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달기지
데이모스 개발 계획은 기본적으로 달 기지에서 추진되었다.
헬의 일족인 몬스터들은 모두 달로 옮겨져서 내부 공사에 동원되었다. 헬의 종족들은 척박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대단히 높았다.
“인간을 먹어선 안된다는 건 좀 아쉽군.”
“확실히 그래. 인간을 잡아먹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였는데.”
몬스터들에게 있어서 인간을 잡아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행위이지만, 동시에 식도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인간 세상에는 먹는 것 말고도 즐거움이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화의 중독성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인간의 정신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신을 투영해서 문화 생활을 즐기는 것이 가능했다.
인간화된 동물 주인공의 영화를 인간이 즐기는 것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문화 비슷한 것을 즐기던 아스가르드의 인간이나 유사인간들과 달리, 완전 몬스터형인 종족들은 그 비슷한 것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영화나 만화영화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장수한은 식도락에는 식도락으로 대응하면 된다는 논리로, 요리사들을 동원해서 요리를 개발했다.
몬스터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개발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이 세계수의 수액과 독극물을 섞은 고기요리였다. 인간이 먹으면 즉사하는 강력한 독극물이 몬스터들에게는 적당한 자극이 되었다. 일부 독은 담배나 알코올처럼 몬스터들을 알딸딸하게 만들어주었다.
“요리사가 아니라 화학자들을 동원했으면 좋았을 뻔 했군.”
장수한은 혀를 찼다.
대량으로 먹으면 죽을 수 있는 독이지만, 왠만큼 먹어서는 죽지 않았다. 술도 대량으로 마시면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을 수 있으나, 왠만해선 몸 상태가 안받아줘서 그렇게 먹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왠만한 독에는 즉사하지 않았고, 적당히 먹으면 부담스러워지는 식으로 작용했다.
현대의 다양한 요리에 세계수의 수액과 독극물을 섞은 요리들은 몬스터들에게 식도락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달 기지 개발은 몬스터들 덕분에 빠르게 진척되었다. 개미와 벌, 거미 일족들이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개미와 벌 일족들은 기본적으로 여왕에게만 자유의지가 허용되었다. 일개미와 일벌들은 이를 테면 꼭두각시 같은 존재들이었다. 정해진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거미도 헬에 의해서 비슷하게 개조되어 있었다.
거미는 자식을 낳을 수도 있지만, 분신을 낳을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분신들은 덩치가 작은 자신의 일부로서, 손이나 발처럼 원격 조종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개미나 벌과 같은 방식을 거미에 합성시킨 것으로 헬이 완성시킨 가장 강력한 전투 종족이자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헬 역시 여신이라고 아름다운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전투 종족인 거미말고도 뱀파이어라는 종족을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헬에게 있어서도 예외의 종족이라면 바로 바퀴벌레였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바퀴벌레 종족을 만들면서, 그들은 헬의 취향해도 개조하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번번히 어긋났다.
바퀴벌레는 진화할 수 없는 종족에 가까웠다. 이미 수억년도 더 전에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모습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뛰어난 종족이었다. 한편으로보면 인간과 비슷한 점이 있을지 몰랐다.
인간이야말로 진화없이 다양한 지역에 적응해서 서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화라는 측면에선 수만년도 안되는 시간으로 완전히 모습이 바뀌어버린 인간이 바퀴벌레보다는 훨씬 진화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헬은 바퀴벌레 종족을 실패작으로 단정했지만, 굳이 폐기할 필요성은 못느꼈다. 그래서 그들을 가장 척박한 곳에 배치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멋지게 적응해서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서 가장 번성한 충인족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여신의 총애를 받는 다른 종족들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질투와 긍지, 열등감을 뿌리깊게 가지고 있는 종족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귀중한 식재인 인간을 먹은 경험은 거의 없었다.
“젠장. 이번 여신도 우리를 싫어하는군.”
“어차피 어딜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야.”
“먹을 거라도 풍족히 얻으니 다행이지.”
벌레형 몬스터 종족들에게 있어서, 달의 저중력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벌레들은 본래 천정이나 벽에 달라붙는게 가능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벌레형 몬스터들은 몸이 지나치게 무거워서 그것이 불가능했다.
달에서는 육중한 바퀴벌레들이라고 해도 천정에 붙어서 기어다니는 것이 가능했고, 그것은 나름대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고레벨 성역에서 살게 되다니 꿈만 같군.”
바퀴벌레들은 달에서의 거주를 맘에 들어했다. 그들은 고레벨 성역에는 접근도 할 수 없었던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때로는 성역에서 쫓겨나서 백골 전갈들과 싸우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개척한 땅은 헬의 사랑받는 전투 종족들에게 빼앗기고 척박한 땅으로 내몰리기를 반복해왔다.
모든 개체들이 평등하고 협력을 좋아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개체들이 각각 인간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았다.
바퀴벌레의 강한 완성도 탓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바퀴벌레로 있는 것을 선호했다.
“보고 있으면 익숙해 질만도 한데 말이지요.”
원기는 바퀴벌레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가지 상식이라면 이 세상에 청결을 싫어하는 동물은 없었다.
