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40화 (340/497)

340화 굴베이그령의 혼란

“휴우. 정말 민망하네.”

원기는 이번 작전을 위해서 프레이야 여신의 캐릭터를 블러드 라인용으로 어레인지 해서 작성했다.

성직자 캐릭터를 프레이야 여신의 외모 데이터에 맞춰서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신 셋트를 맞춰입었다.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여신의 티아라를 장착하면, 여신 셋트의 효과가 발동되도록 되어 있었다.

효과는 매력 상승과 광원 효과였다. 전체적으로 빛을 발하면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있었다.

프레이야 여신의 본캐릭터가 갖고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후광 효과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부터 매료시키는 본체의 능력에 비하면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지만, 본체를 접하지 않은 이들은 빛나는 효과만으로도 속을 것이라는게 조제성과 장수한의 판단이었다.

여신 본체를 조금의 위험에라도 노출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고, 그것에는 원기역시 동의했다.

“좋지 않아? 그것도 나름?”

카즈키는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행은 전부 네 명이었다. 원기, 연하, 희연, 카즈키였다. 그리고 외모는 제일 어리게 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카즈키가 연장자였다.

지기 싫어하고 자유분방한데다가 괄괄한 면이 있는 카즈키는 원기를 가장 편하게 대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남자가 미인계로 함정을 판다는게 좀 난감하지.”

원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이런 상황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 귀족들의 몰락을 불러올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게가 필요하다는 것이 조제성과 장수한의 의견이었다.

블레이드는 군대를 수습하고 통솔해야 했고, 아름다운 엘프들은 이쪽 세상의 기준에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특히 아무리 막나가는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엘프를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뒷 감당이 안될 터였다.

그런 면에서 프레이야가 가장 좋은 선택이 된 것이다.

지나가던 예쁜 아가씨한테 작업을 걸려던 귀족가의 망나니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려던 여신님을 겁탈하려는 귀족가의 후계자가 더 임팩트가 크다는 것이었다.

신화에도 신이나 여신이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의 곁을 다니는 이야기는 꽤 많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선전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희연은 레벨도 낮고 신체 조건의 메리트를 상실해서 약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원기의 현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존재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쯧쯧.’

카즈키는 내심 혀를 찼다. 희연의 마음 상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희연은 탁월한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희연 자신이 실감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받기 힘들다고 여기고 있었다. 애교도 없고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경직된 태도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여겨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보니,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검술 솜씨’ 때문에 여신에게 선택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가치라고 여기고 있었다.

‘싸움 말고는 쓸모가 없는 존재.’ 그것이 희연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물론 붉은여우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그 가치는 엄청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나도 고생 많았지.’

카즈키는 아버지 츠루기를 따라서 일본 각지 뿐만이 아니라 해외 원정까지 함께 다니곤 했다. 덕분에 많은 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정작 일본 사회에 녹아들어가지는 못했다.

자신을 죽이고, 주위에 맞추는 일본식 학교에서 학생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완전히 겉돌았다.

이지메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열받은 그녀는 목검을 집어 들었다.

일본의 음험한 이지메는 보통 누가 했는지 모르도록 이뤄지기 때문에 범인을 색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카즈키는 범인 색출엔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일진 녀석들을 두들겨 잡은 것이었다.

그녀는 경시청의 검도 도장에서 수련을 하는 나름 든든한 백이 있었기 때문에 사고만 심하게 치지 않으면 수습이 가능했다.

전치 2주도 나오지 않지만, 똥오줌을 조절할 수 없을 만큼 아프게 패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일진들 위에 군림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일진들을 두들겨 팼다. 그러면 알아서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

하지만 친구는 생길 수가 없었다. 그녀에 대해서 많은 악의적인 소문들이 떠돌았다.

그녀는 끝까지 강함을 관철했지만, 마음 속에는 많은 상처들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애교도 없고 사랑받기 힘들다는 느낌은 그녀도 늘 간직해오던 것이었다.

