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조제성의 야망
“데이모스를 개발하고자 합니다. 아니 개조하고자 합니다.”
조제성은 화성의 위성 데이모스에 관심을 가졌다. 화성의 위성은 데이모스와 포보스가 있는데, 이중 데이모스는 직경이 약6km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화성을 일주하는데 30시간 정도 걸리는 매우 고속으로 회전하는 위성이었다. 달의 지름이 약 3500키로미터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작은 바위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소행성, 소위 아스테로이드들도 존재하지만 궤도가 일정해서 장기간 작업하기에는 화성의 위성인 데이모스 이상은 없다는게 조제성의 판단이었다.
“데이모스를 개조해서 우주 이민선으로 만든 다음, 태양계 밖으로 날리는 겁니다.”
위성치고는 극히 작은 크기인 직경 6키로지만 우주 이민선으로 만들기엔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했다.
“태양계 밖이라니, 우주 탐사라고 할까 개척이 되겠군요.”
“사실은 마지막 비상탈출구지요.”
조제성은 어색하게 웃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딘 말고도 세상엔 위험이 도처에 존재하지요. 인류의 역사를 살펴봐도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지 않고 나름 평화로운 상태가 수십년을 이어져 온 것은 현대 뿐입니다. 수십년 이어졌으니 수백년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요.”
“역시 조승상이십니다.”
원기는 쓴 웃음을 지으며 장수한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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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너희들 제성 형님에게 너무 물든 거 아닌가 모르겠다.”
“무슨 이야기지요?”
“예를 들면, 희연과 네 관계 같은 거지. 연애를 하더라도 수십년 뒤 쯤에나 시도해 보겠다는 것 같은거 말이야.”
희연은 장수한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연하는 눈을 반짝였다. 연애에는 관심 없는 편이지만, 남의 연애사에 관심없을 리는 없었다.
“글쎄요. 딱히 뭐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원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제성 형님의 야망은 상상을 초월하지. 세계 정복보다 어려운 거야. 최소 오백년 이상 부부해로 하겠다는거, 장난이 아니야. 그리고 그걸 위해서 너희에게 암시를 걸고 있지.”
“조종이라면 어떤 거요?”
“그러니까, 수백년 수천년 살아야 한다는 암시 말이야. 제성 형님은 지금의 프레이야 여신님께서 오래오래 살아있기를 바라고 있거든. 바니걸 통신도 있고 말이야.”
“바니걸 통신이라.”
“그래. 그게 있으면, 혜서 형수님이 오래오래 정신적 안정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지. 정상적인 인간이면 수백년 살다보면 지치거나 미치지. 물론 제성형님은 이미 미쳤으니 수천년도 더 버티겠지만, 집착의 대상인 형수님이 없어진다면 의미가 없으니까.”
장수한이 어떻게 생각하든, 원기는 제성이 자신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는 만족을 느꼈다.
“요는 그렇게 장수하기 위해서 당장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바보짓은 하지 말라는거야. 즐길 수 있으면 최대한 즐기고, 즐기다 지치면 후계자를 만들고 뿅하고 가는게 이상적이라는 거야.”
원기는 장수한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엘레니아와 연애에 열을 올리는 그는 원기의 애정 전선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었다.
제성보다는 원기를 우선시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장수한 만이 아니라 바니걸 통신을 듣는 신자들, 제성을 포함한 모두가 원기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기는 신뢰할 수 있고 현명한 조제성에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수한이 조제성의 뜻에 반하면서 자신을 위해준다는게 기뻤다.
하지만, 원기는 현 상황을 바꿀 마음은 그다지 없었다.
제성도 눈치를 챘지만, 원기도 제성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제성이 오래오래 혜서와 해로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처럼, 원기도 오래오래 사람들 틈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아니 어쩌면 의식적으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깊게 맺어지면, 필연적으로 다른 이들은 멀어지게 마련이었다. 다수와 맺어진다고 해도 그 관계는 변하기 쉬웠다.
