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조제성의 음모
“이봐. 소문 들었나?”
“아, 들었네. 굴베이그 여신님이 적에게 붙들리셨다면서?”
“굴베이그 왕국은 끝장 난건가.”
“나도 들었네. 전투에 나선 엘프들까지 전멸당했다더군. 철거인들과 함께 말이지.”
“과연 로키라고 해야 하나. 희망이 있는건지 모르겠네.”
“글쎄. 여신님의 본체가 억류당했다고 하니, 모두 끝났다고 봐야하는거 아닐까?”
“블레이드 그 년이 무능해서 그래. 어린 계집이 장군이랍시고 설치더니.”
아더왕, 멀린, 랜슬롯은 나치들도 알고 있는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일본 애니나 게임 등에 나오는 그들의 바탕이 된 캐릭터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조제성은 패전 소식을 고의적으로 굴베이그 전역에 퍼트리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격문을 각지로 내보냈다.
굴베이그를 구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으니 전력을 집중해서 이 위기를 타개하자는 것이었다.
모두가 힘을 합치면 승산이 없지 않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조제성의 책략이었다.
일반 평민들의 분위기는 굴베이그 구출에 집중되고 있었지만, 귀족들쪽 분위기는 극히 냉정했다. 그들은 이미 전쟁에 패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살 길을 찾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아니 지금이 아니면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펜릴과 교섭해 봅시다.”
“하지만 펜릴 제국은 수인족들이 인간을 식량으로 삼는 세상이요. 우리가 아무리 굴베이그 왕국의 귀족이었다지만, 그것을 인정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않소.”
“걱정하지 마십시오. 펜릴 제국의 황제폐하께서 우리에게 지위를 보장하셨소이다. 펜릴 제국에 귀순하는 귀족들에게 수인의 피를 미리 지급하시겠다고 하시더이다.”
“수인의 피?”
“예. 마시는 것으로 수인족의 일원이 되는 펜릴님의 은총입니다. 그것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피는 사자의 피라고 합니다. 백수의 왕 사자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호오. 그거 매력적이군요. 미리 지급된다고 하셨소? 그게 확실한거요?”
“실은 이미 제가 마셨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귀족 사내의 몸이 부풀어오르면서 옷이 찢기고 등빨좋은 사자 인간의 모습이 나타났다. 주변 귀족들은 당황해서 한걸음씩 물러났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지내온 그 사람 맞습니다. 귀순 의사를 미리 밝히는 분들에게 이 피를 지급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작용은 없소? 제정신을 잃는다던가?”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고기가 좀 더 맛있어졌다던가, 정력이 왕성해졌다던가 하는 차이가 있겠지요. 마눌님이 좋아하더군요.”
“호오, 정력이 좋아졌다는건가?”
“물론입니다. 절정에 오르는 시기와 횟수까지도 자유자재로 조종이 가능합니다. 하룻밤동안 열명의 숙녀들에게 봉사를 한 일도 있습니다. 모두를 녹초가 되게 만들고도 기운이 넘치더군요. 역시 다수의 암사자를 거느릴만한 정력입니다.”
“성욕이 과다하게 증진된 것은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성욕이 늘어난 것은 아니고, 성욕이 줄지 않는다라고 표현해야겠지요. 나이가 들면서 성욕이 감퇴되는 그런 현상이 없어진다고 할까요.”
“그렇군. 이해할 수 있겠소이다.”
굴베이그령에서 귀족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일처제의 윤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정력이라는게 한계가 있어서, 아무리 처첩을 많이 거느리고 있어도 만족스러운 성생활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특히 횡음해온 귀족들은 그것이 더 심했다.
예쁜 시녀를 침대에 끌어들인 다음에 막상 본게임에 들어가려고 하면 급격히 의욕이 감퇴하고 힘이 빠져서 불발로 끝나는 일도 많을 정도였다.
“마음에 드는군. 정력이라. 좋은 거지.”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이지요. 제가 듣기로는 인간을 산채로 잡아먹으면 꽤 큰 쾌감과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아직은 시도하지 않았습니다만, 펜릴 제국의 귀족이 된 후에는 그게 일상이 될지도 모르지요.”