“그보다 기차좀 개선이 안되나? 몸이 굳은 느낌이야. 빨리 가서 목욕이나 해야겠다.”

카즈키는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아직은 여객 열차에 고가의 인테리어나 고도의 기술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철로가 아니라 쇠로 만들어진 철로였다면 몰래 뜯어갈 사람들이 천지였기 때문이었다.

고무의 가치를 깨닫고 열차 바퀴를 훔치러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고급 객차라고 해도 나름 고급스럽게 만들었지만, 열차 내부는 현대인 기준으로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고급 객차는 관리라도 잘 하고 있지만, 일반 객차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들의 공중 도덕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역사 역시 투박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각지에서 몰려온 난민들로 이뤄진 난민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여전히 문제가 많군.’

원기는 후드 달린 망토를 눌러쓴 상태로 난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기존 굴베이그 령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징집이라는 형태로 수용되었다.

말이 군대지, 실질적으로는 학교에 가까웠다.

최초의 목적은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어도 가르치는 것이었지만 기존 아스가르드어와 구조적으로 너무 달라서 일반인들에게 짧은 시일 내에 가르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금지당하고 새로운 언어를 강요하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타협해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 기본적으로 알파벳을 공유하는데다가, 현대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일 준비로서 필요한 작업이었다.

카메라, 컴퓨터, 트레인, 등등 새로운 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언어를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영어라는 언어와 문화를 이식하는 쪽이 쉽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영어는 무리없이 배워나가고 있었다.

예외는 엘프들과 다크엘프들로, 그들은 여신님이 사용하는 주 언어가 한국어라는 사실 때문에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아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영어, 한국어, 아스가르드어의 세 언어가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상태는 당분간 극복되기 어려울 듯 했다. 다만, 아스가르드어가 영어를 토대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스가르드어로 통일된 미래를 만드는데에도 필요한 일이었다.

군대에서는 영어와 아스가르드어, 역사, 산수, 기술, 신앙, 윤리 등을 가르치는 기본 교육과 대규모 토목작업, 치안 유지 등의 임무를 맡게 되어 있었다.

직업 군인이 아닌 의무 군인은 평균 하루 4시간에서 6시간의 교육 겸 근무를 하게 되면 군대에서 정해진 양의 배급을 받게 되는 형태였다.

식량과 기타 필수품들이 전부 배급의 형태로 주어졌다.

난민들이 모여든 것은 바로 이 배급품들을 노리는 것이기도 했다. 이들은 각지에서 가져온 특산품이나 기타 여러 물품과 배급품을 교환했다.

의무군인들의 근무 시간을 짧게 해놓은 것은 상업 및 기타 생업에 종사하도록 만든 것이었지만,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이들이 기존의 일자리에 종사하게 된 것이었다.

여관을 운영하던 굴베이그인은 난민들을 배급품으로 고용해서 종업원으로 부려 먹었다.

난민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굶어 죽을 걱정은 안해도 되자 각지에서 난민들이 모여들어서, 지금은 굴베이그인의 몇배가 넘게 된 것이다. 통제가 안될 수 밖에 없었다.

부를 축적한 굴베이그인들은 난민들을 노예화시켜서 부리는 경우도 많았고, 몸을 파는 선택을 하는 난민들도 적지 않았다.

단기적으로는 답이 안나오는 상황임엔 틀림없었다.

조제성과 장수한은 이 난민들을 일종의 프랑스 용병부대처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직업 군인으로 몇 년 이상 종사하게 되면 굴베이그 국적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난민들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귀족과 평민들까지 반대를 받았고, 그들의 저항 때문에 진척이 느려지고 있었다.

굴베이그인들은 자신들이 마치 준귀족인양 행세하고 있었다.

‘아, 정말 싫어지는군.’

원기는 굴베이그령의 실태를 보면서 실망감이 커졌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짬타이거로 대검을 휘두르며 돌격하는게 제일 좋았는데.’

애정이 있기 때문에, 실망감, 혐오감, 분노, 안타까움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원기는 엘프와 다크엘프들을 떠올리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예정된 호텔로 향했다.

