의 일부가 재장전을 위해서 쓰이는거야. 게다가 총알 발사와 동시에 재장전을 위해서 내부 부품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명중률도 떨어져. 그래서 볼트액션은 아직도 저격수들이 선호하지. 한방 쏘고 재장전 해야 하지만, 총알의 위력도 높아지고 명중률도 높아지거든. 최신식 볼트액션 저격총은 아직도 나오고 있어.”
“그런거야?”
“벌써 동영상 분석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30미리 탄환이라는 이야기도 외국 사이트에는 나와있어. A-10이나 아파치 헬기에서 쓰는 발칸포가 그 구경이라고 하던데.”
미국을 비난하며 공개된 동영상들은 인간형 병기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쟁의 영상이 오락물로 변했다는 개탄어린 사설 등도 연신 흘러나왔지만 밀리터리 매니아들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엔터테인먼트보다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리베로 매니아들은 작전에 투입된 기체 중 하나가 해리엇이라고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몸놀림만 보면 알 수 있다는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물론 물증이 없으니 미군측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리엇은 컴퓨터이고, 그 복제 프로그램이 중동의 군사조직에 흘러간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성 답변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군사 조직’으로 테러활동이 아닌 ‘내란’으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이 어느측에 서있는지는 분명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야구공 폭탄은 장난 아니더라.”
“그런 컨트롤이 나온다는게 말도 안되지.”
“리베로로 야구도 할 수 있는거 아냐?”
리베로들이 사용한 무기는 해리엇이 쓴 볼트액션 저격총 외에도 화제가 될 만한 것들이 많았다.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야구공형 그레네이드였다.
안전핀은 없었고 완전한 야구공 형태였다. 안전 장치는 기체에서 원격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기체에서 떨어진 후 몇초 후에 폭발 혹은 충돌하는 순간 폭발하는 식으로 지정이 가능한 물건이었다.
야구공처럼 실밥형태까지 갖춰져 있었는데, 이는 리베로가 인간 이상의 섬세한 투구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엘프들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엘프들의 무기라고 하면 보통 활을 떠올린다. 실제로 가장 강력한 살상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엘프들과 싸워본 이들은 화살 이상으로 짜증나는 무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바로 돌팔매였다. 엘프들은 나무 가지 위에다가 적당한 크기의 돌을 얹어두는 습성이 있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던졌다.
노리는 곳은 주로 무릎이었다. 무릎이 아니더라도 허벅지나 정강이에 돌을 맞으면 움직임이 둔해지고, 그런 상대에게 화살을 박아주는 것이 엘프들의 전법이었다.
몬스터들은 돌팔매로 죽이기도 했다. 여성형이라는 신체적 한계와 투구에만 전념하지 못하는 면이 있어서 메이저리거급은 아니지만, 마이너리그나 아시아 프로 리그에서라면 기교파 투수로 통용될만한 투구를 나무 위에서 언더스로우로 뿌려대는 것이다.
엘프들에게 돌팔매는 익숙한 것이었고, 야구공을 사용하는 테크닉을 배우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리베로에게 야구공형 그레네이드를 배치한 것도 이때문이었다.
정확한 컨트롤로 빠르고 멀리 날아가는데다가, 변화구까지 구사하기 때문이었다.
기습 전투가 성공해서 엘프들의 미칠듯한 투구 기량을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기지의 주요 시설과 헬기들을 파괴할 때 이 야구공형 폭발물을 사용한 것이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다.
쓰레기통에 휴지를 던지듯이 가볍게 툭하고 요소요소에 던져 넣은 후, 적절한 타이밍에 폭발해서 시설물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리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야구공 말이야. 엄폐물 뒤에서도 던질 수 있는거 아냐?”
“그렇겠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숨어서 저걸 쓴다고 생각하면 무섭네.”
“참호전의 시대가 다시 열릴지도 모르겠다.”
“마지노 선의 부활이라든가?”
“전쟁의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을까?”
젊은이들은 다양한 예측을 하면서 동영상을 즐겼다. 기습에 성공한 공격측이 불필요한 인명 살상 없이, 깨끗하게 치고 빠졌기 때문에 그런 감상이 가능한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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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족 보행 병기의 실용화라면 우리 일본이 최초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말이지.”
“조만간 리베로로 이루어진 부대를 편성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프레이야 측과 협의를 끝낸 상태입니다. 약 삼십기가 배정받기로 되어 있습니다.”