아스 신족이 거인족보다 좋은 점이라면, 인간이 늘어나면 그것을 전쟁으로 조절한다는 점이었다.
거인족들은 추종자들을 몬스터화 시켰고, 몬스터화된 인간들은 살기 위해서는 신성력을 소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필요한 신성력을 인간을 잡아먹으는 형태로도 보충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등 몬스터 종족들이 인간을 잡아먹는 것은 그때문이었다.
로키의 경우에는 수가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오크를 만들었고, 오크들은 인간보다 조금 육체능력이 높을 뿐이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넘치는 인구를 전쟁으로 조절한다는 면에서 아스 신족과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반면 반신족들은 이 두 방침 중 어느쪽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엘프와 드워프들과 같은 종족들로 개량했다. 이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번식력이 약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래. 우리는 어차피 포식자가 될 운명이 아닌가.”
귀족들은 교만한 모습을 보였다. 굴베이그가 끝장나고 군을 이끌던 블레이드가 추락한 지금은 그들 위에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서둘러야 합니다. 굴베이그 왕국이 망한 다음에는 이런 관대한 제안도 없을 테니 말이지요. 펜릴 제국 측도 교섭이 늦어지면 그만 둘 생각인 듯 합니다.”
“그도 그렇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연판장에 서명을 해주시면, 그 숫자만큼 사자의 피를 주실 겁니다.”
“자네가 정말 수고가 많군. 잘 부탁하네.”
귀족들을 비롯해 평민들, 특히 나이많은 이들은 프레이야의 ‘평등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질서를 무시하고, 기존의 가치관을 부정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사실 프레이야 진영 내의 질서 문제는 엘프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었다. 계약자들이 신들과 동급으로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나 펜릴, 헬 등은 신격을 잃었다고 하지만 수백년을 신으로 군림해온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제성을 비롯한 계약자들은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접하고 있었다.
펜리아와 굴베이그, 희연의 문제도 컸다.
신격을 잃은 앞의 삼신과 달리 이들은 신격을 가진 현역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자들은 그들을 대하는 것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어리고 미숙하다는 시선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굴베이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귀여운 소녀 취급을 받았고, 펜리아는 생각없이 사고치는 야생소녀로 여겼다. 희연 역시 융통성도 요령도 없다고 딱하게 여겨졌다.
이는 아스가르드 출신들에게 있어서는 사실 신성모독에 가까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원기도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오히려 불편하게 여겼다.
다만 프레이야만큼은 계약자들에게 있어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똑같이 대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원기는 프레이야로서 그것을 감수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귀족은 커녕 신들까지도 평등하다는 것이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자 기본적인 프레이야 진영의 사고방식이었다.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은 평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권위로 인간을 지배해온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귀족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었고, 평민들은 귀족의 재산이었다. 가축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프레이야 제국은 모든 사람들을 군대에 편입시키고, 계급이 신분 위에 적용되도록 만들었다.
기존의 귀족들은 지도자의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 장교로 만들었지만, 장래의 귀족 자녀들은 사병 생활부터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평민들도 군대에 계속 있으면 계급이 오르게 되어 있었고, 장래에는 평민 장교가 태어날 것이 분명했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선 심각한 도전이었다.
귀족을 우습게 여기는 평민들이 생겨났고, 평민 노인들은 그런 이들을 비난했다.
군에서 재능을 보여서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출세하는 평민들에겐 같은 평민들의 질시가 쏟아졌다. 귀족들이 잘나가는 건 그냥 받아들이면서, 자신과 같은 평민이 잘나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질투심 등이 발휘되기도 했다.
모든 평민들이 같은 대우를 받던 옛날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다수 등장한 것이다.
조제성은 한번 메스를 크게 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고 있었고, 굴베이그의 나포는 기회라고도 할 수 있었다.
“거짓으로 상대를 속이는 건 하책이지. 진실로 속이는게 상책이야.”
“속이려면 진실로 속이는 겁니까?”
“그래. 늦던 빠르던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거짓에 속은 상대는 원한을 갖게되고 우리의 신뢰가 실추되지만, 진실에 속은 상대는 자신을 탓하는 법이지.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고 말이야.”
