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미적감각
네 사람은 식당으로 내려와서 간단히 음주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
제법 고급 식당이라 음식의 질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식당이라기보다는 유흥주점이라고 해야할 지 몰랐다.
“이제 미끼를 물러 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떡밥이 왠지 시원치 않아 보이네.”
카즈키는 주위를 살짝 둘러보며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자신이 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교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받기보다는 미움과 질시를 받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네.”
카즈키의 말에 연하도 동의를 표했다. 그녀도 스타덤에 오르면서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에 시달린 바 있었다.
사람들이 프레이야 일행을 힐끗힐끗 보기는 했지만, 경국지색의 미녀들이 네명이나 모여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역시 미적 감각이 다르긴 많이 다른가보네. 엘프들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는다지?”
“다른 인종을 아름답다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
과거 조선 시대에는 백인들조차 코가 크고 흉측한 괴물로 여겼고,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도 흑인들의 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기본 바탕이 미인인 희연, 연하, 카즈키의 캐릭터는 굴베이그령에서 보는 미인의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동양 미인형으로 되어 있었다.
머리 색깔과 피부 색깔, 눈동자 색깔을 조종해서 북구인과 비슷하게 맞췄지만 취향과는 떨어진 듯 했다.
원기의 캐릭터인 블러드라인버전 프레이야는 그나마 낫기는 했지만, 경국지색이라고 하기엔 역시 좀 부족했다.
굴베이그 인들 기준으로는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안쪽으로 푹 패인 형태가 미인형이었다. 그리고 몸매의 기준은 과체중이어야 했다.
프레이야가 조금 풍만하고, 나머지 세사람은 기본이 전사들이라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할 미모들의 조합이지만, 아스가르드에서는 미인은 못되지만 그럭저럭 볼만한 앳되보이는 여자 세명과 미인으로 봐줄 수 있을만한 한명의 조합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나마 미인으로 봐줄만 한 한명이 후드달린 망토로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뭐, 시비만 걸면 되는 거니까.”
카즈키는 별 고민은 하지 않았다. 굴베이그령의 귀족들은 굴베이그 여신이 적진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일시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펜릴측에서 수인족의 피를 받고 거래를 하게 되면서, 기고만장한 상태로 변했다.
눈치볼 상대가 없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전에 없던 힘까지 생겨났다.
사고칠 준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난 북두마권이라는 만화 그다지 맘에 안들더라. 나쁜 놈하고 피튀기에 싸워놓고, 상대가 죽은 다음에는 ‘이 놈은 좋은 놈이었다’는 식으로 나오는거 뒤끝이 찜찜해.”
카즈키의 말에 후드를 눌러쓴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마츠모토 부녀는 일본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수행한답시고 산속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만화책을 배낭에 짊어지고 들어갔다고 했다.
운동을 하다보면 근육에 피로가 쌓이고, 피로가 쌓이면 관절을 잡아주는 힘이 약해져서 부상을 입기 쉬워졌다. 마츠모토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훈련에 있어서 휴식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
가부좌를 틀거나 정좌를 하고 명상 같은 것을 하기 보다는 딸과 함께 만화책이나 읽는 것을 택하기는 했다.
덕분에 원기와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가상 컴퓨터로 만화와 게임으로 시간을 보낸 원기로서는 덕스러운 대화가 편한 면이 있었다.
“난 그런 점이 좋던데.”
“그래?”
“그래. 일단 죽이고 나서 좋은 점을 찾는거 말야. 난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보면’ 착하다고 생각해. 그저 착하게 살 방법을 못배우거나 착하게 살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라고 봐.”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착하다는 거야? 그럼 죽이는 건 좀 곤란한거 아닐까?”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착한 사람에게 맞아죽던 나쁜 사람에게 맞아죽던 죽는 건 죽는거야. 착한 사람에게 맞아죽는다고 기쁘게 죽어줄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 아군을 살리기 위해서 적을 죽이는건 당연한 것 아닐까? 착한 사람이라고 차별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해.”