모든 동물은 나름대로 위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래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었다.
지저분한 곳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먹을 것이 그것밖에 없거나, 생존을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상황 때문인 것이다.
썩은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짐승들이나 곤충들도 신선한 먹이를 주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하이에나도 신선한 고기를 좋아하고, 파리도 꿀을 좋아한다.
신선한 음식을 먹으려면 경쟁률이 높으니, 할 수 없이 썩은 것을 주워먹을 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퀴벌레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을 먹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던 그들은 꿀과 설탕물을 위주로 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청결한 생활을 요구하니, 그것도 금방 받아들였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다른 종족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각박하게 살아온 탓일지도 몰랐다.
원기는 새로운 헬 여신에게도 사랑받지 못해서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현 상황에서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바퀴벌레 종족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원기는 그들이 또다른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버림받은 기분으로 병실에 누워서 살아가던 자신과 별로 다를게 없이 느껴졌다.
“일단 다음 구역으로 가보시지요.”
조제성의 안내에 따라서 달 기지의 다른 구역으로 향했다.
달기지 내부는 SF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련된 디자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광산을 떠올리게 하는 구역이 많았다. 돌벽에 코팅제를 바르는 형태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구역은 조립식 건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SF에서나 볼 수 있는 매끈한 금속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쪽으로 돈을 들일 거라면, 차라리 벽지를 바르는게 낫습니다.”
조제성의 말대로 달기지 내에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공간들이 꽤 많았다. 벽지를 바르는 편이 경비도 적게 들고,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도 좋다는 것이었다.
내부에는 제법 큰 공원도 설치되어 있었다.
화단과 식물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는데, 충인족들도 애용하는 터라서 왠지 분위기는 좋게말하면 판타지틱하고, 나쁘게 말하면 호러틱한 면도 있었다.
어두운 나무들 사이로 바퀴벌레들이 걸어다니는 모습은 엽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조금 전만 해도 사랑스럽게까지 보이더니, 왠지 약이 치고 싶어지는 풍경이네.’
바퀴벌레 특유의 빠른 움직임 덕분에 그런 느낌이 더 강했다. 그리 넓진 않치만 나무로 빽빽한 수풀은 바퀴벌레 전용 구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충인족들 간의 알력다툼은 여전하기 때문이었다.
“왠지 멋지군요.”
달의 중력 부족은 전자석 조끼가 해결해 주었다.
바닥과의 거리에 맞춰서 자력을 자동 조절해서 부족한 중력을 보완해주는 장비였다. 달 기지를 방문하는 사람들만 사용해서 방문조끼라는 별칭이 붙어 있었다.
저중력 상태에 익숙해지면, 저중력 속에서 부드럽게 떠다니는 것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경우에는 방문 조끼 대신에 가스팩을 등에 매고 다녔다.
저압의 가스를 이용해서 약간의 추진력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이었다.
달 기지에서 이 가스팩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우주 유영에 적응하기는 쉬워졌다.
그리고 엘프들은 가스팩 사용에도 아주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인간들보다 우주에 훨씬 더 어울리는 종족이 되어버렸군요.”
“우주 엘프라는 것도 나름 로망은 있으니까요.”
장수한도 웃으면서 말했다.
늘 경호라는 명목으로 붙어다니던 희연은 우주에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못했다고 하는게 좋을지도 몰랐다.
바퀴벌레를 비롯한 충인족이 우글대는 달기지는 희연에게 있어서는 인세의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터였다.
“그건 그렇고 대체 뭘 보여주시고 싶은 겁니까?”
원기는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장수한은 뭔가를 몰래 추진해서 원기를 놀래켜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건 조제성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보시라.”
장수한이 보여준 것은 거대한 철조 구조물이었다. 한참 만들어지고 있는 구조물이었지만, 우주 공간에서 만들어진 인공물 가운데서는 달 기지를 제외하고 가장 거대한 물건일 것이 틀림없었다.
“우주 전함 프레이야호가 되겠습니다.”
“전함이라고 말하기엔 좀 애매합니다만.”
조제성이 토를 달았다.
“레일 건이 달려있으니 전함이 맞습니다.”
“레일 건이 아니라, 전자기식 사출기라고 해야겠지.”
“전투에 쓰일 수 있는거 아닙니까.”
“화성 진출용 게이트를 사출하기 위한 런쳐가 달린 이동 구조물입니다. 과도한 기대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제성은 그렇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서려있었다. 원기가 기뻐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수한과 오덕들 덕택에 원기의 취향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 조제성이 만들려고 한 것은 고속으로 게이트를 화성을 향해서 쏘아올릴 고정식 사출기였다.
하지만 이 사출기를 우주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면, 운석의 습격이나 혹은 지구의 공격 같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장수한이었다.
그 결과 장수한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꽤 전함스러운 형상의 건조물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실 전함이라고 만들었지만, 화성 진출용 게이트를 사출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유사시를 대비한 장비라고 해야겠지요.”
'오딘을 우주로 꼬셔서 싸우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모르겠군.'
조제성의 머리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