“그건 그렇군요.”
“굴베이그 여신이 적진에 떨어진 것도 팩트이고, 엘프들이 전멸한 것도 팩트야. 블레이드가 패한 것도 팩트지. 이 팩트들을 토대로 귀족들은 알아서 판단을 내려주겠지. 우리 의도대로 말이야.”
귀족들에게 사자족의 피를 주도록 지시한 것도 바로 조제성이었다.
사자족이 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두려움없이 펜릴 제국으로 투항할 수 있게 될 터였다.
그리고 사자족의 피가 귀족들에게 골고루 분배되는 것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약 7할의 귀족이 사자족의 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할은 반대하다가 감금되거나 제거되었다. 그리고 2할 가량은 그런 음모에 끼일 만한 자격이 없다고 간주되어 따돌림을 받았다.
원기는 발키리를 보내 제거되는 이들을 구해서 에인페리아로 만들었다. 그들이야말로 굴베이그 왕국을 사랑하고, 굴베이그 왕국을 잘 이해하고 이끌 수 있는 인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자족의 피라면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호철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장수한은 피식 웃었다.
“사자가 강하다는건 고정관념이야. 놈들은 덩치 큰 고양이지. 고양이와 사자가 같은 덩치라면 어느쪽이 강할까? 사자가 고양이만하고 고양이가 사자만 하다면 어떻겠어?”
장수한의 말에 호철은 할 말이 없었다. 사자만한 고양이라면 거의 호랑이나 다름 없을 터였다. 호랑이와 사자 중 어느쪽이 강한가에 대해서는 어차피 이견이 많았다.
“펜릴 제국에서 염소부족과 토끼 부족이 꽤 강하다고 하더군. 염소부족의 장창 돌격과 토끼부족의 준족을 살린 궁술 덕분이라고 하지. 늑대 부족에서 왕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협조성이 뛰어난 종족이기 때문이야. 물론 펜릴이 늑대라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사자? 넘치는 정력이 최대의 장점인 놈들이고, 그래서 멸족당했지. 정력이 넘치는 놈들이라 암컷들을 다수 소유하려고 들었고, 덕택에 부족내에 남자 전사가 부족해져서 다른 부족들과의 경쟁에서 탈락하게 된거야. 그리고 넘치는 정력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어있지.”
귀족들은 사자의 피를 받은 후, 바로 마셨다. 딱히 불이익이랄게 없기 때문이었다. 넘치는 정력으로 암컷들위에 군림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나쁠 것이 없었다.
딱히 성욕이 불타올라서 판단을 그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력이 충만하다는 것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리가 없었다.
하루에 한명 상대하기도 힘들었던 이들이, 하루에 수십명을 상대할 수 있게 변한 것이었다. 사자로 변신하지 않아도, 정력의 증가 효과가 확실하게 존재했다.
그러다보니, 새로 상대할 여자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성욕 자체가 증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과 일에 전념해온 귀족들은 별로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귀족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젊은 나이에 사자의 피를 받은 귀족의 후계자들은 문제의 씨앗, 아니 시한폭탄이 되어가고 있었다.
“똥에는 파리가 꼬이고, 명탐정에게는 살인이 꼬이지. 그리고 미인에게도 트러블은 꼬여들게 마련이야. 뒤집어서 말하면 파리는 똥이 있을 만한 곳으로 가고, 명탐정은 살인이 벌어질 만한 곳으로 가지. 그리고 미녀는 자신의 미모를 자랑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법이지.”
장수한만큼은 아니지만, 조제성도 판타지 소설등을 읽었다. 아스가르드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서 접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귀족 토벌 계획의 마무리를 세웠다.
노폴 공작의 후계자는 사자의 피를 얻은 후, 미녀를 수집하기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영지 내의 미녀로 부족함을 느끼고, 여행자들 가운데 미모의 여성이 없는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노폴시에 있는 여행자용 호텔에 자주, 아니 매일밤 나타나고는 했다.
그리고 미녀로 이루어진 여행자들이 노폴역 플랫폼에 내려섰다.
“너무 전형적인 전개라 뒷 일은 따로 볼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왠지 오글거릴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지요.”
장수한은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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