“아, 그거 맘에 드네. 그래. 착한 놈한테 찔린다고 안죽는 건 아니지.”
카즈키는 미소를 지었다. 희연 역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하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의외로 원기오빠랑 카즈키 언니가 죽이 잘 맞네. 여신님의 사고방식으로는 어떨려나.’
연하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알고보면 다 착한 사람이다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 싶기는 했다.
가정 형편이나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일들 때문에 사람들과 도우며 살아가는 길을 걷지 못하게 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연하도 궁지에 몰려 본 경험이 있었다. 프레이야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찌보면 신이 인간을 보는 시각으로서는 자연스러울지도 몰랐다.
누군가를 편애하기 보다는 공평하게 잔혹한 쪽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망설일 필요는 없는거야. 상대가 누구건 평등하게 대해야지.’
연하는 활에서 저격총으로 무기를 바꾼 다음에 많은 갈등을 하게 되었다. 활은 먼거리에 있는 적을 조준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하의 눈이 시력이 좋다고는 해도 깨알같이 보이는 상대가 커져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격총에는 스코프가 달려 있었다. 상대의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그래서 공격할 때, 온갖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상대를 쏠 때와 얼굴 생김과 표정이 생생하게 보이는 상대를 쏘는게 같을 리는 없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에서 착한 사람은 죽이면 안된다라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아, 타겟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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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생각보다 반반하군.’
노폴 공작가의 후계자 브레이는 희연과 원기 일행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만족했다. 특이한 외모 자체도 수집 가치가 있었지만, 귀족이라 눈이 높은 탓도 있었다.
장수한의 엘프들을 이용한 문화 전파의 영향은 귀족들에게 우선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엘프들이 가진 매력을 깨닫고, 엘프들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경향들이 귀족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나타난 것이었다.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많은 귀족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들. 노폴 공작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는 신사다운 미소를 지으며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는 잘나가는 미모의 소유자였지만, 그 기준이 현대와는 달랐다. 그래서 희연과 카즈키, 연하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들었다.
그리고 원기는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 들었다.
‘우와 느끼하다.’
‘기름이 철철 넘쳐 흐르는 것 같아.’
‘턱이 완전히 엉덩이처럼 갈라졌네. ‘시리아고(엉덩턱)’로군.’
‘저 털많은 고릴라한테 미인계를 쓰라고? 가슴에 수세미를 단 것 같은걸.’
미적 감각의 차이가 느껴졌다. 그래서 원기는 저도 모르게 움츠려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브레이에게는 왠지 여성적인 매력처럼 느껴졌다.
희연과 카즈키의 눈빛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히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은 은근한 불쾌감을 안겨줬다. 게다가 왠지모를 불안감이 스쳤다.
귀족의 후계자인 만큼, 위기에 대한 감은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하의 눈빛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왠지 재밌는 물건을 보는 듯한 구경꾼의 눈빛이었다. 반면 눈도 마주치길 꺼려하고 후드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는 모습에서 여성적인 매력을 느꼈다.
‘역시 부끄러움을 아는 여성이 매력적이긴 하군. 저것들의 눈빛도 좀 꺾어놓고 싶기는 하지만.’
“전 이 도시를 책임지는 치안 책임자로서 여러분들의 신분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굴을 좀 보여 주시지요.”
공작령에서 공작가의 후계자가 될 수 없는 것 따위는 없었다. 원기는 할 수 없이 후드를 내려서 얼굴을 보였다.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모습에 브레이는 살짝 흥분되었다.
“이봐. 현상 수배된 인물들 가운데서 본 적 없나?”
“아, 있습니다. 확인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잠시 동행해 주셔야 할 것 같군요. 무장을 해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 신체 조사를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원기에게 다가갔다. 원기는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충분히 미끼를 물었다고 보기엔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공무 집행의 형식을 하고 있으니 저항하기도 난처했다.
그때 카즈키의 입이 열렸다.
“꺼져. 그 여자도 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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