정갈한 호텔이 아닌 과도하게 호사스러운 호텔이었다. 카즈키는 네 사람이 함께 머물 수 있는 방을 택했다. 원기는 여성 캐릭터에 익숙해져 있었고, 희연과 방을 같이 쓰는 것에 익숙해서 굳이 따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둘이서만 방을 같이 쓰는 것도 어색하지.’

희연과 원기는 늘 함께 있는 편이지만, 서로 대화는 그다지 나누지 않는 편이었다. 서로 그렇게 붙임성이 있거나 활달하지 않고 조용하게 홀로 지내는데 익숙한 탓이었다.

그 때문일까, 원기는 카즈키에게 휘둘리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희연도 마찬가지였다. 카즈키가 일방적으로 희연을 따라다니는 모양새지만, 어느샌가 희연도 카즈키에게 많이 마음을 연 상태였다.

“같이 목욕하자. 등밀어줄께.”

카즈키의 제안에 원기는 당황했다.

“전 기본이 남자라서…”

“괜찮아. 여자 몸이라 그것도 안달려 있으니 문제 없어. 그리고 일본에선 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문화가 있어. 그러니 신경 안써도 되거든. 겨우 알몸가지고 뭘그래. 이미 익숙할텐데.”

과거에는 혼탕이라는 것이 흔했지만, 현대화되면서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소리는 빼놓았다. 드물게 혼탕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노년의 남녀들이나 들리는 정도였다.

“그건 좀…”

“아, 희연아. 너도 같이 하자. 귀족 공자님을 꼬실 준비를 해야지. 아니, 이왕이면 다 같이 하는게 어때? 욕조도 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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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여성이 넷이나 들어왔다고?”

“예. 귀족 출신인 듯 싶은 여행자들이라고 합니다. 꽤 반반하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거 마음에 드는군.”

무역상들을 제외하면 여행자들은 대부분 난민출신들이었다. 몰락 귀족 출신의 난민들도 적지 않았다. 펜릴이나 헬 지역에도 인간 귀족들이 없지는 않았다.

수인족들과 충인족들, 뱀파이어들을 섬기는 준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집사, 시녀, 관리 등까지 소위 상위 종족들이 맡지는 않았다.

전투 중심으로 개조된 종족들은 관료에는 맞지 않는 편이었다.

결국 몰락 귀들 중 일부는 적당한 곳에 정착하려고 굴베이그령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탈도 안생길 것 같으니 좋군.”

정착을 원하는 몰락귀족이라면, 알아서 자신에게 꼬리를 칠 것이 분명했다. 설사 자신을 거부한다손 치더라도 여행자들 정도는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

‘저항하면 아예 노예로 삼아주지.’

굴베이그령 내에는 인신매매까지도 횡횡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문명 사회로 정착하려면 몇십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난민들이 계속 유입되는 상황 자체가 혼란을 불러오고 있었다.

굴베이그인들은 난민들을 멸시하고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있지만, 사실 프레이야에게 있어서는 굴베이그인들이나 난민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프레이야의 도움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에서 난민들이 더 애착이 갈 지경이었다.

조제성에게 있어서도 굴베이그령은 도움도 안되면서 요구만 많은 밑빠진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원기는 호텔 창문을 통해서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군복을 입은 이들에게 난민들이 굽신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여신 캐릭이 아니라도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저것도 또한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인 것이겠지.’

원기는 그렇게 마음을 다졌다. 그는 굴베이그인들과 귀족들이 자신의 사람들이 아니라 ‘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저들에 비하면 달에서 열심히 일하는 충인족들은 진정한 자신의 사람들이었다.

바퀴벌레의 모습을 한 그들이 지금 저들보다는 훨씬 더 사랑스러웠다.

아스 신족들이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도 반신족이나 거인족들처럼 인간을 변화시키지 않은 것은 인간이야말로 가장 교활하고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완벽한 전투 생물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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