리베로 리그에 참전하는 국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령을 공여받는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고작 삼십기인가.”
“고가에 판매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만.”
“고가에 사들일만한 물건은 아니지. 자네라면 스텔스 전투기를 사겠나? 리베로를 사겠나?”
“그건 그렇군요.”
“현자의 유산 쪽은 어떻게 되었나?”
“우선 학습형 컴퓨터 오십 기의 조달을 약속받았습니다. 대당 백만불, 약 일억엔 남짓을 지불하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생산량에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 십년에 걸쳐서 오백기까지 확보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현자회의 기술로 만들어진 크리스탈칩은 오십만불에서 백만불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말그대로 블러디 크리스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리베로의 제작 비용은 전차보다 훨씬 저렴한 편이었다.
중량 자체가 가볍고 프린팅 방식의 생산 공정이 일반화되면서 복잡한 기계의 생산 비용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개발된 리베로용 볼트액션 대물 저격총은 텅스텐 철갑탄을 사용해서 약 500미터 안에서 대부분의 전차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일반적인 전차의 교전거리가 키로미터 단위인 것을 떠올리면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리베로의 특성인 엄폐물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한 사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개활지에서는 전차를 상대할 수 없으나, 산악지역이나 시가지에서는 전차로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이능 각성계획은 어찌 진행되고 있지?”
“당초 예상보다 성과가 좋습니다. 꽤 많은 이들이 각성했습니다. 특정 능력자에 치우친 것이 좀 단점입니다만. 2차분의 피험자들이 오늘 모집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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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인걸까?”
다카하시 노리유키는 정체불명의 이메일을 받고 새벽 두시에 부두로 나왔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왔지만, 의외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스마트폰의 불빛과 담배가 타들어가는 불꽃들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되자 검게 도색된 버스가 불도 켜지 않은 채 도착했다.
‘내가 미친 거지. 스팸메일 같은 것을 믿고 이 자리에 나오다니.’
노리유키는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 유행하던 만화를 떠올리는 전개였다. 자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있는 정체불명의 메일을 받은 그는 인터넷을 통해서 소문을 접할 수 있었다.
의문의 이메일 초대장을 받은 이들은 특별한 게임에 초대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승리한 자는 빚을 청산하고 많은 돈을 얻고 패배한 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는 그런 소문이었다.
‘잘도 이런 곳에 찾아들 오는군. 나 말고도 미친 놈들이 많네. 이 오밤중에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이라니, 뭐 이리 전형적인 전개인 건지.’
그는 검은 양복 사내들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지만 내심 기대가 커졌다. 장난으로 보기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 것이 보였다.
그는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핸드폰을 압수하지 않는건가?’
“전파는 물론이고 GPS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이미 부두에 올 때부터 말이지요.”
옆에 있던 청년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청년? 아니 소년인건가? 이런 어린 학생도 참가하는건가?’
“당신은 누구지요?”
“비슷한 처지라고 해야 할 거에요. 보아하니 사전 정보는 얻지못한 것 같네요.”
“그럼 당신은 얻은 겁니까?”
“저도 인터넷 속의 소문을 좀 주워들은 것 뿐이에요. 생각보다 본격적인 것 같아서 놀랍네요.”
소년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차 내부는 검은 색 일색으로 되어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돈을 보통 들인건 아닌가봐요.”
“그걸 봐서 알 수 있는거야?”
노리유키는 조금 부담스럽지만 말을 놓기로 마음먹었다.
“재질이 평범하지 않은걸요. 고급스러워보이진 않지만, 싼 재료도 아니에요. 게다가 이런 버스가 관동에서만 수십대가 움직이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래?”
“인터넷 조금만 잘 찾아보면 나와요. 이곳 말고도 후쿠시마현, 이바라기현, 도치기현, 군마현까지 각지에 집합 장소가 있어요.”
“이 버스가 도는 건…아니겠군.”
노리유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 안은 만석에 가까웠다. 여성 참가자들도 제법 많아 보였다.
그는 곁에 있는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별다른 부담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뭔가 있는 걸까?’
“여러분.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아침 8시 이후가 될 겁니다. 그동안 수면을 취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뒤쪽에 화장실이 있으니 이용하시면 될 겁니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 요원이 동행하고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노리유키는 화장실 가까운 좌석에 앉은 선글라스의 두 사내와 운전석 옆쪽의 사내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안전요원이라기보다는 감시원인 듯 했다. 창문은 완전히 밀폐되어 밖이 보이지 않았지만 좌석은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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