그는 주위에 있는 다수와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기 때문에 지금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주위에 머무는 여성들의 성향과도 잘 맞았다.
리디아는 본래 성욕이 적은 엘프였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저 여신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는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의 증거로서 육체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지, 육체 관계에는 목적이 아니었다.
희연과 연하, 카즈키는 자기들이 원하는 바가 뚜렸한 이들이었다.
그나마 연하는 나름 연애를 동경하기라도 하지만, 희연이나 카즈키는 애초에 연애는 관심도 없었다.
희연의 경우에는 사회적 체면이나 틀에 박힌 삶에 구애받는 면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을 속편하게 여겼다.
해야하지만 엄청 귀찮은 일을 간단히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회의 상식을 일종의 지켜야 할 규칙, 혹은 법처럼 여기는 희연과 달리 카즈키는 애초에 결혼 같은 것을 할 생각도 없었다.
자기 좋을대로 좋아하는 것 하며 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희연과 연하는 ‘초일류가 될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발키리에 선택받았다. 그리고 초일류가 될 재능에는 ‘중독에 가까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할애할 여유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결혼 상태인 희연도 현 상태에 만족하고 있었다.
“제성 형님의 집착도 크긴 하지만, 제 집착도 작진 않아요.”
원기가 제성에게 믿고 의지하는 것은 제성이 바라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성 역시 발키리가 찾아낸 원기가 바라던 인재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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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이민선단은 조제성의 머리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딘이건 지구건 누구든 찾아오지 못할, 찾아올 가치가 없는 안전한 곳을 바라고 있었다.
우주 공간은 너무나 넓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작은 소행성 하나쯤 관심을 둘 리가 없었다.
오딘이든 로키든 감추고 있는 카드는 많았다. 그 카드들이 반드시 효과가 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효과가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물론 우주 이민선 건조 계획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행하는데 필요한 예산이나 전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제성은 그것을 뒤로 미뤘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헬의 종족들을 놀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스가르드에서는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었다. 그들이 다시 나타난다면 틀림없이 문제가 될 것이었다.
혼돈의 대륙이 신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곳이라고 하지만, 오딘과 로키의 전력이 충분히 자리잡고 있었다.
게이트 주변을 제외한 영역은 다시금 놀제로를 투입해서 점령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헬의 죽어버린 종족들이 나타나는걸 목격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구에 투입할 수는 없었다.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종족들이기는 하지만, 성역 아닌 곳에서는 장시간 버티지 못하고 약화되는 것이다.
늑대인간들이나 흡혈귀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것도, 인간들을 압도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때문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습격해서 죽이면서 정제되지 않은 신성력을 흡수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반면 그렇게 얻어지는 신성력으로는 근근히 살아가는게 고작이었다.
인간들에게 맞아죽거나 불타죽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성역 안에서는 쓸만하다지만, 지구에서는 그 외형 때문에 마족 취급을 받거나 악의 군단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블러디 라인2에 쳐박아 놓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그것은 낭비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데이모스 개척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이의를 제기한 이가 있었다. 바로 장수한이었다.
“데이모스 개척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게 있습니다! 바로 화성 개척입니다! 달에는 바니가! 화성에는 바퀴벌레가! 이건 로망, 아니 운명입니다! 화성에 바퀴벌레를!”
“무슨 소리에요. 달에는 세일러 복을 입은 마법 소녀가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화성에도 마법소녀가 있어야 해요. 빨간 하이힐이 어울리는 다리가 예쁜 마법소녀!”
마법소녀 매니아인 찬균이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주먹으로 패싸움질 하는 마법 전사들은 마법 소녀가 아니라며!”
“바퀴벌레 보다는 나아요! 모에가 있으니까!”
“바퀴벌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건 확실히 해두고 싶군요.”
의견을 보통 표하지 않는 희연이 단호하게 나섰다.
“그럼 바퀴벌레가 바퀴벌레지. 바퀴벌레를 바퀴벌레로 못부르게 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 놈들이 바퀴벌레가 아님 뭔데?”
장수한이 화면에 바퀴벌레 일족의 영상을 띄웠다. 그러자 희연이 화면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갈색 풍뎅이, 아니 물방개예요. 땅에서는 물방개.”
“물방개가 물에 사니까, 물방개지. 그래. 저놈들은 화성 방개라고 해줄께. 화성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그거 알아? 저놈들이 화성에서 살면 지구에서는 못보게 되는거야.”
“아, 그건 나쁘지 않을지도…”
희연은 장수한에게 설득당했다. 화성 방개들이 지구로 쳐들어오는 만화를 못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제성은 삼천포로 흘러가는 대화에 머리가 아파진 듯,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어차피 데이모스까지 게이트를 뚫는다면, 화성 개척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테스트를 해본 결과 달에는 아스가르드로 향하는 차원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아스가르드가 다른 차원의 지구에 해당하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가설 하나와, 라그나로크때 뚫은 차원의 틈이 지구에 있기 때문에 차원 게이트는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는 가설 두가지가 있었다.
어찌되었든 아스가르드로 통하는 차원 게이트는 지구를 제외한 곳에서는 뚫리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뚫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달이 머리위에 떠있을 때와 지구 반대편에 가있을 때는 지구 지름에 해당되는 거리 차이가 생겼다. 약 1만 키로미터였다.
38만 3천키로미터에서 1만키로미터 차이라면 그리 큰 차이는 아닌 듯 싶지만, 직선 거리 1만키로미터라면 지구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달의 궤도 자체도 완전한 원형은 아니기 때문에 편차치를 따지면 최소치와 최대치 사이에는 약 8만키로의 차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 거리 차이에서 발생하는 신성력의 양을 고려한 결과, 공간이동게이트를 만드는데 거리상의 한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화성과 지구가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를 고려해도 약 10개 가량의 게이트를 연결해야 했다. 게이트의 유지비용은 적은 편이지만 무시할 수 없었고, 게이트를 만드는데 소모되는 신성력은 훨씬 컸다.
“일단 게이트를 만들 재료와 개척에 사용될 일군들이 모두 확보된 상태입니다. 이건 기회일지 모릅니다.”
달에서 게이트를 하나 쏴 올리고, 고속으로 날아가는 게이트에서 중간 게이트를 배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이모스에 게이트를 설치하고 고속 게이트는 화성에 충돌 소멸한다. 화성 게이트는 데이모스에서 착륙선을 통해서 보낸다는게 조제성의 계획이었다.
중간 게이트들은 태양을 도는 인공위성이 될 것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중간 게이트들도 세계수와 인간이 거주하는 인공행성화 해야 하겠지만, 대량의 세계수 수액을 사용하면 2년에 한번꼴로 작동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화성은 상시 연결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2년에 한번 연결되는게 고작이겠지요. 그건 장점이기도 합니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올 수단이 없는 것이다. 마땅한 공격 수단도 없었다.
“데이모스에는 드워프들과 새로 태어날 엘프들을, 화성에는 몬스터 일족들을 보내는 것으로 하지요. 희연, 네가 화성의 여신이 되는거다.”
“화성엔 죽어도 안갈거에요.”
“원래 신은 멀리 있는거야. 로버트 브라우닝의 유명한 싯구 몰라? ‘신은 그의 천국에 있고, 세상은 아무문제 없다(God's in his heaven. All's right with the world.)’.”
장수한의 답변에 희연은 피식 미소지었다.
“어딘가 만화에 나온 거겠지요?”
“물론이지! 만화는 지식의 보고야!”
장수한은 자신감에 넘쳐서 말했다. 찬균과 호철은 거기에 동조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은 그 모습에 이의를 제기하려다가 원기가 고개를 끄덕여 동조하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한숨을 쉬고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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